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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여전히 유용한 마르크스의 계급 개념

△버거킹 노동자. 헌법을 보면 사장과 노동자는 평등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이런 게 계급이다.

짤막하게 쓰겠다. 하나하나 밝히기엔 시간도 없을 뿐더러, 훌륭하게 계급개념을 밝힌 글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 쓰면서 인용한 것들만 열심히 읽어도 어느정도 이해가 될 터. 굳이 그런 글들과 대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웹서핑을 하다가 “어라, 계급이 뭐지?” 하는 의문이 든 사람에게 “아~ 대충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면 된다고, 딱 그정도만 바라고 쓰겠다.

오늘 드디어 《혁명만세》(마크 스틸, 도서출판 바람구두)를 읽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서점에서 발견해 키득대며 읽다가 나중에 꼭 구해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후 일주일만이다.

아직 40여 페이지밖에 못 읽었지만, 계급 개념에 대해 너무나 날카롭게 짚은 부분이 있어서 메모해놓지 않을 수 없었다. 내친김에 공개적으로 쓰는 게 낫겠다 싶었다.

계급에 대한 오해

많은 사람들이 ‘계급’을 낡은 개념으로 여긴다. 심지어 노동계급이 감소하고 있다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이 중간계급이 됐다는 거다.

《혁명만세》의 저자 마크 스틸은 이렇게 설명한다.

오늘날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휴대용 컴퓨터와 핸드폰 … 이런 발명품들이 그들의 삶을 보다 편안하게 만들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보다는 출퇴근하는 동안에도 일을 해야 하는 사무직 노동자로 만들었다는 편이 더 옳다. 19세기 발직공장 노동자들도 그렇지는 않았다. 그들이 퇴근하면서도 계속 베틀을 휴대하고 빙빙 돌려야 했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대부분의 비제조업 일자리들은 ‘중간계급’이란 호칭에 어울리지 않는다. 버거킹에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이렇게 외침으로써 카운터의 직원을 얼떨떨하게 만드시려는가? “당신은 당신이 그건 줄 알지, 응? 이 거만한 중간계급 속물아!”

《혁명만세》 40p

서비스직은 노동계급이 아니라는 식의 주장이 있어서 마크 스틸이 저런 반박을 하는 거다.

계급 개념을 라이프스타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건 막스 베버의 접근인데, 계급을 무슨 몇 단계로 만들어놔서 도무지 내가 어떤 계급인지 헷갈리게 될 수도 있다. 마크 스틸은 이렇게 말한다.

계급이란 개념은 라이프스타일 혹은 패션과도 연관될 수 있다. 축구하러 다니는지, 아니면 극장에 다니는지? 내린 커피를 마시는지, 아니면 설탕 네 스푼의 홍차를 마시는지? 이 중 당신이 원하는 쪽 어디든 선택할 수 있으며, 나아가 대략 6개월마다 한 번씩 다른 계급으로 바꿀 수도 있겠다.

《혁명만세》 40p, 강조는 허대수

막스 베버식 계급 설정 설명 그 자체를 위한 설명일 뿐이다. 마크 스틸이 비꼰대로, 그 설명에 의하면 ‘대략 6개월마다 한 번씩 다른 계급으로 바꿀 수도 있겠다.’ 분류는 재미삼아 하는 게 아니다. 필요가 있을 때 하는 거다. 마르크스는 사회가 계급으로 나뉘어진 것이 역사발전의 원동력이 되거나 사회 파멸의 원인이 됐다고 썼다.

이제까지 사회의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 자유민과 노예, 세습 귀족과 평민, 남작과 농노, 동업자 조합원과 직인, 요컨대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부단히 대립했으며,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끊임없이 투쟁을 벌여왔다. 이 투쟁은 항상 전체 사회의 혁명적인 개조로 끝나거나 투쟁계급들의 공동 몰락으로 귀결되었다.

카를 마르크스ㆍ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선언》, 책세상, 2005, 16p, 강조는 허대수

이쯤은 설명하려고 해야 계급 개념이 필요한 거다.

계급 ─ 사회 구성 방식

마크 스틸은 계급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해당 사회가 물건을 생산하는 방식과 한 인물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의해 결정되었을 때의 계급이라야 실질적인 의미를 지닌다.

앞의 책, 같은 쪽

계급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존 몰리뉴가 쓴 다음 글에 잘 나와 있다. 좀 어렵지만 꼼꼼히 봐라.

