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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

고려대 '교수 감금'과 출교 사건의 진실

2011년 고려대 의대의 성추행범들을 출교한 사례가 있어 이제 출교가 학생운동 탄압의 대명사가 아니게 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2000년 성균관대에서 4명, 2006년 고려대에서 7명이 학생운동 탄압의 일환으로 출교당한 사례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고려대생 7명이 출교를 당한 것에 대해서는 고려대 내의 소수 우파적 학생들이 고대 학생 포털(고파스)을 중심으로 온갖 악선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진실을 밝히는 내용의 글을 하나쯤 써 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많은 글들이 나와 있어서 새로 쓸 건 많이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글이 싸이월드 클럽에 갇혀 있어서 블로그처럼 개방된 공간에 글을 하나 써 두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쓰는 과정에서, 답이 충분히 될 만한 글이 있다면, 여기는 요지만 쓰고 링크를 거는 것을 원칙으로 하려고 한다.

나는 사건의 당사자다. 나는 이 글을 학생들의 입장에서 썼다. 학교 측의 입장을 기대한다면, 보수 언론 보도를 비롯한 많은 글들이 그 입장을 대변하고 있으니 그 글들을 찾아 보면 된다.

출교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

2005년 5월 2일. 고려대 학생들 150명 정도가 시위를 벌였다. 고려대 당국이 이건희 회장에게 명예 철학 박사 학위를 수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애당초 나는 20명 정도가 시위에 올 것이라고 기대했고, 시위 기획은 팻말 시위였다. 행사장 입구 근처에서 항의 목소리를 내는 정도의 시위 말이다.

그런데 아침에 대자보 한 장을 붙였을 뿐이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와서 150여 명이나 왔던 것이다. 특히 이건희에게 철학 박사 학위를 준다는 것에 분노한 문대생들이 많이 왔다. (당시 소문이 돌기로는 이건희가 받지 않은 학위가 없어서 그나마 안 받은 철학 박사 학위를 줄 수밖에 없었다고... 어이없다. 학교 당국은 이건희의 '경영 철학'을 높이 사서 철학 박사 학위를 준다고 했다.)

여튼 학생들이 인촌기념관이라고 되게 큰 강당 앞에서 시위를 했고, 옆문으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대략 4~5시간 행사 진행되는 내내 시위를 했고, 결론적으로 이건희는 조그만 방에서 그냥 학위를 받은 다음 뒷문으로 도망치듯 나갔다.

이건희에게 설움받던 이마트 해고 노동자, 삼성 해고 노동자들은 이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고 한다. 나중에 우리가 징계 위협에 처했을 때 직접 전화를 받고 들었던 이야기다.

학교 당국은 50명을 징계하겠다고 엄포했고, 하루이틀 사이에 주류 일간지 7개인가에서 학생들을 비난하는 사설을 발표했다. 노무현도 기업인한테 그러면 안 된다고 한 마디 했다. 

학교 당국의 대응은 가관이었는데 처장단이 총사퇴 의사를 밝혔다.

우리는 즉각 징계 반대 캠페인을 시작했고, 사회 단체들, 진보 정당들, 진보적 지식인들에게 징계 반대 서명을 받아서 게시했다. 

언론에는 며칠 동안 이건희 학위 수여 반대 시위를 하던 학생들 모습이 영상으로 나갔는데 어김없이 "노동 탄압 박사 이건희'라는 팻말이 함께 나왔다. 이런 상황이 부담스러웠을 지도 모르겠다. 이건희는 '모든 게 내 부덕의 소치'라며 '이제 고마 해라' 하는 메세지를 보냈다.

이 덕에 처장단 사표는 모두 반려됐고, 징계 대상자도 확 줄었다.

이건희 반대 시위 이후 징계 반대 서명운동 할 때의 필자

당시 사범대 학생회장이었던 나를 비롯해 문과대, 정경대, 경영대 학생회장, 그리고 다함께 고대모임 대표라는 명목으로 한 학생이 징계 대상자 명단에 올랐다. 이후 한 달 간 징계 반대 캠페인이 벌어졌고, 고대 당국은 결국 징계를 하지 못했다. (당시 내가 한겨레에 기고한 글을 보시오.)

해피 엔딩? 그럴까? 아니다. 

정신없는 학생 운동 (+학생회) 탄압 드라이브가 시작됐다.

학생 운동 (+학생회) 탄압 드라이브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 학생회비 분리납부 시행 : 분리 납부 자체는 맞다. 그런데 학교가 자기 마음대로 추진한 것이 문제다. 학교 당국이 졸업생들에게 걷는 교우회비는 일괄 납부한다는 점에서 위선이기도 하다. 나도 교우회비를 5만 원 가량 내고 졸업했다. 교우회는 이명박을 열렬히 지지했었다. 당시 학생처장은 일괄납부가 독재라고 했는데, 완전한 자가당착이다.
  •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새터) 방해 : 이게 절정이었다. 전교생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못 갈 뻔했다. 아마 새터에서 새내기들이 속칭 '빨간 물'이 들어 온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전교의 단과대 학생회장들과 새터 준비하는 학생들 다 해서 약 200~300명이 입학처를 2박 3일 동안 점거하고 입학 업무를 마비시켰다. 그래서 새터를 갈 수 있게 됐다. (입학처가 새내기들 연락처를 안 줘서 생긴 문제였기 때문이다. 관련 동영상을 보시라. 나도 나온다.)
  • 등록금 협상 거부
  • 학생회 집행부장 폭행

이 와중에 학교 당국은 2005년 말에 통폐합된 고려대 병설 보건대 기존 재학생들이 2006년 3월에 치러진 총학생회 선거에 참가하는 것을 빌미로 총학생회 불법화를 시도했다. 보건대 기존 재학생들에겐 학벌주의적 차별을 가하고 냉대한 악질적인 태도기도 했다. (당시 보건대 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의 편지

총학생회 불법화 시도와 보건대생들에 대한 차별·냉대[각주:1]에 항의하다가 벌어진 게 바로 2006년 4월 5일 장시간 본관 농성이고, 이에 대한 학교 당국의 신속한 응답이 바로 출교다.

