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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번역]현대 예술의 정당성

이 글은 제 친구인 이원웅 씨가 번역한 것입니다. 어디 올려놓거나 한 데가 없기 때문에 제가 가로채 제 블로그를 풍성하게 만드는 데 사용합니다. 주석은 충분히 번역하지 않았다고 하고, 한두문장 정도는 빼먹고 번역한 게 있다고 하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원문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80호에 실린 The legitimacy of modern art 입니다.

----------- 여기부터 번역입니다. ---------

존 몰리뉴

△존 몰리뉴. 영국 포츠머스대학 교수고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활동가다.

다미엥 허스트의 전시회나 터너상 수상작, '센세이션' 전시회 등 현대 미술을 사회주의나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설명하다보면 곧 현대 예술은 정당한가, 현대 예술이 있어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는 문제에 부딪힌다.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하지 않더라도, 대부분 현대 예술(대략 1900년부터 만들어진 조각이나 그림 등)은 수상쩍거나 뻔뻔한 사기 행각 취급을 받는다. 현대 예술을 이렇게 취급하는 사람들은 네 부류로 나뉜다: 일반 대중, 즉 노동 계급, 일간지와 관련 언론인들(뉴스 해설자에서 학자까지), '교육'받거나 '문화적 소양'이 있는 중간 계급, 부르주아 속물 명사.

그 결과 현대 예술의 역사는 수많은 '스캔들'로 점철됐다. 대중이나 언론, 미디어 일각에서는 최신 예술의 '부도덕'함에 대해 분노하거나, 그런 척이라도 한다. 잭슨 폴록이나 칼 앙드레의 '등가물 VIII'이나 마르쿠스 하비의 '마이라' 등이 그런 취급을 받았다. 현대 예술계에서 새로운 발전이 있을 때마다 미디어는 언제나 '이것이 예술인가?'라고 대서특필하곤 했다.

그러나 '이것이 예술인가?'라는 질문에 예술계의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좀처럼 답하지 않는다. 이들에겐 이런 의문을 천박한 실용주의라고 나무라는 것이 이득이 된다. 그러면서 그들은 상아탑에서 자기들만 아는 언어로 '보통' 사람들이 하는 생각을 대수롭지 않다고 비웃는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노동계급의 의식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노동 계급이 스스로 해방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노동 계급이 정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냐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다. 종교와 철학, 문화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노동 계급의 의식의 수준을 높이고, 지평을 넓히며, 그 구성원과 집단의 의식 수준을 발전시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 만약 다수의 노동자들이 현대 예술이나 예술 일반에 대한 저급한 편견에 영향을 받는다면, 이는 노동 계급의 의식에 해가되는 것이며, 비록 간접적일 수는 있겠지만, 그들의 투쟁에도 해가 된다. 그래서 이런 편견과 맞서 싸우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1 유전자 결정론이나 포스트모더니즘 등 학계의 유행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전체에 맞서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것은 좋은 예술이고 그래야만 한다라는 테이트 갤러리 감독의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이것이 예술인가?'라는 물음은 실로 답하기 어려운 물음이며, 미리 정해진 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더 나아가 역사 유물론적 접근법에 따라 현대 예술에 대한 적대감이 널리 퍼져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다 보면, 이 사회에서 예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예술의 특징

20세기에 탄생한 모든 예술은 여기서 논하는 정당성의 위기를 겪었다. TS 엘리엇과 에즈라 파운드의 시,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쇤베르크의 음악이 그랬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는 특히 시각 예술에서 가장 심하고, 광범하고, 오래간다. 1997년 부커상 TV 토론회에서는 후보자와 수상자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비난 받은 것은 현대 소설이 아니었다. 하지만 터너상은 어떠한가? 터너상과 테이트 갤러리를 홍보하기 위한 TV 토론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 토론회에는 현대 예술에 대해 깊은 적대감을 가진 두 사람(자넷 데일리와 로저 스크루턴)이 출연할 수 밖에 없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가장 큰 원인은 분명 회화나 조각이 음악과 문학과 같은 예술에 비해 더 현대적 변화를 거쳤다는 것이다. 시각 예술의 변화는 더 빠르고 더 급진적이었다. 겨우 1907년에 피카소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렸다. 돌이켜보면 그 작품이 나타나도록 길을 터준 작품들은 많다.2 그러나 '아비뇽의 처녀들'은 부르주아의 여명기에 나타난, 초기 르네상스에서 시작되는 500년 유화 전통과 단절함을 선언하는 작품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원근감의 축소. 이로써 Uccello와 Mantegna 등이 15세기부터 시작한, 평면에 3차원의 환상을 만드는 전통과 결별했다. (2) favour of slabs of flat surface. 이는 Cimabue나 Giotto, Masaccio 등이 시작하고 원근법보다 더 오래된, 명암을 통해 입체감을 주는 전통과 결별하는 것이다. (3) 반 아이크, 홀바인, 티티앙, 루벤스등이 공을 들여 이뤄낸 살갗이나 털, 비단, 레이스, 금속 등을 묘사하는 사실주의적 기법을 포기하였다. (4) 아프리카 가면 등을 이용하여 전통적 여성미를 공격했다. 보티첼리의 Venus to Renoir 이후 그림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여성 누드는 그러한 여성미를 따랐다.

당시 '아비뇽의 처녀'가 준 충격은 너무나 커서, 피카소와 친했던 '전위' 예술가들도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비뇽의 처녀'는 피카소의 작업실 벽을 향해 걸려있었고, 1937년까지도 전시되지 않았다.3 하지만 이 작품은 입체주의의 출발점이었으며(존버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큐비즘을 '촉발했고')4, 큐비즘은 순식간에 분석적 큐비즘과 결합적 큐비즘으로 나아갔다.5 미래주의와 소용돌이파, 광선주의, 절대주의, 다다이즘, 추상예술이 입체주의의 발자취를 따라 등장했다. '아비뇽의 처녀들'이 나온지 10년도 되지 않아 뒤샹의 '샘'6과 말레비치의 '하얗위에 하얀 네모'가 나왔다. 6~7년이 지나면 구성주의와 De Stijl(몬드리안의 스타일도 포함하여), 초현실주의도 나타난다. 불과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에, 시각 예술은 엄청나게 변화했고, 예술가들은 이전 시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베토벤, 차이콥스키와 쇤베르크, 버트위슬의 차이보다, 혹은 디킨스, 키츠와 조이스, 긴스버그의 차이보다, 터너, 콘스터블과 몬드리안, 폴록, Rothko의 차이가, 로댕과 뒤샹, 보이스, 스미드슨의 차이가 훨씬 더 컸다.7 이와 같은 극적인 현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첫번째 요인은 분명 사진의 발명이다. 사진의 발명으로 시각 예술은 이전 수 세기 동안 해오던 기능, 즉 사람과 사물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기능을 잃어버렸다.8 19세기 중반 이전에는 화가나 조각가들의 작품이 직접 볼 수 없는 개인의 모습이나, 옷차림, 재산, 예수와 마리아의 모습, 궁정과 정원의 모습, 도시 축제 등을 기록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카메라가 등장하자 별다른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저가로 직접 볼 수 없는 광경을 재현할 수 있게 됐다. 어떤 예술 분야도 시각 예술 만큼 기계의 발전으로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시각 예술은 자신의 핵심 기술과 기법들을 강탈당했으며, 그런 만큼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됐다.

또다른 요인도 있다. 지배 계급의 모습을 재현하는 방법은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나타난 사회적, 정치적 변화의 영향을 받는다. 존 버거가 저서 《보는 법》에서 언급하듯이, 유럽 유화의 주제는 지배 계급과 그들의 재산(의복, 토지, 말, 아내, 여성,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부터 1848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지배 계급 내부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예술가들이 대부분 속했던 중간 계급 내부의 계층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수줍음을 타기 시작했다. 다시말해 지배 계급은 개인으로서 눈에 띄는 찬양을 받으려하지 않았다. 그러한 과시로 징발의 표적이 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는 그들의 의복을 통해 드러나며, 예술에 대한 태도의 변화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9 록펠러나 게티, 구겐하임, Saatchi는 자신이 수집한 미술 작품들을 과시할지언정, 자기 자신의 모습을 마치 성자처럼 꾸미려 들지는 않는다. 이에 따라 예술가들은 지배 계급의 모습을 그리는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다비드의 나폴레옹은 아마도 통치자를 찬양하는 마지막 초상화일 것이다.10 물론 고야가 스페인 왕족을 그린 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 의도는 풍자였다. G?ricault는 정신병원 수용자들을 그렸다. 마네는 Folies Berg?re의 창부를 보고 '올랭피아'를 그렸으며, 지배 계급을 그린 것은 처형당하는 막시밀리앙 황제가 전부다. 반 고흐는 농부와 우체부를 그렸다.

기존의 사회적 기능과 주제를 빼앗기면서 예술은 기존의 의식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 결과 예술은 지난 수세기 동안 누려온 문화적인 신뢰를 잃었다. 그러나 현대 예술이 특별히 정당성의 위기를 겪는 이유는 이게 전부가 아니다. 미술 시장은 문학나 음악 시장, 혹은 문화 일반의 시장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발터 벤야민의 희망과 기대와는 달리 예술 시장과 예술계를 지배하는 것은 개인의 '독특한' 예술 작품에 대한 소유권이다. 이는 미술계와 현대 미술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술 작품을 제작하는 데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비싼 재료가 필요하고, 작업실과 창고, 전시실도 있어야 한다. 전통적인 유화는 분명 그러하다. 작품의 크기가 크면 더 그렇다. 조형물의 경우 비용은 더 커지며, 다미엥 허스트의 '상어'11는 제작하는데 8만 파운드가 들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12 한편 그렇게 만든 미술 작품이 팔리는 가격은 훨씬더 비싸다. Covent Garden의 티켓값이 갈취라고 생각한다면 예술 작품을 하나 구입해보라. 옛 대가들의 작품(사실 이 작품들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일은 없으며, 거래된다면 정말 부르는게 값일 것이다)은 제쳐두고, 마티스나 피카소의 작품(주요 작품은 수백만 파운드에, 대수롭지 않은 작품도 25만 파운드에 팔린다)도 제쳐두고, 폴록이나 Rothko, 리히텐슈타인(역시 백만 마르크 이상의 값으로 거래된다), 국내에서 알려진 Calum Innes나 Gary Hume의 작품을 산다고 해도 만파운드 정도를 낼 각오는 해야 한다. 당신이 엄청난 부자가 아니라면 그런 돈은 준비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결과 미술 시장과 미술계는 극소수의 부자나 권력자들에게 좌지우지 된다. 엄청난 부자들만이 미술 작품을 수집하고 후원할 수 있다. 영국에서는 Charles Saatchi나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 현대예술관, 뉴욕의 휘트니 박물관 등 몇몇 핵심 기관들의 관리인들이 그럴 수 있다. 미술품 수집에 뛰어드는 거대 기업도 있는데, 한 일본의 기업은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사는데 2700만 파운드를 들였다13. 국가 기구나 지방 정부도 상당히 많은 위촉을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보기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이 문화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시각 예술은 이런 특권이 훨씬 더 심각하다. 미술계에서 1930-40년대에 MOMA의 Alfred Barr Jr이나 1950년대의 페기 구겐하임, 오늘날의 Saatchi가 만큼의 영향력을 쥔 사람을 문학계나 음악계에서는 찾을 수 없다. 다른 예술의 경우, 건축이라는 특수한 사례를 제외한다면 14, 대중적 인기가 재정적 보상으로 이어지는게 시장의 논리다. 그런 예술에선 책이, 음반이, 공연장 표가 얼마나 많이 팔리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수익과 인기는 비평계의 평에서 자유롭다. 그러나 회화나 조각에서 대중적 인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미술계에서 성공적인 보상과 평론을 얻으려면 미술계를 쥐고 흔드는 소수에게 호소해야 한다.

