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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번역] 매수된 대학

원문: http://www.theatlantic.com/past/docs/issues/2000/03/press.htm

이 글은 제 친구인 이원웅이 번역한 것입니다.

Eyal Press and Jennifer Washburn

1964년 가을, 마리오 사비오(Mario Savio)라는 21살 난 버클리대 학생이 스프롤 홀(Sproul Hall)에 올라서 대학을 규탄했다. 사비오는 대학이 "기업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데" 골몰한다고 말했다. 사비오는 '버클리 자유 발언 운동'(Berkeley Free Speech Movement)을 이끄는 학생이었다. 사비오는 대학이 사회에서 양심에 따라 비판하기는 커녕 "기업이 원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 구실을 한다고 비판했다. 요즘 사람들은 그건 60년 얘기고 이제는 한물 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대학 구성원은 그 말이 가장 잘 들어맞는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미국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논의는 주로 다양성과 평등 문제에 초점이 있지만, 작년 캠퍼스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을 일으킨 주제는 바로 점점 더 긴밀하게 엮이는 대학과 기업이었다. 그리고 그 논쟁이 가장 뜨거운 곳이 바로 버클리대다.

4월 13일 오후 학생들은 잔디밭에 누워 햇볕을 쬐는 늦봄의 화창한 날. 어느 누구도 버클리 캠퍼스가 항의의 장소가 되리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캠퍼스 북쪽 가장자리에 있는 콘크리트 건물인 에반스 홀(Evans Hall) 60호 안은 어두웠고, 긴장감이 흘렀다. 스무명 남짓한 교원들이 그곳에 모여있었다. 대부분은 천연자원대학(College of Natural Resources) 소속 교수였다. 이들은 모여 새로 나온 학부 조사가 일으킬 혼란에 대해 발표했다.

새로 발표된 학부 조사에서 초점은 1998년 11월에 노바티스(Novartis)와 맺은 계약이다. 이 계약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노바티스는 스위스계 거대 제약회사이며 유전자 조작 곡물을 생산한다. 계약에 따라 노바티스사는 버클리 대학에게 2500만 달러를 줘서 식물·미생물학부(Department of Plant and Microbial Biology)의 연구를 지원할 것이다. 식물·미생물학부는 천연자원대학에 속한 네 학부 중 하나다.

2500만 달러를 받는 대가로 버클리대는 노바티스에게 학부 연구 성과 중 대략 3분의 1에 대한 사용권을 먼저 따갈 권리를 준다. 주나 연방 정부가 지원한 연구 결과도 마찬가지다. 노바티스는 전례 없이 큰 대표권도 얻었다. 학부 연구 위원회에서 5분의 2를 차지했다. 이 위원회는 어디에 얼마나 돈을 쓸지 결정한다.

이는 결코 그냥 지나칠 소식이 아니었다. 공립대학 학부의 전체 연구 예산 중 3분의 1을 한 기업 이 댄다는 소식은 파란을 일으켰다. 계약이 성사되자 학생들은 '책임있는 연구를 위한 모임'(Students for Responsible Research)를 꾸렸다. 이 모임은 청원서를 만들어 배포했다. 학생들은 노바티스 계약이 "공립대학이 진 임무와 정면 충돌한다"고 비판했다. 버클리 학생들이 내는 신문인 데일리 캘리포니안(The Daily Californian)에는 대학 기업화에 대한 5부짜리 연재 기사가 실렸다. 비영리 단체 연합은 대학 총장인 로버트 버달(Robert Berdahl)에게 서한을 보내 더 이상 버클리가 투자자의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연구하는 기관이 아님을 선언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학장인 고든 라우저(Gordon Rausser)가 이끄는 천연자원학부는 모든 소속 교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언론에서 묻거든 답하지 말고 대외협력처로 돌리라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은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려고 이런 지시가 내렸왔다고 생각했다.

4월 13일 모임이 시작하자마자 미생물 생태학 교수인 이그나치오 샤펠라(Ignacio Chapela) 교수가 말했다. "우리는 교원의 지위에 대해 논하려고 모였습니다." 샤펠라는 당시 교원을 다스리는 기구인 대학 집행위원회 의장이었다. 샤펠라는 머리 위에 있는 영사기를 쳐서 조사 결과를 틀었다. 그리고 노바티스와 맺은 계약이 천연자원학부를 "둘로 갈랐다"고 말했다. 조사에 응한 교원 중 41퍼센트는 계약에 찬성했고, 50퍼센트 이상은 학문을 자유롭게 탐구하는데 "나쁜", 혹은 "매우 나쁜"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 절반에 미치는 수는 그 계약이 "공익을 위한 연구"에 헌신해온 버클리의 명성을 깎아먹는 다고 생각했으며, 60퍼센트는 단과대 내에서조차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생각을 주고받는데 방해가 된다고 보았다. 샤펠라가 크게 걱정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모임이 끝나고 샤펠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버클리에 막 왔을 때, 저를 여기로 데려온 사람, 절친한 동료들은 거의 식물·미생물학부 소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사람들에게 한 말이 노바티스의 귀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들과 말도 못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거저 줄 수는 없죠." 샤펠라는 대학과 기업이 엮이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바티스와 맺은 계약에 대해선 비판적이다. 버클리에 오기전 샤펠라는 3년 동안 스위스에서 오로지 노바티스(당시 노바티스의 이름은 산도즈(Sandoz)였다)를 위해 일했다고 한다. 샤펠리는 이어서 말했다. "교수 개인이 기업에 자문하는 것을 반대하진 않습니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자기 명성만 깎아먹겠죠. 그러나 이 계약은 달라요. 이 계약은 기업과 대학의 관계를 산업화합니다. 우리는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학문-산업 복합체

노바티스 계약을 주도한 고든 라우저는 이런 우려에 대해, 고등교육 기관이 처한 경제 상황이 변했음을 똑바로 봐야 하며, 그런 걱정은 계약에 대해 잘 몰라서 하는 것이라고 본다. 작년에 우리는 라우저를 만났다. 라우저의 사무실은 신고전풍으로 지은 지아니니 홀(Giannini Hall)에 있었다. 라우저는 그 계약이 공공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버클리대의 임무와 충돌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계약 덕분에 버클리대가 최고 연구 기관으로 탄탄히 자리잡을 것이라고 했다. 라우저는 1980년대에 대통령 경제 고문관이었고, 지금은 경영자문 업체를 운영한다. 라우저는 주장하길 "기업은 물론 다른 기관과 함께 창조력을 발휘하는 것"은 버클리대의 가치를 "더 드높이는 것이지, 갉아먹는게 아니다." 얼마 전 버클리대 교우회보에 낸 기사에서 라우저는 이렇게 주장한다. "최신 연구 시설이 없거나 기업들이 개발한 독점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없으면 ... 최고 좋은 교육을 할 수도 없고, 중요한 연구를 수행할 수도 없다. 이런 연구를 하는게 바로 버클리대가 짊어진 임무다."

라우저의 주장은 점점 규범으로 자리잡고 있다. 전국에서 대학 운영자들은 연구비 비중을 늘리려고 기업 부문에 눈을 돌린다. 이는 국가가 교육에 덜 지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구비 대부분은 아직 연방 정부가 대지만(손에 넣을 수 있는 가장 최근 자료에 따르면, 연방 정부는 143억 달러, 즉 60퍼센트를 지원했다), 20년간 연방 정부가 지원하는 비용의 증가율은 꾸준히 줄어들었다. 이는 연구비가 갑자기 뛰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컴퓨터 공학이나 분자 생물학 같은 최신 분야에선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 주 정부가 쓰는 돈도 줄었다. 버클리 대학 총장인 로버트 버달은 전체 버클리의 예산의 34퍼센트만을 캘리포니아 주 정부가 지원한다고 밝혔다. 20년전 그 비율은 50퍼센트였다. 버달에 따르면 다른 주에 있는 대학들도 비슷한 삭감으로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반면 기업이 주는 돈은 많아졌다. 1985년에는 8억 5000만 달러였던 것이 10년도 채 안되 42억 5000만 달러로 늘어났다. 물론 돈만 주는 것은 아니다. 눈에 띄는 흐름 중 하나는 석좌 교수가 불어난 것이다. K마트는 웨스트 버지니아 대학 경영대에 석좌교수를 두었다. 대학은 1년에 30일 동안 매장 관리자를 훈련시켜줘야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환경을 오염시킨 혐의가 있는 광산 회사인 프리포트 맥모란 사(Freeport McMoRan)는 튜레인 대학 환경학부에 석좌교수를 두었다. 버클리 대학의 기업화를 다룬 데일리 캘리포니안의 연재기사에 따르면 하스(Haas) 경영대 건물에는 "기업 로고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주요 경영대 기부자 중에는 돈 피셔(Don Fisher)가 있다. 피셔는 더 갭(The Gap)의 소유자다. 그래서 더 갭은 기업-행정학 입문서에 사례로 종종 등장한다. 로라 드 안드레아 타이슨(Laura D'Andrea Tyson)은 클린턴을 보좌한 최고 경제고문관이었는데, 이제는 하스 경영대의 학장이다.

