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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석기 사퇴로 안된다. 이명박이 남아있다.

△이명박을 광주 학살자 전두환에 비유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일까?

“강호순[각주:1]이 이명박을 살렸다.”

많이들 하던 말이다. 나도 여기저기 “이명박은 좋아라 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밝혀졌을 때는 충격이었다.

한창 일하고 있는데 옆에서 말하는 소리를 들었더랬다.

“야, 이명박이 강호순 이용해서 용산 참사 덮으라고 했대!”

나는 당연히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놀랐고, 예상할만한 일이었지만 분노했다. 정말로 그럴 줄이야!

누군가 그랬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다고. 지금 이명박 정부가 하는 꼬라지가 딱 그짝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음날 〈한겨레〉를 보니까 의혹으로 쪽기사 처리했다. 그럼 그렇지 하고 생각했다. 얘들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허술한 놈들은 아니지. 이명박은 좋겠네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바로 다음날, 김유정 의원이 실제 문건을 폭로하면서 진실은 꼬리를 물고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멍청한 한승수가 문건이 있냐는 말에 이메일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답하면서 의혹은 더욱 커졌고, 결국 행정관이 사퇴했다.

꼬리자르기

이명박의 대응은 전형적인 꼬리자르기였다. 행정관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자폭했다. 네네~ 다아 제 잘못입니다~ 하고 떠나는 행정관. 이를 두고 〈한겨레〉 손준현 편집담당 부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위기에 빠진 도마뱀은 꼬리를 자른다. 그리고 재생된다. 그러나 다시 난 꼬리는 재차 재생될 수는 없다고 한다. …

잘라낸 꼬리는 무한재생되는 게 아니다. ‘꼬리 자르기 쇼’도 이제 막바지로 치닫는다. 도마뱀은 지금 어떤 표정일까.

손준현, 꼬리를 자른 그 도마뱀은…, 〈한겨레〉 2009.2.15

이명박은 이미 한 번 꼬리를 잘랐다. 바로 대선 때 BBK 문제다. 그 때 이명박은 김경준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결국 살아남았다. 자기 입으로 자기가 BBK 세웠다고 말하는 동영상이 공개됐는데도 말이다.

물론 그 외에는 모두 이명박은 정면돌파를 택했다. 뻔히 보이는 조작과 뻔히 보이는 거짓말도 당당하고 뚝심있게 하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이명박은 보여 줬다.

국민들 앞에 두 번이나 사과하고 미친 듯이 사람들을 때려잡은 촛불 정국, 747은 커녕 주가 반토막이 났는데도 ‘믿으라’는 말만 외쳐대는 뻔뻔함, 사람이 죽었는데 애도는커녕 조사하라고 지시한 후 살인마를 이용해 덮으려는 파렴치함. 이명박은 신기하게도 이런 상황을 돌파해왔다.

이명박과 계급투쟁

계급투쟁이라는 말은 역사가 짧은 말은 아닐 것이다. 중세 때는 아예 계급이 공식적으로 있었으니까. 그러나 계급투쟁을 역사의 동력으로 본 것은 마르크스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게 사실 과격한 말은 아니다. 영어로는 그냥 클래스다. 클래스 스트러글. 그냥 흔히 사용하는 말인데, 어째 이게 번역을 거치면서 아주 거친 말처럼 돼버렸다.

계급투쟁도 별게 아니다.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부하직원들이나 등쳐먹는 이사를 뒤에서 씹을 때, 이걸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번역하면 계급 갈등이다. 파업처럼 과격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직원들이 뭔가 건의한다면 그것도 소극적 계급 투쟁이다. 상사가 짜증나서 일을 열심히 안 하는 것도 ‘태업’이라는 전문용어로 엄연히 불리는 투쟁의 한 방식이다.

사실, 서명운동을 가장 온건한 대중행동으로 취급하는데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런 온갖 은밀하고 소극적인 ‘투쟁’들에 비하면 온건하다고만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계급투쟁의 방정식

어쨌든, 계급투쟁이란 말에 대한 거부감을 좀 덜었다면 계급투쟁의 방정식을 좀 살펴볼까 한다.

지금 이명박은 위기다. 지지율이 30퍼센트 대를 회복했다고 하지만 수많은 국민들이 이명박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을 품고있다. 이 상황에서 터진 용산 참사는 이명박을 위기로 몰아넣을 만한 사건이었다. 강호순 사건으로 용산 참사를 덮으라는 지시가 폭로된 것은 기름을 부은 격이다.

이 때문에 김석기도 사퇴했다. 김석기 사퇴를 ‘수순’으로 보는 사람도 많지만, 내 생각엔 글쎄다다. 사람이 하는 일을 모두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이명박은 운동이 없었다면 김석기를 내버려 뒀을 것이다.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다. 실제로 김석기는 자진사퇴를 권유받기 하루 전까지도 청장 취임 이후 계획을 세우며 들떠있었다고 한다. 이명박도 하루 전까지 고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석기에게 정권의 명운을 걸기에는 이명박도 벅찼나보다.

김석기 사퇴만으론 안 된다

김석기 사퇴로 대충 여론을 무마하려다가 터진 것이 이메일 지시다. 이건 간단하지 않다. 살인마에게 살해당한 사람들을 완전히 모욕한 짓거리며, 철거민들을 완전히 농락한 것이다. 이 정권의 파렴치함에 수많은 사람들이 치를 떨었을 것이다.

정권의 무능력함, 파렴치함이 만천하에 폭로됐다. 다만, 사람들은 재고 있다. 지난 1월 말 집회에서 촛불 이후 처음 도로에 진출하고 가슴 설렜던 사람들은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타이밍을 재고 있다.

촛불의 영감을 마음 깊은 곳까지 받았던 사람들은 이미 거리를 메우고 있다.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은 한 마디씩 물음을 던지고 있을 것이다. “될까? 촛불도 안 됐는데 다시 한다고 될까?” 그래도 촛불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몇 만 명만 모이면 나도 갈 텐데…”

이게 계급투쟁의 방정식이다. 5월 2일. 촛불을 든 1만 5천 중 중고생은 1만 남짓이었다. 38일 뒤인 6월 10일의 1백만에 비하면 너무 적은 숫자다. 하지만, 그게 종잣돈이 됐다.

나는 마오쩌둥을 독재자라고 생각하지만, 혁명투쟁을 할 당시의 마오는 그래도 투쟁가였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마오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럴 때 그가 한 말만큼 적절한 게 없기 때문이다.

“작은 불씨 하나가 들판을 불태운다”

불씨가 전부냐? 아니다. 들판이 온통 말라 있어야 불이 순식간에 번질 거다. 지금 사람들은 충분히 열받았다. 누구 하나가 불 댕기기만 기다리고 있다.

이런 때, 앞장서는 사람들은 행복할 것 같다. 2월 28일에 범대위가 가장 큰 집회를 열 목표를 세웠다는데, 정말이지 잘 됐으면 한다. 그러면 지난 5월에 느꼈고, 지난 1월 31일에 느꼈던 그 벅찬 감정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겠지.

강호순보고 살인마라고 하는데, 그새낀 살인마가 맞다. 근데 묻고 싶다. 그럼 이명박은? 철거민 5명을 살해하고, 지금도 학생들을 자살경쟁으로 내몰고, 국민들을 자살로 내모는 이명박은? 이 땅의 지배자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소리 없이 학살하고 있는가.

이런 정권을 그냥 둬야 하는가.

  1. 나는 강호순의 얼굴 공개에 반대했다. 당시에 이름도 강 씨로 썼다. 그러나 지금은 강호순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편의상 이름을 부른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