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재무부가 3월 7일에 "노동 시장의 경쟁 상태"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1월 바이든이 내린 경쟁 촉진 행정 명령에 따라 나온 보고서인데요. 재무부, 법무부, 연방 거래 위원회, 노동부가 관여했습니다.
보고서의 요지는 독과점이 노동 시장의 경쟁을 억제함으로써 임금을 낮은 수준에 묶어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략 20퍼센트 정도 임금을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독점을 친노동 입장에서 비판하는 보고서를 국가가 낸 맥락은 아마도 세계적으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하는 추세와 연관이 있을 겁니다. 미국에서는 국가의 독점 규제 이데올로기와 정책을 매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대표적 빅테크인 페이스북이 2016년 트럼프 당선과 2021년 초 극우의 의회 난동에 이용됐다는 비판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물론 양극화가 극우(미국에선 트럼프 세력이죠)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미국의 지배계급에겐 걱정스런 일일 겁니다. 국내 정치가 불안정해지고, 미국의 패권도 불안정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극우를 부상시키는 경제 양극화에 국가가 나름의 대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할 겁니다. 자본주의 자체가 이윤율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뜻대로 되지 않을 공산이 크겠지만요.
문제의 원인을 독점으로 지목하면 양극화를 유발하는 체제의 문제를 거대 기업의 문제로 비껴 인식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습니다. 진정한 대처(양극화 해소)가 불가능해도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내는 것이죠. 이런 이데올로기적 대응이 트럼프류의 주장을 강화하기도 할 텐데 모순적이긴 합니다("친민주당 성향의 빅테크 기업들이 나를 탄압한다").
국가의 이런 대처 과정에서 자본가들의 비윤리적인 행태가 폭로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번에 미 재무부가 발표한 보고에도 그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함의와 대안을 유의해 봐야겠죠.
제가 보고서를 다 본 건 아니고, <뉴욕타임스> 보도와 미국 정부의 요약을 참고했는데요. 거기에서 소개하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 노동자가 경쟁 업체로 이동하지 못하게 하는 경쟁 금지 협약,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해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없게 만드는 비밀유지 협약, 기업간에 서로 상대 기업의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기로 하는 밀렵 금지 거래(no-poaching deals, 불법이다) 같은 것들이 노동 시장에서 자본가들의 경쟁을 없앤다.
- 청소부, 식당 직원, 경비원 등이 개별 회사에 고용되지 않고, 거대 아웃소싱 기업에 고용되면서 노동자의 선택권이 줄어들었고, 노동 시장에서 자본가들의 경쟁이 줄었다.
- 병원, 요양원, 식품 가공 회사 등에서 인수합병이 늘어남에 따라 노동자 고용을 둘러싼 자본가들의 경쟁이 줄었다.
- 반경쟁적 노동시장을 교정할 최저임금 제도나 노동조합이 약화돼 왔다. 연방 최저임금은 7.25달러, 노동조합 가입률은 6퍼센트에 불과하다.
- 그 결과 노동자들의 임금이 최소 15퍼센트에서 최대 25퍼센트까지 피해를 입었다.
- 기업 입장에서도 피해다.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쉽게 옮길 수 없게 됨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업무를 고르지 못해 생산성이 떨어지며, 신생 기업은 유능한 노동자를 얻지 못한다.
- 자본간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조처로 독점 금지 시행 강화, 최저 임금 인상, 노조 조직 용이화를 권고한다.
미국 지배계급은 꽤 세련되게 이런 친노동 (포장) 이데올로기를 구사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노동운동이 강력하지 않으니 가능한 일이겠지요.
보고서의 내용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기업들이 임금을 삭감하기 위해서 취한 다양한 방법들이 나옵니다. 다만 이런 게 문제라고 국가가 이야기를 한다는 점은 도움이 될 겁니다.
말하지 않는 것
그러나 국가가 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지난 40-50년은 신자유주의 시대로 단지 독과점만이 아니라 온갖 것들이 온갖 방면에서 노동계급을 공격한 시대였습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예컨대, 인수합병은 당연히 해고와 임금삭감, 노동조건 하락을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필연이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보고서가 인용하는 인수합병한 병원의 임금 상승률 감소는 단지 노동시장에서 자본가들의 경쟁 약화때문일까요? 자본가들의 집요하고 의식적인 공격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아웃소싱도 이런 구조조정의 일환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IMF 이후 비정규직을 늘리면서 기업들이 노동 비용을 감소시켰습니다.
이런 일들은 독점의 결과라기보다는 지배계급의 주체적인 이윤 회복 노력(즉, 저들의 계급투쟁)이었다고 봐야 할 겁니다. 독과점과 나란히 벌어진 일이겠지요. 제가 보기엔 이 보고서가 기존에 지적돼 오던 문제를 국가가 인정했다는 점은 있지만,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말함으로써 계급투쟁의 눈을 돌리는 효과를 낸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미 정부로서는 노동자들의 불만을 다른 데로 돌릴 필요가 있는 것이겠지요.
노동자들의 임금은 경제 상황에 큰 영향을 받고, 무엇보다 계급 세력관계에 따라 좌우됩니다. 한국의 87년 전후, 그리고 IMF 이후를 보면 명확하죠. 80년대엔 호황이었지만 크게 오르지 않던 임금이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이후 급격히 상승합니다. IMF 공황 이후에는 다시 정체/하락하죠.
이런 사실과 달리, 미 재무부의 보고서가 전하는 메시지는 결국 임금 하락이 체제 전체가 아니라 일부 자본가들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체제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나 진실은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을 대상으로 수행한 계급투쟁(신자유주의 공격)이 임금 하락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맞선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이 부족했던 게 문제였다고 진단하는 게 옳을 겁니다.
이 보고서의 대안은 국가가 독과점을 규제하라는 것인데요. 사실 바로 그 국가가 "국가경쟁력"을 위해 그동안 신자유주의적 경제 조처들을 추동한 핵심 세력이었지요. 앞으로도 국가가 기업 경쟁력을 해치는 조처를 하리라고 보기는 요원합니다. 기업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과 긴밀히 연결돼 있으니 말입니다.
결국 보고서는 친노동적 포장과는 별개로 결국 계급투쟁적 대안으로부터 노동계급의 눈을 돌리게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
- “기업 독과점으로 임금 20% 손실”…미국, 노동시장 법 집행 강화 예고, <한겨레>
- New Treasury Report Finds Corporate Concentration, Anti-competitive Practices Have Stifled Wages for Workers and Reduced their Power in the Marketplace, 미 재무부
- Employer Practices Limit Workers’ Choices and Wages, U.S. Study Argues, <뉴욕타임스>
대표 이미지 출처: Mathieu Ster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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