그래서 2006년 고대 출교 사건을 정치적으로 정의하면, '이건희 시위에 대한 보복 차원으로 학생 운동(+학생회)을 탄압하던 학교 당국에 맞서 싸우다가 마녀사냥당해 출교당한 사건'이다.

자, 이제 배경을 대충 말했으니, 하나씩 답을 해 보자.

투표율을 올리려고 시위를 벌였다?

이건 정말 어이없다. 보건대 학생들이 빠지면 투표율이 안 나오니까 총학생회 투표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보건대 투표권을 인정받게 하려고 했던 거라는 거다.

그러나 시위의 주요 요구가 "보건대 생 투표권 인정"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시위의 진정한 발생 이유를 "투표율 올리기"와 관계 짓는 것은 말이 안 된다.

(1) 해당 시위는 보건대생의 투표권 내지는 투표율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출교무효소송 1심 판결에서 명시하였듯, 학생회 선거는 학칙에 따라 학교 당국과 무관하게 학생들의 자치적 규약에 의해 치러진다.

따라서 학교 당국이 보건대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학생들의 자치규약 및 학칙(과거 출교무효 소송 1심에서 제출)에 따라 선거관리위원회(혹은 더 상위 기구인 전체학생대표자 회의)가 보건대 생들의 투표권을 인정했으므로 해당 선거는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실제로 학교 당국의 시비걸기와 별개로, 4.5 시위 당시 보건대를 비롯해 캠퍼스 전역에서 선거가 진행 중이었고 이미 보건대생들을 전체 투표율에 합산하여 투표율을 계산하는 중이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학생처장의 보건대 투표권 박탈 협박을 자치 탄압으로 규정하고, 보건대 생들에게 투표권이 있음을 확인한 상태였다. 즉, 시위 전부터 학생들은 자체적으로 학교 측의 시비를 부당한 것으로 인식하여 학생회 선거를 치르고 있었고 선거에 출마한 선거운동본부 및 후보들도 이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모든 후보들이 보건대에서 선거운동도 진행한 상태였다.

만약 투표율을 높이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분쟁 대상은 학교 당국이 아니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되어야했을 것이다. 또 분쟁 시기 역시 4.5 시위보다 훨씬 이전, 즉 선거 시작 이전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실제로 학교 당국이 끝내 보건대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총학생회는 무사히 선출됐고 이 후 총학생회가 활동을 잘 진행한 것에서 보더라도, 총학생회 선거의 성립 여부 자체에는 학교 당국이 아무런 영향을 끼칠 권한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즉, 학교 당국이 보건대생 투표권에 대한 어떤 입장을 갖든 간에, 당시 진행 중이었던 선거가 중단될 이유도, 혹은 전체 투표자 수 및 투표율이 등락할 이유도 없었다. 학교 측 변호인이 주장하는 시위자들의 "실익"(투표율)은 학교 당국이 줄 권한도 없었고, 줄 수 있는 상황도 이미 아니었던 것이다. 학생들이 시위에 참가했던 이유는 1) 학교 당국이 보건대 투표권을 트집 잡아 차후 선출된 총학생회의 대표성에 이의를 제기하며 등록금 인상 등 중요한 사안에서 트집을 잡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며, 또한 2) 당시 계속되고 있던 보건대 생들에 대한 학교 당국의 차별 정책이 투표권에까지 확장된 것에 대해 반대했기 때문이다.

1)의 이유에 관해 부연하자면, 학생처장은 선거 시기에 보건대 생들이 투표에 참가할 경우 "불법 선거가 돼 문제가 될 수 있다" 하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당시 선거관리위원장에게 직접 한 말이다.) 이것은 총학생회 불법화를 통해 등록금 투쟁 등 학생 운동을 무력화하려는 협박으로 학생들이 받아들일만한 것이었다.

또, 2)의 이유와 관련해 부연하면 선거 이전부터 보건대 통합과 관련하여 온갖 차별에 따른 불만이 보건대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런 불만이 시위의 주요 배경이었다는 점은 보건대 학생회장 등이 당시 가졌던 언론사 인터뷰에서도 많이 언급되었다.

따라서 당시 시위는 투표권으로 상징되는 차별에 항의하고, 학교 측이 차후 선출될 총학생회에 대해 트집잡기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열린 것이었으며 "투표권 인정"은 이런 목적을 상징하는 요구였을 뿐이지, 이미 진행되고 있던 선거에 어떤 변화를 가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학교 당국이 "투표율을 올리기 위해 투표율이 높은 보건대 투표권을 인정시키려고 한 것이다" 하고 주장하는 것은 완전히 틀린 진술이다. 오히려 학교 당국의 이런 주장 자체가 독립적이고 독자적이어야 할 총학생회 선거를 간섭하고, 통제할 대상으로 보는 그릇된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설령, 보건대 투표율을 올리기 위해 진행된 시위였다는 학교 측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그 주장 자체가 논리적 설득력이 떨어진다. 보건대생 전체가 투표에서 제외된다고 해도 변경되는 수치 자체가 크지 않다. 보건대생 없이도 당시 선거는 충분히 투표율이 충족되는 상황이었다.

