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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친일 우익의 전교조 마녀사냥을 오히려 기회로 만들자

△일본 천황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이명박 ─ 난 이명박이 일본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출신 성분에 관계 없이 그는 친일파다. 취약한 국내기반 덕에 친미만이 살 길인 ‘대한민국’의 지배계급에게 한미일 동맹은 신주단지이고, 따라서 이 땅 지배계급은 본질적으로 친일파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해방된 조선에 점령군으로 들이닥쳤다. 미군은 자신들을 환영하러 나온 인파에 총을 쏘았다. 그리고 친일 경찰들을 복권시켰다. 미군 사령관은 이렇게 말했다.

“저들이 일제에 충성했다면, 우리에게도 충성할 것이다.”(정확하게 옮긴 것은 아니다.)

미국은 남한에서 자신의 파트너를 찾았고, 이승만이 낙점됐다. 김구는 우파이고 사회주의를 싫어했지만 미국에게는 너무 위험했다. 확실한 민족주의자였고, 독자성이 매우 강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국내 기반이 없는 이승만은 미국을 등에 업고 미국이 낙점한 친일파들을 국내 파트너로 삼았다.

이승만은 친일파에 대한 엄청난 여론의 분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꾸렸지만, 기회를 보아 곧 해산시켰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출발이다.

5ㆍ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다까끼 마사오의 한국식 이름은 박정희. 그는 만주에서 독립군을 때려잡던 친일 장교였으며, 해방정국에서는 기회주의적으로 좌익 운동에 가담했다가 여수ㆍ순천 봉기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이자 동료들을 팔아먹고 살아남은 자다.

오늘날 뉴라이트가 그들의 뒤를 잇고 있다. 청산되지 못한 통한의 역사가 오늘날까지 살아 숨쉬며 이 땅의 숨구멍을 틀어막고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

적어도 남한[각주:1]에서는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무시하는 세력이 건재하다.

프랑스에서 소위 이 절차적 민주주의(맑스주의에서는 이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부른다)가 완성되기까지 100년이 넘게 걸렸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권력을 잃은 가톨릭과 보수 세력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다. 그들은 온갖 방법으로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 했다. (이를 사회과학적 용어로 ‘반동’이라 한다. 현실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뜻을 더럽게 만든 대표적인 용어다.)

이들은 1898년, 유태인 장교 드레퓌스를 무고하게 감옥에 처넣는다. 그리고 프랑스 진보진영은 똘똘뭉쳐 1906년 드레퓌스를 무죄로 만들어낸다. 《핀란드 역으로》라는, 현대의 지성들에 대해 다룬 책에서는 이를 진보적 부르주아지의 마지막 불꽃으로 묘사한다. (우리나라에서 ‘진보적 부르주아지’의 마지막 불꽃은 아마도 87년 6월 항쟁쯤이 되겠다.)

어쨌든, 프랑스는 이 과정을 통해 결국 봉건적 잔재를 없애버리고 절차적 민주주의의 토대를 완성한다.

남한에서 절차적 민주주의

트로츠키가 말한 바대로, 의회민주주의(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지배계급이 어쩔 수없이 노동자들의 정치참여를 허용한, 불안정한 체제다.

그러나 지배계급이 이를 깨닫고 노동자(그러니까, 요즘 말로 번역하면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허용하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지배계급은 어떻게든 민주주의를 말살하려 애쓴다.

‘진보적’ 부르주아지(우리나라로 치면 민주당 되겠다)는 지배계급이라는 자신들의 본질(그러니까, 부정부패로 모은 재산, 기존 지배계급과 맺은 인연, 지연, 학연, 혈연, 자신들의 지위 등등)과, ‘이런 식으로 막나가면 진짜 다 망할 텐데’ 하는 불안감 사이에서 번뇌한다. 

따라서 이들의 행동은 우유부단할 수밖에 없다. 종부세 법안에 대해 큰소리 치고 결국 타협하는 가련한 꼴을 보면 민주당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저들은 우유부단해서 저들에게 우리 운명을 맡기면 사태를 말아먹을 뿐이다.

뉴라이트와 근현대사 교과서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 같은 것이 바로 한국의 전교조를 둘러싼 지배계급의 이념공세다.

