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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주의는 실천 철학이다

그람시는 《옥중수고》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실천 철학'이라고 썼다. 검열을 피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겠지만, 생각해 보면 참 적절한 네이밍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의 유명한 말은 모두가 알 것이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내가 활동가가 되기 전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그렇지. 아는 것을 실천할 줄 알아야지'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에 머물렀던 것 같다. 하지만, 활동을 하며,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실천 철학'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세계에 '개입'한다는 자세

큰 틀에서 본다면, 마르크스주의는 세계를 변혁하기 위한 사상이다. 변혁을 하려면 당연히 개입을 해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 세상이 변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내가 움직임으로써 세계의 변화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사람들의 가벼운 의식과 실천에 적용하는 의식 사이에는 간극이 있는 경우가 많다. 마르크스주의는 지금, 여기서, 내가 움직임으로써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사상이다. 따라서 그만큼 세상의 일들에 '개입'하는 것이 중요해 진다.

예를 들어 보겠다. 오늘날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무엇을 해 왔는지 말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70년쯤은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가장 단기적인 것부터 말해 보자.

2003년에 이라크 전쟁이 발생했다. 반전 운동이 벌어졌다. (사실 99년 시애틀 투쟁부터 말하고 싶지만) 이라크전이 벌어지기 한 달 전이었던 2003년 2월 15일을 전후해서 세계적으로 약 4천만 명이 반전 시위를 벌였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걸프전이나 코소보전, 아프간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비난 속에서 시작됐다. 사람들은 이 전쟁을 '석유 패권을 위한 전쟁'이라고 불렀다.

이 상황을 사회주의자들이 만들어냈을까? 물론 아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라크를 침공하는 미국의 명분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9·11 테러를 아프간의 빈 라덴이 했다고 쳐. 그래서 아프간을 쳤다고 하자. 근데 갑자기 이라크는 왜 치는 거지?' 이런 의문들, 누구나 가졌을 법하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 없이 반전 운동이 이렇게 크게 벌어졌을까? 노노노. 그럴 수 없었다. 이 운동은 활동가들의 의식적 노력을 통해 만들어졌다. 특히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기여는 컸다고 한다. 영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큰 반전운동이 벌어진 지역 중 하나였다. 영국이 이라크에 미국 다음으로 많이 파병한 미국의 최측근 동맹이라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렇게 환경 요인만 따진다면 미국에서 반전운동이 영국만큼 일어나지 않은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환경 요인과 주체라는 요인을 함께 따져야 한다. 영국에는 운동을 의식적으로 건설한 사회주의자들의 집단이 있었다. 그 집단은 세계 각국의 운동 세력들을 설득했고, 성공했고, 그래서 반전 운동은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그래서 미국은 이라크전에 물량을 투입하고 동맹을 끌어들이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각국 정치 지도자들은 파병에 신중해야 했다. 자신의 정치 생명에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노무현 정권 역시 처음으로 지지자들을 배신한 정책이 바로 파병이었다. 불과 몇 개월 전 헌신적으로 노무현 선거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반전 집회에 나왔다.

반전 운동은 세계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 이라크전을 일으키기 위해 미국이 했던 거짓말에 대한 폭로, 이라크 참상에 대한 폭로 들은 효과적이었다. 여론은 이라크전 반대였다.

당원 수천 명짜리 영국 운동 정당 하나가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다고? 있다. 어떻게?

인간은 역사를 만든다

여기서 마르크스의 말을 하나 더 끄집어내면 도움이 될 듯하다.

'인간은 역사를 만든다. 단, 자신이 선택한 상황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상황에서 만든다.' (인용문 뒤질 시간이 없으므로 홑따옴표 처리하고 검색해서 대충 긁어서 내가 고쳐 썼다 그냥.)

이게 의미하는 바는? 활동가라면 주어진 조건에 개입해 최대한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실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닌은 이런 것을 '사슬의 약한 고리'라고 불렀다. 지금 어디에 힘을 집중해야 가장 큰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체제를 바꾸는 작업을 체제의 약한 부분을 끊어내는 것에 비유해 레닌은 저렇게 말한 것이다.

