톱스타 마케팅
선덕여왕의 고현정에게도 내성이 있던 나였지만, 김태희가 나온다는 말에 솔깃해 드라마에 관심을 가졌고, 결국 몹시 아팠던 어제, 1,2편을 다운받아 보고야 말았다.
KBS와 협정을 맺었다는 안내문이 나오면서 회당 700원의 정보이용료가 나갔다. 썅... 다음부턴 정시에 챙겨봐야 하는 것인가.
어쨌든, 김태희 이름 석자에 나까지 드라마를 다운받아 본 것을 보면 1,2편 시청률이 그렇게 높았던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야 김태희 때문에 봤다 쳐도, 이병헌, 정준호 같이 쟁쟁한 사람들이 나오니 이건 뭐 일단 관심 갖고 볼 일 아닌가? 1
이병헌(김현준 역)
김현준의 긴 대사를 자연스럽게 소화한 이병헌의 연기는 정말 훌륭했다. 완전 베테랑이다! 이 대사 부분은 찾을 수가 없어서 생략한다.
다만 이런 말을 했다. 키스한 다음날 최승희가 김현준을 옥상으로 불러내(CCTV 사각지대란다) 너 까불지 마라, NSS가 우습게 보이냐 내가 만만하냐 이렇게 쏘아붙이고 나가려 하자...
팀장님, 잠깐만요.(최승희 돌아선다)
제가 왜 NSS에 들어온지 아세요? 저 애국심이나 요원으로서의 충성심, 이런 거 없는 놈이예요. 특임대 때도 그랬어요. 그런 제가 NSS에 들어온 건... 그냥... 난생처음으로 재밌다고 느꼈어여 가까스로 길 찾은 다음에 아... 이게 내 운명이겠구나 그런 생각 했어요. 이 위험하고 복잡한 조직이 나한텐 되게 단순하게 생각됐어요. 목숨만 걸면 내가 재밌어하는 내가 운명이라고 생각하는일을 계속 하면서 살 수 있겠구나 ...
나.. 요원으로서의 충성심이나 애국심이나 그런 건 없어도 내가 정한 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놈입니다. 강의실에서 처음 당신 만났을 때부터 한 번도 만만하게 생각한 적 없어요. 그리고 이거 장난 아닙니다.
복잡한 대사라 옮기느라 매우 부정확한데... 아이리스 한줄 명대사에 있는 거 배꼈다. 그래도 부정확해 보인다. 애구 집에 가면 동영상 보고 다시 적어야겠다.
여튼간에, 아주 자연스러웠다는 것이지.
확튀는 주연, 개성없는조연과 엑스트라
뭐 아직 드라마가 얼마나 오지도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이야기하기는 힘들겠지만, 조연과 엑스트라들의 생명력이 너무 없게 느껴졌다.
나는 영웅을 그리는 드라마일수록 조연과 엑스트라의 이야기는 필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진정 영웅이란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웅은 혼자서 탄생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 없이 영웅은 탄생할 수 없다.
레닌은 1917년 혁명 와중에 7월의 반동이 찾아와 지하로 숨었다. 수많은 지지자들이 레닌을 효과적으로 숨겨주지 않았다면, 1917년 10월 혁명의 주역 레닌은 이 땅에 없을 것이다.
체 게바라만 봐도 그렇다. 수많은 농민들이 체 게바라 부대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고 숨겨주지 않았다면 체 게바라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다.
극에서 주인공은 필수지만, 작품 전체의 품격을 좌우하는 것은 극이 조연과 엑스트라에게 얼마나 생명을 불어넣고, 주연과 조화시키느냐에 있는 것이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영웅 그 자체가 부각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바람이 이루어지기는 매우 힘든 것 같다. 비단 아이리스뿐 아니라 많은 드라마와 영화들이 주연 중심에 조연은 말 그대로 조연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딱 잘라 말할만큼 자신이 있지는 않다.) 2
아이리스 1편 후반부에 생명력 없이 김현준의 '폭력'에 쓰러지는 연구원, 방위들은 '이건 뭥미' 하는 느낌을 줬다. 어쩌면 내가 엑스트라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 그런식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을까? 다른 식으로 극을 구성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적으로 나온 야마모토(이름 맞는지 모르겠다)도 생명력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더이상 평론할 능력은 없으니까 패스.
적군파
(참고할만한 글이 별로 없는데, 일본 적군파 지도자였던 시게노부 후사코란 사람이 쓴 자전적 에세이 일부를 인용한 글을 참고하라. 당시 적군파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글이다. <한겨레21>에는 좀더 길게 시게노부 후사코가 소개돼 있다. 적군파가 무엇인지도 맨 하단에 간략히 소개돼 있다.)
적군파의 후계자가 왜 한국 대선 후보를 죽이려고 했는지 설명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김현준이 '괴물'이라서 찍어 맞췄다고 하는데, 이건 뭐 근대 소설의 개연성을 포기한 거냐. 그래 감으로 찍어 맞췄다고 하자. 백번 양보하자 이거야. 그런데, 아무리 감으로 찍어맞췄어도 결국은 '왜' 암살을 시도한 건지 설명이 나와야 하는 거 아냐? (뭐, 나중에 나올 수도 있으니 일단은 진켜 보자구. 그래도 나중에 알려주는 게 정당화되려면 2편에는 알려주면 안 됐던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거다.)
어쨌든, 독일로 치면 <바더 마인호프> 같은 이들일 적군파를 저런 식으로 현실성없게 테러리스트로 묘사한 것은 정말 불쾌했다.
나가며
<아이리스>를 보며 스타 마케팅의 위력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웅을 그리는 법, 그리고 시나리오의 엉성함을 느꼈다.
긍정적인 건 하나도 없구만. 그래도 김태희와 이병헌을 보기 위해 3화는 기다려진다. 오늘은 방송시간을 준수해서 DMB로 볼 생각이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 안에 사는 인간인 거다. 피와 살과 감정을 가진 인간 말이다. ㅋㅋ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극 리뷰] 죽여 주는 이야기, 2010년 8월 31일, 극단 틈 (0) | 2011.09.30 |
---|---|
배운 것 없는 사람들도 알 건 안다 - 러시아 10월 혁명 당시 한 학생과 노동자의 논쟁 (1) | 2011.06.22 |
추노 16화, 예술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명작의 꼭지점 (6) | 2010.02.26 |
프랜시스 윈, 《마르크스 평전》 (2) | 2009.12.30 |
드라마 <아이리스>를 보면서 숨이 막혀오는 이유 (2) | 2009.11.24 |
아이리스 1,2편을 보고 - 스타 마케팅, 자본주의적 영웅, 적군파 (2) | 2009.10.21 |
아이작 도이처, 《비무장의 예언자 트로츠키 : 1921-1929》 (14) | 2009.09.02 |
반이명박을 표방하는 신문, 〈레프트21〉 (10) | 2009.03.09 |
파시즘이 대중운동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책, 《파도》 (2) | 2009.03.08 |
충실한 CSS 입문서, 《CSS 비밀 매뉴얼》 (4) | 2009.01.30 |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입문서,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알렉스 캘리니코스, 책갈피, 2007) (6) | 2008.12.12 |
우연히 케이블에서 재방을 봤는데 기억나는 건 김태희 얼굴밖에 없더군요 하하하
역시 어쩔 수 없는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