그 결과 소위 고급 문화를 혐오하는 노동 계급과 소자본가들이 시각 예술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더 적대적이다. 특히 미디어와 미술계에서 돈으로 작품의 값어치를 잴 때 그렇다. '햄릿'이나 '황무지',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묻는 사람은 없다. 그런 물음은 어리석다. 그러나 현대 미술 작품 앞에선 그렇지 않다. 언제나 그 작품들은 대중의 분노를 일으킨다. 굶주림과 빈곤, 실업, 부랑이 창궐하는 이 세계에서 아무런 쓸모 없는 예술 작품에 수천 파운드를 쏟아붓는 것을 평범한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며 정당하다. 공공의 재산이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을 사들이는데 쓰이면 반감은 더 크다. 돈 문제는 미술계를 오염시키고, 미술계의 정당성을 훼손한다.

현대 미술이 정당성을 의심받는 또다른 이유는 바로 대중 예술 문화라고 할 만한게 없다는 것이다. 이는 대중과 예술이 분리된 결과이기도 하고 원인이기도 하다. 문학에서 '고급' 문화와 대중 문화를 구분해보자. 전자에는 초서에서 베케트에 이르는, 문학적 규범으로 자리잡은 고금의 작품들이 포함될 것이며, 후자에는 애거서 크리스티나 제프리 아처와 같은 작가들이 포함될 것이다. 한편, 키플링과 톨킨, Le Carr?, Walsh와 같은 작가들은 그 둘 사이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둘 사이에는 공상 과학 소설이나 스파이 소설, 추리 소설 등의 여러 하위 장르가 있을 것이다. 각 장르에는 열렬한 팬들이 있으며, 저마다 어느 정도의 문학적 완성도를 지닌 작품들도 있다. 음악의 경우 대중의 활기는 더 두드러진다. 말러와 스파이스 걸스 사이에는 길퍼트와 설리번에서 재즈, 플라멩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가 들어차 있다.15 그러나 미술은 그렇지 않다. 삽화가들과 만화가들, 아마추어 화가, painters of animals and Jade ladies for sale in Woolworths 등이 그림을 그리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를 미술 작품으로 대하지 않으며, 수준이 높다고 쳐주지도 않는다. 고급 현대 미술은 대중의 냉소에 대한 완충장치가 없는 '화려한' 고립 상태에 있다.

이 분석은 역사적이고 유물론적이며, 현대 미술의 정당성 위기가 우연이나 음모가 아니라, 역사적 조건을 바탕에 둔 현상임을 보여준다. 이 현상은 오랫동안 미술이 사회에서 해오던 실질적인 기능을 잃어버리고, 소수의 부자들만이 누릴 수 있게 되고 고립된 처지가 되면서 나타난 것이다.16 이런 분석은 '이것이 예술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이전에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 분석이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아니다. 그럼 이제 이 물음에 답해보도록 하겠다.

근데 그럼 이게 예술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이 물음 또는 반론이 무엇을 뜻하느냐에 달려있다. 이 물음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우선 이 물음은 현대 예술이 치밀하고 뻔뻔한 사기라는 주장일 수 있다. 혹은 현대 미술이 예술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예술이 아니라는 주장일 수도 있다. 혹은 현대 예술이 예술이든 아니든 간에 숙련된 솜씨를 필요로 하지 않아서 무가치 하다는 주장일 수도 있다. 혹은 현대 미술은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게 문제라는 지적일 수도 있다. 그럼 이제 각각의 해석에 대해 논해보겠다.

일단 솔직하게 인정할 것이 있다. 사기와 기만, 뻔뻔한 속임수나 이를 칭하는 엄밀한 법률 용어에 해당하는 일들은 다른 분야보다 시각 예술에서 더 일반적이다. 피카소나 마티스, 모네의 위작은 분명 수백, 아니 어쩌면 수천개가 있을 것이다. 이런 그림들은 예술 시장에서 거래되서 부자들의 집과 적지 않은 수가 미술관에도 걸려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내가 이미 언급한 예술 시장의 특성이다. 예술 시장에서 중요시 되는 것은 바로 개별 작품의 소유권이다. 다른 하나는 천재적인 예술가 개인에 대한 숭배 때문이다. 그 결과 작품 뛰어나서가 아니라 '천재'가 만들었다는 이유로 작품에 높은 값이 매겨지고, 더 나아가 비평계의 찬사가 쏟아지기도 한다.17

그러나 현대 미술 일반 혹은 대부분이 뻔뻔한 속임수라는 가설은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현대 예술이 사기라면, 누가 누구를 속이는 것인가? 예술가가 대중을 속이는 것인가? 그런 예술가는 분명 실패할 것이다. 대중들은 속지 않고 예술가는 돈을 벌지 못할 것이다. 그럼 예술가가 자신의 부유한 후원자들을 속이는 걸까? 록펠러나 Getty나 Saatchis가 과연 그렇게 순진한 사람들일까? 그렇게 속고도 잘사는 이유는 뭘까? 폴록이나 Rothko, 리히텐슈타인, 워홀의 작품을 사도록 '속아넘어간' 사람들은 은행으로 가는 길에게 저주를 퍼부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 미술이 속임수가 아니라고 해서, 집단이 착각에 빠지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신을 믿고, 소련이 사회주의 사회였다고 믿는 사람이 수백만인 것처럼,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상하고 쓸데 없는 것이 예술 작품이라는 환상에 빠지는 것도 가능하다. 만약 그 말이 맞다면,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한 탐험가가 만난 새로운 생명체가 포유류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것은 가능하다. 무엇이 포유류고 무엇이 파충류이며 무엇이 조류인지 분명한 합의와 정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18 하지만 '예술'을 정의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다미엥 허스트의 상어나 칼 앤드류의 벽돌 따위가 예술임을 인정하기를 거부하지만, 대부분은 예술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정의하지 않고 그렇게 한다. 아마 그런 판단은 비판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은 추측이나 편견일 가능성이 크며, 비판적 검증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들은 예술은 실제 세계를 눈에 비치는 그대로 재현하거나 '모방'해야 한다고 본다. 이 기준을 실제로 적용해서 예술과 예술이 아닌것을 구별해보자. 이 기준을 적용하면 피카소나 브라크, 몬드리안, 폴록, 무어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미술, 이슬람 미술, 오스트리아 선주민들의 예술과 Giotto의 작품도 예술에서 제외된다. 한편 콘스터블이나 터너, 홀바인, 반 아이크 벨라스케스의 작품 뿐만 아니라 윈스턴 처칠이나 찰스 왕자가 취미로 그린 그림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마르셀 뒤상의 기성품이나 워홀이나 허스트의 작품도 예술에 포함될 것이다. 이 기준을 음악에다 적용하면 문제는 더 커진다. 음악은 '현실'을 모방하거나 재현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음악가들이 음표들을 배열하여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게 당연하다면, 칸딘스키나 Rothko가 같은 목적으로 색과 형태의 배열을 이용하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이 외에도 예술에 대해 널리 퍼진 편건이 있다. 예술은 아름답거나 예뻐야 한다거나19, 미술은 물감, 돌, 청동을 재료로 해야 한다거나, 회화는 꼭 1인칭 시점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들이 그 예다. 이 편견들을 조금만 곱씹어 보면, 이는 1400~1900년대의 유럽 예술계에 자리잡은 관행들을 표면적으로 일반화 한 것에 지나지 않아 너무 조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널리 퍼진 견해는 현대 예술에는 '솜씨'와 '기술'이 필요없다는 견해다. 다시 말해 네살짜리 꼬맹이도 그런걸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려면 꽤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현대 예술에서 '솜씨'와 '기술'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난이 무지에서 비롯한 경우도 있다. 피카소가 분명 그 예다. 피카소는 십대에 전통적인 재현 기법을 통달했다. 20대 초반 '청색 시기(1901~1904)에 피카소는 이미 미술 역사의 한페이지에 남을 작품들을 그렸다. 테이트 갤러리에 있는 '앉아있는 나부', 파리 박물관에 있는 '기타치는 사람'와 같이 분석적 입체주의에 입각한 작품들도 엄청난 기술을 요하는 것이다. 피카소는 평생동안 놀라운 솜씨와 기술을 잃지 않았다. 잭슨 폴록은 어떨가? 폴록 또한 1930년대에 뚜렷한 형상을 그리는 사회적 사실주의자였으며, 추상표현주의와 액션 페인팅으로 기운 것은 1947~48년이다. 그 시기가 되면 폴록은 이젤에 캔버스를 얹어 붓으로 물감을 칠하는게 아니라, 바닥에 거대한 캔퍼스를 눕혀 막대에 묻힌 페인트를 뿌린다. 그렇게 만든 작품들은 아무렇게나 페인트를 뿌려대서 혼란스럽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는 첫 인상일 뿐이다. 작품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고 폴록이 작업하는 모습을 담은 유명한 영화를 본다면, 폴록이 수준 높은 드리핑 기법을 쓰며, 각 그림이 분명하고 구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음에 모두들 동의할 것이다. 폴록의 기법은 분명 뒤러나 티티앙의 기법과는 다르지만, 기법은 기법이다.