바로 2003년부터 몇 년 간 전쟁이 세계 지배자들의 약한 고리였다. 영국 SWP를 비롯해 한국의 다함께 등 세계의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반전 운동을 크게 벌여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미국 패권의 약화였다. 반전 운동에 사람들을 참가시키려고 한참 설득을 하고 다닐 때 내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했던 게 떠오른다. "미국의 중동 전략이 실패한다면 미국의 세계적 패권이 약화될 거다. 그러면 전 세계에서 미국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저항하기 더 쉬워질 거다. 당연히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전쟁에서 상처입은 미국은 러시아가 친미 정권의 그루지야를 침공할 때 제대로 개입하지 못했다.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로 이 위기는 더욱 심화했다. 그리고 2011년 이집트의 혁명이 크게 또 한 방 먹였다. 이집트에서도 이라크전 반대 운동은 반독재 투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결국 본토 미국에서 Occupy Wall Street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라크전에서 미국이 신속한 승리를 거뒀다면 미국의 위기가 더 지연됐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여기서 중요했던 것은 각국 정부를 주눅들게 만들고, 이라크 저항 세력의 기운을 북돋워 준 세계의 반전 운동이다. 뭐 성긴 설명이긴 했지만, 빠진 고리들은 알아서 찾아 주시길. 글 쓸 시간이 많지가 않아서 그런다. 양해 부탁.

그렇다면?

그런데 내가 한 가지 더 깨달은 것은 단지 이런 실천만을 생각하다 보면 스케일이 너무 커져서 현실감이 좀 떨어진다는 데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실천 철학이다. 그래서 세계의 격변에 개입해야 해! 이거 난 진지하게 하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좀 현실감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그럼 "그래서 희망 버스 가서 김진숙을 구하자!" 그래 이것도 좋다. 그래도 난 부족함을 느낀다. 왜? 개인의 삶의 영역이라는 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도 개입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삶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부딪혀서 변화를 이끌어내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변증법도 그렇지만 실천 철학, 세계를 변혁한다는 사상이 크게 새로울 건 없는 개념이다. 다만, 현실에 있는 것을 명확한 말로 정리한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개인의 차원에서 보자. 나는 레프트21에서 웹사이트 담당자가 됐다. 참고로 나는 국어교육과 출신이다. 처음엔 날 더러 어쩌라는 건가 하는 생각이 컸다. 그런데… 드디어 담당자가 생겼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나에게 이 요청 저 요청을 해 대기 시작했다. 나는 쫄았고, 방어적이 됐다. 할 수 없는 걸 해달라니!

변화가 있었던 것은 상황을 능동적으로 바꾸려고 노력을 기울이고 부터다. 간단한 프로그래밍 책부터 찾아 읽기 시작했다. 모르면 무작정 검색했다. 검색해서 읽고,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단어를 바꿔서 다시 검색하고, 책을 찾아 읽고. 이걸 무한반복했다. 나를 방어적으로 만드는 사람들의 요청은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 사이트가 가진 문제저에 대해 나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논의를 부탁했다.

그렇게 한 지 6개월 만에 나는 초보 웹마스터가 될 수 있었다. 이 블로그도 그 때 웹 세상을 좀더 잘 알아 보자 하는 동기에서 시작했던 것이다.

개인 자랑을 하려는 건 아니고.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나도, 세상도 불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한다는 것이다" 라고 쓰지 않고 굳이 "불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쓴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발전을 쉽게 믿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태도 변화도 쉽게 상상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단지 지금을 살아 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이 쌓여 미래가 되고 그 미래는 지금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 인간의 실천이라는 주체적 요소가 들어가게 된다.

