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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1945년 해방 직후 조선공산당이 본 혁명의 성격과 수단

이 글은 앞의 글(1945년 해방 직후 조선공산당의 계보)에서 밝힌 대로, 《해방정국과 조선혁명론》(해방3년사연구회, 대야출판사, 1988)의 2장(조선공산당의 변혁운동론)을 요약한 것이다. 내 생각은 이 책과 다르다는 점을 밝힌다.

다. 혁명의 성격

이 책은 조선공산당이 조선에 닥쳐올 혁명의 성격을 "부르조아민주주의혁명"으로 규정했지만, 내용상은 "인민민주주의혁명론"이었다고 말한다. 솔직히 나는 두 말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책을 보면, 박헌영은 "부르조아민주주의혁명론"을 제시하면서 "민족적 완전독립"과 "토지문제의 혁명적 해결"이 가장 중요하고 중심되는 과업이라고 말했다. 독립과 토지문제 해결은 부르주아혁명의 과제인 것은 맞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부르조아민주주의혁명"은 그냥 "부르주아혁명"보다 좀더 민주주의에 철저한 혁명이라고 한다. 나참 ㅡㅡ;; 이런 규정도 있는 것인가.

①혁명의 과제

박헌영은 혁명의 과제로 

  1. 민족적 완전독립
  2. 토지문제의 혁명적 해결

을 제시했다.

조공의 김동환은

  1. 반제국주의혁명 - 구체적으로는 일제와 친일반동세력 일소
  2. 토지혁명

이라고 과제를 제시했다.

박헌영이 8월 테제에서 제시한 대안 권력은 "혁명적 민주주의정권"이다. 내 생각에 이는 "노동자 권력"을 의미하는 게 아닌 듯하다.(사실 혁명론 자체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니 노동자 권력이 대안 권력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모스코바 삼상회의 결정에 따라 '미.소 공위' 절차를 토의하는 미측의 하지 중장(왼쪽)과 소측의 스티코프 중장. / 해방된 조선의 운명은 이들의 협상으로 정해졌다. 출처 : http://koreanliterature.kaist.ac.kr/leesangkyung/picture/picture_15.htm


이 책도 그렇게 보는 입장인 듯한데, 미소연합이 공고한 채 유지되고, 세계가 민주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굳게 믿은 "작관적 정세판단 하에서 조공은 반제국주의혁명의 대상을 일제잔재 청산으로 좁혔던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이 책이 그렇다고 당시에 철저한 노동자 권력이 필요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조공의 이런 낙관적 정세인식이 '신전술'의 목표도 단순히 미국에 압력을 가하는 것으로 제한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게 조공에 재앙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이 평가 자체는 맞는 듯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제시하는 대안이 그렇게 미더운 건 아니다.

그 다음 봐야 할 것은 조선공산당의 반봉건 과제, 즉 토지 혁명에 대한 입장이다.

이건 좀 황당한데, 조선공산당은 처음에 전체 토지의 10%에 해당하는 일본 지주의 토지는 무상몰수 무상분배하고, 조선인 지주들의 토지는 그렇게 하지 않고 3:7제 소작료를 관철하는 것을 '토지혁명'의 구체적 내용으로 제시했다.[각주:1]

이 책은 3:7제 소작료 정책이 조선 농민들의 지지를 확고히 하는 데 보탬이 됐다는 언술을 인용(45p)한 다음 "3ㆍ7제 주장은 … 토지를 무상으로 분배한다는 원칙하에 그 준비 과업으로 제시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썼는데 내가 보기엔 미심쩍다.

더더욱 미심쩍은 이유는 조선공산당이 고작 5개월만에 이 입장을 바꿔 5정보 이상의 토지를 모두 무상몰수, 무상분배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다. 북한의 토지개혁에 고무받아 이런 입장으로 바꿨다고 하는데, 사실상 민중의 요구사항을 수렴해 요구를 작성했던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내 심증을 굳혀 주는 서술이다. 이건 정확히 알아보는 게 좋겠다.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게 더 정확할 듯하다.