맑스주의 계급론을 더 제대로 이해하려면 세 가지 요점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첫째, 사회의 생산관계는 하나의 전체인 특정 생산체제를 이룬다는 것과 계급은 이 체제 전체에서 그것이 하는 구실에 따라 규정된다는 것이다. 개별적 경우[개인의 사례]가 아니라 체제 전체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둘째, 계급은 사람과 사물(생산수단 ― 토지ㆍ기계ㆍ공장 등) 사이의 관계 문제일 뿐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 문제이기도 하다. 즉, 계급은 서로 충돌하는 과정을 거쳐 형성된다.

셋째, 그런 충돌의 원인은 시기심이나 라이프스타일의 차이, 심지어 단순한 불평등이 아니라 착취적 생산관계, 즉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의 노동에서 잉여(이윤)를 체계적으로 수취하는 것 때문이다. 계급투쟁은 생산과정 상의 착취에서 비롯하고, 거기에서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된다.

계급이란 무엇인가?(존 몰리뉴, 〈맞불〉 15호, 2006.10.14)

몰리뉴의 위 글은 강추다. 맑스주의 계급 개념에 대한 가장 정교한 글이다. 시간이 있다면 보기 바란다.

둘이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열심히 일하는데, 한 쪽은 수백억을 벌고 한 쪽은 월 88만 원을 번다. 왜? 생산 수단을 통제하냐 못하냐 차이가 나니까 그런 거다. 자본이 있으면 공장, 원료, 노동력 등을 구입할 수 있다.(노동력을 구입하는 거다. 노동 시간을 구입하는 게 아니다. 일단 고용하면 막 부려먹잖아. 시급도 제대로 안 주고 말야. 맑스는 이 점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런데 몰리뉴 말은 내가 방금 설명한 것처럼만 설명하면, ‘뭐 괜찮기는 한데 부족해’라는 거다. 원문 보면 안다. 그래서 몰리뉴는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한 거다. 그래서 좀더 예시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생산수단이 없어도 노동과정을 통제하는 관리자가 있고 관리자를 통제하는 자본가도 있다. 어찌보면 생산에 기여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체제 전체에서 생산에 기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얘가 생산을 하는 건지 마는 건지 미심쩍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헷갈리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하나 나눌 수 없다고 골머리를 너무 썩을 필요는 없다. 맑스주의는 이런 식으로 모든 사회집단을 하나하나 구분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대략 이렇게 이해하면 쉬울 거다. 사회 전체가 마치 자석 N극과 S극에 좌악 늘어선 철가루처럼, 완전히 딱 잘라 구분하긴 좀 그렇지만, 분명히 구분되긴 하는 그런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 양 극에서 한 쪽은 자본을 가지고 착취를 하는 쪽이고 다른 쪽은 노동력을 ‘소유’해 그걸로 먹고 사는 쪽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른 사회세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대체로 양 극쪽에 의존해야 한다. 음… 최하위관리직? 거의 노동계급일 수도 있다. 교사? 오늘날 노동계급으로 공인받았다. CEO? 자본을 소유하진 않았다. 근데 얘가 노동계급? 에이~ 절대 아니다. 이렇게 대략, 어느 편인지 혹은 어느 편에 가까운지 설명할 수 있으면 큰 문제 없지 않은가?

계급 ─ 사회가 ‘개판’인 이유

자본주의는 제도적으로는 계급을 해체했다. 그러나 ‘사회 관계’ 속에 계급은 여전히 남아있다. 마크 스틸의 설명을 보자.

당신이 어느 보험사의 중역이라면 어느 지점이 개설되고 폐쇄되는 결정에 일정한 영향력을 가질 것이다. 그런데 당신이 전화 받는 일을 하거나 회사경비원, 혹은 점심시간에 찾아오는 샌드위치 배달부라면 그런 영향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저는 요리할 때 코리앤더 향신료를 쓰구요, 〈심야리뷰〉 프로그램도 꼭 보니깐, 저를 해고하셔서는 안 되죠”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혁명만세》 40p

이명박이 아무리 멍청하고 욕을 먹어도, 우리는 이명박이 하는 일을 제도적으로 저지하기 매우 힘들다. 이명박은 (여론의 눈치만 안 보면) 언제든 뭐든간에 맘대로 부수고 바꿀 수 있다. 이명박에겐 권한이 있다. 

