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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1945년 해방 직후 북한 좌익세력들의 변혁운동론

시사 블로그에 학술적 성격의 글을 연이어 올리니 좀 신경이 쓰인다. 이 글을 올리고 나서 아이티 글을 갱신해서 맨 위로 올려야겠다.

내 블로그 기획의도는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시사를 분석해, 마르크스주의의 대중화에 기여하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잘 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간에 앞으로도 노력은 많이 해 볼 생각이다.

학술적 성격의 글은 종종 올라갈 텐데, 이번에는 좀 많이 올라갔다. 내 블로그의 구독자 분들께 양해를 구한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해방정국과 조선혁명론》(해방3년사연구회, 대야출판사, 1988)의 3장 '북한 좌익세력들의 변혁운동론'을 요약한 것이다. 나의 입장은 이 책의 입장과 다르다. 그러나 요약은 충실히 할 것이며, 내 생각을 밝힌 경우에는 '내 생각엔, 내가 보기엔, 나는' 등의 단어를 써서 책의 내용과 혼동되지 않도록 했다.

1.연혁

해방 직후에 조선은 지금처럼 분단돼 있지 않았다. 따라서 당연히 북조선과 남조선 같은 사고는 없었다. 처음에 북조선의 공산당은 조선공산당의 지역지부였다. 그러나 소련군과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해 남북으로 갈리면서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북조선분국을 세우고, 조선공산당(나중엔 노동당)은 사실상 두 개의 당으로 분리하게 된다.

북한의 평양에는 현준혁을 중심으로하는 세력, 소련파, 만주파가 혼재돼 있었다.

국내파의 입장을 알 수 있는 것은 1945년 9월 15일 평남지구당 확대위원회의 9월성명이다. 국내파는 공산당 중앙을 서울에 두고 북한에는 지방조직만을 건설하려 했지만 소련파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소련파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된다.

△2차대전 당시 소련에 제공된 미국 영국의 탱크. 이런 '힘'의 차이가 남한과 북한의 차이를 낳았을 것이다.


1945.10.10~10.13 나흘간 개최된 '조선공산당 서북5도당 책임자 및 열성자대회'에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설치됐다. 이것은 사실상 북한에 독립된 조직이 결성된 것을 의미한다.

1945.12.17 북조선공산당으로 당명을 개칭한다. 이 대회에서 '민주기지론'[각주:1]을 재확인하면서 이 결정은 더욱 공고해졌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북한의 공산당조직은 소련파의 주도하에 들어갔으며, 이른바 당내의 반민주주의적 요소가 척결되어 갔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 문단은 내 생각이다 : 위 문장에서 '이른바'라는 단어가 있기는 한데, '당내의 반민주주의적 요소'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이 책이 당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의 행위를 지지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 책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북한공산당이 수행했으며, "임시인민위원회를 통해 제반 민주개혁이 수행"되어 갔고, "1946년 3월의 토지개혁 이후 많은 개혁이 뒤따랐다"고 쓰고 있다.

그런데, 내 생각에 바로 뒤 서술에는 모순적으로 보이는 게 있다.

"한편, 북조선공산당은 1945년 12월 17일의 확대집행위원회 이후 당내 조직강화에 의해 조직기반이 축소되어 갔다. 즉, 대중적 조직기반을 확대하기보다는 당내의 반민주적 요소를 제거하는 작업에 치중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서술이 있는데, 내 생각에, 대중 기반 확대와 민주주의 강화는 불가분의 요소다. 당내 민주주의 때문에 대중적 기반이 축소됐다는 서술은 말이 안 된다.

심지어 이 책은 "당을 대중적 당으로 전환시켜야 할 상황에 직면하였으며, 노농의 선진인자를 구성요소로 하는 공산당과 소시민 인텔리를 기반으로 하는 신민당과의 합당이 추진되었다"고 쓰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어이가 없다. 민주주의를 강화하느라 대중적 기반이 축소됐다는 것도 황당한데, 심지어 대중 기반 확대를 위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정당과 합당 추진? 대중적 기반은 그럼 노동자, 농민의 대중적 기반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던 것인가? 이건 영판 이상하다.

황당 서술은 계속된다.(이런 황당함이 이 책의 주된 분위기는 아니니 잠깐 황당한 서술이 등장한다고 해서 책 전반을 평가절하하지는 말기 바란다.)