해방 당시 농민들의 정서는 대체로 무상몰수 무상분배였다고 한다. 그러나 소련이 미국과의 친선을 유지해야 했기에, 급진적 정책을 시행할 수 없었던 것이고, 소련을 추종했던 조선의 좌익들이 농민들의 요구를 꺾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게 미군정의 안보다 고작 3.3%p 낮은 3ㆍ7제 소작료다.

그런데 미소협조노선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자 정책을 바꿨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구체적 근거가 없고 들은 내용과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논리를 적은 것이므로 '같다'고 쓸 수밖에 없겠다.

②민족통일전선

이 책은, 인민정권의 수립을 위해 민족통일전선을 필수고 사실 둘은 연결돼 있는 하나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조공은 인민정권 수립을 위해 민족통일전선 정책을 추진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조공이 "너무 배타적이어서" 다른 세력들을 통일전선으로 끌어들이지 못했고, 그게 조공 고립과 실패의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이 점은 내가 생각하는 평가와 다르다.

조선공산당은 중국공산당이 "민족부르조아지가 … 제국주의 침략에 대응해 일정 정도 혁명성을 가진다"고 평가한 것과 달리 "민족부르조아의 반혁명성을 지적하고 그 실체를 의심"했다고 평가한다.[각주:2]

그런데, 내가 보기에 조선공산당은 "기타 모든 진보적 제요소"가 단결해야 한다고 써서 뒷문을 열어놓았다. 게다가 이 책에 따르면, 조선공산당이 추진한 혁명은 "인민민주주의혁명"이다. 그렇다면 부르주아를 혁명과정에 동참시키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 된다.[각주:3]

이 책은 "민족자본자들을 통일전선의 대상으로 설정하기보다는 "기타 모든 진보적 제요소"라는 용어를 통해 민족자본가에 대하여 거리를 두고 있다"(40p)고 평가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런 평가는 의심스럽다.

실제로 이 책도 "진보적 제요소"의 실체를 들여다 보면서, 

  1. 조선공산당이 동맹 세력의 계급적 기반을 언급하지 않은 점
  2. 그래서 "진보적 제요소"라는 동맹 규정이 우익세력과의 지속적인 통일전선 결성의 노력을 가능하도록 한 근거가 됐다는 점

을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은 이를 '그나마 긍정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은 이렇게 주장한다. 미군정의 존재 때문에 "민족자본가와의 통일전선 결성이 남한에서는 대단히 어려웠다. 그러나 당시의 민족자본가 세력을 모두 동일시할 수는 없으며 그 가운데 진보적 세력과는 계속적으로 통일전선 결성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51p)

그러나 해방 직후에 조선에 필요했던 것은 노동자들의 이익을 일관되게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었지, 우익(부르주아 계급)과의 동맹을 추구하는 정당이 아니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책은 북한이 기타 세력들에게 훨씬 유연한 정책을 취했기 때문에 인민민주주의혁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그런 논리에 비추어 봤을 때 남한의 조공에 이런 비판을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조선공산당의 "부르조아민주주의혁명론"이 개혁내용과 개혁주체가 조응하지 않는 면을 보인다고 비판한 후, 그게 사실은 "인민민주주의혁명론"이라고 이야기한다.

  1. 미군정은 3ㆍ1제를 제시했다고 한다. 이건 소작료가 3분의 1일 넘지 못하게 하는 안이다. 조공의 안과 미군정의 안 모두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안이었다. 당시 소작료는 보통 50~60%였다고 한다. [본문으로]
  2. 하지만 공장자주관리운동에 대한 조공의 입장은, 그것이 양심적 자본가와의 협력을 막기 때문에 좌경적 오류라고 비판했다. 즉, 양심적 자본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본문으로]
  3. 내 주장을 지운 이유 : 인민민주주의혁명은 스탈린주의 정권 성립을 의미한다.(스탈린주의 정권 수립에 실패한 곳에서는 부르주아 혁명을 더 급진적으로 보이게 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스탈린주의 정권 성립을 위해서는 우익과 연합은 핵심이 아니다. 실제로 해방 공간에서 조선공산당도 우익과의 협조를 진지하게 노력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다. 한반도 북쪽에 스탈린의 군대가 있는데 뭐하러 굳이 우익과 연합해야겠는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