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동안 중심도 없고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져 있던 민주당이 이제 MB의 개악입법에 맞선 전사가 됐다고 한다.
각오도 사뭇 진지하다. <한겨레>는 민주당의 각오를 보도하면서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고 썼다.
한 누리꾼은 “그동안 민주당이 해 온 일은 잊겠다. 그러니 부디 막아 달라”고 했고, 다른 누리꾼은 “악법이 통과되면 전원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주문했다. 그동안의 오락가락 행보에 대한 의구심이 조금 남아 있는 것이다.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의 기사, 민주·민노당에 ‘쏟아지는 응원’
민주당에 대한 <한겨레>의 환호야 이해할만하다. <한겨레>가 그토록 오랫동안 응원해오고 우호적 비판을 아끼지 않았던 당이니까. 그나마 성한용 선임기자가 제목에 민주노동당도 함께 달아준 것이 기특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 일관되게 진보를 지지해 온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도 민주당에 쏟아지는 응원이 달가울까. 많은 이들이 지금 민주당의 행보에 혼란을 느끼지 않을까? 위의 인용문에서도 한 누리꾼이 “악법이 통과되면 전원 의원직을 사퇴하라” 하고 말한 것이 의미심장하다. <한겨레>도 사람들의 이런 따가운 눈총을 모르지 않는다.
지난 촛불 정국 때 민주당은 위 사진이 났던 기사의 제목대로 가장 늦게 와서 가장 먼저 촛불을 끄며 아무 것도 보여 주지 않았다. 민주당의 허약한 모습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모습인데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2004년 노무현 탄핵 정국 때도 처음에는 시위를 호소했던 민주당은 시위 규모가 5만, 10만을 넘어 25만 수준으로 불어나자 자제를 요청했었다. 심지어 자기자신을 위한 시위에도 자제를 요청할 정도로 무기력한 당이다.
민주당의 행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재 민주당의 행보를 냉소적으로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저들은 어쨌거나 ‘동맹’이다. 일단 민주당의 투쟁 참여는 저들이 기반하고 있는 광범한 자유주의적(혹은 자유주의와 급진적 진보 사이 어디쯤에 놓여있는) 운동세력과 개인들이 이 투쟁에 뛰어들게 하는 좋은 효과를 낸다. 민주당과 ‘동상이몽’인 이 세력과 개인들은 발전가능성이 풍부하고, 민주당처럼 허약하지도 않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민주당 자체에 대한 장밋빛 환상이 되선 안 된다. 즉, 저들은 허약하기 짝이없는 동맹이다.
민주당은 위기에 빠져 있었다. 이쪽저쪽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민중운동에 주도권을 빼앗기면 자신들이 대변하는 자본가 부문의 이해관계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민중운동을 아예 외면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쨌거나 민주당은 자본가 부문에 뿌리박은 동시에 운동의 일부에도 뿌리박은 포퓰리즘 정당이다. 그것이 지난 촛불 정국 때 민주당의 나약한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은 운동이 촛불 때처럼 솟구치지 않는다. 동시에 한나라당의 막가파 법안은 민주당의 소심한 자유주의까지 공격한다. 민주당의 소심한 자유주의는 권위적 국가에 의해 기업활동의 자유를 침해받은 사적자본가 부문을 대변하는 동시에 자유주의 좌파적 운동세력(참여연대)까지 포괄한다.
소심한 자유주의는 권위적 세력이 주도력을 발휘할 때는 아무말도 못하다가 권위적 세력이 약해지면 그 때는 비로소 목소리를 낸다. 왜? 권위적 억압이 기업활동에 득이 될 때는 이들이 권위적 활동을 반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으므로. (그것이 군사독재를 오랜 기간 자본가들이 용인해 온 이유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 시기다. 이명박의 국가주도 권위주의적 경제계획은 파산 직전이다. 민주당이 나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 있다.
아울러 운동의 압력은 있으되, 구체적 운동이 주도권을 발휘하고 있지는 않다. 언론파업이 촛불 시즌2를 예고하는 듯하지만, 아직 촛불 시즌2가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이런 때 민주당이 치고들어오기 가장 좋다.
민주당의 치고빠지기
그래서 민주당은 치고빠질 공산이 크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임을 다했다고 선언할 때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만약, 많은 이들의 희망대로 촛불 시즌2가 시작되고, 노동자 파업이 들불처럼 번진다면 소심한 자유주의를 대변하는 민주당은 이 거친 싸움에서 슬쩍 몸을 빼고싶어할 것이다. 지난 촛불정국 때처럼, 그리고 지난 탄핵 정국 때처럼.
그게 자연스러운데, 시위가 커지고 이명박 정권이 위기에 내몰리는 상황은 이 ‘안정적인’ 여야 구도를 깨뜨리는, 민주당으로서는 ‘위기’의 시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아래 <민중의 소리>의 기사에 나온 묘사가 우리를 진실에 더 가까운 곳으로 인도할 것이다.
사실 민주당의 ‘찰떡’ 제스쳐는 민중운동의 압력에 기반한 바 크다. 만약 권위주의적 행보가 맘에 들지 않더라도 이에 맞선 저항의 압력이 크지 않으면 소심한 이들은 말로는 비판하면서 수수방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질적 저항압력이 들어오고, 그러나 아직은 그 압력이 실질적 운동으로 분출하지 않았을 때, 그 때가 소심한 자유주의 분파 ─ 민주당의 무대다. 그들은 이 때 움직이면서 “너희가 우리 말을 안 들으면 운동이 우리 모두를 집어삼킬 거야, 잘 생각해봐!” 하는 메시지를 던진다.
지금 민주당은 운동의 열기를 덮어버릴만큼 명망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87년의 김대중과 다르다. 민주당은 어쩌다보니 87년의 김대중처럼 행동하고 있고, <한겨레>는 민주당에 그것을 바라고 있지만, 이미 한 번 집권까지 해 그 때보다 억압의 경험이 덜하고, 민주당이 뿌리박은 자본가 분파들도 그 때만큼 자유를 제약받고 있지는 않은 지금 민주당이 체제 자체에 도전할 정도의 ‘야성’을 보일 리는 만무하다.
민주당이 움직일 수 있는 폭은 매우 좁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일관되게 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운동을 끝까지 밀어붙여 온갖 개악을 되돌리는 일이다. 아마 이 일은 주류정치체제 자체를 위기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민주당은 결코 사태가 이렇게 발전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 무지하게 허약한 동맹인 민주당은 떨어져나갈 수 있지만 개의치 말아야 한다. 그들을 믿었다가는 결코 개악을 저지할 수 없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내가 할 말은 이거다. 민주당과 동맹? 좋은 일이다. 민주당과 운동의 전진 중 하나를 택한다면? 운동의 전진이 훨씬 중요하다. 솔직히 말해 민주당이 동맹에 참여한 것은 운동이 전진한 데 따른 부산물이며, 거쳐가는 과정일 따름이다.
주류정치체제를 대체할 대안은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에게서 나올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노동대중에게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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