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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기타라 - 관계에 대한 소박한 통찰

<기타라>라는 제목을 보고 인도 고전을 연극으로 만든 것인가 생각했다. 다행히 아니었다. 말 그대로 기타라는 악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였다. <기타라>의 무대는 기타를 만들어 파는 가게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해서 읽기 바란다.

관계

명품 기타를 팔았다가 다시 찾으려고 하는 미미는 진상 고객이다. 기타를 만드는 장인 영배는 한 번 손에 넣은 명품 기타를 돌려 주지 않으려고 한다. 미미는 네가 기타를 만들어 줘라, 그 기타가 맘에 들면 명품 기타를 달라고 조르지 않겠다고 거래를 시도한다. 영배는 그 거래가 함정이란 것을 알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응낙한다.

언뜻 유치해 보일 수도 있는 시작이지만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그렇게 시작된 팍팍하고 상호 공격적인 관계는, 미미가 다음 날부터 매일매일 기타라(가게 이름)에 출근해서 영배의 작업 과정을 지켜 보면서 달라진다.

미미는 영배의 동료이자 가게 경영자인 애릭이 작곡한 노래를 부르고, 최초로 인간적 교감이라는 걸 시작한다.

애릭은 고품질 기타만 고집하는 영배를 거슬러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기타를 가져와 판다. 미미는 애릭이 가져온 기타를 보고 놀라는데, 아마도 영배 편이었으리라.

장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하는 영배와 삶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어쩔 수 없이 한 발짝 양보하는 애릭, 둘의 갈등은 누구나 겪었을 법한 갈등이다. 사실 대체로는 이렇게 첨예하지도 않다. 많은 이들이 쉽게 삶에 굴복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매력을 준다.

미미는 영배가 만들고 있는 기타를 보며 "이렇게 열심히 만들어 봐야 소용 없어요. 어차피 난 이 기타 안 가질 거거든요" 하고 혼잣말을 한다. 그러나 줄글로는 느껴지지 않는 대사의 미묘한 분위기를 눈치채야 한다.

이게 터지는 건 다음이다. 영배는 다짜고짜 미미의 치수를 잰다. 미미가 뭐하는 거냐고 따지듯 묻자 영배는 무뚝뚝하게 대답한다.

"딱 맞는 기타를 만들어 달라면서요. ... 음... 어깨가 좁은 편이군 ... 사실 그 명품 기타는 미미 씨에게 딱 맞는 기타는 아니예요. 너무 크거든요."

이 때 미미의 표정을 봐야 한다(소극장의 장점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이건 공방 기타라(특히 영배)와 미미를 잇고 있던 관계의 일대 전환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악으로 만난 하나의 관계가 시간을 두고 서로를 경험하면서 점점 더 변하고 소중한 관계가 되어 간다. 이 상투적인 말을 수많은 문학 작품은 얼마나 많이 변주해 왔나. 그러나 아무리 변주해도 구체적인 이야기가 주는 감동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 감동을 느낄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기타라는 그걸 훌륭히 보여 준다. 좋다.

맥락과 음악, 스토리, 뮤지컬

기타라만을 위해 제작된 노래들은 음의 분위기와 가사가 스토리와 잘 어울린다.

희망을 가장하지 않음

스토리가 있는 문학은 세상과 인간이 대결하는 공간이다. 그리스 비극, 셰익스피어 희곡, 근대 소설들. 인간이 세계와 갈등하는 것을 그린다. 한 마디로, 인간의 욕망을 세계가 가로막는다.

서사문학은 바로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에 의미를 가진다. 인간이 세상을 극복하건, 좌절하건, 아니면 반쯤 좌절하고 반쯤 극복하며 변해 가건 간에 말이다.

주인공이 세상을 손쉽게 이겨내는 이야기는 여운이 없다. 어떤 단순한 만화에선 주인공이 마음만 고쳐먹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기타라는 희망을 가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절망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결론

<기타라>는 훌륭한 뮤지컬이다. 깔끔하고 담백한, 세상에 좌절하지만 또 완전히 좌절하지는 않는 그런 '인간'의 이야기를 <기타라>는 담담하게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추천한다.

티켓 인증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