민주개혁으로 말미암아 북한의 계급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새로운 혁명을 시행할 정권을 창출할 필요에서, 1946년 말과 1947년 초의 선거를 통해 북조선인민위원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1947년 2월 21일 결성된 인민위원회는 북한내에서의 프롤레타리아정권의 성립을 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책 71p 

완전 어이없으심이다. "새로운 혁명을 시행할 정권을 창출"하는 걸 정권이 막 정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철저히 '위로부터의 혁명' 관점에 입각한 서술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혁명은 당이 일으킬 수 있는 게 아니다. 혁명은 자본주의가 낳는 착취, 억압, 소외 때문에 '거의' 자연발생하는 것이고, 마르크스주의 당이 있다면 그 혁명을 피억압대중의 이익에 맞도록 승리할 수 있게 조력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서술은 북조선공산당이 자기 마음대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2. 변혁운동론

가.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

이 책은 북한 좌익이 남한 좌익과 달리 해방 직후 소련과 미국의 차이를 좀 더 인식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런 인식에 따라 민주기지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평가하는 듯하다. 인용문을 보자.

민주기지론을 제기할 때 내세웠던 전제는 “소련군이 진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그와 같은 유리한 조건을 이용”한다는 것 … 미국과 소련의 반파시즘 협동전선이 앞으로 계속되리라고 전망했던 조선공산당의 국제협조노선 인식과는 분명히 다른 인식…

이 책, 73p

그러나 이 책은 북한 좌익들이 모스크바 3상회의에도 기대를 걸었으므로, 의문은 있다고 썼다. 그러나 남한 좌익에 대해 평가할 때보다 훨씬 누그러진 말투다.

나. 혁명의 성격

북한의 국내파 좌익들은 국제정세를 남한 좌익과 똑같이 인식했다. 1945.9.15 조공 평남지구 확대위원회 결정서에는 "연합국의 그들은 우리의 벗이요 우리의 가장 친선해야 할 국가"("정치노선에 관하여", <해방일보>, 1945.10.30)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들은 이런 낙관적 정세 판단에 기초해 "물론 조선의 혁명계단은 자본혁명계단이다" 하고 규정했다.

북한 국내파 좌익이 든 조선 혁명의 과제는

  1. 일제잔재 청산
  2. 토지혁명

으로, 남한 좌익의 인식과 같다.

이 혁명의 수단은 통일전선이고, "반일을 목적으로 하는 각 당파, 각 단체, 각 계층을 총망라"("정치노선에 관하여", <해방일보>, 1945.10.30)할 것을 주장했다.

이후 소련파의 입국, 현준혁의 암살 등으로 북한 좌익은 소련파가 장악하게 되고, 북조선 분국이 설치된다.

북조선분국의 변혁론은 "자본민주혁명"이다. 과제는 "반제반봉건"인데, 내용은

  1. 토지 문제 해결 : 지주의 토지 몰수, 소작제 철폐, 무상 분배[각주:2]
  2. 일제잔재의 청산과 반동분자의 소탕

국내파 북한 좌익과 소련파 북한 좌익은 민주기지론을 대하는 입장도 달랐다. 소련파가 민주기지론을 좀더 확고하게 주장했다.

북조선분국은 통일전선을 혁명의 주체로 설정했는데 그 구성요소는 노동동맹, 민족자본가와 애국적 지주다.

이 책은 "민족자본가나 애국적 지주에 대하여 매우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음 알 수 있다"[각주:3]고 썼는데, 내가 보기에 이 책은 명백히 이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내 입장과 다르다.

토지개혁과 산업국유화

북조선분국이 개혁기관이자 국가기관의 맹아로 설치한 "임시인민위원회"는 토지개혁 때 "중농과 동맹하여 부농을 고립화시킨다"는 입장이었다.

몰수하면서도 "그들을 다 친일파 민족반역자로 규정하지 않고 … 비록 5정보 이상의 땅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일부 땅은 자기가 경작하고 일부는 소작주던 사람, 5정보 이상을 전부 자경하는 사람들은 지주규정에서 제외하고 다만 소작주던 땅만을 몰수하였다"[각주:4]

산업국유화 정책에서도 "자본주의적인 소유 일반을 청산한 것이 아니라 반제 반봉건적 민주혁명과업의 일환으로서 일제와 민족반역자의 소유에 관한 몰수에만 국한"[각주:5]했다고 한다.

북한공산당은 "공민들의 재산과 개인의 소유물을 법적으로 보장", "수공업과 상인의 자유를 허락하며 권장", "기업가와 상인들의 자유로운 활동보장 ㅡ 특히 중소기업의 장려" 등 공산주의와는 거리가 먼 정책을 추진했다.