산업과 더 탄탄히 엮이기 위해 대학은 기업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데 그치지 않았다. 연방법을 바꾸는 데에도 돈을 댔다. 20년 전, 이렇게 해서 생긴 법은 오늘날 학문과 산업의 복합체가 생기는 바탕이 되었다. 1980년 하락하는 생산성과 일본의 추격을 걱정하던 의회는 배이-돌(Bayh-Dole)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라 처음으로 대학은 연방 정부가 자금을 댄 연구에서 나온 성과에 특허를 낼 수 있었다. 의회는 이 법으로 지식을 상아탑 밖으로 끄집어내 시장에 내놓으려 했다. 기업은 대학에서 낸 성과를 사용할 권리를 가져가고, 대학은 로열티를 받았다. 정부와 기업계는 대학을 단지 교육 기관이나 기본적 연구를 하는 기관으로 보지 않았다. 이들은 대학을 상업적 가치가 있는 지식의 원천으로 보았다. 그래서 기업 연합체와 학계를 이끄는 사람들, 그 밖의 작은 무리들이 결성한 기업-고등교육 포럼은 시장과 대학을 가르는 벽을 무너뜨리려고 로비를 했다. 몇 년 뒤 의회는 다른 법들을 더 통과시켜 대학과 기업을 더 단단히 역었다. 그 법들 중에는 학문 연구에 투자하려는 기업에게 세금을 깎아주는 것도 있었다.

배이-돌 법안은 처음부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국회의원은 국가가 돈을 댄 연구에서 나온 성과를 기업이 가져가도록 하는 것을 기업 퍼주기라고 비판했다. 반면 어떤 국회의원은 이 법안이 빠르게 변하는 정보 사회에서 경쟁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며, 앞으로 산업 정책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찬양했다. 어쨌든 배이-돌 법안은 대학과 기업 간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버렸다. 1980-1998년 동안 기업이 대학 연구에 댄 돈은 매년 8.1퍼센트 늘어났고, 1997년 그 액수는 19억 달러에 달했다. 20년 전 보다 8배 늘어난 것이다. 배이-돌 법안이 통과되기 전 대학이 1년에 내놓은 특허는 대략 250개였고, 그나마 상업화 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1998년 회계에 따르면 대학은 4800개가 넘는 특허를 냈다. 라우저는 주장하길 산학협력이 확산된 결과 중요한 신제품들(에이즈 치료제나 암 치료제 등)이 시장에 나왔으며, 생명공학 산업과 컴퓨터 산업이 잘 팽창할 수 있었다. "배이-돌 법안 통과 이후 캘리포니아 대학만 해도 500개가 넘는 특허를 냈다"고 라우저는 말한다.

이런 주장들은 매우 설득력있지만 문제가 많다. 지식이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시대인 만큼 분명 대학은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이라는 임무와 학문이 좇아야할 이상을 기업이 좌우하도록 내버려둬야 하는가? 요즘 기업들은 연구비 지원만 늘리는게 아니다. 기업들은 연구 규범도 정한다. 교수는 한 쪽으로 치우침 없이 진리를 찾는 사람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많은 교수들이 연구비를 대주는 기업의 주식을 갖고있다. 대학도 부쩍 상업적으로 변했다. 대학 대부분이 특허 모음집을 관리하는 기술 사용권 사무소를 운영하며, 지적 재산권을 지킬 때에는 기업 만큼이나 살벌하다. 대학은 한정된 예산을 기업을 위한 연구에 쏟아붓고, 인문학부를 줄이며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드는 비용을 깎는다. 얼마전 추적 60분에서도 그렇고 이런 일에 대한 소식이 이따금씩 들리긴 한다. 그러나 큰 그림을 빠진데 없이 채운 적은 없다. 이것이 바로 이 글의 주제다. 기업이 준 돈을 받는 순간 대학은 굶주린 자본가가 되고 시장을 최고로 여기게 된다는 것 말이다.

비밀과 과학

1942년 로버트 K. 머튼(Robert K. Merton)은 이제는 고전이 된 유명한 논문을 발표했다. 머튼은 과학 문화가 자본주의보다는 공산주의 이상에 더 잘 어울린다고 주장했다. 왜냐면 공산주의적 이상에 따르면 지적 재산은 만인이 나눠갖는 것이며, 새로 발견한 것도 누구나 마음대로 주고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가 지적 재산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알려지는 것과 그랬다는 자부심에 한해서"이며, 지식은 공공의 것으로 여겨질 것이라고 머튼은 썼다.

오늘날 기업이 후원하는 연구를 하는 과학자는 매일같이 계약서에 싸인을 해야한다. 그 계약의 내용은 정해진 기간 동안 연구 방법과 결과를 비밀로 한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그런 것을 기밀을 유지해야 경쟁자일지도 모르는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가로채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기밀을 유지해야 하는가? 국립보건기구는 후원 기업이 1~2달 이상 연구 성과 발표를 막지 않을 것을 권장한다. 이 기간은 특허권을 신청하고 받으며서 보통 걸리는 시간이다. 그러나 종종 기업들은 더 오랫동안 발표를 막는다. 예를 들어 버클리가 노바티스와 맺은 계약에 따르면, 발표를 네 달까지 미룰 수 있다. 메사추세츠 종합 병원 연구원들은 1994년 210개 생명과학 기업을 상대로 조사를 실시했는데, 연구비를 지원하는 기업 중 58퍼센트가 발표를 6개월 이상 늦추는 것으로 밝혀졌다.

"과학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터놓고 정보를 나눠갖는다는 것입니다." 스티븐 로젠버그의 말이다. 국립 암 연구소에서 일하는 로젠버그는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암 연구자이다. "생명공학 기업과 제약 기업이 점점더 많은 연구비를 대면서, 정보를 마음대로 주고받지 못하게 하는 흐름이 생겨났습니다." 로젠버그가 처음으로 이 문제와 마주친 것은 몇년 전이다. 당시 로젠버그는 아직 실험 단계에 있는 암 치료법을 시험하려고 쓸 시약의 적정량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정보를 쥔 기업은 로젠버그에게 비밀협약을 체결하라고 요구했다. 거절당한 기업은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로젠버그는 기밀유지가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고 생각했고, 모든 과학자들과 연구 기관들이 비밀협약을 원칙적으로 거부하라고 호소했다. 소수가 로젠버그의 외침에 응답했다. 미국의학협회지에는 1997년 대학에 속한 과학자 2167명을 상대로한 조사 결과가 실렸는데, 5명 중 1명 꼴로 독점 정보를 지키려고 6개월 이상 발표를 미룬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모두 미루는 것을 용인했다. 로젠버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업에서 미덕인 것과 과학에서 미덕인 것은 서로 어우러지기 힘듭니다. 이것이야 말로 과학의 진짜 어두운 면입니다."

넬슨 키앙(Nelson Kiang)은 MIT와 하버드 대학 명예 교수다. 키앙은 얼마전 MIT에서 "과학계의 기밀 유지"에 대해 토론회를 열었다. 키앙이 특히 걱정하는 점은 학생들이 올바른 과학 규범을 배우기 보다는 과학을 꼼짝못하게 하는 돈의 힘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키앙은 이렇게 말한다. "제때 논문을 발표하지 못하게된 MIT 학생들이 불평하는 것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 학생들이 토론회에 모이면 한 마디도 입밖에 내지 않는다. 이들은 주최측에게 자기 이름이 밖으로 새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한다.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앞에 나섰다가 관리자들에게 곤란을 당할까봐 겁을 먹은 것이다."

기밀유지 강화나 발표 연기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어떤 후원 기업들은 이윤을 위해 몰래 논문을 조작하기도 한다. 1996년 여름, 칼슘통로차단제(고혈압 치료제로 자주 처방된다) 연구자 네명은 항의하는 의미로 연구를 그만뒀다. 자신을 후원하던 산도즈 사가 그 약이 낳을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문구를 원고에서 삭제했기 때문이다. 그 부작용 중에는 중풍과 심장마비도 있었다. 네 연구자는 미국의학협회지에 서한을 보내 이렇게 우려를 표했다. "저희를 후원한 산도즈 사는 ... 마무리된 논문을 멋대로 고치려고 했습니다. 이는 매우 억압적이어서 저희는 자유롭게 학문을 탐구하는게 금지됐다고 느꼈습니다." 이렇게 논문을 멋대로 바꾸는 일은 기록을 찾기 힘들지만, 아마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주요 공학 연구소에 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35퍼센트가 연구 결과 발표 전 후원 기업이 문구를 삭제하도록 내버려 둔다고 한다.