한편 현대 미술가들 중에는 물감을 다루거나, 돌을 깎거나, 점토를 빚는 등의 [전통적인] 기법이 아닌 다른 기법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1993년 터너상을 탄 레이첼 와이터리드의 예를 보자. 그는 물병이나 욕조같은 생활용품의 내부나 방, 때로는 집 전체를 석고 모형으로 빚는다. 내가 보기에 방의 내부나 집 전체를 석고로 뜨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것 같다. 나는 그런 작업을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작업 도중 발생하는 수많은 기술적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상상할 수 없다. 당신 같으면 그 결과가 어떨지 알 수 있을까? 어떻게 그것들의 석고를 뜰텐가? 이동은? 보관은? 등등... 이런 기술들은 전통적인 미술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기술들이다. 망명중인 팔레스타인 작가 모나 하토움의 비디오 작품도 마찬가지다. 하토움은 Corps Stranger의 원통형 입구에 자신의 뱃속에 들어간 내시경이 찍는 광경을 투사한다. 이에 필요한 모든 기술 또한 전통적 미술 기법이 아니다.

기술과 솜씨를 거의 쓰지 않고 작품을 만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가장 극단적인 예는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일 것이다(1914년의 병 건조대, 1913년의 자전거 바퀴, 1917년의 샘20). Carl Andr,-Lever는 1966년 137개의 내화 벽돌을 한줄로 전시장 한가운데에 일렬로 늘어놓은 작품을 만들었다. 그의 등가물 I-VIII (1966)은 120개의 모래 석회 벽돌을 쌓아놓은 것이다.21 많은 사람들은 이런 작품들이 아무런 기술과 솜씨를 쓰지 않아서 예술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Andr의 벽돌이나, 뒤샹의 레디메이드도 Hatoum이나 Whiteread, 폴록, 피카소, 더 나아가 미켈란젤로가 작품을 만들때 발휘한 솜씨와 기술로 만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작품을 생각해 낼 수 있는 지적인 솜씨와 기술이다. 이러한 솜씨와 기술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다. 쌓여있는 벽돌이 감동적이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하고, 통찰하는 것. (그리고 감히 그렇게 할 용기도 필요하다.) 벽돌을 감동적이고 아름답게 배열할 수 있는 미적 감각22. 예술과 예술의 역사, 사회를 이해하고 변기나 벽돌을 늘어놓는 일이 핵심을 짚거나 중요한 물음을 던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23 이런 것들이 바로 그 요소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들이 언제나 '훌륭하고',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병걸이나 벽돌이라는 이유로 예술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미디어에서 제기되는 '이게 예술인가'라는 물음에 깔린 편견들을 반박했다. 그러나 예술계나 예술이론의 영역 안에서 '예술은 이거다'라고 정의를 내려서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예술의 정의

예술계에는 예술을 정의할 수 없다거나, 예술의 정의는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피터와 린다 머레이의 예술과 예술가 사전(Penguin, 1973)에는 액션 페인팅이나 소용돌이파 등의 용어에 대한 설명이 있지만, '예술'의 정의는 등재되지 않았다. 한편 찰스 해리슨과 폴 우드의 기념비적인 저작 '예술 이론 (1900-1990)'은 세잔에서 세라에 이르기까지 예술에 대한 300여개의 글이 실려있다. 그러나 그 중 예술의 정의에 관한 글은 단 한건이다. 사실 이런 태도는 솔직하지 않은 것이다. 예술계에서 활동하는 작가, 딜러, 큐레이터, 비평가들은 현실에서 항상 예술 작품과 예술 작품이 아닌 것을 구별한다.24 예술은 뭐다라고 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런 구별이 명료하지 않고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예술계에서 통용되는 정의가 있다면, '예술가가 하는게 예술이다' 혹은 '예술가가 하거나 예술이라고 부르는게 예술이다' 정도다. 내가 보기에 이는 '이게 예술인가'라는 물음을 거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취하는 '진짜' 입장이다. 현대 예술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되기 때문에 이들은 이러한 입장을 취한다. 이는 특히 뒤샹과 계승자들의 작품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정의는 모든 새로운 발전을 설명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개방적이고 급진적일 것 같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정의는 매우 보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며, 여기에는 실제로 내가 언급한 예술계의 엘리트주의가 반영되어 있다. 만약 예술가가 하는게 예술이라면, 예술가란 무엇인가? 예술하는 사람이 예술가라는 답은 순환논리다. 날 때부터 예술가인 사람이 예술가라던가(마치 지배 계급이 지배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이데올로기처럼) 예술계에서 예술가로 인정받은 사람이 예술가라는 대답만이 가능한 대답일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의는 자신을 영속화하려는 지배자가 스스로를 정당화하하는 것과 같다.25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예술 작품들의 [표면적인] 공통점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표면적인] 공통점에서 출발해 예술을 정의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예술 작품이 매우 상이할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은 언제나 한계를 뛰어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떄문이다. 뿐만 아니라 예술은 다양한 창조적 활동(음악, 시, 연극 등)을 모두 포괄하는데, 이러한 활동은 측정할 수 있는 '대상'을 만들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사회적 영향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하는게 예술'이라는 정의에는 예술을 만드는 노동의 특성을 짚는다는 점에서 합리적 측면이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과 상품에 대한 분석을 이용하면 이 합리적 측면을 발전시킬 수 있다.

마르크스는 주장하길 자본은 기계의 모습을 취할 때도 있고, 화폐의 모습을 취할 수도 있지만, 기계나 화폐가 곧 자본은 아니다. 기계나 화폐는 사회의 정해진 생산 관계안에 있을 때 비로소 자본이 된다 :

"흑인은 흑인이다. 흑인은 [노예제라는] 관계 안에서 비로소 노예가 된다. 실잣는 기계는 실을 잣는 기계다. 실잣는 기계는 정해진 관계안에 있을 때 비로소 자본이 된다. 26"

마찬가지로, 인간의 노동이 생산한 것들이 곧 상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노동이 생산한 것은 시장이라는 사회 관계 속에서 비로소 상품이 된다. 따라서 상품을 분석하려면 사회 관계를 분석해야 하고, 특히 상품을 만들며 시장 관계에 깔려있는, 인간의 노동이 지닌 특성에 대해 분석해야 한다:

"그러면 어찌하여 노동이 상품의 형태를 하자마자 노동이 생산한 것이 지니는 아리송한 특징이 생겨나는 것인가? 이는 상품 형태 자체에서 비롯한다. ...

따라서 상품은 신비로운 것이다. 왜냐하면 상품에 찍힌 가격 표시 도장이 인간의 노동이 지닌 사회적 특성을 객관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생산자들의 노동을 합한 것과 생산자의 관계는 사회 속의 관계로 나타나는데, 이 관계가 생산자들이 아니라 생산자들이 만들어낸 생산물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

이처럼 상품의 물신화는 상품을 만드는 노동이 특정 사회에서 지니는 성격에서 비롯한 것이다. 27

이 방법을 예술에 적용해보자. 평면 위에 칠해진 물감이나 자국이, 종이위에 쓰인 단어들의 나열이, 배열된 소리가 정해진 사회 관계 속에서 비로소 예술이 된다. 그럼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다 : 예술 작품을 만드는 노동이 사회에서 지니는 성격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예술'이란 소외되지 않은 노동의 산물이라고 답할 수 있다.

이는 분명 논쟁적인 주장이며, 나는 이 주장을 여기서 온전히 방어할 수는 없다.28 이 글에서는 그 논리를 설명하고 명료하게 하는데 그칠 것이다. 이 주장은 소외되지 않은 노동이 자본주의 '바깥'에 있다거나, 상품을 만들지 않는다거나, 사람들이 즐겨하는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29 자본주의 '바깥'의 노동은 급속한 속도로 줄어들고 있으며, 자본주의 하에서 예술이 대량 상품화 된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리고 소외된 노동을 '즐기기'는 불가능하지 않으며, 소외되진 않았지만 즐길수 없는 노동도 있다. '예술가'는 소외되지 않는다거나 그들의 작품이 소외를 표현하지 않는다는 말도 아니다. 소외는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소외되지 않은 노동이라는 말은 그 노동이 생산자의 통제하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1844년 수고에서 마르크스는 소외된 노동의 핵심은 노동자와 노동, 즉 생산적 활동의 관계에 있다고 쓴다.

"따라서 노동의 중요한 관계가 무엇이냐라는 문제는 노동자와 생산행위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노동자가 겪는 소외의 한가지 측면만을 살펴 보았다. 바로 그의 노동이 만들어낸 생산물과 그의 관계에서 말이다. 그러나 소외는 단지 결과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산 활동에 포함되는 생산 과정 그 자체에서도 벌어진다. 노동자가 자신의 생산 활동 자체에서 소외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소외된 생산물을 만들었겠는가?..

무엇이 노동의 소외를 낳는가? 우선 노동이 노동자의 것이 아니어야 한다. 즉 노동자 본연의 일부가 아닌 것이 되는 것이다. 그 결과 노동자는 노동을 하면서 만족을 느끼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을 부정하고 고통을 느낀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 자유롭게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능력을 기를 수 없다. 오히려 육체적 피로와 정신력의 저하를 겪을 뿐이다. 따라서 노동자는 여가시간 동안에만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 작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의 노동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다. 강제로 떠맡겨진 것이다. 이는 자신에게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다. 만약 온갖 강제가 가해지지 않는다면, 노동자는 노동을 마치 질병이라도 되는것처럼 피할 것이 뻔하다. 이는 노동의 소외를 잘 드러낸다. 자신의 것이 아닌 노동, 즉 인간이 자신을 소외시키는 노동은, 스스로를 희생하는 고행이다. 노동이 노동자의 것이 아니라는 점은 노동자가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한 노동을 하며, 작업장에서 노동이 노동자의 것이 아니라 다른이의 것이라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30

예술을 만드는 노동은 이와 다르다. 그 노동이 위촉 작품이나 예술 상품을 만드는 노동이라고 할지라도, 생산적 활동은 여전히 예술가의 손안에 있다. 그리고 그 작품도 여전히 남이 아닌 자신에게 속한다. 소외된 노동과 달리 예술을 만드는 노동은 생산자의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부정하거나 왜곡하지 않으며, 오히려 발전시키고 표현한다. 그리고 돈을 받아야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순전히 돈 때문에 하는 노동도 아니다.

마르크스는 젊은 시절 언론의 자유를 옹호하는 맥락에서 이러한 생각을 밝힌바 있다.

