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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거기 - 일상적 이야기를 정말 맛깔나게 풀어낸 연극

극단 차이무에서 문자가 왔다. 웹사이트 회원들에게 <거기>라는 연극을 특별 할인해 준다는 거다. 3만 원짜리 연극을 1만 원에 볼 수 있는 기회! 놓칠 필요가 없었다. 차이무라면 극의 품질도 걱정할 것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나였다.

인증샷 ㅋ

스토리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아주 단순하다. 강원도 산골. 관광지라 여름 말고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곳에 호프를 운영하는 병도, 병도의 호프에서 맥주 한 잔 하며 하루를 마감하는 낙으로 사는 카센터 사장 장우, 여자를 밝힌다는 것때문에 장우에게 밉보인 춘발, 나름 똑똑하고 사람 좋은 진수. 그리고 방금 여기로 이사온 여자, 정!

춘발이 동네 구경을 시켜 준다며 정을 병도네 호프로 데려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런데 그게 다다. 무대는 그냥 호프집이다. 그리고 그 흔한 무대 변경 한 번 없이 호프집에서 이야기하는 걸로 연극은 계속된다.

이게 무대 전부다.

시작하고 병도와 장우가 한 20분쯤 대화를 주고 받는다. 강원도 사투리에 밝지 않아 그런지 몰라도 정말 사투리처럼 사투리를 사용한다. 연기가 참 좋았다.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 주는 대화. 작지만 또렷이 들리는 목소리. 와우~

곧 춘발과 진수가 등장하고 평범한 술자리, 형님 왜이러쇼, 네가 뭘 잘했다고?!, 아 싸우지들 마 다 내가 잘못했다니까~ ㅠㅠ 이런 대화들이 오간다.

그리고 예쁜 서울 여자 앞에서 괜히 귀신 이야기를 했다고 후회하는 소심한 시골 남자들, 그런데 오히려 위로가 됐다고 하는 서울 여자가 풀어 놓는 사연.

서울 여자의 연기는 '뻣뻣하다'고 느껴질 수 있겠으나 그것도 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 남자들 사이에 처음 온 서울 여자의 말투는 좀 경직돼 있어야 하지 않겠나. 분위기에 완전히 녹아 들면 오히려 어색했을 거라는 생각.

일상의 한 조각을 떼어다 놓은 연극

문학은 삶의 극적인 부분을 인위적으로 모아 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런데, 이 연극은 별로 극적인 게 없다. 그냥 평범한 술자리다. 물론 서울 여자 '정'이 온 것이 극적인 사건이라면 극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상에서 꽤나 흔히 벌어지는 것이다. 다른 극들과 다른 점이다. 다른 이야기들은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흔치 않은 이야기를 다루는데, 이 극은 있을 법한 이야기고 흔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다.

그런데 빠져든다. 그리고 재미가 있다. 

웃음

마냥 진지한 극은 아니다. 웃음이 있다. 곳곳에 들어가 있는 개그 코드는 일상을 떼어 놓은 이야기에 웃음을 충분히 더해 준다.

볼 기회가 있다면 보길 권한다. 멋진 극이다.

유명인

차이무의 극이라고 해서 그냥 봤을 뿐인데, 유명한 사람이 몇몇 나왔다. 확실히 춘발과 진수는 내가 TV에서 본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프로필을 보니 등장한 배우 모두가 TV와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뭐, 이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