지난 5월 미국대학교수협회 모임이 보스턴에서 열렸다. 여러 학자들은 한 무리를 지어 기업이 점점 자유롭게 학문을 탐구하지 못하게 하는 현실과 이런 일을 막기를 주저하는 대학에 대해 토론했다. 발표자 중에는 데이빗 컨(David Kern)이 있었다. 컨은 전 브라운대학기념병원 산업의학 감독이었다. 1996년 컨은 로드 아일랜드에 있는 나일론 제조회사인 마이크로파이버스(Microfibres)의 고문을 지냈다. 이 때 컨은 고용된 이들이 신종 악성폐질환을 앓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발견했다. 컨이 연구 결과를 발표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마이크로파이버스는 소송을 걸겠다고 컨을 협박했다. 업체가 내세운 것은 바로 기밀유지 협약이었다. 그 협약에 따르면 컨은 "영업 비밀"을 누설해선 안된다. 컨은 자원자를 받아 실험을 해서 정보를 얻었고, 그 정보는 독점 정보가 아니었다. 그 정보는 공공 보건에 대한 심각한 위협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브라운 대학은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말라고 컨을 설득했다. 업체가 소송을 걸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컨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핬고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1997년 질병통제센터는 섬유 노동자들이 신종 폐질환을 앓는다는 것을 알게됐다. 마이크로파이버스는 소송을 걸지 않았다. 그러나 컨은 브라운 대학에서 자리를 잃었다. 컨은 이렇게 말한다. "대학은 자유로운 탐구를 막는 모든 세력에 맞서 교원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돈이 기업에서 대학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미국대학교수협회 모임에 참가한 다른 교수들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마일드레드 초는 스탠포드대 생명의학윤리센터의 원로 연구 교수다. 초는 어떤 이들은 데이빗 컨과 같은 길을 걷는 동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연구자들이 그런 상황에 처하면 알아서 기업 편에 선다고 경고한다. "과학자 너무 많은 이사회를 보거나, 기업이 후원하는 연구를 하다보면 궁금할 것입니다. 이 연구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어떤 질문이 제기되고 어떤 질문이 제기되지 않을 것인가?" 1996년 내과 기록에 출판된 보고서에서 초는 기업이 후원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논문 중 98퍼센트가 검증할 약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기업이 후원하지 않는 연구를 바탕으로 한 논문 중 그런 것은 79퍼센트라고 밝힌다. 더 나중에 나온 미국의학협회지에 실린 분석에 따르면 제약회사가 자금을 대는 암치료제 연구에서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경우는 비영리기관이 자금을 댄 연구의 8분의 1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사람들이 학자들은 진리를 밝히는 사람이 아니라 고용된 일꾼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저 일꾼이 아니라 나름대로 득과 실을 함께하는 무리라고 볼 수도 있다. 그저 연구비만 타가는게 아니라 주식처럼 연구비를 댄 기업의 득실에 묶인 자산을 가진 교수들이 점점 늘어난다. 쉘던 크림스키는 터프트 대학 공공정책학 교수이자 이해관계 충돌(이해관계 때문에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권위자다. 크림스키는 각종 학술지에 발표된 과학 논문 800편을 조사했는데, 3분의 1이 조금 넘는 저자들은 자기가 쓴 글에 큰 돈이 걸려있었다. 영국 의학 잡지인 랜싯(The Lancet)을 편집하는 마이클 맥카시는 그런 일이 너무 흔해서, 학술지들이 논평하는 약이나 치료법에 "돈이 걸려있지 않은 자가 없다"고 말했다. 크림스키는 돈이 걸려있다고 해서 연구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사실은 철저히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돈이 걸린 것으로 드러난 논문 300편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이런 흐름을 포착한 증권거래위원회는 요즘 내부거래 혐의가 있는 학자들을 조사한다. 펜실베니아에서 얻은 기록에 따르면, 얼마 전 증권거래위원회는 콜럼비아 대학에서 신경학을 연구하는 데일 J. 랑에(Dale J. Lange)를 고발했다. 랑에는 어떤 회사가 루게릭병 치료제와 관련한 새로운 사실을 막 발표할 때 주식을 사서 2만 6천 달러를 챙겼다. 랑에는 자신이 관련된 비밀 임상 시험을 했기 때문에 주가가 치솟을 것을 내다볼 수 있었다.

돈이 걸린 연구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어떤 대학은 교수들이 자신이 소유한 증권을 발행한 기업이 후원하는 연구를 못하게 했다. 연방 정부도 조치를 취하는 중이다. 1996년 공중보건사무국(Public Health Service)은 모든 연구자에게 기업에게 1만 달러 이상 받거나 자기가 주식을 5퍼센트 이상 쥐고 있으면 소속 학교에게 보고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거의 모든 대학에선 그런 정보를 쉬쉬한다. 그래서 누가 어느 기업에 자기 돈이 걸려있고 그렇지 않은지는 학술지 편집자는 물론 동료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펜펜은 많은 사망자를 낳은 것으로 추정되 판매가 중단된 식욕 억제제다. 그러나 판매가 중단되기 1년도 더 전에 연구자들은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에 논문을 발표해서 펜펜 같은 약품이 치명적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바로 같은 호에서 다른 연구자 두명은 펜펜이 낳을 위험은 가능성이 적다고 논평한다. 두 저자는 비슷한 약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업체에서 돈을 받고 자문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러시 의대 교수인 스투어트 리치(Stuart Rich)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굉장히 화가 났다"고 고등교육 연대기(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에게 말했다. 어떤 학술지 편집자들도 대학처럼 논문을 기고하는 학자들에게 기업과 어떻게 돈줄이 닿아있는지 밝히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쉘던 크림스키 등이 기고문 6만 2천개를 조사한 뒤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전체 중 0.5 퍼센트만 그런 사실을 밝힌다고 한다.

기업은 의학에만 연구비를 대주는게 아니다. 로스 겔스펀(Ross Gelbspan)은 "불은 켜졌다 - 지구 온난화를 둘러싼 각축전"(The Heat Is On: The High Stakes Battle Over Earth's Threatened Climate)(1997)이라는 책을 썼다. 책에서 겔스펀은 몇 년동안 화석연료 기업들이 지구 온난화가 벌어질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갖가지 연구에 돈을 댄 사실을 추적한다. 그렇게 해서 화석연료 기업들은 공공정책에 대한 논쟁을 왜곡했다고 겔스펀은 주장한다. 지난 6월 플로리다 대학에서도 비슷한 일로 논쟁이 벌어졌다. 주 정부에게 수감 정책을 자문하던 플로리다 대학 범죄학자인 찰스 토마스(Charles Thomas)가 민영 교도소 업체에게 자문을 하고 3백만 달러를 받았을 뿐 아니라 그 업체가 발행한 주식도 소유했다는게 밝혀진 것이다. (민영 교도소에 대해 토마스가 밝힌 견해는 월 스트리트 저널이나 뉴욕 타임즈에서 자주 인용됐으며, 국회 청문회에서 토마스는 "전면적 민영화"를 찬양했다.) 주 정부 윤리 위원회 위원 중 어떤 이는 토마스에게 벌금 2만 달러를 매기며 "주립 대학 체계에서 이런 일을 허용하다니 어이가 없다"고 했다.

혹자는 이런 일들은 볼성 사나운 일이 아니라 미국 고등교육 역사를 꿰뚫는 실용주의를 따르는 것 아니냐고 주장할 수도 있다. 분명 미국 대학들은 유럽 대학과 달리 언제나 실용주의에 무게를 실었다. 유럽 대학들은 앎 자체를 추구하고 바깥 세상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지만, 토머스 제퍼슨에서 존 듀이에 이르기까지 미국 교육자들은 대학이 바깥 세계에 참견해야 하며, 앎은 쓸모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62년 의회가 통과시킨 모릴 법(이 법으로 버클리 대학처럼 공짜로 땅을 얻어 세운 대학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은 주 정부가 "농업과 기계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워서 고전적인 교육과정보다는 "산업 계급이 자유롭고 쓸모 있는 교육을 받도록 해야"한다고 되어있다.