내가 뭔가 요청을 받았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씨 책임이예요." 이건 세상에 개입하는 자세가 아니다. 이 말 한 마디로 10여 분간 우리는 토론에 들어갔고, 나는 나에게 방어적 자세가 있음을 깨달았다. 방어적 자세는 한 마디로 비개입적 자세고, 세상을 해석하는 데 머무르려는 자세다. 세계를 변혁하려는 자세가 아니다.

"아는대로 실천해야지" 하는 단순한 말은 인간의 삶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웹과 관련된 일을 나에게 물어보는 것은 책임자가 나든 아니든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질문에 답하고 담당자와 상의해서 적절한 선에서 업무를 처리하면 되는 일이었다. 내가 "그건 ○○○씨 책임이예요" 하고 말했을 때 중요했던 것은 내 말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었다. 심지어 실제로 그 일에 관한 책임은 ○○○ 씨에게 있었다. 중요했던 것은 바로 나의 태도였던 것이다.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웹 관련 업무) 그 결과 나는 방어적이 됐고, 사람들과 협력적으로 일할 수 없었다. 이런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나'라는 주체의 노력이 필요했다. 나를 둘러싼 조건이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내가 문제였던 것이다.

사족을 달자면, 내 경험을 일반화할 생각은 없다. 개입적 태도라는 실천 철학의 정수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예다. 개인적 차원에서 이를 적용할 때는 수많은 조건들에 따라 수많은 변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사건을 대하는 관점이다. 나는 그 관점을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든 것이다.

실천 철학의 정수

내 친구 서범진은 개입적 자세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와 그 원인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사람을 얻을 때, 자신감과 경험이 없는 사람이 빠지는 가장 큰 오류는 상대의 현재 상태를 절대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바뀐다. 특히나 개입이 변화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친다.

경험이 있으면 초조해하지 않는다. 앞으로 전개될 다양한 상황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변화를 가장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방법을 고민하면서 상황을 객관화해서 바라보게 된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현재에 갇힌 장수는 필패한다. 체스를 두듯이 한 수 한 수 내다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런 자세는 전쟁의 결과에 미련을 두지 않을 때 더 쉽게 가능하다.

이해해야 한다. 상황과 나를 이해해야 한다. 이해를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해를 위해 철저하게 애써야 한다. 자! 여기서 벌써 '주체'가 등장한다. 주체의 노력이 말이다.

이해를 바탕으로 개입적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내가 뭔가를 함으로써 뭔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물론 세상이 쉽게 변하는 건 아니다. 얼마간의 노력을 해야 하고 그 노력을 고통을 수반한다. 하지만 그게 10년 20년 단위도 아니고 고작 몇 개월 수준이다. (말하고 보니 이건 입시 공부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튼.)

이를 위해서는 현재 상태를 절대화하는 게 아니라 미래를 내다 봐야 한다. 세상은 흘러 간다. 현재도 미래도 고정돼 있지 않다. 모든 것은 흘러가는 순간이며, 우리는 그 변화 과정에 개입하는 인생을 흘러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개입은 전진, 비개입은 후퇴를 의미하기도 한다.

결론

할 말 다 한 것 같지만, 그래도 정리를 해 보자.

마르크스주의는 실천 철학이다. 커다란 운동 규모에서도 적용 가능하다. 사람들은 '세상은 변하지'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개입해서 뭔가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웬걸, 고작 수천 명의 사람들이 미국의 패권을 하락시켰다. 우리의 실천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자자, 그런데 개인 차원에서도 이건 중요하다. 그리고 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은 이거다. 내가 뭔가를 함으로써 뭔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행해야 한다. 주변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그리고 개입해서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려고 노력하라. 이해가 틀렸다면 실패할 거다. 하지만 더 나은 이해를 얻을 수 있고, 더 나은 이해를 얻는다면 더 나은 개입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나의 주변 사람들도 변한다. 이렇게 실천하는 현재가 쌓여서 미래가 된다. 그 미래는 현재와 같은 미래가 아니다. 변화한 미래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인간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자. 인간은 세상에 개입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동물이다. 인간은 역사를 만드는 동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