또, 단지 투표율을 올리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인 것이라고 4.5 시위를 규정한다면, 설명할 수 없는 점이 발생한다. 출교생 중 오진호와 조정식은 선거 후보도 아니었고 투표율에 이해관계가 없었다. 눈앞의 직접적 이해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학교 당국 입장에서는 다른 학생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이해할 수 없어서 '투표율'이라는 가정밖에 못할지 모르나, 당시 출교생들을 비롯해 모든 고려대 재학생들은 보건대 생들에게 연대하기 위한 순수한 열정에서 선거운동도 팽개치고 달려 온 것이었다.

(보건대생들 투표율이 그다지 중요한 상황도 아니었다: 이 글 참고.)

(2) 당시 시위가 보건대 생들의 '학적' 문제를 위한 것이었는가?

학교 당국은 학적 문제는 학생들이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인데도 학생들이 떼를 쓴 것이라고 묘사한다. 그러나 학생들의 요구는 학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학적에 대한 언급이 시위에서 처음 등장한 것 자체가 당시 성영신 학생처장의 주장때문이었다. 그녀는 "투표권을 인정하려면 쟤들의 학적을 고려대학교로 변경해야한다. 전문대생들에게 학적을 어떻게 주냐"고 주장했는데, 이런 점에서 보면 투표권 문제를 학적 문제로 둔갑시킨 당사자는 바로 학교 측 관계자였다. 학생들은 학적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당시 시위에 참석한 보건대생들이 진정 관심이 있었던 사안은 보건대 기존 재학생들의 권익 문제였다. 보건대생들에 대한 실질적 차별(등록금, 통폐합 후 교육과정 변경 등)이 시위 과정에서 폭발한 것이 당시 시위가 장시간으로 길어진 원인이었다.

학교 당국은 4.5 본관 시위가 있은 다음날, 보건대 학생들의 권익 문제와 관련한 면담을 잡은 바 있다. 4.5 시위에서 표출된 불만을 수용하기 위해 잡은 면담에서 보건대 생들의 권익 문제를 논한 것은, 학교 당국 역시 학생들의 시위가 그 때문이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감금' 문제

팩트는 밝히자. 학생처장이 본관 복도라는 이유로 요구안을 안 받았다.

100여 명의 학생들이 복도를 가득 메운 채로 받고 가시라고 요구했다.

교수들이 폭언을 했다. "보건대생들이 고대 본관에 들어온 건 침입이다", "고대생만 떠들어라", "2년제와 4년제가 어떻게 같냐", "너희 학교 폐교됐다" 등등. (그동안 쌓인 감정도 있었는데 이건 생략. 학생 폭행도 있었고, 새터 무산 시도도 있었고 등등)

열받은 보건대생들이 이거 받고 가시라고 했고, 실랑이와 온갖 논쟁이 벌어졌다. 비켜라 못 비킨다 등등이 이어졌다.

이 상태로 밤 시간까지 됐고, 결국 논쟁이 반복되다가 새벽이 되서 학생들이 그냥 나왔다.

퇴근 막고 길 막은 것 맞다. 거기 있던 100여 명이 누가 뭐랄 것도 없이 그렇게 했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이걸 부인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래 사진 두 장을 보자.

위 사진은 현장 사진인데, 내가 웃고 있는 거, 그리고 보직 교수 중 하나가 웃고 있는 것이다. 당시 현장 분위기가 '감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을까. 심지어 보직교수 중 하나는 학생들이 들고 온 떡을 먹기도 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자고 하니까 진짜로 머리를 맞대는 개그를 펼친 보직 교수도 있었다. 또 하나, 학교 당국은 의자에도 못 앉게 했다고 왜곡하는데, 다들 의자에 앉아 있다.

사건이 하나 있었다. 학생 중 하나가 교수님들 배고프실 것 같다면서 짜장면, 탕수육, 짬뽕, 볶음밥 등 뭔가 세트음식을 시켜 줬다. 일이 이렇게 되서 정말 죄송한데, 요구안 받아 주셨으면 좋겠다는 쪽지도 함께였다. 입학처장이 볶음밥을 뜯으려고 했다. 학생처장이 뜯어 말렸다. 그래서 볶음밥은 뜯다 만 채로 의자 아래 놓여 있었다.

그런데 학교 당국은 4.6일 오전[각주:2] 발표한 '감금일지'에 "학생들이 교수들과의 상의도 없이 자장면 등을 배달시켜 교수들에게 바닥에서 먹으라고 함" 이라고 썼다. 이게 학교 당국의 수준이다.

퇴학 무효 가처분 판결문도 설명에 도움이 될 법하다고 본다. 사회적으로 법원은 매우 보수적이라고들 생각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도 이정도 판결을 한다.

(가) 이 사건 감금행위의 내용과 정도

 이 사건 감금행위 당시 피해 교수들은 총학생회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작성한 이 사건 요구안을 단지 수령만 하였다면 언제든지 고려대학교 본관 건물을 떠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비록 이 사건 감금행위가 법률적으로는 감금으로 평가된다 하더라도 그 불법성의 정도에는 참작할 만한 점이 있다.