역사가인 데이빗 노블(David Noble)이 쓴 책 America by Design(1977)에서 보여주듯이, 기업과 협력하는 대학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시기와 미국 산업이 빠르게 발전한 시기가 맞아떨어진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거대 기술 기업과 화학 기업들은 연구비를 대줬고, 과학자들은 이들을 위해 일했다. 대학은 기업 연구소를 세워서 기업에게 인력을 제공했다. 어떤 대학들은 직접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예를 들어 미네소타 대학은 광산을, 뉴욕 대학은 마카로니 공장을 운영했다. 1908년 급진적 경제학자인 토스타인 벱렌(Thorstein Veblen)은 대학과 산업이 서로 얽히고 섥히는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사업하는 원칙" 때문에 고등교육이 "사고 파는 상품이 되고, 얼마나 돈을 남기냐에 따라 계획되고, 등급이 매겨지고, 사고 팔리며, 냉정하고 기계적인 시험에 따라 일정한 단위로 쪼개지고 측정되고 계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2차 대전 시기에 접어들면 국가가 고등교육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맨하튼 프로젝트나 전시에 진행된 여러 연구(페니실린이나 스트렙토마이신 개발 등)에서 대학 소속 과학자들은 중요한 구실을 했다. 국가 관료들은 중요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은 대학 뿐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기업이 연구비 지원을 줄이자, 국가가 대신 연구비를 댔다. 1953-1968년 동안 국가가 지원하는 연구비는 매년 12-14퍼센트 늘어났다. 1940년 과학 연구에 투자된 돈은 모두 3100만 달러다. 이것은 돈의 출처를 따지지 않았을 때의 수치다. 그러나 1979년에는 국가가 지원한 돈만 30억 달러에 이른다. 이 중 대부분은 국립보건기구와 새로 생긴 기구에서 나온 돈이다. 이렇게 많은 연방 정부의 자금이 대학으로 흘러들어간 것은 대학이 자유롭게 기초학문을 연구할 수 있도록 도왔다는 것을 뜻한다. 루즈벨트 프랭클린 대통령에게 과학 관련 자문을 했던 바네바 부시(Vannevar Bush)는 1944년 이렇게 선언했다. "새로운 상품과 기술은 마무리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새로운 원리와 새로운 개념이라는 바탕이 있어야 그런 일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바탕은 순수 과학 영역에서 피나는 노력을 해야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배이-돌 법은 이런 흐름을 바꿨다. 단지 기업이 대학에 연구비를 더 대주는 데에 끌어들여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사실 오늘날 등장한 대학과 기업의 복합체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대학 안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기업의 돈이 아니라, 대학이 스스로를 이윤을 남기는 기업으로 여기고 기업처럼 구는 것이다.

돈 버는 대학

야자수가 자라는 스탠포드 대학 팔로 알토 캠퍼스를 둥글게 감은 길에서 조금 벗어나면 황갈색 콘크리트 건물이 있다. 이 건물 3층에는 기술 사용권 사무소가 있다. 이 쌀쌀맞은 곳이 바로 전국 대학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한 기업, 스탠포드 대학의 중심부다. 기술 사용권 사무소는 스탠포드 소속 교수들이 발견한 것을 내다팔고 점점 두꺼워지는 스탠포드 대학의 특허 모음집을 관리한다. 가장자리를 나무로 멋지게 장식한 로비에는 이 사무소가 얼마전 시장에 내놓은 갖가지 특허와 상품이 눈에 띄게 전시돼 있다. 그 중에는 실리콘 칩에 해상도가 높은 그림을 남길 수 있는 꼭지에 대한 것도 있고, 새로운 심장 마비 치료법에 대한 것도 있다. 스탠포드 대학은 전국에 있는 대학에 그 치료법 사용권을 팔고 싶어한다.

존 샌델린(John Sandelin)은 기술 사용권 사무소와 오래 동안 함께 일해온 사람이다. "저희는 1년에 250건에 달하는 발명품 발표 업무를 받습니다. 거의 넷 중 하나는 특허가 있습니다." 샌델린이 말하길 스탠포드는 작년 기술 이전으로 6100만 달러를 벌었다. 샌델린은 기업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서 그런 성공이 가능했다고 본다. "처음에 학장들은 교수들이 교육과 연구에 전념하지 못하게 할 이 새로운 활동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교육과 연구가 모자란 것은 어떻게 채웠을까요? 바로 이들을 투자자로 만들어서 돈을 벌게 했습니다."

샌델린의 설명은 이렇다. 교수들과 소속 학부는 발명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이들은 기술 사용권 사무소에 지식을 열심히 갖다 바쳤다. 기술 사용권 사무소는 이런 소식을 퍼뜨리기 위해 더 과감하게 손을 뻗친다. 학장들과 만남 약속을 잡고, 브레인스톰이라는 소식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교수들이 최근 발견한 것들에 대한 소식이 실려있다. 장차 새로운 발명을 할 사람들 앞에서 먹음직스러운 유인책을 내보이기도 했다. 1990년 스탠포드 대학은 연구 장려 기금을 만들어서 교수들이 아이디어로 "첫 제품"을 만드는 것을 도왔다. 얼마전 나온 브레인스톰은 이렇게 묻는다. "엄청난 발명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가설을 이론으로 이론으로 정립할 돈이 없다구요? 연구 장려 기금이 바로 해결책입니다."

옛 대학들은 특허 내기를 자기 일로 여기지 않았다. 앎을 자기만 쥐고 있는 것은 앎을 되도록 널리 퍼뜨리는 임무와 어긋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나라에 있는 모든 연구 대학에는 기술 사용권 사무소가 있다. 예를 들어 존 홉킨스 의대는 시장에서 내다 팔 만한 것을 연구하는데 돈을 대주려고 투기 자본을 꾸렸다. 옛 전통을 지키는 것으로 유명한 시카고 대학은 ARCH 개발 회사라는 비영리 기구를 만들어 아래에 두었다. 이 기구의 목적은 교수들이 이룬 성과로 창업을 하는 것이다. 시카고 의대 학장인 글렌 D. 스틸 2세(Glenn D. Steele Jr.)는 얼마전 여러 학부장들을 자르고 "기업계 사람들을 ... 들일" 계획이 있다고 비즈니스 위크(Business Week)지에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새로 교원이 되려면 장사 수완이 있어야 한다고 뚜렷하게 드러낸 것이다.

놀랍게도 배이-돌 법이 통과되고 20년이 지날 동안 이 법이 경제에 미친 영향을 제대로 평가한 적은 없다. 그러나 기술 이전을 하는 300여 대학과 연구 기관이 모여 만든 '대학기술관리연합'은 회원 기관을 상대로 매년 조사를 해서 결과를 발표한다. 대학기술관리연합에 따르면 1998년에만 연구 성과를 사용할 권리를 바탕으로 364개 기업이 새로 들어섰다고 한다. 1980년부터 이 때까지 벌어진 창업은 모두 2578건이다. 대학기술관리연합은 대학들이 기술 이전을 하면서 그 해만 모두 34억 달러를 벌어들였고, 미국에서 일자리 28만개를 만들었다고 추정한다.

MIT 기술 사용권 사무소 중역인 리타 넬슨(Lita Nelsen)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 대학들 사이에서 뭔가 소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학부생이었을 때, 그러니까 1964년, 켄달 스퀘어(Kendall Squar)에는 기름때 낀 낡은 식당차들이 즐비했습니다. 그 때는 그랬죠. 지금 창 밖으 보세요. 이제 막 날개를 편 작은 사업체들로 가득찬 높은 건물이 들어서 있습니다. -- everything from Lotus down the street, to Neurometrics across the alley, to Biogen and Sapient. 유리창 깨진 낡은 제분소는 이제 최신 기술로 만든 인큐베이터로 거듭났습니다." 실리콘 밸리에 있는 연구 기관을 중심으로 밀집한 컴퓨터 공학과 생명 공학 업체들, 텍사스 오스틴, 매사추세츠 128번로, 노스 캐롤라이나에 있는 삼각 연구지대 ... 이것들은 모두 배이-돌 법이 장려한 바, 즉 대학과 기업이 손을 잡아서 낸 시너지 효과에 기대서 생겨난 것들이다.

이 시너지 효과가 남길 이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역은 바로 생명산업이다. 생명산업은 대학 연구소가 키워낸 수십억 달러짜리 사업니다. 스탠포드 대학 입자 약학 교수인 개리 놀란(Garry Nolan)은 교수이자 기업가가 된 새로운 세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몇 년 전 놀란은 리겔과 만났다. 리겔은 샌 프란시스코에 근거지를 둔 생명산업 회사다. 이 업체는 천식과 알레르기, 면역 장애나 다른 건강 문제와 연관이 있는 단백질이 무엇인지 밝혀낼 새로운 방법을 개척했다. 놀란은 이렇게 말한다. "이미 우리는 연구에 관심있는 여러 제약 회사가 투자한 돈으로 1억 5천만 달러를 끌어모습니다. 기업만큼 빠르고 그렇게 많은 돈을 대줄 곳은 없습니다."

아리조나 대학의 사회학자인 월터 파웰(Walter Powell)은 전 세계에서 어떻게 생명산업이 성장했는지 추적했다. 파웰은 미국이 생명산업 시장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것은 대학과 기업이 긴밀하게 엮여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미국 기업가들은 그런 긴밀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파웰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 나라도 같은 흐름을 타고 있습니다." 파웰은 뮌헨 대학이 지난 2년 동에만 5개 기업이 자회사를 만드는 일에 관여했다고 지적한다. 리타 넬슨도 자신이 일하는 MIT 사무실에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북적거린다고 말한다. 그 중에는 자기 나름대로 배이-돌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킨 일본에서 온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놀라운 반전이 있다. 사용권 관리소에선 특허가 쏟아져 나오지만, 대부분은 간신히 수지를 맞춘다. 넬슨은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기술이전 사무소에서 매년 1억 달러가 쏟아져나오길 기다리지만, 그만한 돈을 버는 학교는 거의 없는게 현실이다." DNA 재결합이나 (캘리포니아 대학과 워싱턴 대학이 함께 개발한)B형 간염 백신 등 몇몇 연구 성과는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다. 그 중 어떤 것이 돈이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넬슨은 덧붙인다.

