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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

반값등록금 공약들을 보며 느끼는 점 - 궁색해지는 ‘비권’들

언론을 보면 반값등록금이 전체 대학 선거운동의 이슈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SBS 뉴스를 보자.

내년도 총학생회 선거에 모두 4개의 팀이 출마를 선언한 고려대.

운동권에서 2곳, 비운동권에서 2곳이 각각 출마를 했지만 '반값등록금' 문제에 있어선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치적 성향과 관계 없이 모두 반값등록금 정책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다른 대학들에서도 반값등록금 추진 운동에 동참하겠단 의사를 분명히 밝힌 비운동권 후보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건 예전 고대 비권 총학생회장인 박상하 씨가 쓴 글을 보고서다. 잠깐 인용을 좀 해 볼까.

당신들이 외치는 학생을 위한 학생회라는 위선에 이젠 치가 떨립니다. 김지윤씨가 학생사회를 위해서 한 것이 무엇입니까? 학생회가 등록금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거짓말을 몇 년째 해대면서 학생들을 기만한 것? 왜 이러십니까. 학생회 바닥 구른지가 횟수로 하면 9년이 넘을텐데 불가능하다는거 알지 않나요? 9년동안 등록금이 낮아 진적 있습니까? 패배주의적이라고요? 단연코 아닙니다. 물론 이상적으로는 가능합니다. 학생들이 모두다 등록금 낼 능력이 없어서 이 문제에 필사적으로 달려들고 매년 3월마다 연례적으로 있는 등록금 투쟁 모임에 학생들 전체가 모여서 본교를 압박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된다면 가능합니다.. 물론 정부도 심하게 압박을 느낄 것이고 표 의식해야 하는 국회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고대에 부자들이 많습니다. 부자가 아니더라도 등록금 낼 정도 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혹은 등투 나갈 시간에 장학금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고, 자존심 때문에 빌려 낼지 언정 언급하기 싫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게 우리가 처한 환경이에요. 상황을 정확하고 냉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뜬구름 잡지 말구요. 흐르는 강에 앉아서 이렇게 됐으면 좋겠네 저렇게 했으면 좋겠네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거 아닙니까? 가장 쉬운 것입니다.. 안되면 말고 뭐 이런 거는 던져버렸으면 좋겠습니다..

- 김지윤 씨는 학생들에게 사과해야 합니다(고파스에 로그인해야 볼 수 있다.)

이 글은 박상하 씨가 고려대생들만 사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인 ‘고파스’에 올린 글이라 외부 사람들은 볼 수가 없다. 재학생들을 위해 링크는 걸었다.

일단 사실관계 정정부터 해 보자. 김지윤은 학생회 바닥을 9년이나 구르지 않았다. 1학년 때부터 학생회를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입학하자마자는 교지인 <고대문화>에서 활동했고, 학생회 활동이라고는 2010년에 처음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전에 주로 했던 것은 고려대 반전네트워크 간사 활동이었고, 그러다가 2006년에 출교당해서 2008년에 학교에 돌아왔던 것이다.

이 사람들이 글을 쓰는 수준이라는 건 이렇다. 이미지가 팩트를 압도한다. 곳곳이 그렇다. 투쟁이 광범하게 벌어질 가능성은 없다는 거라든가, 고대에 부자들이 많다든가, 등록금 낼 정도 되는 사람이 많아서 투쟁이 안 벌어질 것이라든가 등등. 여튼간에 역사책만 조금 들춰봐도 들어맞지 않는 사실관계들이 많이 있다.

대학에서 시작된 유럽의 68년 반란만 예로 들자. 당시 대학생들이 바로 박상하 씨가 묘사하는 '부자는 아니더라도 등록금 낼 정도는 되는 학생들'이었다. 이 학생들이 혁명을 촉발했다.