(나) 이 사건 감금행위의 동기와 경위

이 사건 감금행위는 이 사건 요구안을 피신청인에게 전달하겠다는 학생들의 단순한 의도가 교수들의 거부로 좌절되자 이를 현장에서 즉시 관철시키고자 했던 집단적 정서와 분위기에 의해 돌발적으로 행해진 것으로서, 대학사회 내 교수와 학생 등 그 구성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견을 조율하고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 있어 끈기있는 대화와 합리적인 토론이 아닌 집단적인 물리력에 의존해서라도 그 의사를 즉시 관철시키고자 했던 경솔함 내지 민주주의적 소양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지, 신청인들이 피신청인의 학사행정이나 교수들의 연구 및 강의 활동 등 대학 본연의 업무를 방해하고자 하는 악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또한, 이 사건 감금행위의 당초 계기가 된 보건대학 학생들에 대한 투표권 부여에 관한 학생들의 주장은 대학 내 자치활동의 일환인 총학생회의 구성과 관련하여 학생들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에 근거한 것으로, 그 주장 내용 자체가 명백하게 부당하다거나 상식에 반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대학은 학생들의 의견에 대해서도 경청하고 학교 측과 의견이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면 일방적인 통보가 아닌 대화와 설득을 통해 민주적인 절차와 과정을 거쳐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성숙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음에도, 고압적이고 관료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결국 신청인들로 하여금 이 사건 감금행위에까지 이르게 한 면이 있다.  

이상신 교수의 말도 인용해 보자.

언론이 ‘감금’이라고 보도하던데, 정말 어이가 없다. ‘감금’이라니. 그건 안기부나 깡패들에게 질질 끌려가서 당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그렇게 했나. 그 자리에 있었던 교수들은 언제든지 빠져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교직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해결했어도 된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밤샌 후에 감금당했다고 홈페이지에 띄우고 하는걸 보니 그 의도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을 부도덕한 패륜아로 몰아가기 위한 저의가 분명하다.

아니다 걍 몇 군데 더 인용해 보자.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성명서 중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는 지난 4월 5일의 고려대 사태가 언론의 외면이나 왜곡보도와 달리 학생들의 정당한 요구와 고려대의 부당한 대처로 생겨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고려대가 학생들의 정당한 요구를 외면한 채 학생들의 처신을 문제 삼아 징계위협을 가하다가 19일에는 출교라는 가혹한 징계를 결정한 데 대해 경악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학생들의 요구는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주장이었습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성명서 중

보건대와 고려대의 통합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 학교 당국은 과연 교육자로서 대응했는가? 보건대 학생들에게는 투표권을 줄 수 없다고 발표한 처사는 학생들의 권리에 대한 심각한 침해였다. 이에 항의하는 학생들에 대해 고압적, 관료적 태도로 일관한 학교 당국의 비교육적 태도야말로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인 것이다.

홍세화 칼럼 중

일곱 명의 고대생들에 대한 출교 처분이 내려진 지 한달이 지났습니다. 수구신문들은 교수들을 ‘감금’한 학생들에 대한 출교 처분은 당연한 일이라는듯 주장하기도 했습니다만, 방송을 중심으로 ‘감금’한 게 아니라 ‘붙잡거나’, ‘앞을 막았다’라고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 마름들이 가장 경계하고 싫어하는 대상이 자유인입니다. 고대생들에 대한 출교 처분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자발적 복종’을 내면화한 마름들이 자유인들을 억압하는 시대상을 반영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메세지

내일의 대들보를 짓밟는 교수들의 옹졸한 앙갚음은 과연 "교육자"란 자격이 있는지 궁금하다. 여러분들은 용감하였고 꾸준한 인내심이 있는 한 최후승리가 있겠습니다. 

이건희 시위 때문에 공학 타워가 날아갔다?

2005년에 이건희 시위를 해서 공학 타워가 날아갔다는 루머가 돌아다닌다. 기정사실처럼 말이다. 사실무근이다.

이건 기도 안 차는 음해인데, 근거랄 게 없다. 2005년에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고 나중에서야 고파스에 이런 이야기가 떠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들리는 이야기로는 어떤 교수가 수업 시간에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교수님들 이야기야 어떤 교수가 어떤 맥락에서 이야기를 했는지가 중요하다. 어윤대 총장도 교수 출신이고, 교수들이라고 다 믿을 만하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따라서 물증이나 삼성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에는 위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믿을 근거가 없다.

학교 당국이나 기업의 투자는 이해타산에 기초해 있다. 경영대 건물이 제일 빨리 올라가고 돈이 안 되는 단과대들은 소외당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건희 시위 때 경영대 학생회장도 징계 대상자였는데 경영대는 왜 계속 건물이 계속 올라갔을까. 이건희 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은 죄다 인문계였는데 왜 공대 타워가 날아갔다는 것일까?

공대의 소외 정서는 올바른 불만이다. 문과대, 사범대 역시 마찬가지다. 투자를 안 한다. 우선순위에서 저만치 밀려 있다. 내가 인문계 출신이라 잘은 모르지만, 열악한 실험실습 기자재, 근거도 없는 실험실습비, 낙후한 건물 등등. 그리고 공대생들한테 한자 시험 의무화한 것도 비상식적이었다. (지금은 폐지된 걸로 아는데. 이건 올해 총학생회가 싸워서 얻어낸 거라고 들었다.)

결론적으로, 출교생들 때문에 공학타워가 날아갔다는 마녀사냥은 공대의 소외정서라는 온당한 불만을, 소수 사람들 탓으로 돌려서 학교 당국을 향한 분노의 칼날을 비껴가게 하려는 것이다. 전형적인 마녀사냥 수법이다. 