그러나 여론은 무형이다. 제도 바깥에 있는 힘이다. 이게 실제로 힘을 발휘하려면 지배계급에게 엄청난 위협감을 줘야 한다. 이런 게 바로 계급사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자본)는 공적 영역을 담당한다. 회사 하나 망하면 전체 사회가 난리 나잖나. 우리집 의자가 부서지는 거랑 완전히 다른 일이다. 애인이랑 헤어져서 핸드폰을 집어던지는 일이야 내맘대로 할 수 있고, 사회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는 일이지만(즉, 사적 영역이지만), 회사 하나 망하는 건 공적인 일이란 말이다.

한 회사가 노동자 10만 명을 해고한다고 생각해봐라. 끔찍하다. 그런데 자본가들은 그걸 ‘경영권’이라고 부른다. ‘사유재산’이니 맘대로 하겠다는 거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는 항상 긴장이 넘친다.

상식적으로는 10만 명을 해고하면 안 될 거 같은데, 신성불가침한 ‘사유재산권’이 사람들의 인식 앞에서 떡하니 버티고 선다. (그래서 ‘사회주의’란 말은, 이런 ‘공적 사유재산’을 사회화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나왔다.)

이러니 계급사회라는 거다. 그리고 거기서 피해를 입고 있는 우리가 바로 피억압계급이다. 아들을 맘대로 어디 취업시켰다 뺐다 할 수 있는 이명박, 부를 세습하는 이건희 같은 이들을 지배계급이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지배계급이 물질적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는한, 서민을 위한 정치는 언제까지나 예외적 일일 뿐이다.

이상 계급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었다. 자세히 알고싶은 사람들에게는 다음 글을 권한다. 링크 연결돼 있으니 읽어 보라.

  • 사용자 안형우 2009.01.18 01:37 신고

    젠장, 쓰다보니 길어졌다;;

  • 정원기생자 2009.01.18 01:54

    잘 읽었습니다. 피부에 와닿네요. 트랙백 두 개 달고 갑니다.^^ 제가 공부한 것 중엔, 관리직이나 전문직을 개념화한 에릭 올린 라이트란 사회학자의 논의가 있는데, 걔네들은 생산수단을 갖지 못하는데 작업장에서의 일정한 통제수단을 갖고 있지요. 거기에 취해서 폼잡지만, 그들도 결국 노동자인 건 사실이죠. 근데 걔네들은 그걸 모르고 계속 기어올라가려고 하죠. 그러니 노동계급 사이의 연대가 어려워지는.. 뭐 그런.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중간계급이라고 부르면서, 자본주의 체제가 존속가능하게 된 계기로 파악하기도 하고.. 공장장보다 공장 십장이 더 밉고, 일제 때 일본인보다 친일파 조선인이 더 밉죠. 전 이들은 '기생계급'으로 보고 싶네요^^

    • 사용자 안형우 2009.01.19 22:43 신고

      중간계급엔 참 다양한 계층이 있죠. 변호사들은 운동을 이끌기도 한 대표적인 중간계급이예요. 십장들... 또 공장마다 다르게 볼 수 있겠죠. 전태일도 말하자면 하위직 중간관리자였죠.
      그 때 그 때 구체적인 조건에서 분석하는 수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 그리고 기생계급... 제 생각에 기생계급이란 말은 자본가나 중간계급 상층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말인 것 같군요. ^^

  • 허세만 2009.02.21 23:57

    마크 스틸이 라이프스타일과 계급을 연결시킨 것이 그의 사상과 안 맞는 것 같아서 책을 읽어보니,

    비꼰 거였군요?;;;

    저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블로그의 인용만으로는 그의 의도를 다소 파악하기 힘들었습니다 ㅠㅠ

  • 허세만 2009.02.23 00:39 신고

    전태일이 하위직 중간관리자였군요 ㅎㅎ 처음 안 이야기네요. 고맙습니다 ㅎㅎ

    아, 추가로 이야기하자면, 구해근 교수의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보면 1970년대 현대 계열사의 첫 파업은 과장급인지 부장급 인사가 주도했다고 합니다. ^^; 잘 기억이 안 나네요 ㄷㄷㄷ;;

    • 사용자 안형우 2009.02.23 10:06 신고

      아, 그런 내용이 있었던가요. ㅋ
      어쨌든 최근 삼성에서도 노조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중간관리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한 바 있죠. 기계적 구분은 현실 분석에서 오류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