이것은 두 전선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하나는 학생들에게 일제고사 선택권을 준 전교조 교사를 해임한 것과,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을 지시한 것이다. 그리고 한홍구 교수의 말대로 이 두 사건은 근본적으로 비슷한 성격의 탄압이다.(현대사 특강 뒤엔 전교조 해직사태 온다) 교사들의 빨갱이 교육 문제다! 라는 공정택의 인식 말이다. 이는 한국의 수구적 지배계급 전체의 인식이다.

이 전선은 위기이자 기회다. 이 쟁점은 결코 진보진영에 불리하지 않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전교조, 민주노총, 그리고 민주시민들이 이니셔티브를 발휘해야 한다. 촛불로 시민들이 모아준 힘을 진보진영 전체가 나서서 활용해야 한다.

그래서 뉴라이트의 친일 교육 시도를 무산시키고, 전교조 탄압을 무력화하고, 공정책을 쫓아내고, 민주적 교육제도를 확립한다면 ‘대한민국’은 비로소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고, 더 높은 단계 ─ 경제적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기 수월해질 것이다. (물론 이 둘은 순식간에 뒤섞이면서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일어날 수 있다. 이 점은 100년 전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가 밝힌 바 있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획득하는 투쟁에서 앞장 선 노동계급이 이 민주주의를 경제적 분야까지 확대하려 들 것이기 때문에 투쟁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획득하는 데서 끝나지 않은 것이라는 이론이다.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 Permanent Revolution’의 핵심이 바로 이거다. 연속혁명론은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입증됐다.)

기회다

이 기회에 이명박과 함께, 이 땅 친일파의 뿌리를 뽑아버리자.

위기는 곧 기회다. 제2의 촛불 항쟁이 시작될 때까지 맘을 굳게 먹고 전력을 다해야 한다.

일단, 전교조에 응원 글을 쓰자 : 전교조 홈페이지 바로 가기

  1. 나는 이 정통성 없는 정부를 차마 ‘우리나라’라고 하기 민망하다. 물론, 그렇다고 북한이 정통성 있다는 것은 아니다. 김일성 역시 독립투사들을 숙청하며 소련을 등에 업고 집권한 자다.(“미국 놈 믿지 말고, 소련 놈에 속지 말라”) 어쨌든 그래서 나는 이 땅에 들어선 국가를 부를 때 ‘남한’이란 말이 맘에 편하다. 차선책은 따옴표 친 ‘대한민국’, 혹은 한국이다. 사실, 그냥 이 땅이라고 부르는 것이 편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땅은 나에게 자랑스런 공간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 nooe 2008.12.15 05:57 신고

    '파면조치를 철회시켜야 하는 목표'

    적어도 드레퓌스 사건과 확실히 같은 점이군요.

  • A2 2008.12.15 12:39

    근데 사실 우익은 아니잖아요.ㅠㅠ

  • 非틀 2008.12.16 01:46 신고

    이 땅에 조금씩 뜨거워지는 혁명의 기운이 느껴지는 건 저뿐일까요?

  • altcre 2008.12.17 02:38

    대수님, 건강한 낙천성과 열정, 보기 좋습니다.^^
    〈주1〉은 아주 적확한 지적입니다. 그 몇 단어들에 대한 내 느낌과 정확히 일치해요.

  • 허세만 2008.12.26 02:47

    사실 애매한게;;
    한미일 공조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한국 지배계급에게, 잘 알고 있는데.

    이승만이 왜 일본을 그렇게 배타시했는지에 대해서 그의 개인적 배경 외의, 사회적 배경을 잘 모르겠네요;; 그게 고민입니다.

    • 허대수 2008.12.26 11:05

      해방 직후의 이승만은 미군정의 입맛에 딱 맞는 자는 아니었습니다. 방금 점령에서 풀려난 국가의 국민들이 일본 친화적인 지도자를 용인할 리 만무한 것이죠. 미군정이 이승만을 파트너로 택한 것은 그나마 반공이며 국내기반이 적은 ‘독립운동가’라는 점에서 자기들 입맛에 맞았기 때문이었죠. 미군정과 더욱 협력할 수 있는 친일파는 많았겠지만, 그런 자들을 세웠다면 국내기반은 적은 정도가 아니라 정부전복수준이 됐을 것입니다.
      (이승만의 ‘독자성’은 잘 알려져 있는데, 예컨대 미국의 뜻과는 다르게 시도때도 없이 북한을 침공하고싶어했죠. 때문에 미국으로서도 이승만은 골치였습니다.)
      아울러 제 생각에는, 이런 연유로, 한미일공조가 완전히 정착되기 시작한 것은 63년의 한일조약부터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