요약해 보자 : 학교 당국이 실제로 공대에 투자를 해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싶다면, 시위가 있든 없든 투자를 한다. 경영대를 보라. 경영대 학생회장이 이건희 시위 주도자 중 한 명이었지만 투자는 계속된다. 그런데 공대는 심지어 시위 당사자도 없는데 투자를 안 한다. 이게 왜 이건희 시위 탓인가. 공학 타워 날아갔다고? 마녀사냥에 속지 말자.

이공계 문제는 근본적으로 기초 학문에 대한 투자 소홀 문제와 연관돼 있을 것이다. 문과대나 사범대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 대학과 국가는 지식 기반 경제 운운하면서 실용 기술을 상업화해서 돈을 버는 모델을 추구했다. 그 결과 대학엔 산학협력이 도입됐고,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는 소홀해졌다. 이런 것의 한 측면을 잘 다룬 글이 있어서 번역한 걸 옮겼다: 매수된 대학.

(그리고, 만보 양보해 진짜 날아갔다고 가정한다면, 그건 이건희가 속이 좁다고 인증하는 꼴이 된다.)

계란, 임산부, 뻐큐·담배연기

별별 소문이 난무한다. 일일이 답해 본다.

1. 계란을 투척했다는 소문 : 사실 무근이다. 이건 2005년 이건희 시위 때 학생들이 이건희에게 계란을 투척했다는 이야기로 떠도는 것인데, 여기서 '계란녀' 따위가 파생한다. 그런데 학생들은 계란을 준비해 간 적도 없다. (개인적으로 난 계란 투척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치우시는 청소 노동자 분들만 고생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이건희 회장이 계란투척에 대비해 여벌 옷을 준비해 갔다고 하는 이야기가 어떤 기사에 나온 데서 확대재생산 된 것 같다.

2. 임산부 : 2006년 4월 5일 본관 농성 당시 임산부는 없었다. 더 다룰 가치도 없는 이야기.

3. 내가 뻐큐를 하고 담배연기를 교수 얼굴에 뿜었다는 소문도 있는데 역시 사실무근. 뻐큐는 보건대생들이 그린 대자보 그림에 있던 건데, 당시 보건대생들 심정을 생각한다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담배 연기는 내가 복도에서 담배를 피웠다는 학교 측 '감금일지' 내용과 내가 연구처장에게 '달려들고 삿대질'했다는 역시 '감금일지'의 내용이 겹쳐서 나온 소문 같은데, 좀 뭘 정확히 읽고 소문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뻐큐 손동작을 별로 안 좋아한다. 보건대생들이 그린 뻐큐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지만 말이다.

고대생들 커뮤니티인 고파스에서 안형우로 검색하니까 이 사진이 나온다. 아항! 이걸 보고 뻐큐라고 한 거구나. 옆 사람이랑 이야기하는 사진이고, 이 앞에 보직 교수들 없다. 학생이 발언하고 있다. 여기에 뻐큐를 날릴 이유가 없다. 

사진을 좀더 확대해 보자.

손가락 한 개가 아니고 두 개다. 이야기할 때 제스쳐 취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추가로. 보건대 학생들이 뻐큐를 그려 넣은 대자보를 보자. 이런 말들이 써 있다.

"너희는 나에게 말할 자격이 없다" - 학생처장

등록금은 6% 동급 인상

그럼 셔틀버스, 학사코스, 총학생회 투표권은?

우리 권리 어디갔나?

"고대 병설 보건대는 통합된 게 아니라 폐교"란 사실을 아는가?

등록금은 통합됐다는 이유로 더 고율로 인상했다. 원래 보건대 학생회가 보건대 학교 당국과 협의중이던 인상률은 그보다 낮았었다. 통합됐다는 이유로 고율로 인상한 거다. 그런데 보건대 학생들에게 약속했던 것들은 언제 실현될지 기약이 없었고(학사코스), 총학생회 투표권 갖고 유치하게 학교 당국이 물고 늘어진 거다(본심은 총학생회 불법화). 그런 울분어린 맥락에서 저런 그림을 그린 보건대생들에게 나는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대학원선배님이 본관근처에서 사진찍다가 봉변당했다?

사실 무근이다. 고대녀 김지윤을 마녀사냥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고 본다. 고파스의 글을 보면 글 쓴 사람이 자진삭제했다.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비권의 보건대 유세 불참

2005년 말에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했던 고대공감대 송용훈 씨는 2006년 초에 치러진 재선거엔 출마하지 않았다. '비권'이라고 불린 데로는 뉴라이트 계열의 고대반장 선본이 출마했는데, 학교 당국이 문제삼기 전까진 보건대에 가서 유세를 다 하다가 학교 당국이 투표 시작 하루 전에 문제를 제기[각주:3]하자 보건대 투표권을 자신도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떠도는 말을 보면 고대공감대 선본이 유세를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애초에 출마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출마했던 소위 '비권'인 고대반장은 유세를 했다. 뒤늦게 학교 당국의 학벌주의적 차별에 동참한 것이다. 다음은 고대반장 성명서를 인용한 것이다.

처음에는 보건과학대학이 고려대로 통합되면서 이번 선거에는 당연히 보건과학대학에도 투표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중선관위와 각 선본의 합의에 따라 인정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따라서 기존에 장승 앞과 민광에서 두 번의 합동유세를 보건과학대학에서 한 번 더 하게 되었고 각 선전물의 제한 부수를 기존의 8,000부에서 10,000부로 늘리는 등 선거운동을 확대 진행해왔습니다.

