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

아이작 도이처, 《비무장의 예언자 트로츠키 : 1921-1929》

이 책은 꽤 불쾌한 책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고립된 소비에트 공화국이 어떻게 타락해 가는지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닌의 걱정

아이작 도이처, 《비무장의 예언자 트로츠키 : 1921-1929》

아이작 도이처, 《비무장의 예언자 트로츠키 : 1921-1929》

레닌의 유언장은 이제 와서는 잘 알려진 것이지만, 이 유언장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은 나쁘지 않은 일이다. 레닌은 스탈린을 폄하하고, 자리에서 끌어내릴 것을 주장했으며 트로츠키가 개중 가장 나은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어디선가, 레닌의 유언장을 무슨 유훈통치 같은 일이라며 비난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레닌의 유언장은 '유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언장의 공개여부까지 투표로 결정했다. 공개하지 않는 결정에 대해 트로츠키는 항의했지만 받아들였다. 다수결이라는 게임 규칙을 모두가 준수한 것이다.(나는 이 때의 다수결은 민주주의라고 보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내용으로 결정돼야 한다. 그런데 레닌의 유언 ㅡ 국가의 관료화 정점에 있는 스탈린에 대한 경고 ㅡ 은 볼셰비키 정치국이 가려서는 안 되는 진실이었다.)

첫 번째 실수

어쨌든, 레닌은 새로 건국된 소비에트 공화국이 관료적으로 왜곡된 노동자 국가라는 사실을 병상에서 알아차리고 아주 괴로워했다. 레닌은 그래서 트로츠키에게 동맹을 제안한다. 트로츠키는 동맹을 흔쾌히 받아들였지만, 레닌의 감각을 다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레닌은 관료주의와 싸우려고 했고, 관료주의의 정점에는 스탈린이 있었다. 스탈린은 민족문제에서 소수민족을 탄압했다. 레닌은 그걸 바탕으로 대의원대회에서 스탈린을 끌어내리자고 제안했다. 증거는 충분했다.

트로츠키는 레닌의 제안대로 하지 않고 침묵했다. 스탈린은 괜찮은 지도자로 남을 수 있었다.

두 번째 실수

트로츠키의 두 번째 실수는, 스탈린이 지노비예프, 카메네프와 불화를 겪을 때 재빨리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두 세력의 동맹은 깨지고 있었다. 트로츠키는 1년 반 동안이나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분명 그는 중앙정치에 관심을 껐다. 협잡으로 느껴졌던 것이라고 아이작 도이처는 분석한다.

어쨌든, 내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트로츠키는 당내 투쟁에서 멍청했다.

(생각이 좀 변했다. 이 글을 참고하라 : 아이작 도이처 트로츠키 3부작에서 트로츠키의 반스탈린 투쟁에 대한 왜곡 서술 , 2009년 12월 25일에 추가함)

올가미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트로츠키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자. 그들은 소비에트 공화국의 가장 중요한 창조자였다. 트로츠키, 카메네프, 지노비에프, 부하린, 스탈린을 위시한 고참 볼셰비키 대다수는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창조물을 지켜내야 했다. 창조물을 지켜내는 현실적 방안은,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고 강철 규율을 유지하는 것이었다.(1당 독재 체제) 모든 부르주아 국가가 소비에트 공화국을 노리는 시점에서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었을까. 경제 위기는 반란과 내분을 촉진했다. 정치적 자유는 어쩌면 소비에트 공화국을 산산조각냈을 것이다.

1당 독재는 전쟁 중 임시로 취해진 조치였다. 분파 결성 금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도, 상황은 복구될 줄을 몰랐다. 볼셰비키의 창의력이 고갈된 것이 아니라 사정이 나아지지 않았다. 전쟁은 신생 소비에트 공화국에서 너무 많은 것을 빼앗아갔다. 전쟁 중 지켰던 규율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한 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정치적 자유를 금한 바로 그 점(1당 독재 체제)이 지나치게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 바로 그 상황이 소비에트 공화국의 창조자들 자신의 목을 얽어맸다. 스스로 만든 올가미는 스스로의 목을 죄어들어갔던 것이다.

루시퍼 이펙트

최근에 내가 읽고 있는 《루시퍼 이펙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시스템은 상황을 포함한다. 하지만 시스템은 상황보다 더 오래 지속되고 더욱 널리 퍼지며 더욱 광범위한 사람들의 네트워크, 사람들의 기대와 기준, 정책, 그리고 법률에 영향을 미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스템은 역사적 토대를 획득하게 되고 때에 따라서 그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지배하고 지시하는 정치경제적 권력 구조를 갖추게 된다. 시스템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행동의 맥락을 창조해내는 상황을 가속화한다. 어떤 시점에 이르면 시스템은 그 시스템을 창조해낸 사람들, 심지어 그 시스템의 권력구조 안에서 명백하게 권위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로부터도 자율적으로 기능하는 독립적인 개체가 된다. 각 시스템은 그 자체의 문화를 개발해내고 수많은 시스템들이 집단적으로 한 사회의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293p

밑줄은 내가 그은 것이다. 밑줄 그은 부분에 나오는 통찰은 새길 만하다. 《루시퍼 이펙트》는 평범한 사람들이 억압적 감옥에서 어떻게 변해가는지 관찰한 실험의 보고서다. 수감자와 교도관으로 나뉜 사람들은 전에 없던 모습을 드러내면서 변해 간다.(이 책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쓸 것이다.)

