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사회 운영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블로그 주제를 마르크스주의(맑스주의)로 정하고 관련된 블로그들을 찾아봤다. 아무래도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한 블로그가 한두개쯤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보다 내가 순진했던 것 같다. 그런 블로그를 아직 찾지 못했다. 진보적 입장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만 명확히 마르크스주의를 방법삼아 사회를 분석하는 블로그는 희소한 듯하다.

하긴 마르크스가 죽은 개 취급 당한 게 수십년도 더 됐으니까. 특히나 한국처럼 87년 이후 운동이 성장하자마자 소련이 붕괴하면서 좌파들이 수없이 전향하고 (사실 소련처럼 억압적인 사회가 사회주의네 하고 행세하던 게 망한 거야말로 경축할만한 일이다) 북한처럼 억압적인 국가가 사회주의라고 자처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럴 법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쨋든,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하나씩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마르크스로 검색해 들어간 터프수달님의 블로그에서 이런 말을 봤다.

칼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창시했고, 사회주의국가가 만들어지길 그토록 원했지만, 정작 막상 사회주의 국가를 만든 후의 운영에 대해서는 그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채 세상을 떠났다

과연 그럴까? 터프수달님이 마르크스를 욕하기 위해서 쓴 말도 아니고, 오히려 빨갱이 마녀사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쓴 글에 나온 말이긴 하지만, 잠깐 저 말에 대해서만 다뤄보기로 한다. (사회주의에 대한 오해를 제외한 터프수달님의 현실에 대한 주장 자체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말을 우선 밝힌다.) 위 말은 상식이지만, 잘못된 말이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의 창시자도 아니고 사회운영의 방법론에 대해서도 썼다.

사회주의 창시자?

마르크스가 살던 시대에 사회주의는 오웬, 푸리에 등 공상적 사회주의를 가리키는 말로 더 많이 사용됐다. 그리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신들을 공상적 사회주의자들과 대비시키기 위해 과학적 사회주의자라고 불렀다.

공상적 사회주의든 과학적 사회주의든 어쨌든,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 ─ 사회 전체의 부가 증가하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굶주림에 죽어가는 것 ─ 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해결책(개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의미에서)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했다.

사회주의 국가?

마르크스에게 “사회주의 국가”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존립 근거를 잃고 고사(枯死:말라 죽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기구이기 때문에 계급 자체를 없앨 사회주의 사회가 된다면 국가가 더는 필요없어질 것이고 자연히 소멸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를 이은 레닌의 저작에서도 발견된다.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국가는 소멸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레닌은 이 책 덕분에 무정부주의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레닌 자신이 집권하고 있던 1920년대 초의 소련에 대해 레닌은 “관료적으로 퇴보한 노동자 국가”라고 씁쓸하게 말한다. 그는 그 때까지도 독일 등 서구 유럽으로 혁명이 확산할 것이라고 믿었고, 그렇게 돼서 어서 국가가 소멸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라는 말은 스탈린의 창조물이다. 그러나 기괴한 창조물이다. 스탈린 이전의 어떤 사회주의자들도 사회주의 국가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1920년대 말에 스탈린이 소련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일국 사회주의’를 발표했을 때 트로츠키와 같은 고참 사회주의자들은 경악했던 것이다. (그 전까지 모든 사회주의자들은 혁명은 국제적으로 확산돼 대부분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를 집어삼킬 것이 분명하고, 혁명이 국제적이지 않으면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스탈린도.

사회주의 사회의 운영론

사회주의 사회의 운영 방식을 남겨놓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오히려 마르크스 이전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운영방식을 지나치게 세세히 정한 게 문제였다. 그들은 가보지도 않은 세상을 상상해 마음대로 정해놓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했다.

마르크스는 아직 오지 않은 세상에 대해 말을 아꼈다. 그는 어떤 세력이 어떻게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낼 수 있는가에 집중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새 사회를 언뜻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철저히 조사해서 책으로 남겼다. 그것이 바로 《프랑스 내전》이다.

사회나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파리 꼬뮌 이야기를 언뜻 들어봤을 것이다. 나는 교과서에 한 줄 실려있는 것을 봤다. 시민들이 파리에서 봉기했지만 진압당했다 뭐 그런 내용이다. 바로 이 파리 꼬뮌의 70여 일의 역사적인 항쟁을 다룬 책이 《프랑스 내전》인데, 마르크스는 그 70일 간의 사회운영 모습에서 사회주의 사회의 기본 원리를 발견하고 다음과 같이 자세히 묘사했다.

꼬뮌 최초의 포고령은 …… 상비군을 철폐하고, 그것을 무장한 인민으로 대체하는 것이었습니다.

꼬뮌은 시의 다양한 구(區)에서 보통선거로 선출되었으며, 단기간 책임지고 소환 가능한 시의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 구성원의 대다수는 자연스레 노동자, 혹은 노동계급의 공인된 대표들이었습니다. 꼬뮌은 의회기구가 아니라 상설 행정부인 동시에 입법부였던 것입니다. 경찰은 중앙정부의 하수인 역할을 더 이상 계속하지 않고, 그 정치적 성격이 벗겨진 다음, 꼬뮌에 책임을 지고 언제라도 소환 가능한 꼬뮌의 집행인으로 바뀌었습니다. 행정부의 다른 모든 부서의 관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꼬뮌의 구성원들은 노동자의 임금을 받고 공공 서비스를 수행해야만 했습니다. ……

사이비 독립성의 가면이 법관들로부터 벗겨졌습니다. 그 가면은 법관들이 역대 모든 정부에 대해 충성의 맹세를 한 다음 다시 그것을 파기하곤 했던 자신들의 비굴한 복종을 은폐하는 데 기여했던 것입니다. 나머지 관리들과 마찬가지로, 치안판사와 법관도 선거로 선출되고, 책임을 져야 했으며, 소환될 수 있어야 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의해 왜곡당하고, 억압국가 소련ㆍ중국ㆍ북한 등에 의해 또다시 왜곡당한 비운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진정 위대한 사상가이자 실천가다.

당장 바로 위의 인용문만 보라. “사이비 독립성의 가면 … 그 가면은 법관들이 역대 모든 정부에 대해 충성의 맹세를 한 다음 다시 그것을 파기하곤 했던 자신들의 비굴한 복종을 은폐하는 데 기여했던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비판은 오늘날의 현실에도 얼마나 적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