작가는 생계를 유지하고 글을 쓸 수 있어야하지만, 그렇다고 오로지 생계를 위해 글을 쓸수는 없다. Beranger가 '나는 노래하기 위해 산다네. Monsignor, 당신이 나를 몰아내면, 나는 살기위해 노래해야 하지'라고 노래를 부른것 처럼말이다. 이 위협에는 역설적인 고백이 있다. 시인은 자신의 시가 수단으로 전락해 버릴때 몰락한다. 작가과 그의 글도 마찬가지다. 그 글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31

나이가 훨씬 든 다음에도 마르크스는 '잉여 가치 이론'에서 생산적인 노동에 대해 논하는 맥락에서 같은 점을 지적한다:

비단벌레가 비단을 만드는 것처럼 밀턴은 실낙원을 썼다. 실낙원을 쓰는 것은 그의 본연에서 비롯한 활동이다. 밀턴은 그것을 5파운드에 팔았다. 그러나 라이프치히의 글쟁이가 출판사의 지시 아래 책을 찍어내는 것도 생산적인 노동인건 마찬가지다. 그가 생산한 것은 처음부터 자본에 종속되어있으며, 자본을 증식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32

트로츠키도 덜 분명하고 덜 과학적인 언어로 이와 비슷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정신의 창조력은 자유를 요구한다'33, '예술은 기본적으로 신경이 작용한 결과고, 완전한 성실함을 요구한다',34, '예술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명령을 기다리지 않으며, 명령을 참을 수 없는 본질이 있다.'35라고 트로츠키는 섰다. 이런 말을 통해 그는 혁명 정당이 권력을 잡던 말던 예술을 통제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대한 반론은 두가지가 있다. 첫째로 많은 예술 작품이 실제로는 많은 양의 소외된 임금 노동으로 제작된다는 것이다. 영화가 그 예다. 두번째 반론은 소외되지 않은 모든 노동이 예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레닌의 '국가와 혁명'이나 DIY가 이에 해당한다.

첫번째 반론에 대한 나의 대답은 대부분의 예술 작품에는 소외된 노동과 소외되지 않은 노동이 섞여있다는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깎아낼 대리석은 채석공들이 캐낸다. 음반을 만드려면 녹음 기사도 있어야 한다. 종이 제조공이나 인쇄공들은 어떠한가? 얇은 시집을 하나 내려고해도 이런 사람들은 없어선 안된다. 그러나 노동의 결과가 예술이게 하는 것은 소외되지 않은 노동이다. 인쇄공 없이 시집이 있을수는 없지만, 그 시집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시인의 노동이다. 인쇄공 없이 전화번호부가 있을수는 없지만, 전화번호부는 예술이 아니다. 영화나 음악회, 연극, 오페라, 건축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들을 하는 데에도 엑스트라나 안내인, 검표원, 건설 노동자 등의 굉장한 양의 소외된 노동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예술이게 하는것은 영화감독이나 작곡가, 연주자, 디자이너, 건축가 등의 소외되지 않은 노동이다. 36

두번째 반론은 말 자체만 놓고 보면 맞는 말임이 분명하다. 나는 예술을 만드는 노동이 소외 되지 않은 노동의 한 가지 예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예술을 만드는 노동에는 내용과 형식의 통일성이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형식이 내용이다. 레닌이 '국가와 혁명'을 쓰는 것은 분명 소외되지 않은 노동이다. 하지만 국가에 대한 마르크스의 이론을 제시하고 발전시키는 이 책의 내용은 그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쓰인 단어보다 훨씬 중요하다. 번역이 훌륭하고 핵심적인 내용이 남아 있다면 '국가와 혁명'은 영어로 읽든 불어로 읽든 러시아 원전과 똑같을 것이다. 그러나 마야콥스키의 시는 그렇지 않다. 번역된 시는 원작과 같지 않다. 시에서는 사용된 단어 하나 하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에 사용된 낱말의 사전상 의미 뿐만 아니라 함축적 의미나 발음, 운율등이 시의 의미를 구성한다. 김아무개가 정원의 벽을 세우는 것도 소외된 노동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벽의 형태는 이차적인 문제다. 가장 그 벽의 주된 기능은 김아무개와 박아무개의 정원을 구분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Carl Andr가 960개의 벽돌로 만든 '등가물 I-VIII'은 쓰임새가 아닌 모양과 색, 벽돌의 배치 때문에 예술 작품인 것이다.37

예술을 형식과 내용을 결합시키는 소외되지 않은 노동이라고 보면 여러가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 우선 예술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 이래로 계속되었지만, '예술'이 다른 활동과 구분되고 '예술가'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등장한 것은 르네상스부터라는 역설을 해결할 수 있다. 인류는 언제나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나무를 깎는 등 언제나 소외되지 않은 노동을 해왔다. 그러나 예술과 예술가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노동과 뚜렷하게 구분되기 시작한 것은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소외된 노동이 강화되고 나서부터다.

두번째로 이러한 정의를 통해 우리는 '자본주의적 생산은 시나 미술같은 정신적인 생산에 해가 된다'는 마르크스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38 자본가 계급이 예술에 적대적이라는 주장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음이 명백하다. 메디치, Saatchis, Mrs and Mrs Andrews, 넬슨 록펠러에 이르기까지, 자본가들은 예술을 후원했고 예술이 주는 영광을 누렸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예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꽤 잘 알고 있다. 자본주의 시대의 예술이 봉건 시대나 다른 시대의 예술보다 빈곤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자본가나 자본주의 시대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을 파해쳤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소외된 노동에서 시작된다. 예술의 생산이 자본주의적 생산에 편입되는 한, 자본이 예술을 생산하는 과정 전체를 통제하는 한, 그 생산은 더이상 예술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며, 더이상 예술을 낳지 못할 것이다. 오손 웰즈는 '시민 케인'을 만들었다. 이것은 예술 작품이다. 그는 셰리주 광고를 만든다. 이것은 예술 작품이 아니다.39 자본과 자본주의에 대한 예술가들의 적개심은 바로 소외된 노동과 소외되지 않은 노동이 객관으로 대립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이 대립은 단지 낭만적, 보헤미아적 신화가 아니며 자본주의의 시대에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다.

한편 내용과 형식을 통일시키는 소외되지 않은 노동이라는 예술의 정의를 통해 우리는 계속되온 '이게 예술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간결하며 동시에 포괄적인 답변을 할 수 있다. 이게 예술인가? 그렇다. 말레비치의 '흰 네모 위의 흰 네모'나 폴록의 그림이든, 화이트레드의 '집'이나 허스트의 'Mother and Child Divded'이든 말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내용과 형식을 통일시키는 소외되지 않은 노동이라는 기준을 만족시킨다. 그러나 이 기준이 훌륭한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답을 주지는 않는다. 이는 다른 문제다.

현대 미술은 어려운가?

최근 현대 예술의 우수성에 대해 논하기 전에, 현대 예술에 관한 한 주장에 대해 검토해보고자 한다. 바로 현대 예술은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는 현대 예술의 정당성과도 연결된다. 흥미로운 것은 현대 예술의 비판자와 옹호자 모두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한편에는 현대 예술을 이해하려면 전문적 지식을 갖추고 공부를 해야하며 때문에 대중은 현대 예술에 다가갈 수 없고, 현대 예술은 엘리트주의적이라는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예술이 '평범한' 사람들 혹은 '노동 계급'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는 현대 예술의 정수는 실제로 어려우며, 어렵기 때문에 훌륭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현대 예술이 어렵거나 대중이 그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대 예술의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예술을 발전시키고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려는 현대 예술은 어려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두 주장은 좌파 진영과 우파 진영 모두에서 제기된다. 우익 포퓰리즘 타블로이드에서는 '자유주의적' 지식인 전반에 대한 공격의 일환으로 현대 예술이 지식을 뽐내는 것이라고 공격한다. 한편 일단의 좌파들은 노동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개는 사실주의적인) 예술을 요구한다. 특히 1930년대의 공산당이 그랬다. 한편에는 위대한 예술의 숭고함을 선천적으로 보지 못한다고 대중을 깔보는 우익적 엘리트주의도 있으며, 다른 편의 좌파적 엘리트주의자들은 대중이 계급 사회와 자본주의 때문에 문화적으로 빈곤한 상태에 처해 있어서 예술에 무관심하다고 본다.40

모든 가능한 주장이 이 네가지로 한정된다면 나의 주장은 룩셈부르크나 트로츠키와 같은 '좌파적 엘리트주의'쪽 속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현대 예술이 특별히 어렵다는 주장을 반박하고자 한다. 현대 예술이 어렵냐는 질문은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예술 작품은 여러모로 '어려울' 수 있다. 우선 문화의 차이에서 어려움이 비롯할 수 있다. 영어만 아는 사람이 프랑스 소설을 읽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 소설이 Barbara Cartland가 쓴 것이라도 말이다. 같은 이유로 현대의 독자들에게 초서나 세익스피어의 작품은 읽기 '어렵다'. '새로운 것의 어려움'도 이와 비슷한 것이다. TS 엘리엇은 '어려움은 새로움에서 비롯할 수도 있다. 우리는 워즈워스, 셀리, 키츠, 테니슨, 브라우닝이 겪었던 조롱을 잘 알고있다'41라고 말한 바 있다. 엘리엇은 당대의 비평가들이 마네의 작품을 어려워했다고 전한다.42 그러나 오늘날에는 누구나 인상주의 작품들은 쉽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긴다. 한편 헤겔의 '논리학'이나 마르크스의 '자본'이 어렵거나 이론 물리학이 어렵고, 엘리엇의 황무지가 어려운 것처럼 진짜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와 '수용'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 둘은 종종 연결되어 있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않으며 같은 것도 아니다.43

이런점을 고려해 볼때, 현대 예술은 전통 예술보다 '어렵기'도 하지만 '쉽기'도 하다. 실제로 대부분의 전통 예술을 이해하려면 상당한 양의 때로는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대부분 중세 예술이나 초기 근대 예술은 성서나 기독교 신학에 대한 지식을 전제하지만 오늘날 사람들 대부분은 그 전제를 갖추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성서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램브란트의 Bathsheba를 이해하기는 커녕 무엇을 그린 것인지 조차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Bathseba의 모델이 렘브란트의 연인이자 20년 동안의 동거인이었던 Heindricke Stoeffels라는 사실을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큰 차이를 낳지만, 이러한 지식은 별도로 연구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더 나아가 이 시기에 나온 대부분의 미술 작품들은 복합적인 도상학을 전제한다. 도상학에서는 특정한 물체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한다. 이 물체의 의미에 대한 지식은 오늘날 문화의 주변부로 밀려났으며, 전문가들만이 알고 있다. 도상학을 알고 있어야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의 가장 유명한 예는 한스 홀바인의 '외교관들'이다. 이 작품에는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의 기억이 숨겨져 있다.