돈을 남기기 쉽지 않아도 대학은 그만두지 않았다. 오히려 더 과감해졌다. 예를 들어 점점더 많은 대학들이 자신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이윤을 얻으려는 기업들의 증권을 사들인다. 이것은 돈 때문에 연구 결과를 왜곡할 위험을 낳고, 돈을 한꺼번에 날릴 위험도 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보스턴 대학은 8천 5000만 달러를(이것은 기부금 중 거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세라겐(Seragen)에 쏟아부었다. 세라겐은 암 연구를 전문으로 한 생명산업 회사이며, 보스턴 대학 교수 여럿이 설립했다. 총장인 존 실버(John Silber)는 세라겐이 횡재를 가져다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 쥔 돈도 마구 쏟아부었을 뿐 아니라 여러 교수와 이사회 구성원들도 그렇게 하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1991-1997년 동안 세라겐은 1억 50만 달러를 날렸다. 한때 세라겐이 발행한 주식의 91퍼센트를 소유했던 보스턴 대학은 무너지는 회사를 떠받치고 이사회가 투자한 돈을 보호하려고 기부금을 마구 끌어다 쓴 것으로 악명을 쌓았다.

이런 일들을 지켜보며 다른 대학들은 사업에서 손을 떼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얼마전 캘리포이나 대학은 새로 만든 기업의 증권을 가질 수 있게하는 정책을 만들었고 이제는 기술 개발 업체 30개의 지분을 갖고있다. 스탠포드 대학도 1994년 비슷한 길을 갔다.

한편 대학들은 기술 사용료 수입을 올릴 기가 막힌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이 방법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어 미시건 주립대학은 이상한 방식으로 새로운 특허를 냈다. 이 대학은 1979년 시스플라틴(cisplatin)이라는 암치료제에 특허를 냈다. 이제는 많은 의사들이 암에 대해 시스플라틴을 처방한다. 대학은 시스플라틴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카보플라틴 사용료로 1억 6천만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특허 기간이 곧 끝나게 됐다. 그러나 같은 발명품에 다시 특허를 내는 것은 금지돼 있었다. 그래서 대학은 약품을 약간 바꿔서 특허를 다시냈다. 그렇게 해서 대학은 돈을 벌었겠지만, 공공의 이익은 어떻게 됐겠는가? 그 덕분에 복제약 제조업체 넷이 시스플라틴을 더 싸게 만들어서 내다팔지 못하게 됐다. 이 업체들은 미시건 주립 대학에 소송을 걸었다. 시스플라틴을 개발했고 이제는 퇴임한 교수인 바넷 로젠버그는 자기가 남긴 업적 때문에 "자기 잇속만 챙기고 돈에 굶주린 대학 운영자들이 많아졌다"고 한탄했다.

스탠포드 대학은 특허를 내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스탠포드 대학은 얼마전 백만 달러가 넘는 돈을 부어서 브랜드를 만들고 Sondius-XG라는 음향합성 기술을 개발해서 야마하와 함께 내다팔았다. 브랜드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특허는 20년이 지나면 끝나지만, 브랜드는 계속해서 수익을 내기 때문이다. 기술 사무소에서 샌델긴과 함께 일하는 매리 와타나베는 인터뷰를 하면서 대학이 "스탠포드 회사"를 출범시킬지 고민 중이라는 정보를 알려줬다. 그러나 더 자세한 것은 말해주지 않았다.

이런 활동이 교육이라는 돈 안되는 의무와 동떨어진 것으로 보이는가? 실제로 그렇다. 1996년 당시 법대 학생이었던 피터 블룸버그(Peter Blumberg)는 펜실베니아 대학 법학 평론에 흥미로운 글을 실었다. 블룸버그는 그 글에서 대학에서 벌어지는 기술이전 행위는 대학이 짊어진 공익 의무와 너무나 동떨어져있기 때문에, "교육과 무관한 사업으로 간주하고 세금을 매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초학문 연구나, 결과를 출판할 수 있는 연구, 학생들을 가르치고 전체 사회에 쓸모 있는 연구처럼, 국가가 지원하지 않으면 시장이라는 무대에 있는 어느 배우도 맡지 못할 연구를 한다고 믿기에 [대학들은] 면세라는 혜택을 누린다"고 블룸버그는 주장한다.

수익을 내는데 혈안이 된 대학들은 돈을 남기지 못하는 대학의 상황에 대해 팔장끼고 보고만 있지 않는다. 때로는 돈이 되는 아이디어를 쟁취하려고 학생과 교수들과 낯뜨거운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 학생인 피터 타보르스키(Peter Taborsky)가 겪은 일은 특이한 사례다. 타보르스키는 학부생 시절에 자기가 발견한 것을 두고 대학과 싸우다가 경비가 삼엄한 주립 교도소로 들어가는 신세가 됐다. 타보르스키는 a local holding company인 플로리다 진보 연구소가 후원하는 프로젝트에서 연구 조수를 했다. 타보르스키에 따르면 연구가 끝날 무렵 그는 공과대학 학장인 로버트 카너한(Robert Carnahan)에게 자기 나름대로 실험을 해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다. 타보르스키는 스승의 이론을 바탕 삼아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보려 했다. 타보르스키는 돌파구를 찾아냈다. 그 성과로 폐수에서 암모니아를 없앨 길이 열렸고, 이 성과를 시장에 내다 팔면 돈이 되리라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자 플로리다 진보 연구소와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은 서로 그 성과가 자기 것이라 다퉜다. 대학 측은 타보르스키를 형사고발했고 애초 연구비보다 10배 많은 돈을 법률 상담만 쏟아부었다. 1990년 배심원단은 타보르스키가 대학이 소유한 재산을 훔쳐서 유죄라고 판단했고, 플로리다 주는 1996년 징역을 선고했다. 미디어는 이 낯뜨거운 사건을 구경거리로 만들었다. 이에 주지사인 로턴 차일스(Lawton Chiles)는 이 사건에 개입해서 타보르스키를 선처하려했지만, 타보르스키는 신념에 따라 이를 거부했다.

명색이 주립 대학인데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와버린 것일까? 당연하다. 나중에 투자할 돈을 지키려는 것이다. 세스 슐만(Seth Shulman)은 정보화 시대의 지적 재산권에 대해 미래를 쥔다(Owning the Future)라는 책을 새로 냈다. 슐만은 이 책에서 타보르스키 사건은 "대학이 연구 자금을 기업에 점점더 많이 기대면서, 연구란 함께 하는 것임을 돈 문제에 눈이 멀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지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오늘날 많은 대학들은 지적 재산을 지키려고 터무니없이 많은 법률 비용을 낸다. 대학기술관리연합이 매년 내는 보고서에 따르면 십여개 주요 대학들(그 중에는 브랜다이스, 웨스트 버지니아, 터프트, 마이에미 대학도 있다)은 1997년 회계 년도에 사용권과 특허로 벌어들인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법률 비용으로 썼다. 대학 당국과 교수들 사이의 싸움이 점점 잦아진다. 1996년 배심원단은 제롬 싱어(Jerome Singer)와 로렌스 크룩스(Lawrence Crooks) 두 교수에게 230만 달러를 배상금으로 줘야한다고 판단을 내렸다. 두 교수는 오늘날 MRI 검사에서 널리 쓰이는 자기공명영상으로 길을 튼 연구 성과에 대한 사용료를 덜 줬다는 이유로 캘리포니아 대학을 고소했다. 항소심에서는 대학이 그 특허를 사용할 권리를 기업들에게 매우 싸게 주고 연구 자금으로 2천만 달러를 받는 식으로 부당하게 이익을 지키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배이-돌 법안으로 이끌어 내려한 결과는 이런 것이었는가? 두 해전 여름, 국립보건기구에 속한 한 부서가 국장인 해롤드 발무스(Harold Varmus)에게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 보고서는 대학이 점점 지적 재산을 지키는 방식을 바꾸면서 기본적인 연구 수단을 자유롭게 주고 받기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유전자 배열이나 시약 같은 것들은 모든 연구에서 중요하다. 국립보건기구는 대학들이 기술이전 사무소를 통해 그런 연구 수단에 지운 조건들 중에는 "대학들 자신이 ... 기업과 계약하면서 문제있다고 말한 것들이 그대로 들어가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그 중에는 대학이 논문 원고를 발표에 앞서 미리 볼 수 있다거나, 대학이 가진 것을 바탕으로 발견한 새로운 것도 대학이 가진다는 조항이 있다. 국립보건기구는 이렇게 말한다. "[대학은] 주주에게 투자한 돈을 돌려줘야할 의무가 없으며, 배이-돌 법에 따라 대학이 해야하는 것은 지식을 쓰는 것이지 되도록 많은 돈을 쌓는 것이 아니다. 자유롭게 퍼뜨릴 수만 있다면 널리 사용될 연구 수단을 독점해서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배이-돌 법이 이루고자 한 바에서 동떨어진 것이다. 꼭 기술 이전을 수입원으로 삼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 너도 나도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주고 받기가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경제도 잘 성장하지 못하게 된 것은 역설이다. 지적재산권법 전문가인 제임스 보일(James Boyle) 아메리칸 대학 교수는 경고한다. 이런 흐름이 쭉 이어진다면, 모두 함께 누리던 영역을 벽을 치고 막아서 묵히게 될 것이고, "창조력 있는 사람들은 창조하지 못할 것이다."