(내가 여기서 자세히 다룰 수는 없지만, 이는 당시 소련이 미국과 마찰을 빚지 않으려 했던 데서 나온 정책일 공산이 크다. 그러니 냉전이 시작되면서 북한이 갑자기 "프롤레타리아 정권 수립"을 천명한 것이다.)

이 책은 여기까지 살펴본 다음 북한 좌익의 혁명론은 "인민민주주의혁명론"에 가깝고, 중국의 "신민주주의혁명론"과 유사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자체내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기 때문에 그 신빙성에는 의문이 간다"고 평가한다.

다. 조직노선

내 생각에, 북한 좌익의 조직노선에 대해 이 책이 별로 말해주는 바는 없다.

"민주집중제"라고 얘기는 하는데, 소개한 내용이 글쎄올시다다. 인용문을 보자.

 첫째로서 개인은 조직에 복종하며 소수는 다수에 복종하며 전 당은 중앙에 복종하는 기본원칙을 강조한다. 이 모든 것은 당의 민주집중제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조직문제에 관한 결정서", <해방일보> 11월, 이 책 79p에서 재인용

위 인용문 어디에서 '민주'를 찾을 수 있는가. 이는 다함께의 주장처럼 스탈린주의의 전형적 조직방식인 "관료적 중앙집중제" 원칙을 설명한 것이다. (민주집중제가 궁금하면 존 몰리뉴의 실천가들을 위한 마르크스주의 입문 35 - 민주집중제는 반反민주적인가? 를 참고하기 바란다.)

이 외에 당 조직은 생산단위랑 일치해야 하고, 당 간부가 중요하다고 했다 정도가 이 책에 나와 있다.

라. 당내의 사상적 통일과 투쟁노선

북한공산당은 "무산혁명에 대한 주장들은 극단 좌경 기회주의적 이론이며 친일파 주구분자들까지 전부 연합시키자는 주장은 가장 위험한 우경기회주의적 사상"[각주:6]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북한공산당의 자기비판도 있는데, 우경적 오류로는 "범인민"이라는 개념 때문에 범한 오류가 있다고 하고(뭔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좌경적 오류로는 현 혁명단계를 "사회주의 혁명계단이라고 본 것", "자기역량을 과대평가하고 … 사회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의 두 힘에 의한 해방임을 간과한 것"[각주:7], "공연히 혁명적 언사와 난폭한 행동을 한 것"을 들고 있다.

그리고 뭐, 기본과업을 명시하고 대중 속에서 대중의 요구를 체험해 당의 발전과 당원의 획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하나마나한 말씀들을 인용해 놓고 끝.

조직 부분과 사상적 통일과 투쟁노선 부분은 내용이 워낙 없어서 어이가 좀 없다.

북한공산당과 남한의 조선공산당의 차이는 군사력에 있었다. 북한공산당은 소련의 군사력에 의존할 수 있었고, 남한은 그렇지 못했다. (결국, 혁명 원칙 같은 게 중요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북한에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북한 좌익의 유연한 태도라고 하는 것의 정치적 배경으로는 소련이 미국과 마찰을 빚기 싫어했던 것이 있겠지만, 물리적 배경도 있다. 소련의 군사력이다. 소련의 탱크 앞에서 북한의 자본가들은 남한 자본가들보다 훨씬 고분고분해야 했을 것이다.

이정도가 내가 덧붙이는 것이고, 이상으로 요약은 끝났다.

  1. 이 각주는 내 설명이다. 민주기지론은 북한에 일단 민주기지를 설치하고, 이 민주기지를 강화해서 조선 전체를 '사회주의'로 만든다는 전략인데, 구체적 맥락에서 보면 분단을 기정사실화하는 정책이었다. [본문으로]
  2. 북한공산당의 입장도 처음에는 3ㆍ7제였다고 한다. [본문으로]
  3. 그러나 북한 정권은 자본가계급을 결코 정권에 끼워주지 안핬다. 그런 점도 있는데 이런 조치만을 바탕으로 '우연했다'고 평가하는 게 꼭 옳을지 모르겠다. [본문으로]
  4. 조민, "북한에서의 민주개혁과 통일전선", <연세>25, 1987 [본문으로]
  5. 같은 책 [본문으로]
  6. "조직문제에 관한 결정서", <해방일보> 11월, 이 책 80p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7. 내 해석인데, 이건 뭔 말인고 하니 '소련을 무시해서 미안하다'는 뜻이다. 소련의 든든한 후원이 있으므로 잘 될 것! 인데, 우리가 그걸 간과했구나ㅠ.ㅠ 하는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