반면에 많은 현대 예술 작품은 사전 지식이나 연구 없이도 이해할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지금 Mir¢의 '파랑 III'이라는 작품의 사진을 보고 있다. 이 그림은 아주 단순하다. 캔버스 전체가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우측 하단에는 달걀 형태가 검은 색으로 칠해져있다. 그리고 마치 실처럼 가는 검은색의 줄이 좌측 하단에서 우측 상단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줄의 끝에는 달걀 모양의 붉은 점이 찍혀있다. 이게 끝이다. 이 외에 내가 아는 것은 없다. 1961년에 제작된 작품이라는 것 외에는 이 작품의 내력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나는 이 그림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거나 '해석'하는 글을 읽어본 적이 없지만, 파란색은 하늘이고 선과 빨간 점은 연을 나타낸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어보인다. 설사 이 그림에 더 깊은 뜻이 있다고해도 나는 그 뜻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그림은 보기만 해도 기쁨을 가져다준다. 이 그림은 기쁨과 쾌활함, 즐거운 삶이라는 느낌을 일으킨다. 나는 이 그림이 왜, 어떻게 이런 느낌을 주는지 분석도 어느정도 해볼 수 있겠지만, 이런 분석은 이차적인 문제다. 나는 느낌을 분석할 수 없으며 꼭 분석을 해야하는것도 아니다. 오해가 있을까봐 강조하겠다. '파랑 III'에 대한 나의 반응이 '순수'하다거나 내가 속한 사회와 무관하다거나 Mir¢의 '유명세'나 예술의 역사 따위에 관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무관하다는게 아니다. Mir¢의 작품이 렘브란트나 홀바인의 작품보다 원래 더 '어렵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마 이 작품을 즐기는데 전제되어 있는 가장 중요했던 '지식'은 눈에 비치는 그대로 그리지 않는 그림도 예술 작품의 자격이 있으며 그러한 감정을 불러일으킬수 있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다른 예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들 수 있다. 분명 이 그림이 스페인 내전에서 독일 공군이 1937년 자행한 바스크 폭격에 대한 항의이며, 그 폭격이 최초로 민간인을 상대로한 것이라는 사실이 이 그림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명백하다.44 그러나 학생들과 '실험'을 한 결과, 나는 이 그림의 내력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 그림의 '의미'(전쟁의 고통과 공포에 대한 분노)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그림은 인정받아온 '옛 대가'들의 작품들 만큼이나 효과적으로 비전문가들에게 의미를 전달 할 수 있다. 물론 눈에 비치는 그대로 묘사해야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전제를 없이 작품을 보아야 그럴 수 있을 것이다.45

현대 예술은 이어지는 '예술계의 속사정'의 일부이기에 그 사정을 잘 모르면, 즉 예술의 역사에 익숙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이런 주장은 두가지 점에서 일부 맞다. (1) 새로운 예술 사조와 주요 작품들은 그 전의 작품들과 변증법적인 관계에 놓여있다는 점(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의 실패에서 싹텄고, 큐비즘은 야수파에 반대하며 발전하였다) (2) 어떤 작품들은 과거의 작품을 '인용'하거나 '참고'한다.(예를 들어 'Sensation' 전시회에서 Mark Wallinger의 말 그림들은 18세기 George Stubbs의 말 그림에서 따온 것이다). 예술의 역사를 안다면 이러한 관계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는 현대 예술이나 미술만 그런 것은 아니다. Cimabue, Giotto, Masaccio, 레오나르도, 라파엘 등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은 끊임없이 'Modonna and Child'의 모습을 그렸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티티앙의 'Venus of Urbino'를 따온 것이며 쇠라의 'The Bathers'는 인상주의를 발전시키고 뛰어넘는 시도이지만 동시에 Piero della Francesca의 프레스코 벽화로 되돌아가는 시도이기도 하다. 키츠는 밀턴과 세익스피어의 유산을 붙잡고 씨름을 했으며, 그가 쓴 가장 유명한 소네트는 17세기에 번역된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46 전후 팝음악이나 록과 같이 좀더 대중적인 문화도 마찬가지고, 마르크스의 이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일은 현대 예술에서 더 두드러지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일이 현대 예술 역사의 전부일까? 만약 그렇다면 현대 예술은 어렵지 않으며 얕으며 피상적이고 생명력이 없는 것이리라.47 만약 그렇다면 현대 예술은 시대와는 동떨어진 은폐된 예술 역사 '담론' 속 삽화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할 예술 작품이라면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든 전통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든 그 자체로 정당성을 갖추어야 하고, 설명력을 갖추고 있어야한다.

나는 수많은 현대 예술 작품이 그러하다고 생각하며, 현대 예술이 보다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이 그 증거라 본다. 물론 현대 예술이 풋볼이나 드라마 만큼 인기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 예술은 예술계의 엘리트나 위선적인 자본가나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춘 사람들보다 더 광범한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올해 2월에 나는 South Downs College에서 열리는 Christo 와 Jeanne-Claude의 강연회를 들으러 갔다. 그는 Reichstag 과 Pont Neuf를 '랩으로 싼'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티켓은 한 시간에 10파운드였는데 꽤 일찍 매진되었고, 참가자는 700명 정도 되었다. 이는 상당한 숫자다. 한편 아무 서점에나 들어가보라. 현대 예술을 포함한 수많은 예술 서적들을 싼 값에 구할 수 있다(예컨대 Taschen editions에는 에른스트와 Grosz, 뒤샹, 클레, Mir¢, 리베라가 포함되어 있다.). Dillons나 Foyle's 따위의 것만이 그런 것도 아니다. Portsmouth의 중심 쇼핑 지역의 염가 판매 전문 The Works도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갤러리나 전시회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지난 5년간(1993-1997) 테이트 갤러리에 온 사람은 연간 평균 1,944,177명 이었으며, 가장 많은 1994년에는 2,226,399명이 왔었다. 비슷한 시기에(1992-1996) 리버풀 테이트 갤러리에는 연간 평균 534,422명이, St Ives 테이트 갤러리의 경우에는 164,046명이 왔다.48 현대 미술에 대한 관심은 전시회 참가자들의 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Sensation'의 참가자는 30만명을 넘었으며, '브라크 후기 작품전'에서도 15만 7754명이 찾아왔다. 이에 비해 같은 곳에서 여름에 열린 고전 회화전에는 9만 8756명이 찾아왔을 뿐이다. 테이트 갤러리에서는 1996년 C?anne 전에는 40만 8688명이, 1994년 피카소 전에는 29만 6648명이, 1997년 몬드리안 전에는 11만 4275명이 왔지만, 1991년 콘스터블 전이 열렸을 때는 16만 9412명이 왔다. and at the Hayward Gallery 111,525 for Howard Hodgkin and 'Beyond Reason:Art & Psychosis' in 1996-97, and 101,092 for 'Objects of Desire:The Modern Still Life'.

이는 현대 시49나 현대극, 현대 음악의 관객 수와 비교해 볼 때 많은 숫자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관객으로 오는가? 테이트 갤러리의 방문자 조사에 따르면 나이와 성으로 따지면 관객들은 대체로 영국의 인구 분포를 반영하며, 여성과 35세 이하의 사람들이 약간 많다고 한다. 계층으로 따지면 중간 계층의 사람들이 역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관람객의 88퍼센트는 전국인구의 49퍼센트를 차지하는 ABC1에 속하고 전국 인구의 51퍼센트를 차지하는 C2DE에 속하는 사람은 11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마르크스즈의 계급 기준을 적용하면 C2DE는 육체 노동자 만을 포함할 뿐이며, B와 C1의 상당수는 중간 계급이라기 보다는 화이트 칼라 노동자들이다. 어쨌든 이 통계를 따르면 연간 최소 10만명의 육체 노동자들이 테이트 갤러리에 온다는 것인데, 이는 현대 예술이 받는 인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거리다.

현대예술은 광고나 뮤직 비디오, 디자인, 의류 등 주류 문화에서도 활용되는데, 이 또한 현대 예술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주장에 대한 모호하고 인상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Persil ran an advertising campaign featuring 'Mrs Picasso's Washing'. Stella Artois는 'Is it art.. or is it Artois?'과 같은 말장난으로 광고를 만들기도 하였다. 얼마 전에는 몬드리안 라이터가 유행했으며, 로레알에서 나오는 스프레이도 몬드리안을 테마로 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가장 잘 팔리는 음반인 The sleeve of Sergeant Pepper의 표지는 현대 미술가인 피터 블레이크가 디자인한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엄밀하진 않을지라도 오히려 가장 중요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이런 사례들은 현대 예술이 사회 전체의 시각 문화를 물들이고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대 예술의 영향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이는 내가 이 글에서 누누히 말한 것을 실제로 확인시켜준다. 현대 예술의 대중적 수용을 가로막는 것은 예술 그 자체도 아니고, 대중의 무지도 아니다. 엘리트주의적인 사회 분위기와 예술이란 이래야 한다는 식의 교조적이고 해묵은 관념을 끌어안고 있는 예술계가 바로 그 장애물이다.

예술은 쇠락하는가?

지금까지 나는 '현대 예술'과 지금의 예술을 진지하게 예술로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을 수용한다 해도, 다른 문제가 하나 남는다. 바로 현대 예술은 전성기를 지나 쇠락하는 예술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 또한 널리 수용된다. 로저 스크루턴이나 피터 풀러와 같은 보수인사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예술 관련 저작들에서도 이런 견해가 지배적이다.

우선 우리는 이 질문을 공식화 할 때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그래야 의미있는 대답을 할 수 있다. 경험적인 판단을 통해 여기에 답하려 한다면 엄청난 어려움에 부딪힌다. 이때 비교하고자 하는 기간은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어느 시기를 어느 시기와 비교하고자 하는 것인가? 90년대를 80년대, 70년대와 비교하고자 하는 것인가? 혹은 20세기 전반과 후반을? 혹은 20세기와 이전 세기를? 한편, 어디의 예술을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인가? 한 국가? 혹은 유럽? 혹은 '서구'? 혹은 전세계의?