연구 주제도 마음대로

4월 버클리에서 교원들이 모임을 한 뒤, 곧바로 '책임있는 연구를 위한 모임'에 소속된 여러 학생들이 캠퍼스를 빠져 나와 가까운 술집인 '라 부리타'에 있는 뜰에 모였다. 이들은 노바티스 계약에 대한 우려를 학생들에게 알릴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모임을 이끄는 한 명인 제시 레이놀즈(Jesse Reynolds)는 말했다. "이 근처에선 여기가 가장 술이 싸요." 사람들은 잔을 채우고 긴 테이블을 따라 맥주를 돌렸다.

이들은 60년대 학생들처럼 급진적이지 않다. 이들은 결코 대학 당국에 맞서 싸우려 하지 않았다. 레이놀즈는 캘리포니아 수자원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레이놀즈는 학생 운동은 물론 정치 자체가 처음이라고 한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였어요. 많은 것을 손에 쥔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 그러나 이 주에서 가장 뛰어난 농업 대학이 그렇게 갑자기 뛰어오르면, 전 세계가 모두 따라할 거에요. 전 그게 정말 두렵습니다."

데이빗 퀴스트(David Quist)는 환경 과학 전공하는 2학년생이다. 퀴스트는 요즘 대학에 스며든 문화를 보여주는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지난 10월 시정 모임에서 노바티스 계약이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때, 고든 라우저 학장은 걱정 많은 학생들을 초청해 계약을 자기가 직접 살펴보게 했다. "그래서 저는 학장실에 갔습니다. 자료를 받고 앉아서 필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학교 운영인이 제가 필기하는걸 봤죠. 보자마자 이렇게 말합니다. '안됩니다. 필기하지 마세요.'" 퀴스트는 노트를 압수당했고, 그 노트는 몇 달동안 총장실에 있었다.

식물·미생물학부 교수인 윌헬름 그뤼센(Wilhelm Gruissem)은 노바티스 계약을 맺는데 도움을 준 사람이다. 그뤼센 교수는 기업이 독점한 비밀을 빼면 되도록 협상은 되도록 공개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식물·미생물학부 학생들조차 자기를 빼고 협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1998년 12월 졸업생 23명은 교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자신들에겐 아무런 의견을 묻지 않았으며 "협상하는 내내 소문과 추측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고 항의했다.

'책임있는 연구를 위한 모임' 학생들이 가장 걱정하는 바는 대학과 기업이 점점 긴밀해지면서 돈 안되는 과학 분야는 죽어간다는 것이다. 레이놀즈는 이렇게 말한다. "지속가능한 농업이나 생물학적 방제법처럼 돈이 안되는 분야에 관심이 있는 졸업생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런 사람은 결코 버클리에 오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한 번더 생각해 보겠죠."

천연자원대학 공동 총장인 도날드 달스튼(Donald Dahlsten)도 똑같은 걱정을 한다. "분자 생물학과 유전자 공학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종종 선호됩니다. 그래서 모든 자원이 거기로 가죠. 건물이 새로 서고, 학부는 점점 커집니다. 반면 생태적 접근에 더 무게를 싣는 과학 분야는 점점 줄어듭니다." 달스튼은 한 때 전세계에 이름을 알린 생물학적방제부에 있었다. 지금 그 부서는 곤충학과 교원 절반, 식물 병리학과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여러 교수들은 돈을 남기는 학문이 아니라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한다. 버클리 대학 곤충학자인 앤디 구티에레즈(Andy Gutierrez)는 이렇게 설명한다. "자연에 있는 유기체나 생물학적 방제에 대한 이해에 특허를 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공익으로 따지면 우리 부서는 매년 캘리포니아는 물론 전 세계에 수 십억 달러를 벌었습니다." 구티에레즈가 참여한 한 프로젝트는 서부 아프리카 사람들 2억명이 주식으로 삼는 카사바라는 곡식을 파괴하는 해충이 퍼지는 것을 막는데 도움이 됐다.

고든 라우저는 노바티스 계약으로 다른 분야로 갈 재원이 줄어들기는 커녕 대학 전체가 모두 득을 본다고 반론한다. 자금 중 4분의 1이 식물·미생물학부 외에 쓰일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주변에는 1920, 30, 40년대에 지은 세 과학동이 있습니다. 재원이 없으면 이 건물을 1등급 연구 시설로 만들 수 없습니다."

얼마전 스탠포드 의대가 기업과 손을 잡는다는 계획을 세운 크리스 스콧은 기업과 함께 하는게 중요한 또다른 이유를 댄다. 지난 몇년동안 과학자가 가장 자주 인용한 사람들은 언제나 산업계에 뛰어든 연구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아탑에 갇혀있는 것은 지식을 쌓는데도 해롭다. 하지만 그러면서 스콧은 과학자들이 무엇을 탐구할 것인가를 시장의 기준에 따라 좌우하는게 위험하다고 말한다. "제 3세계 사람들을 괴롭히는 간 기생충인 스키스토미아시스에 대한 연구를 후원하는 기업을 본 적이 있습니까? 말라리아나 사상충증, 댕기열은 어떻습니까?" 이런 질병들은 모두 약 값을 낼 수 없는 개발도상국 사람들을 괴롭힌다. 그래서 제약회사들은 이런 질병에 손대지 않습니다. 스탠포드 대학 생명의료윤리 센터에 있는 마일드레드 초(Mildred Cho)도 같은 생각이다. 초는 백신 개발도 버려진 영역이라고 지적한다. "시장이 연구를 주도하면, 무엇을 여구하냐도 문제지만, 공공 보건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대학과 기업이 연구하고자 하는 바가 점점 일치하면서 또다른 위험이 벌어진다. 대학은 더 이상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고 비판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미네소타 대학 방문 교수인 앤 카푸친스키(Anne Kapuscinski)는 유전자 조작을 연구한다. 우리가 버클리에서 만난 다른 학자처럼 그도 비슷한 걱정을 했다. 점점 더 많은 대학들이 기업에게 연구 자금을 받을 수록, 유전자 조작 곡물(이것은 노바티스가 연구하고자 하는 바다)의 안전성을 검토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카푸친스키는 유전자 조작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진다고 지적한다. 지난 5월 네이쳐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노바티스가 만든 Bt(Bacillus thuringiensis) 옥수수의 화분에서 나온 유독물질이 해충이 아닌 곤충까지 죽인다고 한다. 그 중에는 제주왕나비(monarch butterfly)도 있는데, 이것은 생태계가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위험성이 알려지자 유럽 등지에서는 유전자 조작 곡물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식품의약국은 지난 11월 유전자 조작 곡물에 대한 공청회를 소집했다. 천연자원대학 집행 위원인 이그나치오 샤펠라는 이번 계약으로 노바티스가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정당성이라고 말한다. "자사 로고 옆에 캘리포니아 대학 로고가 따라오는 것이야말로 지금 당장 노바티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럴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작년 졸업식에선 한 학생 연설자가 항의하려는 뜻으로 파란색과 주황색으로된 노바티스이 로고를 버클리의 로고 바로 위에 두었다. 청중석에 있던 학생 백여명은 노바티스 로고 장식이 들어간 학사모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썼다. 노바티스가 공공연히 보여주길 바라던 모습은 결코 이런게 아니었을 것이다.

인문학 축소

지난 봄 대학 연구에 기업이 점점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항의한 학생들은 버클리대 학생이 전부가 아니었다. 1998년 3월 윈스콘신, 하버드, 코넬 등 십여개 대학에서 모인 학생들이 그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버지니아주 패어팩스 카운티에 있는 주립대학인 조지 맨슨 대학에서는 졸업생 수백명이 가운과 학사모에 "Stop Dis-Engaging Our Future"(우리 미래를 짓밟지 마라)라는 구호가 적힌 분홍색 버튼을 달아서 항의하는 뜻을 드러냈다. 이 버튼은 '교육의 질을 위한 학생들"이라는 모임이 배포한 것이며 조지 맨슨 대학이 퍼뜨리고 다니는 구호 "Engaging the Future"(미래를 예약하세요)를 비꼰 것이다. 그 구호는 정보 기술에 투자 자금이 몰려들고 버지니아주 북부에서 번창하는 기술 산업과 더 가까워지길 원하는 대학의 바람이 담긴 것이다.

