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상

산업혁명에 비하면 ‘정보혁명’을 혁명이라 볼 수 있을까?

1843년에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는 일상생활에 대한 철도의 영향을 이렇게 서술했다.

우리가 사물을 관찰하는 데 있어서, 우리의 관념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시간과 공간의 기본적 개념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공간은 철도에 의하여 피살되었으며, 이제 남은 것은 시간뿐이다. …… 오를레앙까지 가는 데 4시간밖에 걸리지 않으며 르왕에 가는 데도 그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벨기에와 독일로 가는 선로가 다 가설되고 철도가 다 연결되었을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상상해 보라. 나는 모든 국가의 산과 숲이 다 파리로 밀려들어오고 있는 것을 느낀다. 이 순간에도 나는 독일의 보리수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북해의 부서지는 파도가 내 문에 밀어 닥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Wolfgang Schivelbusch가 인용한 Heinrich Heine, “Railroad Space and Railroad Time”, New German Critique 제 14호(1978년 봄), p.34 참조

브루스 커밍스, 《한국전쟁의 기원》, 일월서각, 2008, 42p에서 재인용

철도와 증기선이 가져온 인간 생활의 변화에 비할 만한 변화가 근대 이후에 있을까? 나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정보혁명이 마치 근대를 극복했다는 듯이 묘사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음은 똑 같이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인용한 것인데,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들어오면서 일어난 변화를 묘사한다.

아더 케슬러(Arthur Koestler)는 그의 저서 「정오의 어둠」에서 공업과 그 이전의 모든 사업의 차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묘사를 한 바 있다.

글레트킨은 늘 사용하는 변함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16세 때 한 시간이 60분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 마을에서는 농민이 도시로 여행할 때, 해뜰 무렵이면 역으로 나가 그곳에서 기차가 올 때까지 한잠 잔다. 기차는 대략 점심때쯤 오는데 말이다. …… 다른 모든 나라에서 농민들이 공업적 정확성을 개발하고 기계를 다루는 습관을 들이려면 1,2백 년은 걸려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이제 겨우 10년의 경험을 가졌을 따름이다.”

농업에서 전면적 공업화로 인해 인간 생활을 뿌리부터 변했다. 그에 반해 정보혁명이라는 것은 공업화의 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 변화할 때 일어난 전환처럼 커다란 전환은 없어 보인다.

△1분 단위로 나뉜 시간 개념은, 근대에 들어서 생긴 것이다. 정보혁명은 이런 개념을 근본에서 뒤흔들었나.

자본주의

그래서 난 여전히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라는 커다란 틀로 통용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산업화와 자본주의를 등치시키는 오류를 내포한 생각일 수도 있고, 좀더 발전시켜야 하는, 거친 생각일 수도 있다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정보혁명으로 인해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류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는 근거로는 앞의 근거들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