이 질문은 한단계씩 명확히 할 때마다 함정에 빠지기 쉽다. 분명 올해나 지난10년 간의 예술을 한 세기나 혹은 과거의 예술 전체와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는 빠지기 쉬운 함정이며, 특히 사람들은 예술이 잘 나가던 시절과 자주 비교한다. 그러나 다미엥 허스트와 요즘 '젊은 영국 예술가들'은 과거의 미켈란젤로나 이탈리아 문예 부흥기 초기와는 다르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를, 그 시기를 1890년대 이탈리아 회화나 1790년대 영국 조각과 비교하는 것은 어떨까?50 다양한 형태의 예술은 한 국가 내에서 균등하게 발전하지 않으며, 유럽에서 시각 예술이 국가별로 고르게 발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엘리자베스/자코뱅 시기의 영국에서는 문학이 매우 풍부하게 발전하였으나(셰익스피어, Marlowe, Jonson, Conne, Webster, 스펜서 등) 회화나 조각 분야에서는 그에 비견할 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17세기 네덜란드에는 렘브란트와 Hals, Ruysdael, Vermeer, Hobbema 등 회화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이 활동하였지만 문학과 조각에 있어서는 그렇게 중요한 인물들이 없었다. 19세기 후반 시각 예술에서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들은 모두 프랑스에 집중되어있다(쿠르베, 마네, 모네, 피사로, Sisely, 르노와르, 드가, 세잔, 쇠라, 고갱, 반 고흐, Redon 등). 그러나 다른 형태의 예술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러시아 문학을 생각해보라. 한편 미국이나 유럽 바깥의 예술도 문제가 된다. 어느 누가 라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중동 등의 시각 예술의 동향에 대해서 줄줄이 꿰고 있을 것인가? 그런 곳의 예술에 대한 판단도 자신감 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가? 그리고 1980-90년대 등의 예술에 대해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 동향이 다음 천년동안 계속 된다거나 바닥을 칠지 알수 있겠는가? 한편 우리에 판단에 영향을 주는 무시할 수 없는 문화적, 심리적 요소들도 있다. Giotto나 라파엘, 티티앙이나 벨라스케즈 등 과거의 인정받은 위대한 예술가들은 수년동안 문화적 신용을 쌓아왔다. 몇 세기 동안 이들은 바자리의 일화나 마르크스의 은유, 피카소의 격언 등에서 천재를 일컫는 대명사가 되었다. 51 아직 젊고, 완성 못한 작품도 있는 현대 예술가들을 과거의 거인들과 나란히 비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경험에 비추어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론을 통해 답할 수 있지는 않을까? 예술이 쇠락의 과정을 겪고 있다는 주장을 이론으로 뒷받침 하는 것은 가능할까? 자칫하면 이 질문에 대해 판박이된 마르크스주의적 답변을 하게된다. 예술은 궁극에는 사회를 반영하며, 자본주의는 궁극에는 위기와 쇠락을 겪으며, 부르주아의 예술은 궁극에는 부패하고 쇠락한다는 식의 주장을 말이다. 이런 삼단 논법을 따르면 모더니즘은 부르주아의 퇴폐를 표현한 것이라는 결론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많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이 주장에 매력을 느꼈다. 다음은 플레하노프를 인용한 것인데, 플레하노프는 모더니즘이 기지개를 켜기 전부터 이런 주장을 했다.

"나는 현대 예술이 쇠락하고 있음을 강단에서 이야기했고, 그렇게 생각한다. 여기서 '쇠락한다'는 것은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과정 전체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질서가 붕괴하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예술의 쇠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따라서 지금 이 시점에서 자본주의적 예술가들이 훌륭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관점은 이상하다. 현재의 단계에서도 훌륭한 예술 작품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작품이 등장할 가능성은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그런 작품에서조차 쇠락기의 흉터가 패여있다."52

즈다노프 국면의 스탈린주의는 이런 논리 중에서 가장 조야하고 교조주의적이다. 한편 스탈린주의 진영에 있던 루카치 또한 보다 정교하고 높은 수준에서 이런 논리를 펼친다.

국제 예술가 연합의 일원이자 "혁명과 산업 혁명"이라는 책을 쓴 Francis Klingender는 1935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상주의에서 추상으로 발전한 현대 예술은 ... 내용을 병적으로 회피하는 것이다. 그 내용이란 반동적인 자본가 계급이 만든 사회 현실과 모든 현실을 말한다 ... 내용을 파괴하는 것은 예술을 해방시키기는 커녕 형식도 파괴해 버렸다. 이러한 파괴가 도달한 절정은 절대주의자 말레비치가 그린 하얀 캔버스 위에 있는 하얀 네모로 상징화 할 된다. 최종 몰락하는 계급은 과학 뿐만 아니라 예술도 파괴한다.53

다음은 트로츠키가 1938년에 쓴 글이다.

... 쇠락하는 자본주의는 이미 우리 시대에 조응하는 예술 경향을 발전시킬 만한 최소 조건도 갖추지 못했다. 자본주의는 미신적으로 모든 새로운 단어를 두려워 한다. 왜냐면 자본주의는 수정·개혁하냐가 아닌 사느냐 죽느냐라는 문제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 큐비즘, 미래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지난 몇 십년 동안 생겨난 예술 조류들은 미처 완전히 발전하기 전에 다음 조류에 자리를 내주었다. 문화에서 가장 복잡하며 민감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부위인 예술은 자본주의 사회가 몰락하는데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는다.

예술 자체를 통해 이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위기는 문화 전반에 걸친 것이다. 그 뿌리는 경제에 있으며, 가장 높은 차원에 있는 이데올로기로 이어진다. 예술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다. 예술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 현재 사회가 스스로를 재건하지 않는한 예술은 필연적으로 썩어서 없어질 것이다. Grecian 예술이 노예제를 근간으로한 문화가 파괴되면서 썩었던 것처럼 말이다.54

분명, 이 주장은 호소력이 있다. 이 주장은 쇠락하는 20세기 자본주의가 겪는 모든 질곡에서 나타나는 증상을 보느 사회주의자들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하지만 이 주장들을 검토하면, 오류와 문제가 곧바로 나타난다.

루카스는 사회를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발자크와 톨스토이의 사실주의와 카프카, 조이스, 베케트의 염세적인 파편화를 대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루카치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이를 곧장 회화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진보적' 부르주아지의 사실주의 회화는 전성기는 1848년에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회화는 이 때부터 꽃을 피웠고, 쿠르베와 마네, 모네, 시슬리, 피사로, 르노와르, Lautrec, Cassatt, Morisot, Degas, 쇠라, 반 고흐, 고갱, Redon, 세잔, 루소, 피카소, 마티스가 등장했다. 조각은 쇠락과 더 거리가 멀다. 19세기 후반 로댕은 미켈란젤로 이래 가장 중요한 유럽 조가일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들어 첫 반세기 동안 브랑쿠시, 무어, Kollwitz, Epstein, Picasso, Calder, Hepworth, Gabo, Giacometti 등이 활동했고, 이 시기는 17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황폐했던 시기와 매우 대조되는 조각의 황금기라고 보아야 한다. 인상주의에서 추상으로 전개되면서 예술이 '내용, 즉 사회 현실을 병적으로 회피했다'는 Klingender의 주장도 설 자리가 없다. 쇠라가 그린 욕녀는 추상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단계였지만, 그 작품은 결코 내용이나 사회 현실을 멀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가 사실이다. 다른 방식이지만 반 고흐와 세잔, 큐비즘도 마찬가지다.55 1938년 트로츠키가 했던 주장은 루카치나 Klingender처럼 모더니즘을 폄하하지는 않지만, 마찬가지로 '예술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고... 썩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분명 당시 그가 자본주의가 재앙에 직면했다는 전망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만약 자본주의의 위기가 트로츠키가 예측한 대로 발전했다면56 문명이 무너졌을 것이고 따라서 예술도 썩어 없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런 반론 뿐만 아니라 이론적 문제도 제기할 수 있다. 자본주의와 자본가 계급이 쇠락하는 것을 예술이 쇠락하는 것과 동일시하는 것은 토대와 상부구조의 관계를 너무 기계적으로 보는 것이다. 예전에 이 잡지에 실린 글에서 나는 예술이 경제적 토대에서 가장 독립적인 상부구조라고 주장했다57. 그리고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술이 가장 발달한 어떤 시기들은 당시 사회 일반의 발전 상태나 물질적 기반, 그 기반의 구조를 이루는 근간의 발전 상태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58

그리고 부르주아지와 현대 예술의 관계를 살펴보면, 부르주아지가 예술 시장을 통제하는 것 분명하지만, 예술계 그 자체는 예술작품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압도 다수 현대 예술가들은 부르주아지가 아니라 소 부르주아지다.59 게다가 이들은 평균적인 부르주아지와 소 부르주아지가 겪는 소외에 반기를 든 자들이다. 트로츠키가 말했듯이, '예술에서 모든 새로운 경향은 반란으로 시작한다'.60 반란을 일으키는 소 부르주아지 예술가는 필연적으로 저항적인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는다. 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충동은 좌우를 아우르지만, 좌익적 충동이 우익적 충동을 압도한다. 20세기에 예술을 후원하는 부르주아지는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예술만을 장려하지 않았다. 트로츠키가 지적했듯이61 오히려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입장에 어느 정도 도전하는 예술을 '포용'하는 예술을 구입하며 자긍심을 가졌다. 게르니카나 진정으로 의도나 메시지가 반자본주의적인 예술 작품들이 그런 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나는 자본주의가 쇠락한다고 해서(쇠락한 자본주의가 '충돌하는 계급의 공멸'하는 국면이나 세계 대전이나 핵 전쟁으로 인해 문명이 파괴되는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말이다) 필연적으로 예술이 쇠락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아마 브레히트는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마지막 한마디를 했을 것이다.62

MOTTO

어두운 시대에도
노래를 부를것인가?
그렇다, 어두운 시대에 대한
노래를 부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 현대 예술이 쇠락한다고 보는 마르크스주의자도 있다. 패리 앤더슨이 '현대성과 혁명'에서 제시한 관점이 그것이다. 그는 Marshall Barman의 'All The is Solid Melts into Air'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20세기 초에 모더니즘 문학과 예술에서 이룬 성과에 대해 지나친 찬사를 보낸다. 그는 유럽에서 나타난 모더니즘이 불씨가 꺼지면서 예술이 쇠락한다고 보았다. 앤더슨은 이런 관점을 모더니즘이 어떤 요소가 결합해서 생겨났는지에 대한 정확한 설명으로 뒷받침한다.