1998년 버지니아주 주지사인 제임스 S. 길모어(James S. Gilmore)는 1년에 주 정부 자금 2500만 달러를 조지 맨슨 대학에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대가로 대학은 지역에서 떠오르는 첨단 기술 산업을 위해 힘쓰기로 했다. 조지 맨슨 대학 총장인 앨련 G. 머튼(Alan G. Merten)은 컴퓨터 과학자였고 코넬 대학 경영대에서 학장을 지냈던 사람이고 주저 없이 그 약속을 받아들였다. "새로운 임무가 생겼습니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대학이 있어야할 새로운 이유가 생긴 것입니다." 세계정보기술대회에서 머튼은 그렇게 말했다. 세계정보기술대회는 1998년 여름 조지 맨슨 대학이 기업 경영자들을 초청해 주최한 행사다. "이제 이 임무를 네트워크 상에서 수행해야 합니다." 그 해 말 머튼은 정보 기술과 컴퓨터 과학에 학위 제도를 도입했고, 125에이커짜리 프린스 윌리엄 캠퍼스에 돈을 쏟아부었다. 프린스 윌리엄 캠퍼스에는 생명과학, 생명정보과학, 생명기술, 컴퓨터 및 정보 기술 연구가 집중적으로 벌어지는 곳이다. 머튼은 모든 학생들이 "기술 능력"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가 벌어지는 동안 다른 분야로 가는 돈은 줄어들었다. 고전과 독일어, 러시아어 등 다른 인문학부 소속 학과들에 대한 학위 제도는 사라졌다.

이런 변화를 옹호하며 머튼은 현실을 똑바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누군가 경영계에서 쓰는 말로 읊었듯 더 이상 고개를 돌릴 수 없다. 머튼은 이렇게 말한다. "한 때 대학은 아무도 책임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돈을 퍼주었을 뿐이죠. 그러나 오늘날 돈줄을 쥔 사람들은 자신을 가다듬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며 쓸 데 없는 것은 없애버려야 비로소 돈을 줍니다. 비효율적인 기관에는 돈을 주길 꺼려하죠." 머튼은 조지 맨슨 대학을 더 효율적이게 하는 과정에서 "때때로 약간 출혈이 있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대학은 오늘날 기술 산업체들이 고용할 인재를 만들어야 합니다." 조지 맨슨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취직하기 좋은 영역에 진출할 때 갖춰야할 학위를 원하는 "우수 고객"이고, 대학은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해줘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해준다고 해서 균형잡힌 교육까지 내다버려야 할까? 조지 맨슨 대학이 인문학부 예산을 삭감하자 학생들 1700명이 항의하는 청원서에 이름을 올렸다. 예술과학대 소속 교수 180명은 머튼 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노동 시장 진출을 위해 학생들을 훈련하는 것은 옳지만 "직업과 기술 교육에 무게가 실린 만큼 균형잡힌 교육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서한에 이름을 올린 케빈 아브루치(Kevin Avruch)는 조지 맨슨 대학 인류학과 교수다. 아브루치는 이렇게 설명한다. "대학은 사람들에게 읽고 쓰고 비판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마 그게 기업이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로터스(Lotus)를 쓸 줄 아는 사람은 원한다면, 졸업한 다음에 가르쳐도 되지 않을까요?"

아브루치 교수가 한 말은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지 맨슨 대학에서 벌어진 일은 전국적 추세다. 1995년 오하이오 대학 평의회는 주 정부가 대준 돈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따져봤다. 그랬더니? 여덟가지 사학과 박사 과정으로 가는 돈을 없애라고 한다. 하버드 대학 교수이자 하버드에서 문학과 역사학 학위 제도 운영위원을 지낸 제임즈 엥겔(James Engell)와 다트머스 영문학 교수인 앤서니 댕저필드(Anthony Dangerfield)는 얼마전 전국에서 인문학이 처한 상황에 대한 2년에 걸친 연구를 마쳤다. 그 연구에 따르면 1970-1994년 동안 영문학, 외국어, 철학, 신학 분야에서 수여된 학사 학위는 줄어들었고, 컴퓨터 및 정보 과학 분야에서는 5-10배 늘어났다. 영문학 박사 과정 중 최고로 인정받는 25퍼센트에 남은 학생은 1975년에 비해 29명 줄어들었다. 그러는 동안 인문학 교수들은 분야가 다른 교수들보다 훨씬 적은 돈을 벌었다. 그리고 지난 25년 동안 그 차이는 점점 벌어졌다.

엥겔과 댕저필드는 하버드 교우 회보에 기고한 긴 글에서 이렇게 썼다. "전공이든, 봉급이든, 졸업 과정이든, 무엇을 살펴보든 ... 결과는 똑같다. 1960년대 후반 이래 인문학은 버림받고, 떨어진 대우를 받고, 허리띠를 억지로 졸라매야했다. 다른 고등 교육 분야는 학생 수도 늘었고, 더 많은 돈을 받으며,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엥겔과 댕저필드는 "시장을 따르는 대학"이 새로 나타나면서 그렇게 됐다고 말한다. "시장을 따르는 대학"은 돈이 되고 돈에 대해 연구하고 돈을 끌어들이는 주제를 더 우선하는 대학을 말한다.

소규모 문과대학들 조차 시장 수요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 캘리포이나 남부에는 포모나와 하비 머드(Harvey Mudd)도 들어간 학교들이 모여서 이룬 클레어몬트 대학이 있다. 클레어몬트 대학은 "산업 부문이 원하는 것에 초점을 둔 교육 과정"을 따르며, 교수에게는 재직 기간이 없고, "생명 과학과 공학이 서로 만나는 분야에서 경력을 쌓을 학생들을 길러내는 것"이 목표인 새로운 교육기관이 생겨났다.

놀랍게도 아무도 이런 변화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1980년대 초반부터 미국인들은 유럽식 규범을 깎아내리는데 지나치게 몰두했다. 세익스피어나 토니 모리슨, 유럽과 아프리카 역사를 학부생에게 가르쳐야 하는지 사람들은 논쟁했다. 10년이 지나면 한 술 더 떠서 학부생에게 문학과 역사를 가르쳐야 하는지가 논쟁될지도 모른다. 케빈 아브루치는 조지 맨슨 대학에서 벌어진 구조조정을 겪으며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구조조정 때문에 좌파든 우파든 교수들이 모두 단결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교수들을 리버럴하다고 말하지만, 어떤 점에선 매우 보수적이라는 것을 얼마전 저는 알았습니다. 저희는 자신이 균형잡힌 시민을 교육해내는 것이 저희가 띈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고등교육.com

학과를 지키려고 싸우는 인문학 교수들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발견을 한 인문학 교수들도 있다. 스스로도 놀랄 수 밖에 없었던 그 발견이란 바로 그들의 강연 자료에 학교 운영자들이 갑자기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학교 운영자들은 그 강연이 온라인에서 팔릴 잠재력을 본 것이다. 컴퓨터 혁명으로 하룻밤 사이에 "교육용 소프트웨어"가 값어치 있는 "컨텐츠"가 되서 패키지로 만들어져서 인터넷에서 팔리게 되었다. 온라인 교육 업체들은 싹을 틔운 이 시장에서 한 몫 차지하려고 교육 기관과 손을 잡으려고 경쟁한다.

버클리 대학은 얼마 전 아메리카 온라인(America Online)과 협약을 맺었다. 콜로라도 대학은 리얼 에듀케이션(Rea Education)과 손을 잡았으며, 서부 주지사 연합은 22개 주 30여개 대학을 이어서 "가상 대학"을 만들었다. 부실채권 거래자 판결을 받은 마이클 밀큰(Michael Milken)은 UNext.com이라는 인터넷 교육 업체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 UNext.com은 콜럼비아대학과 시카고 대학과 얼마전 계약을 맺었다.

예산이 쪼들리고 국가 지원이 줄어드는 시기에 대학 운영자들과 정치인들은 온라인 교육으로 싼 값에 교육을 퍼뜨리려 했다. '유타 고등교육 시스템' 공동 위원인 E. 제프리 리빙스턴(E. Jeffrey Livingston)은 이렇게 말한다. "캠퍼스를 짓는 것만 해도 엄청난 돈이 들어갑니다. 주지사들은 [가상 대학으로] 앞으로 돈을 쓰지 않고 성장하려고 합니다." "원거리 교육"은 앞으로 장래가 밝은 교육 수단이며 외국인 학생이나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같이 예전에는 교육 시장 바깥에 있던 이들에게 다가가는 길로도 여겨진다.