 

학생들의 보건대 투표권 인정 여부

일단, 2005년 말부터 중앙운영위원회에 보건대 학생회장이 정식 성원으로 참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건대의 투표권 여부는 쟁점 자체가 아니었다. 당연히 부여되는 것이었다. 내가 2005년 중앙운영위원이었고 이후에도 교육투쟁위원으로 단과대 학생회장 연석회의(선거가 무산돼 연석회의로 운영됐다)에 종종 갔기 때문에 잘 아는 사안이다.

그래서 학교 당국이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가 되는 사안이 아니었고, 학교 당국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도 중선관위 회의를 통해 다시 한 번 투표권을 확인했다.

이 때 공대공감대(학생회장 박상하) 학생회가 투표함을 탈취한 채 '보건대 투표권 문제로 전체 학생 대표자 회의(전학대회)를 열어 결정하지 않으면 투표함을 폭파하겠다' 하고 협박했기 때문에 전학대회가 개최됐고, 여기서 보건대 투표권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학생 전체의 의견을 총투표를 하지 않는 이상은 정확하게 알기 힘든 사안일 텐데, 당시 정경대에서 학생들이 내는 자치 신문인 <호안 타임스>에서 여론조사한 게 있어 참고할 수 있다. 당시 4월 5일 시위에 대한 학교 당국의 마녀사냥 때문에 여론이 최악인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49%가 보건대 학생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게 옳다고 답했다. 51%가 반대했다. 학벌주의가 꽤 있을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비율이 찬성한 것이다. 만약 학교 당국의 마녀사냥이 없는 조건에서 학생들이 토론을 활발히 벌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더 높은 찬성율이 나왔을 것이다. 실제로 전학대회에서도 쉽게 보건대 투표권이 통과됐다.

학생들이 개리 멘더링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비판을 당시에는 들어본 바 없다. 내가 당사자였고 총학생회장 후보였는데 말이다.

 

이후 보건대생들 투표 여부

보건대생들의 투표권은 이후에도 박탈된 적이 없다. 학교 당국은 보건대 투표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학생들이 무시했다. 출교가 있었던 4월 총학생회 선거 이후 다음 대 총학생회 선거인 11월 선거에서 보건대 기존 재학생들은 아무 문제 없이 투표를 했다.

15일 성영신 학생처장의 보건대 투표권 관련 입장 표명과 관련해, 지난 39대 총학생회장이자 현 중앙 선거 관리 위원회 이유미 위원장은 학생처장의 입장 표명이야말로 학생 자치의 독립성을 심하게 훼손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 그렇다면 보건대 투표권에 대한 중선관위의 현재 입장은 어떠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4월 개표 직전에 열린 전학대회에서 투표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결의 했고,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이번 선거에서도 그 원칙은 지속될 것이라며 못박았다.

[뉴스] 중선관위 이유미 위원장, "학교는 투표권 간섭 말아야", <KUTV>, 2006. 11. 15. 

검은 옷 시위에 대해

공대 학생회가 검은 옷 시위를 벌였다. 4월 5일 시위에 대한 학교 당국의 마녀사냥을 믿은 결과였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당시 이 시위에 참가한 단위는 공대와 이공계 동아리연합회다. ([공대학생회 발표] 정의를 외치던 고려대학교는 죽었습니다.) 참가 단위는 이제 보니 아래와 같다.

39대 공과대학 학생회장 박상하
39대 공과대학 부학생회장 강이승     

공과대학 강력반 학생회장 정영훈
공과대학 폭풍반 학생회장 조주현 / 부학생회장 김해인
공과대학 막강반 학생회장 주가영
공과대학 강호반 학생회장 최석재 / 부학생회장 조혜림
공과대학 첨단반(현 열혈) 학생회장 정승민
공과대학 천하반(현 열혈) 학생회장 윤준식
공과대학 무적반 학생회장 김지윤
공과대학 명품반 학생회장 김정환

18대 애기능 동아리 연합회장 장세완

여튼, 사건을 '감금'으로 규정하고 규탄한 학생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주도한 것은 '공대공감대' 학생회장 박상하 씨였다. 박상하 씨가 어떤 사람인지는 '다함께 고대모임'이 쓴 자보에 잘 나와 있다. 글을 다 읽기 힘들 테니 일부만 인용하겠다.

올 초 등록금책정위원회가 비민주적이라고 하더니 금세 “[등록금 인상 이유가] 듣고 보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더라”고 말을 바꾼 박상하 총학생회장의 태도 …

올해 경영대 1천8백만 원 등록금 인상 발언 때도 학생들이 항의시위를 하는 동안 공감대 정후보는 박상하 총학생회장과 함께 본관[각주:4]에서 총장과 한가로이 오찬을 하고 있었다.

이거 말고도 등록금 비싸다고 투정하지 말고 알바나 과외좀 더하라고 말한 적도 있다. 등록금 1500만 원까지 올려야 한다고 하고 온갖 학내 구조조정을 밀어 붙이던, 기업 입맛에 맞는 대학을 만들어야 한다고 앞장섰던 어윤대 전 총장(지금은 KB에서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있는)이 퇴임할 때 '사은회'를 열어 준 사람이다.

2005년 전학대회에서 비상학생총회에 친일청산 쟁점을 넣을지로 논의하고 있었다. 당시 공대 명품반 학생회장이었던 박상하는 "당시는 다 친일하지 않았냐" 하는 취지로 발언했다. 너무 깜짝 놀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워딩이야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친일청산 쟁점을 넣는 것에 반대한 것, 그저 반대만 한 것이 아니라 친일 자체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 것은 분명하다. "당시는 다 친일하지 않았냐" 하는 논리는 딱 뉴라이트 논리다. 물론 박상하는 뉴라이트는 아니다. (적어도 2007년 총학생회장할 때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저 논리는 뉴라이트 논리고 그게 박상하의 바탕 중 하나를 보여 준다고 본다.