내가 보기에, '모더니즘'은 문화에서 세가지 중요한 요소로 이루어진 영역이다. 하나는... 고도로 형식화한, 예술을 다루는 학문체계다. 이 학문 체계 자체는 귀족이나 지주 계급이 여전히 지배력을 행사하는 사회와 국가 체제 내에서 제도화 된다. 두번째 요소는... 이런 사회에서 2차 산업 혁명이 낳은 전화기나 라디오, 자동차, 비행기 등의 기술 혁신이나 발명이 벌어지는 것이다. 세번째 요소는 ... 사회 혁명에 가까운 것을 상상하는 것이다.63

이 세가지 요소는 모더니즘이 예술계를 지배하게 했지만, 제 2차 대전은 모더니즘을 끝장냈다고 앤더슨은 주장한다. 구 귀족은 완전히 사라졌고,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파시즘 세력이 등장했고, '혁명에 대한 희망과 상상은 서구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냉전이 시작하고, 동부 유럽에서 소비에트화가 벌어지면서, 발전된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대체한는 것은 내내 더이상 현실적인 전망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지배력을 쥐고있는 귀족 계급과 부조리한 학문체계, 자동차와 영화가 주던 충격, 사회주의 대안을 실현할 가능성은 모두 사라졌다 ... 이런 배경 때문에 전후 아방가르드는 모더니즘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다. 이 명백한 사실에 대해 판단하려고 루카치를 다시 데려올 필요도 없다. 이 시기의 문학과 회화, 음악, 건축은 앞선 시기와 비교할 대상이 안된다.64

언제나 그렇듯이 앤더슨의 분석은 통찰력 있고 우아하다. 하지만 모더니즘이 어떻게 생겨났는에 대한 설명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재쳐두더라도, 현재 예술이 처한 절박한 처지에 대한 설명에는 반론할 여지가 있다. 첫번째 반론은 '제 3세계' 문제다. 앤더슨도 이 문제를 알지만, 너무 쉽게 제쳐버린다. '제 3세계는, 제 1세계가 앞서 겪었던 것을 겪는 그림자 형태를 한다'고 그는 인정한다. 그러나 곧 그는 '쿠바와 니카라과, 앙골라, 베트남'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실현되었다'고 고개를 끄덕이며65 Marquez, Rushdie, 터키 영화 감독인 Yilmiz G?ney에 대해 '진정한 걸작'이라고 성급한 결론을 내린뒤, 두 문장으로 앞서 말한 것을 단호하게 부정한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그 시대와 상관 없이, 끝없이 진행될 현대화를 표현하지 못하며, 꽤 한정된 조건에 처했다. 그 조건이란 바로 역사적 기로에 놓인 사회다. 제 3세계는 모더니즘에게 어지는 샘물을 주지 못할 것이다.66

그러나 이는 매우 불충분한 설명이다. '그림자 형태'라는 말은 불분명하다.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 때문에 문제를 혼동하게 된다. 어떤 예술 작품도 '시대와 상관 없'을 수 없으며, 모든 예술 작품은 '꽤 한정된 조건에 처'한다. 이른바 '제 3세계'의 예술 작품이 유럽 모더니즘을 연장하는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실패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여기서 우리는 전 세계 사람들과 국가를 싸잡아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는 어때?'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Akira Kurosawa, Satyajit Ray, 다른 일본 영화 감독들의 영화는 어떠한가?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신 영화는 어떠한가? 짐바브웨에 있는 조각가들은? 파블로 네루다의 는 어떠한가? C?saire와 Senghor, n?gritude의 시인들은 어떠한가? 이 질문은 독자들 여유를 앗아갈 뿐만 아니라 필자가 아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앤더슨의 관점에 대한 두번째 반론은 역사적 시기를 망각한다는 것이다. 이는 실로 놀랍다. 앤더슨은 '혁명이 벌어진다는 희망이... 이후에 완전히 사라졌다'고 주장하지만, 1960년대(혹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960년대에 시작되어 1974년까지 지속된, 투쟁이 국제적으로 고양하던 시기)를 잊어버린다. 물론, 1968년 5월과 1972-73년 칠레, 1974년 포르투갈에서 혁명이 가능했느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혁명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희망과 상상력'이 '널리 퍼져있었다'는 점은 그렇지 않다. 그 사건이 문화계에 큰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알렌 긴스버그, Robert Lowell, 밥 딜런, 존 콜트레인, 요셉 보이스(그리고 우연히도 앞서 언급한, 벽돌을 늘어놓은 작품을 만든 Carl Andr?도)가 이를 잘 드러낸다. 어떤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앤더슨은 Jean-Luc Godard만 기억한다.

앤더슨이 자기가 겪은 일을 망각하는 이유는 정치가 비관적이고 패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떠올릴 수 있는 과거에도, 예상할 수 있는 미래에도 노동자들이 혁명을 할 희망은 없을 것이라고 쓴다. 이 패배주의 때문에(그리고 엘리트주의도) 그는 기층의 활력과 힘, 버만의 말을 빌리면 '거리의 표지판들'을 외면한다. 이 기층의 힘은 흑인 민권 운동, 여성 해방 운동, 파업 피켓에서 펑크, 그룬지, 뉴에이지에 이르며, 오늘날 혁명적 정치가 형성되고 문화적 창조력 발현하는데 매우 중요했다.

그러므로 앤더슨의 '폐쇄적 지평'을 받아들이고, 예술을 비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유럽에는 '문학과 회화, 음악, 건축이 과거보다 뒤떨어진다'고 할지라도, 그 주장은 앤더슨이 생각하는 것보다 '자명하지' 않다. 베케트, 카뮈, 핀터, Grass, Prevert, 솔제니첸, 베이컨, kiefer, Tippett, Fried, Lessing, Fo, Greene을 떠올려보라. 이는 영화에도 적용할 수 없는 주장이며(Bergman, Rossellini, Visconti, Fellini, Antonioni, Pasolini, Truffaut, Resnais, Godard, Wajda, Fassbinder, 타르콥스키, Losey, 로치 등), 텔레비전과 비디오도 당연히 마찬가지다. 적어도 두가지 예술 분야에서 전후 예술이 이전 예술을 밀어낸 미국에도 이 주장을 적용할 수 없다. 긴스버그, Ferhinghetti, Beats, Lowell, 프로스트, Plath, Rich의 시를 생각해보라. 시각 예술의 경우에는 폴록, 드 쿠닝, 스미스, 스미드슨, 세라, 켈리, Bourgeois, 주드, Andr? 등을 생각해보라. Parker에서 Marsalis에 이르는 모던 재즈를 포함 시키면, 전후 미국에서 꽃피운 예술 분야는 세가지가 된다. 만약 앤더슨의 이론이 처음부터 잘못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에 대한 경험적 판단이 의문을 제기할 여지가 있다면, 우리는 머지않은 미래에, 혹은 먼 미래에라도 자본주의가 타도되지 않을 것이라 하여도 굳이 가능성과 전망을 제단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예술이 전반적으로 혹은 필연적으로 쇠락한다는 루카치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일반적인 주장, 앤더슨의 주장을 부정한다고 해서 예술은 언제나 발전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변수와 불확실한 요소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처럼 열린 전망은 예술 전반에도 적용되지만, 시각 예술이라는 특수한 사례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망이 의미하는 바는 인류의 창조력을 기록한 역사를 보면, 우리는 여전히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에도, Giotto와 르네상스 초기부터 매 세기마다 등장했던 수준의 걸작을 볼 수 있다고 기대할 만하다는 것이다.

결론

이 글은 특정한 현대 예술 작품에 대해 생각해보기 이전에 떠오르는 질문들에 답하는 글이다. 다시 말해 '예술' 전반이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나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1) 현대 예술의 정당성이 위기에 처한 것은 미디어에서 유포하는 바와 달리 우연이나 음모가 아니며, 예술가가 저지른 잘못도 아니다. 이 현상이 생겨난 데에는 역사적, 경제적 조건이 있다. (2) 현대 예술은 진정한 예술이 아니라는 주장은 비판적으로 검증해 본 결과 옳지 않으며, 예술을 마르크스주의적으로 가장 괜찮게 정의해본 결과 피카소와 뒤상, Andr?, 허스트 등의 작품도 분명 예술이다. (3) 현대 예술이 특별히 외면 받고, 어려우며, 인기가 없다고 볼 수 없다. (4) 현대 예술이 쇠락하고 있고 지금도, 앞으로도 걸작을 만들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시각 예술 작품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하는가?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예술계의 자본주의적 구조와 엘리트주의, 속물 근성, 상업주의를 증오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술이 체제에 반항하고, 창조력을 지녔으며, 인간적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예술을 옹호해야한다. 동시에 이런 예술 작품은 매일매일 하는 노동과 생계로 다수의 창조력과 인간성을 부정하는 사회의 또다른 단면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우리는 사회를 바꾸고 예술계를 바꾸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이가 현재와 과거의 예술을 접할 수 있고, 생산적 노동이 예술이 되도록 해야한다. 우리는 오늘날 편견을 갖지 않고 현대 예술을 대해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예술을 대할 때 모든 인간의 능력을 동원해야하며, 예술은 우리를 풍요롭게하고 더 나은 세계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면서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1. 이것은 노동계급과 전통적인 부르주아 예술과 문화 전반에 대한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을 현대 예술과 연관지어 되풀이한 것이다. 그래서 트로츠키는 노동자들이 세익스피어와 푸쉬킨을 읽도록 권했다. 트로츠키의 'On Literature and Art'(New York, 1977), pp.67-69를 읽어보라. 

  2. 세잔과 고갱이 준 영향은 뚜렷하게 드러나며, 이들은 마네와 앵그르, 고야, 벨라스케즈의 영향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피카소의 독창성이 줄어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3. '아비뇽의 처녀'가 일으킨 충격은 여기서 나열한 형식상 혁신 때문만은 아니었다. 창부와 고객의 관계(이것은 남녀의 일반적인 성적·사회적 관계를 함축한다)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내용도 충격을 주었고, 이 충격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4. See J Berger, Success and Failure of Picasso (Harmondsworth, 1965), p75. 

  5. 분석적 큐비즘은 3-4년 정도(1910-1912) 밖에 지속되지 않았으며, 곧 묘사할 대상이 되는 물체의 흔적을 거의(완전히는 아니다) 찾을 수 없게되기에 이른다. 결합적 큐비즘은 합성 섬유, 신문지 등과 같은 '실제' 재료를 그림에 도입했다. 이는 재료를 통일해야 한다는, 르네상스 이래로 이어져온 전통을 위반하는 것이다. 

  6. '이미 만들어진' 변기를 뒤집어 놓고 'R Mutt'라고 싸인해 놓은 작품. 

  7. 예외인 개별 사례도 있다. 쿠르트 슈비터의 '소리 시', 존 케이지의 '4분33초'가 그 예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은 속한 분야에서 주변에 있으며, 전체적인 상황을 바꾸지는 않았다. 

  8. Though never, of course, its only function. Considerable caution must be exercised in the attribution of naturalistic representation to a tradition that ranges from Leonardo's Virgin of the Rocks to Hieronymus Bosch's Garden of Earthly Delights and Goya's nightmarish Disparates. 

  9.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따르는 문화 이론에 익숙한 이들은 이 주장이 루카치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뒤에서 나는 루카치의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해질 것이다. 

  10. 사회에서 중요한 인물을 그리는 것은 국가가 선전하는 수단으로 예술을 이용했기 때문에 계속되었지만, 예술적 질과 중요성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예술사에서 중요한 나폴레옹 3세나, 글래드스톤, 디스라엘리, 비스마르크, 히틀러, 스탈린의 초상화는 없다. (그래햄 서덜랜드가 제작한 처칠의 초상화는 어느 정도 예술적인 가치가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이 초상화는 처칠가 사람들이 파괴해버렸다.) 