그러나 점점더 많은 교수들은 전자 교육 때문에 교육이 상품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고 걱정한다. 강의 자료를 온라인에 팔기 전에 대학은 사용권을 손에 넣어야 한다. 이것은 강의자, 즉 교수들에게 저작권을 뺏어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 중세 문학 교수인 에드워드 콘드렌(Edward Condren)은 "이것은 앞으로 큰 싸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고 내다본다. 1994년 6월 UCLA의 확장 프로그램(이 나라에서 가장 큰 평생고등교육 프로그램이다)은 전자 강의를 만들고 배포할 수 있는 독점적 권리(여기에는 저작권이 포함된다)를 OnlineLearning.net(당시 이름은 '더 홈 네트워크 에듀케이션 네트워크'였다)에게 주는 계약을 맺었다. UCLA는 교원들이 학교 정책을 결정하는 체계가 있다고 자랑을 하지만, 이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교원들의 의견을 묻는 절차는 없었다고 콘드렌은 알려줬다. 교원 의원들은 1998년 2월이 되기까지 수정본이든 초본이든 아무런 계약서를 보지 못했다. 콘드렌은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UCLA는 공공 기관입니다. and a contract was entered into without any public announcement that bids were being sought."

콘드렌은 이름난 초서(Chaucer) 연구가이기도 하지만, 지적재산권법 권위자이기도 하다. 지난 25년 동안 콘드렌은 수차례 전문가 증인으로서 법정을 드나들었고, Falwell v. Flynt에선 승소 측을 위해 증언을 하기도 했다. 콘드렌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보기에 UCLA 확장 프로그램은 불법적으로 전자 강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교수들에게 저작권을 위임받은 바 없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교수들은 지식을 "만든 사람"으로, 그러므로 저작권자로 여겨졌다고 데이빗 노블(David Noble)은 말한다. 노블은 토론토에 있는 요크 대학의 역사가이다. 요크 대학 교수들은 저작권을 지키는 싸움에서 얼머전 승리를 거두었다. 배이-돌 때문에 대학들은 소속 교수들이 발견한 지식에 특허늘 내고 사용료를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저작권을 마음대로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콘드렌은 말한다. 왜냐면 그것은 "교원들이 검열이나 주변 평판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마음대로 견해를 표명할 수 있게 하는 법적 보호장치를 해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수들에겐 또다른 걱정이 있다. 대학들이 원거리 교육을 교육을 더 잘하는데 쓰는게 아니라 교수직을 없애는데 쓰지 않을까하는 걱정이다. 괜한 걱정이 아니다. 뉴욕에 있는 신사회연구소(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는 박사 실업자들을 고용해 온라인 강의를 만들고 쥐꼬리만한 봉급을 준다. 그리고 학교가 마음대로 강의를 정할 수 있도록 저작권을 내주겠다는 계약에 싸인하도록 강요한다. 1994년 에듀코스(Educause)는 국가교육기반시설 연구를 시작했다. 에듀코스는 1600여 교육기관과 150여 기업들이 모여 만든 연합쳉다. 에듀코스는 교수들이 하는 일을 하나 하나 뜯어보며 어떤 일들을 자동화하고 외주화 할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이것은 모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각각 스탠포드 대학과 펜실베니아 대학의 교육학자인 윌리엄 매시(William Massy)와 로버트 젬스키(Robert Zemsky)를 만났다. 매시와 젬스키는 최근 에듀케이스가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이 예산을 조절하려면 정보 기술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운영비 중 70퍼센트가 인건비에 들어가는데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교수들이 두려워하던 내일은 이미 오늘이 됐다. 데이빗 노블은 미국교육통계센터가 발표한 수치를 인용하며 컴퓨터 혁명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지적한다. 1976-1994년 동안 국립대들은 교육에 지출하는 돈을 9.5퍼센트 줄인 반면 연구에 지출하는 돈은 21퍼센트 늘렸다. 미국대학교수협회는 교육 인력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연구해서 발표했다. 그 발표에 따르면 1975-1995년 동안 전임 교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줄었지만, 비전임 교원은 두배 들었다고 한다. 노블은 얼마전 발표한 글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결국 학생들은 수업을 들으려고 더 많이 내고 더 조금 받는다. 디지털 학위 공장"은 성장하는 온라인 교육 시장과 돈을 벌고 싶어하는 대학을 이어준다. 일부 학생들도 여기에 동의한다. 1996년 5월 유타 대학 학생들은 제프 캐스퍼(Jeff Casper)와 히더 포츄나(Heather Fortuna)를 학생회장으로 뽑았다. 이들은 "진짜를 달라"는 구호를 내걸고 가상 대학에 반대하는 선거 운동을 벌였다. 포츄나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어떤 전공 수업은 거의다 컴퓨터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생 이렇게 지루한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교실 안에서 배운 것보다 배운게 적어요."

1952년 역사가인 리처드 호프스테터(Richard Hofstadter)는 "미국 고등교육은 굉장히 기업같은 문화 안에서 발전할 운명이다"고 썼다. 세월이 지난 지금 호프스테터는 미국 대학이 국가 기술과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됐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고등교육은 오로지 쓸모 있냐 없냐로만 판단된다고 호프스테터는 한탄한다. "교육은 다른 목표에 이르는데 쓸모 있으니 쓸모 없다고 여기지 말라고 변명하는 식으로 정당화됐다. 사업하고 경력 쌓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이다. 그러나 교육이 도움이 되는 것은 전체 인류에게라고 말한 이는 거의 없다."

혹자는 호프스테터가 말하는 고등교육은 값비싼 사치일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정보화 시대인 오늘날 아이디어는 그 자체가 상품이다. 그러나 호프스테터 같이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꾸짖는 실용주의자들의 관점에서도 기업과 고등교육은 분리되어야만 한다.

시장에 목을 매다보면 대학은 교육이라는 임무를 잊을 위험 뿐 아니라 기술 혁신의 중심이 아니게 될 위험도 무릅써야 한다. 우리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생물화학자인 폴 베르그(Paul Berg)를 만났다. 베르그는 왜 대학이 기술 혁신을 하지 못하게 되는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이제 73살이 된 베르그는 생명기술 혁명에서 독보적인 인물이다. 베르그가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사람들은 DNA를 꼬아서 합성입자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스탠리 코헨(Stanley Cohen)과 허버트 보이어(Herbert Boyer)는 베르크가 한 연구를 바탕으로 처음으로 재결합 DNA 클론을 만들었다.) 그 성과는 수십억 달러짜리 산업도 일으켰고, 이는 이제 대학과 기업이 따라야할 모범으로 칭송받는다. 하지만 베르그는 거기에 역설이 있다고 지적한다. "모든게 기업에게 맡겨졌다면 생명혁명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돈을 투자한 사람들은 시장에서 팔릴지 확실하지 않거나 당장 들어오는 돈이 없는 모든 것들을 치워버렸을 것입니다." 베르그는 그 발견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메르크(Merch)라는 제약회사에서 세미나를 했을 때를 떠올렸다. 거기서 베르그는 자기와 똑같은 연구를 한 젊은 과학자를 만났다. 그러나 6-7개월 후 그가 난관에 부딪히자, 메르크는 연구를 중단시켰다. 베르그는 이렇게 말했다. "메르크는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것으로 유명한 회사지만, 역시 어느 수준 이상을 넘길 수 없었습니다. 그건 기업이 후원하는 연구라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대학에서 역사상 중요한 (그리고 아무도 기대하지 못한) 발견이 벌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대학이 시장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은 결과가 열려있는 기본적인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오늘날 기초 과학과 응용 과학은 하나로 녹아버렸고, 교수들은 점점더 기업가처럼 생각하도록 장려된다. 그럼 이런 물음이 떠오른다. 미래에 나타날 폴 베르그 같은 인물들은 당장 시장에서 팔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지가 확실하지 않은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을 것인가? 대학이 옛 이상을 지키고 시장에 얽매이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다. 국가가 고등교육 지원을 줄이는 상황에서 이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정상에 오른 대학들이 뭉쳐서 기업과 함께 활동하면서도 얽매이지 않고 탐구할 자유를 지킬 방침들을 제시하면 다른 대학들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교수들이 자기 연구를 후원하는 기업과 직결된 자산을 소유하는 것, 30일이나 60일 이상 연구 결과 발표를 미루는 것, 논문을 마음대로 편집하는 것에 대한 금지, 기본적 연구 수단에 대한 독점권 최소화 등이 그런 방침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대학들은 연구 주제나 교육 과정을 기업이 원하는대로 맞추길 거부하면서 고등 교육 예산을 지키라는 성명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호프스테터는 이렇게 썼다. "대학을 지켜야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대학이 하게될 기능이 아니다. 물론 그런 기능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대학이 나타내는 가치다. 대학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신이 목적이 되야 자신의 지위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