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실린〈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의 논설은 나를 착찹하게 했다. 몇 구절만 인용해 본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는 앞으로 4년이 남았다. 유권자 대표를 뽑아서 “우리가 시대정신을 잘못 읽었으니 미안하지만 대통령직에서 좀 내려와 달라”고 말하면 될까? 물론 안 된다. 선거는 ‘일수불퇴’다. (중략)
국민들은 살아남아야 한다. 생활수준을 낮춰야 한다. 생존이 최우선이다. 국가가 해 줄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는 꽤 비중있는 사람이다. <한겨레>의 정치적 방향을 지도하는 것으로 보이는 글을 많이 쓴다.
그의 칼럼이 날카롭고 정치적이기 때문에 그의 칼럼이 실리면 빠짐없이 꼼꼼이 읽는다. 그는 꽤 괜찮은 사람이다.그러나 이런 때 보면 참 답답한 마음이 든다.
성한용 기자의 생각을 읽으면 최장집이 말하는 의회민주주의의 공정한 게임론이 떠오른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갖춰진 시대에는 의회를 우회하는 가두투쟁이 오히려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촛불 이후 많은 지식인들이 이것을 가지고 논쟁을 벌였다. 최장집은 명확하게 촛불이 지속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의 제자들도 이제 의회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나은 지식인들은 촛불이 의회민주주의의 일탈을 교정하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성한용 기자는 촛불을 비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의회민주주의의 공정한 게임론에 갖혀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선거는 ‘일수불퇴’다?
선거가 ‘일수불퇴’라고 하는 것은 상대가 공정한 게임의 룰을 지킬 때나 가능한 소리다.
당장 오늘 <한겨레>는 사설에서 “독재정권 시절의 날치기 악령이 다시 살아났다” 하고 일갈했다. “독재정권 시절의 날치기”는 대표적인 룰 위반이다.
이것뿐이 아니다. 공약을 지키지 않는 것도 대표적인 룰 위반이다. 이명박은 선거 때 “다함께 건강하고 편안한 사회”를 약속했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지금은 내가 사면해 줄 권한이 없습니다. 지금은 없고 권한이 생기면 반드시 진지하게 인도적 차원에서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오늘 <한겨레> 사설도 이를 지적하고 있다. 오늘 사설에서 <한겨레>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희망을 함께 나누는 국민성공 시대를 열겠다”고 말하지 않았느냐면서 이명박을 비판하고 있다. (‘사그라진 기대, 대통령은 ‘유권자 뜻’ 되새겨봐야’, 12월 19일 사설)
선거는 ‘일수불퇴’다? 맞다. 만약 성한용 기자의 생각대로, 이 세상이 의회를 통해 돌아가고 있으며,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회라면, 즉, 게임의 룰이 공정하게 지켜지는 사회라면 맞다. 한 번 진행된 게임을 엎으려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 게임에 반칙을 밥먹듯 하는 선수가 있고, 경기장 안이 아니라 밖의 음험한 곳에서 승부를 조작하는 선수가 있는 게임이라면, 사기꾼 선수 하나가 게임을 모두 망친다면, 그러면 그 선수는 퇴장당해야 마땅하다.
이명박은 퇴진하라
이 비겁한 게임의 룰을 지키려다 보니까 성한용 선임기자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생활수준을 낮춰야 한다”고 말이다. 사실 이 말에 호응해 생활수준을 낮출 사람은 서민밖에 없을 것이다. 이명박과 한나라당, 강부자들이 성한용 기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생활수준을 낮출까? 택도 없는 소리다.
‘공정한 게임의 룰’을 지키려는 그의 노력은 나름의 논리는 있지만 설득력은 없다. 성한용 선임기자는 상대방이 룰을 지킬 생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게임의 룰은 설득과 희생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룰을 어기는 놈은 퇴장시키는 게 방법이다. 축구경기에서 반칙을 했을 때 설득하랴? 우리 편은 반칙을 안 함으로써 상대방을 감화시키랴?
아니다. 백태클에는 퇴장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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