박상하에 관해서는 2007년 3월에 박상하가 총학생회장일 당시 내가 썼던 글을 참고해 볼 수 있다.

검은 옷 시위도 있었지만, 출교 직후 열린 출교 반대 시위도 5백 명 이상 참가했다. 어느 쪽 하나를 학우들의 대세였다고 단언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는 거다.

그리고 당시 상황이 학교 당국과 주류 언론의 날조와 왜곡에 의한 마녀사냥 한복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자.

사과 문제

사과 문제도 쟁점 중 하나다. 

길 가다 깡패를 만나서 심하게 맞았다. 방어적 폭력을 행사했다. 경찰서에 갔다. 경찰이 나한테 사과하라고 한다. 깡패에게는 전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깡패는 의기양양해 한다. 사과해야 하는가?

등록금 인상, 보건대 차별과 냉대, 학생 운동 탄압. 이 모든 것이 사회적 폭력이고, 사회적 폭력은 개인적 폭력보다 심각한 상황을 낳는 경우가 많다.

협소하게 보건대 투표권 문제가 쟁점이 됐던 2006년 4월 5일의 시위 단 하루만을 보는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회적 폭력이라는 전반적인 맥락을 보는 사람들은 나에게 사과를 요구한 적이 없다.

퇴학 무효 가처분 신청 판결문에는 사과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그 부분을 인용한다.

(마) 이 사건 감금[각주:5]행위에 대한 반성 여부

비록 신청인[우리를 말한다]들이 아직까지 사과와 반성, 재발방지 약속이라는 피신청인[학교 당국을 말한다]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기는 하나, 여기에는 사과와 반성, 재발방지 약속 등을 공개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이 사건 감금행위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신청인들에게만 있는 것으로 대외적으로 각인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바) 이 사건 각 퇴학처분의 효과

이 사건 각 퇴학처분은 제적처분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출교처분과 동일하다(학칙 제31조 제4호). 비록 출교처분과 달리 재입학이 가능하기는 하나,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결원이 있어야 한 데다가 지도교수의 재입학 의견, 학생상벌위원회의 재입학 건의, 총장의 재입학 결정이 필요하고 이는 모두 피신청인 측의 재량사항이므로, 징계대상자인 학생의 장래에 미치는 불이익은 출교처분 못지 않게 지대하다. 게다가 피신청인이 재입학의 전제조건으로서 이 사건 감금행위에 대한 공개적인 사과와 반성,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양심과 신념에 따라 이를 거부하고 있는 신청인들이 태도를 바꾸어 이에 응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이므로, 이 사건 각 퇴학처분이 확정되는 경우 신청인들의 재입학은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왜 굳이 투표권 요구였냐 진짜 보건대생들을 위했다면 보건대생들의 권익 요구를 했어야지?

이런 주장은 가소롭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는가' 하는 맥락에서 이런 말을 한다면, 혹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궁금증 속에 묻는 거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왜? 이런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들이 권익 문제를 다루는 운동도 다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날조와 왜곡이 있는 언론보도만 보고 피상적으로 사태를 이해하는 사람들만 이런 질문을 한다.

당시 시위에서 학생처장에게 제출된 요구안에는 보건대생들의 투표권을 비롯한 ‘제대로 된 수업권 보장을 주장하는 요구’가 모두 함께 있었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거기 있던 학생운동 활동가들은 바로 그 보건대생들의 제대로 된 수업권 보장을 위해 싸우던 사람들이었다. 바로 다음날 잡힌 학교와의 면담에서 바로 그 쟁점이 논의될 수 있게 된 것도 우리가 기여한 측면이 크다.

게다가 이런 주장의 문제점은 투표권과 수업권 보장을 대립한다는 데 있다. 같은 학교 당국의 관리를 받는 학생들이 연대해서 싸우기 힘들게 만드는 총학생회 투표권 박탈, 그리고 총학생회 불법화 시도로서의 투표권 박탈 시도에 제대로 항의하지 않고 학교 당국 입맛대로 사태가 흘러간다면 보건대생들 수업권은 어떻게 지킬 수 있나.

보건대생들 걱정해 주는 척하면서 출교생들을 총학선거 투표율에 목맨 사람들처럼 묘사하는데 황당하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총학을 감투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사고를 하는 것이다.

 

등록금 협상 거부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매번 있던 사건이라고?

등록금 협상 거부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매번 있던 사건이므로 2006년을 특별히 학생운동 탄압이라고 볼 수 없다는 댓글도 달렸다. 불과 1년 전도 모르는 소리다. 2005년에 사범대 학생회장으로 나도 등록금 협상에 참가했다.

 

성영신 증인 신문사항에 대해

교수 감금 당시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와 있는 글인데, 학교 당국이 고용한 변호사가 당시 우리에 대한 가해자인 성영신 교수를 상대로 질문한 것들이다. 학교 당국이 고용한 변호사가 학생 운동(+학생회) 탄압 기획을 최전방에서 지휘한 사람을 상대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질문을 한 것이므로 진실을 보여 주는 문서가 전혀 아니다.

