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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투쟁에서 실용주의는 왜 실용적이지도 못한가 -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전주 지회의 징계 일부 수용 가능성에 대해

<레프트21>에서 '[현대차 비정규직] 전주지회장은 교섭에 연연 말고 투쟁에 나서야'라는 글을 봤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용기를 줬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보복으로 현대차 사측이 대량 징계를 감행하고 있는 시점에 비정규직 노조 전주 지회장이 "징계 철회"가 아니라 "징계 최소화"로 요구사항을 수정하고 협상에 임하려는 태도를 비판하는 기사다. 일부 인용해 본다.

현대차 사측이 울산, 아산에 이어 전주 공장에서도 지난해 비정규직 점거파업에 대한 보복성 징계의 칼을 빼 들었다. 해고 15명, 정직 9명, 감봉 2백80명 등 투쟁했던 조합원 대부분이 징계를 당했다.

이로써 울산ㆍ아산ㆍ전주 등 비정규직 3지회에서 1천5백여 명이 징계되는 등 비정규직 노조를 와해시키려는 사측의 공격이 거세다.

그런데 전주지회 강성희 지회장은 특근 거부 투쟁 등에 조합원들이 대거 참가하는 등 동력이 있는데도, 시간을 끌며 ‘징계 최소화’로 요구를 후퇴하려 해 연일 논란을 빚고 있다.

강성희 지회장은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위해서도 징계 최소화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많은 조합원들은 징계를 조금도 수용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다수 대의원들은 지회장에 반발해 “징계 최소화는 하청업체 사장들과 그들의 징계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병무, [현대차 비정규직] 전주지회장은 교섭에 연연 말고 투쟁에 나서야, 레프트21, 2011-05-21

이런 기사를 대할 때 양편향의 반응이 나오는 것을 종종 본다.

첫째는 "실망이다" 하는 반응이다. "역시 믿을 놈이 없다" 하는 식의 반응 말이다. 나는 레프트21 기사의 주장에 동의하지만, 한편으로 전주지회 강성희 지회장의 심정에 공감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어쩌면 징계 철회를 내걸고 싸우다가 징계를 철회시키지 못하고 지금 징계자들만 징계 확정을 당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문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받아들여질 것 같은 "징계 최소화" 같은 걸로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고 하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할 경우 실제로 징계자가 조금이나마 줄어들 가능성이 아예 없지 않다.

당장 너무나 힘든 사람이 한둘이 아니고, 그런 사람들이 징계를 당해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면 리더는 밤에 잠도 제대로 오지 않을 것이 뻔하다. '내가 책임지고 했던 투쟁 때문에 친구들, 후배들, 선배들이 수없이 징계를 당한다' 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짓눌릴 것이다. 그들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 주고 싶은 게 심정일 수 있다.

15명이 해고를 당한다고 한다. "해고는 살인이다" 하는 구호가 얼마나 현실적인 구호인지, 쌍용차 해고/휴직 노동자들의 연쇄 자살이 보여 주고 있다. 해고는 엄청나게 두려운 일이다. 해고자를 한 명이라도 줄이기 위해 영혼이라도 팔라면 팔 수 있을, 그런 심정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누가 쉽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쉽게 하는 비판, 쉽게 하는 실망을 싫어한다. 천박하다.

어쩔 수 없다

두 번째 편향적 반응은 바로, "어쩔 수 없다" 하는 반응이다. "얼마나 힘들었겠냐" 하면서 레프트21 기사 같은 비판기사 자체를 비난하는 반응이다.

이것은 패배적 관점이다. 사람들의 기층 투쟁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확신이 없다면 쉽게 이런 반응을 할 수 있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고, 지금 잠시 숙여서 떡고물 조금이라도 얻자고 생각할 때 이런 반응은 쉽게 나온다.

또한 이것은 비개입적 관점, 칸막이를 치는 관점이다. 운동을 하나의 전체로 사고하지 못하고, 각각의 모래알로 이루어진 여러 투쟁의 단순 총합으로만 보는 관점이다.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을 우리 전체의 투쟁으로 사고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일은 그들이 결정한 대로 따라야 한다" 하는 관점이 나오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투쟁을 우리의 투쟁으로 사고한다면, 주체의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편향보다 두 번째 편향이 더 나쁘다.

단기적 시야와 장기적 시야

어쩔 수 없어서, 지금 조금의 피해라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조금 숙이고 들어가는 것. 이것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노조가 징계를 반대하는 것과, 징계가 과하다고 하는 것 사이에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 징계는 부당하다 = 파업은 정당했다
  • 징계는 과하다 = 파업은 부당했다

곧장 이 도식이 성립한다.

노동조합은 이데올로기 전쟁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업은 잘못이라는 비난을 듣고 산다. 당장 노동조합이 징계를 일부라도 인정하게 되면, 파업은 부당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된다. 가장 신념이 취약했던 사람들부터 신념이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파업은 징계받을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치고들어올 것이다.

신념을 버리지 않았던 사람들도 패배주의에 젖을 것이다. "나는 파업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고, 노조는 쉽게 대의를 버린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불신은 조직의 힘을 야금야금 갉아 먹는다.

지금 두드려 맞더라도,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는 사람과,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조금만 봐 달라고 하는 사람. 누가 더 큰 힘을 가지게 될까?

그래서 실용주의는 실용조차 얻지 못한다. 노동조합의 힘은 투쟁력에서 나온다. 투쟁력은 정당성에 대한 확신과 승리의 가능성에서 나온다.

징계를 노동조합이 일부 수용하는 것은, 사측이 징계를 하는 것과 천지 차이의 효과를 낳는다. 사측이 "너 징계 받을 만했어" 하고 말할 때 "미친 놈들" 하고 대꾸할 수 있는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이 "너 징계 받을 만했어" 하고 말하면 혼란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징계를 일부 수용한다면, 정당성에 대한 확신이 줄어든다. 그러면 기층 투쟁력이 약화한다. 그러면 사측은, 지금 당장 징계 인원을 조금 줄여 주는 대신 나중에 노조를 말살할 기회를 잡게 될 것이다.

그래서 결국 장기적으로 볼 때 더 많은 고통을 낳게 될 것이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한국의 노동자들 전체를 고무했다. 그래서 이 운동은 바로 우리의 운동이다.

그런데 이 중 일부가 고개 숙인다면, 전체 노동자들의 사기가 다소라도 떨어질 것이다. 

실용적 대안을 택하기까지 얼마나 큰 고뇌가 있을지, 잠시 숙인다는 굴욕이 고통임에도 그런 것을 택하기까지 얼마나 고심했을지,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멀리 봐야 한다. 그런 고통 겪은 사람들이 한둘이겠는가. 그러면서 남한의 노동운동은 성장해 왔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전주 지회가 부디 크게, 그리고 길게 봤으면 한다. 그래서 지금 당장 징계를 못 막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징계를 일부라도 수용하는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현대차 비정규직 전주 지회뿐 아니라 전체 현대차 노동자, 전체 금속 노동자, 남한의 노동자들의 처지를 악화시키는 악(惡)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