  11. 이 작품의 제목은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the Living이다. 

  12. 게다가 이 작품은 너무 커서 일반적인 집에는 보관할 수 없었고, 유지비도 엄청나게 들었다. 

  13. 이 그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위작으로 밝혀졌다. 

  14. 현대 건축 또한 나름대로 정당성 문제와 대중의 적대감을 겪고 있다. 

  15. See F Garcia Lorca, 'Theory and Function of the Duende' in Obras Completas 3 (Barcelona 1997). 

  16. exploitation, alienation and culture in capitalist society. 이 분석은 왜 현대 시각 예술의 정당성 위기가 특히 첨예한가만을 다룬는 점을 나는 강조한다. 이 분석은 고급 문화와 대중 문화가 분리된 문제나 노동 계급이 교양 없다는 문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이 분석을 하려면 계급과 착취, 소외,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에 대해 더 분석해야 한다. 

  17. 희대의 예술 사기꾼은 바로 Vermeers를 위조한 van Meegeren이다. 

  18. 물론, 마르크스주의적·변증법적 관점에서 모든 정의는 살아움직이는 현실을 개념으로 고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분석이 최종 단계에 이르면 모든 정의는 허물어진다. 언제나 예외나 과도적이거나 주변적인 사례가 있다. 그렇다고 정의가 인간의 지식에 쓸모 없다는 것은 아니다. '지식은 일반적으로 사물을 구분하는데서 시작된다'. L Trotsky, On Literature and Art, opcit, p64. 

  19. John Keats의 다음 싯구도 생각해보라: 'Beauty is truth, truth beauty/ That is all ye know on earth and all ye need to know.' 

  20. 이 작품들 만이 솜씨와 기술 없이 만들 수 있는 레디메이드 작품이다. 듀샹의 다른 작품들 중에는 '계단을 내려가는 나부'(1911)라는 입체주의와 미래주의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 있다. 그의 '조각' 작품인 '커다란 유리'나 'The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1915-1923)을 만드는 데에는 더 수준 높은 기술 수준이 필요했다. 

  21. 이 작품은 한 연작의 마지막이다. 등가물 VIII는 전체 연작에서 따로 떨어져나와 테이트 갤러리의 유명한 '벽돌'이 됐다. 

  22. 나는 개인적으로 Andr의 벽돌 조각 작품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내 견해에 동의하는 예술사가들은 P Wood, 'On Different Silences', Museum of Modern Art Papers, vol 2 (Oxford, 1996)을 보라. 그러나 나는 예술이 꼭 아름다워야 한다거나, 이 작품이 아름답다고 느껴야만 내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23. 마르셀 뒤상은 체스 올림픽에서 프랑스 대표로 나올 정도로 체스를 잘 뒀다. 어떤 점에서 그의 '샘'은 예술계와 비평계, 미디어, 대중에서 일어날 다양한 반응을 미리 계산한 뒤 결정한 대담한 '수'다. 

  24. 내 친구는 Hayward Gallery에서 열린 '욕망의 대상' 전시회에 가서 뒤샹의 '자전거 바퀴'를 만져서 바퀴가 돌아가는지 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직원에게 제지당했다. 이것은 원래 '자전거 바퀴'가 다른 레디메이드 작품들처럼 분실되서, 복제품이 전시됐기 때문이다. 전시됐던 것은 진짜인 가짜였던 것이다. 

  25. 이것은 이론은 실천이 아닌 이론 그 자체로 검증된다는 알튀세의 입장을 떠올리게 한다. 

  26. K Marx, Wage Labour and Capital (Moscow, 1978), p28. Also, 'Capital is not a thing, but rather a definite social production relation belonging to a definite historical formation of society', Capital, vol 3 (Moscow, 1966), p814. 

  27. K Marx, Capital, vol 1 (Moscow, 1970), pp76-77. 

  28. 나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이와 비슷한 입장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싶다면 A Sanchez Vaquez, Art and Society: Essays in Marxist Aesthetics (London, 1979), 특히 'Part II : The Fate of Art Under Capitalism'를 보라. 

  29. 윌리엄 모리스는 'Art, Labour and Socialism, cited M Solomon (ed), Marxism and Art (Brighton, 1979), p85.에서 '예술은 인간이 노동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표현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모리스의 주장은 나와 방향성이 비슷하지만, 그는 마르크스의 1844년 수고를 읽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30. K Marx, Early Writings (London, 1963), pp124-125. 

  31. K Marx, 'Debating the Freedom of the Press', in L Baxandall and S Morowski (eds), Marx and Engels On Literature and Art (New York, 1974). 

  32. Cited in M Solomon (ed), op cit, p75. 

  33. L Trotsky, On Literature and Art, op cit, p96. 

  34. Ibid, p106. 

  35. Ibid, p114. 

  36. 이 주장은 이른바 '창조하는' 예술가와 대조되는 '해석하는' 예술가들, 배우나 연주자, 무용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여지를 남긴다. 이것들은 과도적 사례이며, 그런 역할에 대해 일반적으로 예술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이를 반영한다. 모든 과도적 사례와 마찬가지로 해석하는 예술가들은 두극단 사이에 있다. 한 극단은 가장 예술에서 거리가 먼 '엑스트라'나 코러스의 댄서들일 테고, 다른 한 극단은 배우나 발레리나, 바이올린 명연주가가 있을 것이다. 

  37. 여기에도 과도적 사례가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에는 '예술적'인 요소가 포함되어있다. 예쁘게 꾸민 정원이나, 잘 준비한 식사에도 '예술적' 요소가 있을 수 있다. 

  38. K Marx, Theories of Surplus Value (Moscow, 1963), Part I, p285. 

  39. 같은 이유로 St John's Wood에 있는 Saatchi Gallery에 전시된 작품은 예술이지만, Saatchi & Saatchi에서 제작한 광고는 그렇지 않다. 

  40. Ortegay Gasset, T S Eliot, Ayn Rand는 우익적 엘리트주의를 대표한다. 아도르노는 좌익적 엘리트주의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다.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1940년대에서 1960년대 초반까지 큰 영향력을 쥔 비평가였는데, 1939년 '아방가르드와 키치'에서 그는 좌익적 엘리트주의 입장(T J Clarke는 그의 입장을 '앨리엇과 비슷한 트로츠키주의'라고 했다)을 취하지만, 1950년대와 1961년에 쓴 'Modernist Painting'에서는 우익적 엘리트주의로 기운다. 룩셈부르크와 트로츠키는 자본주의에서 독립적인 노동계급 문화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좌익적 엘리트주의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것은 엘리트주의라는 말을 남용하는 것이다. 

  41. T S Eliot, The Use of Poetry and the Use of Criticism (London, 1964), p150. 

  42. See T J Clark, 'Preliminaries to a Possible Treatment of Olympia in 1865', Screen, vol 21, no 1 (Spring 1980). 

  43. 예술 작품(특히 시각 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단순하지 않고 자명하지도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44. 이 유용한 정보는 꼭 예술 전문가 정도는 되야 아는 지식은 아니다. 그 정보는 게르니카가 그려진 시기에 신문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게르니카는 피카소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사실 관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드문 작품 중 하나다. 

  45. 당시에는 공화국의 정당성이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을 통해 더 '쉽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견해가 널리 퍼졌다. 그러나 나는 게르니카의 충격과 비슷한 주제를 다룬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 중 어떤 것이 그런 일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46. 이 시의 제목은 On First Looking Into Chapman's Homer이다. 

  47. See John Berger's critique of Picasso's paintings that are based on paintings by other artists in Success and Failure of Picasso, op cit, pp94-98, 183-186. 

  48. 테이트 갤러리 방문에 대한 모든 수치는 테이트 갤러리 정보부의 Kate Harman이 알려주었으며, Royal Academy에 대한 것은 언론에서 찾은 것이다. 

  49. 'Sensation' 전시회에 찾아온 사람은 한 주에 대략 2만명이다. '욕망의 대상'에는 매주 8000명 정도가 찾아왔다. 1998년 2월 14일 헬렌 필딩의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매주 22371부가 팔려 가장 잘팔리는 종이 표지책이 됐다. 테트 휴의 'Tales from Ovid'는 가장 인기있는 시집이고, 매주 6680부 판매로 12번째 잘팔리는 책이 됐다. 

  50. 나는 1890년대 이탈리아 회화나 1790년대 영국 조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잘 아는 사람도 있을 순 있지만, 골동품 수집가나 예술 비평가, 역사가일 가능성이 높다. 

  51. 그래서 Giotto가 맨손으로 완벽한 원을 그린다거나, 라파엘의 마돈나에 대한 일화, 티티앙이 털을 그린 일화가 생겨났고, 마르크스는 '라파엘만큼 가능성을 지닌 자가 있다면, 그는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 [Marx and Engels On Literature and Art, (Moscow, 1976), p177]고 주장했다. 그리고 피카소는 '나는 어렸을 때 라파엘처럼 그릴 수 있었다. 나는 나머지 인생을 어린아이처럼 그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데 바쳤다'라고 말한다. 

  52. G Plekhanov, 'Art and Social Life' (1912), in P Davison, R Meyersohn and E Shils (eds), Literary Taste, Culture and Mass Communication, vol 3 (Cambridge, 1978), p63. 

  53. F Klingender, 'Content and Form in Art', in C Harrison and P Wood, Art in Theory 1900-1990 (London, 1992), pp422-423. 

  54. L Trotsky, On Literature and Art, op cit, pp105-106. 

  55. See John Berger's analysis of Cubism in Success and Failure of Picasso, op cit, pp48-70. 

  56. See L Trotsky, 'The Death Agony of Capitalism and the Tasks of the Fourth International', in The Transitional Programme for Socialist Revolution (New York, 1977). 

  57. J Molyneux, 'Is Marxism Deterministic?', International Socialism 68, p55. 

  58. K Marx, Introduction to a Contribution to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cited in M Solomon (ed), op cit, p63. 

  59. 소자본가라는 말은 그들이 생산 수단과 맺는 관계와 사회의 생산 과정에서 하는 객관적인 구실을 지칭하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의미에서 한 것이다. 극 소수 예외를 빼면, 예술가들은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자신의 노동력이 아닌 자신이 노동한 산물을 파는 소생산자들이다. 

  60. L Trotsky, On Literature and Art, op cit, p104. 

  61. See ibid, pp104-105. 

  62. B Brecht, Poems 1913-1956 (London, 1979), p320. 

  63. P Anderson, 'Modernity and Revolution', New Left Review 144. 

  64. Ibid. 

  65. Ibid. 

  66. Ib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