요즘 같은 시기에 많은 학생들이 그리 혁명적이지도 않고, 투쟁에 잘 나서지도 않는 것은 맞다. 고액 등록금 문제가 해결되기 요원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많다. 하지만, 현재 그렇다는 것과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박상하 씨가 묘사하는 현재 모습 중 몇 가지는 맞다. 하지만 앞으로도 사람들이 늘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건 틀렸다.

부자 혹은 등록금을 내고도 버틸 정도의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그리 설득력 있지는 않다. 고대의 상류층 비율이 사회보다는 높을 수 있다. 학력이 대물림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등록금을 부모님이 내거나 회사에서 나오는 운동권 학생들도 많이 봐 온 나로서는 그것 때문에 등록금 투쟁조차 안 한다(거나 앞으로도 안 할 거라)는 식의 묘사가 별로 설득력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사실 박상하 씨가 펼치는 것은 사회적 위치가 의식으로 직결된다는 기계적 유물론이다.

등록금 투쟁의 역사 - ‘비권’의 패배주의

내가 주되게 다루고 싶은 논점은 ‘[등록금 인하는] 불가능하다는거 알지 않나요?’하는 부분이다. 박상하는 이게 패배주의가 아니라 현실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확히 패배주의다.

등록금 투쟁은 90년대부터 있어왔지만,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21세기 들어서다. 2000년에 여러 대학에서 본관 점거 투쟁이 벌어졌고 일부 대학에서 승리를 거두고 일부 대학은 패배했다. 대표적으로 패배한 곳이 성균관대인데, 당시 학부생 2명, 대학원생 2명이 출교당했고, 이렇다 할 반격을 하지 못했던 성균관대 학생운동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이후 투쟁들은 내가 02학번이고 그 때부터 매년 투쟁에 참가했으니 어느 정도 안다. 2002년에 고대에서 김정배 총장이 학생들 투쟁으로 사퇴했다. 매년 큰 투쟁이 있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매년 2천 명 이상 모여야 성사되는 비상학생총회가 성사됐다. 등록금을 동결시킨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당연히 이런 투쟁덕에 등록금 고율 인상이 저지됐다.

역설적으로 내 기억에 지난 10년 간 가장 고율의 등록금 인상이 됐던 때가 바로 박상하 씨가 총학생회장이었던 2007년이다. 7.5퍼센트 인상으로 당시 5년 간 최고의 등록금 인상률이었는데, 박상하 씨는 당시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서 예전엔 등록금 투쟁에 2천 만 원이 사용됐다면서 투쟁을 비난했다. 어이없는 일이었는데, 만약 2007년에도 등록금 인상률이 2006년처럼 6퍼센트에 머물렀다면 학생들은 32억을 덜 냈을 것이다.

2008년은 등록금 투쟁에서 전환적인 해다. 그 해 등록금 네트워크가 만들어졌고, 등록금은 사회적 의제가 됐다. 2000년대 초반부터 등록금 문제를 대학생들이 제기하고 투쟁해 온 성과였다. 박상하 씨는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2007년 말에 이명박이 반값등록금을 대선 공약으로 걸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학생들이 투쟁하지 않고 박상하 씨처럼 총장‘님’과 대화나 하고 ‘아 오르는 데는 이유가 있군요’ 했다면 이명박 같은 자가 그걸 공약으로 걸었을까.

올해 반값등록금 투쟁 또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투쟁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성과다. 2000년대 초반부터 쌓아 온 투쟁이 이런 분위기를 만든 거다. 2008년 말에 등록금이 동결됐다고 박상하 씨 총학의 뒤를 이은 고대공감대 정수환, 박종찬 총학생회가 자랑했다가 학생들의 비웃음을 샀던 걸 떠올려 보자. 경제 위기 속에서, 그간 쌓여 온 사회적 투쟁이 만들어 낸 성과를, 한 것도 없는 비권 총학생회가 자신들의 성과로 치장했기 때문에 비웃음을 산 것이었다. 등록금 동결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낸 총학생회라면 왜 그 해 투표에서 재선하지 못했을까.