학교 당국의 말이 하나하나 그렇게 다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믿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자료를 공유할 때는 자료가 어떤 건지 사람들이 판단할 수 있게 적어 놓는 것이 최소한의 윤리다. 저렇게 해 놓으니까 무슨 판사가 제3자를 신문한 것처럼 보인다.

근데 재밌는 건 저 문건을 어디서 구했을까 하는 거다. 자료 공개 요청 같은 걸 하면 법원 자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긴 하겠지만서도(그것도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저런 문서를 자동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소송 당사자들밖에 없을 텐데 말이다.

참고로 나도 우리 변호사가 당시 보건대 학생회장에게 증인 신문한 내용 속기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보면 성영신 교수가 한 말과 배치되는 내용이 상당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의 제목 역시 '증인 신문'이다.

*간단 요약: 질문과 증언을 누가 한 것인지 알고 판단하면서 보길 바란다.

기타

이건 뭐 다룰 가치도 없는 쓰레기 댓글이긴 한데, 그래도 헷갈릴 사람을 위해서 알린다.

당신들과 같은 출교자의 한사람이며 선관위원으로 활동하던 서범진씨는 교내언론과의 인터뷰에서 ' 그게 문제가 될줄 몰랐다' 는 몰랐다는 말을 했으며 …

라는 댓글이 달린 바 있다. 서범진은 출교 당시 나랑 같이 총학생회 부후보로 출마했다. 내가 정후보였다. 서범진이 선관위원이라니 그냥 헛소리다.

당연한 말이지만 서범진은 교내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게 문제가 될줄 몰랐다'라는 따위 인터뷰 한 적 없다.

추가 사항들에 대해

그 때 그 때 생각나는대로 추가 쟁점들을 적겠다.

기타 등등의 기도 안 차는 반박이 많고 결국 맥락을 설명하고 왜곡들을 걷어내다 보면 악플러들이 반복하는 소리는 "너네 감금했잖아", "어떻게 교수님을 감금?! 이 패륜아들!" 밖에 없다. 보수적인 법원은 "정상 참작", 이상신 교수님처럼 개혁적인 분은 "그게 무슨 감금이냐?" 하는데 유독 악플러들만 무슨 죽을 죄를 저지른 듯 호들갑을 떤다. (심지어 법조문을 들먹이며 최고 사형까지 가능하다고 유식한 척하는 분들도 있다.)

그래. 당신들[각주:6]이이이 보기엔 그럴 수 있다. 여기서 바로 관점이란 쟁점이 등장한다.

각종 저항의 주체들이 저지르는 온갖 극단적 행위들이 있다. 내가 무슨 4월 5일 농성을 역사의 위대한 사건들에 견주려는 건 아니다. 그런데 4.19, 6월 항쟁, 프랑스 혁명 같은, 심지어 우파들마저 위대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에도 이해할 수 없는 극단적인 사건들은 있었다. (그래서 미시적으로 보면 혼란에 빠지기 쉽다.)

이 와중에 벌어지는 극단적인 사건들 하나하나를 전체 맥락보다 강조하면서 모든 것을 싸잡아 비난하는 사람은 결국 약자의 편이 되기 힘들다. 김규항의 말을 들어 보자.

인격은 실은 매우 사회적인 것이다. 낮은 계급 사람들의 인격적 결함은 더 쉽게 드러난다. 품위를 유지하기 어려운 거다. 그런데 경제적 정신적 안락을 확보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자신의 인격적 결함을 드러내지 않고 살 수 있다. 둘의 인격을 한 가지 잣대로 볼 수 있는가? 나는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상이다.

  1. 위 편지에 없는 내용도 있다. 고려대 당국은 새터가기 전에 보건과학대 새내기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서 보건대생들이 너희들 선배가 아니란다 하고 '친절히' 안내해 주기도 했다. 투표권 관련해서 보건대생들이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라는 이메일을 전체 학생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보건대생들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가 얼마였을까. [본문으로]
  2. 이것 역시 어찌나 신속하게 나왔던지. [본문으로]
  3. 그리고 하루 전에 이런 식으로 하는 건 도대체 뭔가. 학생들이 선거를 그대로 진행하게 해서 총학생회를 불법화하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은 이상 이런식으로 일을 진행하지는 않는다. 진심으로 보건대가 투표를 하게 되는 상황을 걱정하는 거였다면 애초에 중선관위장에게만 통보할 게 아니라(고대반장 성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이것도 진실인지 의심스럽다.) 중운위원들과 각 선본 모두에게 알리고 상의를 하자고 해야 했다. 그러나 어니 학교 당국이 한 번이라도 그런 적이 있었나. [본문으로]
  4. 박상하의 주장에 따르면 인촌기념관이라고 한다. 굳이 적어 준다. [본문으로]
  5. 잘 알려져 있다시피, 법원에서는 이 사건을 '감금'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했듯 나는 이 사건을 감금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법원도 "이 사건 감금행위가 법률적으로는 감금으로 평가된다 하더라도 그 불법성의 정도에는 참작할 만한 점이 있다"고 말한다. 출교 쟁점에서 '감금'은 학생들을 패륜아 취급하기 위해 매우 이데올로기적인 단어로 사용됐다. [본문으로]
  6. 이게 공대생을 지칭하는 말이고 공대생으로서 기분나쁘다는 악플러가 있었는데, 좀 잘 보기 바란다. 악플러를 지칭하는 말이다. 공대생? 많은 공대생들이 출교생들에 연대해 줬다. 한 단대가 획일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공대생은 다 이렇고 사대생은 다 저렇다 하는 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 사대에도 공대에도 마찬가지로 악플러가 있고 진보적인 활동가가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