올해 감사원은 왜 대학들을 감사했을까? 반값등록금 투쟁이 이명박의 레임덕과 결합되면서 정권의 위기를 창출할까 봐 두려워서였다.

감사원은 등록금을 12.5퍼센트는 내릴 수 있다고 지적했고, 대학들은 5퍼센트 줄이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게 투쟁의 성과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근시안

박상하 씨는 ‘비권’의 속성을 잘 드러내 준다. 학교 당국의 말은 철썩같이 믿으면서 ‘운동권’의 말은 어떻게든 부정하려고 한다. 그 편이 편하니 그런 것이다.

구체적 데이터는 학교 당국이 훨씬 많이 갖고 있으며, 더 세련된 어법을 구사할 수 있다. 그들은 많은 걸 갖고 있으니까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도 감출 수 없는 게 있다. 소나무 심는 데는 10억씩 사용하면서 교육의 평등을 위해서는 그다지도 돈을 아끼는 사실 자체를 감출 수는 없다. 이 당연한 사실을 박상하 씨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한 마디 말로 기각한다.

운동권 학생회들이 1년 안에 등록금을 인하하거나 동결할 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수년 간의 투쟁이 결실을 맺고 있는 이 시점에 여전히 ‘불가능’을 강변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심지어 대학들이 이런 투쟁의 결과로 내년에 등록금을 인하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올해 ‘고대녀’ 김지윤이 총학생회장 후보로 나간 ‘99%의 역습’ 선거운동본부에서 낸 유인물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사실 투쟁과 복지를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흔히 미시적인 사업들, 학생회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에 ‘복지’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그러나 등록금이나 수업권 등 핵심적 불만들을 해결하는 것은 복지가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비운동권’ 선본들이 미시적인 문제들을 ‘복지’라는 이름으로 강조하는 것은, 등록금·수업권 등 커다란 문제를 학생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관점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 ‘99%의 역습’은 ‘복지’에 무관심? 네거티브, 소모적인 논쟁? 학우들의 물음에 답합니다

박상하 씨가 표현하는 관점은 ‘불가능한 거 하지 말고 가능한 거나 하자. 불가능한 걸 가능하다고 하는 건 사기다’ 하는 관점이다. 그런데 이 표현은 정직하지도 않은 것일 수 있다. 사실 박상하 씨는 ‘등록금 좀 올라도 상관없지 않아? 이해할 만한데’ 하고 생각하는 것일지 모른다. 사실 그의 발언들을 보면 후자가 더 맞는 것으로 보인다.

“등록금이 비싸다면 과외를 하거나 알바를 해서라도 자기 힘으로 극복할 필요가 있다. 왜 세상을 쉽게만 해결하려 하는가?” “[등록금이] 어느 정도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 2007년 고대공감대 총학생회장 박상하 씨가 출마 직전 79호 대담에서 한 말

- 학우들의 진정한 불만에 공감도 없고, 학우들과 소통도 없었던 과거 총학생회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는 2007년 총학생회장 재임 당시, 학교 당국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등록금 인상을 이해할 만하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결론

박상하 씨 같은 ‘불가능하다’ 하는 관점만 있었다면 역사는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70년대에 반독재 투쟁을 하던 학생들에게 ‘독재는 타도되지 않아. 독재 타도할 수 있다고 거짓 선동좀 하지 마’ 하고 타이르던 학생이 연상될 뿐이다. (좀 거창한 비유기는 하다.)

비권들은 예전에는 등록금 인하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더니, 이제 와서는 운동권들이 일궈 놓은 성과 위에 올라타려고 한다. 다들 반값등록금 이야기를 한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건 운동권이 총학생회에 당선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 줄 뿐이다.

내년엔 그간 운동의 성과로 등록금이 적어도 동결되거나, 아니면 진짜로 인하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 본다. 학생 운동하는 분들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