그리고 그 실험을 총괄했던 필자 자신 역시도 변했다. 그는 교도소와 실험의 최고권위자였지만, 교도소의 상황이 그를 압도하면서 이성적 사고를 잃게 된다.

1920년대, 세계로부터 고립된, 생산력이 극도로 파괴된 신생 소비에트 공화국의 최고 정점에 선 볼셰비키들은 바로 상황의 포로가 되었던 것이다.

트로츠키

결국 트로츠키는 두 번의 기회를 날려버린 후에 세 번째 기회가 왔을 때 전력을 다해 스탈린에 맞선다. 늦었지만 웅장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트로츠키는 추방된다.

혁명을 일으킨 민중, 최고의 민주주의를 구현했던 국가가 어떻게 이렇게 단시간에 무기력해질 수 있었던 것일까? 신념을 가진 좌파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볼 법한 문제다.

해답은 너무도 쉽게 마르크스주의가 제공한다. 사회주의는 물질적 조건을 건너뛰면서 실현될 수 없다. 사회주의는 국제적 생산력을 동원해야만 가능하다.

독일 혁명이 실패하고, 뒤이은 가능성이었던 중국 혁명마저 실패했을 때, 소비에트 공화국이 내부에서 더이상 회생 불가능함이 입증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설사 당시 가장 생산력이 발달한 국가였다고 해도 오랜 고립을 버티며 민주주의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생산력이 낙후해있던 소비에트 공화국보다는 좀더 오래 버텼을지 몰라도 말이다.

결국, 국제 혁명의 실패는 "그럼 어떻게 국가를 유지할 것이냐?" 하는 질문을 던졌다. 회피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트로츠키는 국제주의의 편에 섰다. "다른 혁명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스탈린과 부하린은 민족주의 편에 섰다.(비록 그 자신들은 그것을 민족주의라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라도 말이다.) "소비에트 공화국은 자력갱생할 수 있다."

그리고 스탈린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 노동자의 피를 요구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노동자 국가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의 피 위에 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은 부르주아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흔히 직면하는 상황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일컬어 "국가가 인민으로부터 소외된다"고 했다. 정확한 말이다. 부르주아 국가에서 늘상 있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국가와 국민의 대립." 국민은 국가로부터 소외되고,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소외된다.

소련에서 펼쳐진 "국가와 국민의 분리"는 다음 두 명제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1.노동자 국가는 노동자 위에 군림한다.

2.스탈린의 소련은 노동자 국가가 아니었다.

비록 트로츠키는 명확히 2를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2번 명제로 가는 길을 닦았다. 트로츠키는 평생 스탈린을 비판하며 소련은 "관료적으로 타락한 노동자 국가"라고 말했고, 정치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추방당한 예언자

곧 3권, 추방당한 예언자를 읽게 된다. 아마도 모스크바 재판 이야기가 나오겠지. 이 재판에서 1917년 혁명을 이끌었던 쟁쟁한 혁명가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전락해 최후를 맞이하는지 나와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궁금하다.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 그들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트로츠키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투쟁했는지 말이다.

  • 태진 2009.09.22 11:59

    훌륭한 글입니다. 저도 예언자 시리즈를 어서 읽어보고 싶네요.^^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연락도 못하고 지내네요ㅠㅠ
    잘 지내시고, 조만간에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캐넌 2009.09.24 11:04

    트로츠키가 2번 명제로 가는 길을 닦았다라...

    블로그 주인장님은 30년대 이후의 트로츠키 저작들을 읽어보고 저런 결론을 내리셨나요?

    제가보기에 트로츠키의 30년대 이후의 작업들은 오히려 2번 명제에 대한 맹렬한 공격이었다고 보는데요?

    • 사용자 안형우 2009.09.24 15:48 신고

      트로츠키의 작업은 소련이 노동자국가라는 것을 전제로, 정치혁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트로츠키의 분명한 기여는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아래로부터의 혁명, 국제혁명 없이 진정한 사회주의란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었습니다. '관료적으로 왜곡된 노동자 국가'라는 모순된 명제는 님 말씀대로 소련이 노동자국가임을 방어하는 논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모순이 눈에 띄죠. 그래서 저는 소련이 노동자국가임을 부인하게 되는 '길을 닦았다'고 묘사했습니다.
      제 논리에 오류가 있다면 제가 과문하니 한 수 가르쳐 주시지요. 구체적으로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캐넌 2009.09.24 20:04

    세계혁명없이 사회주의가 불가능하다는 것과 소련이 노동자국가라는 명제 사이에는 당연히 모순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순때문에 소련방어를 거부해야 한다면 그것은 변증법도 거부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변증법적 유물론자라면 소련사회의 사회주의적인 것(집산화된 계획경제체제와 대외무역의 독점)을 방어하고, 반사회주의적인 것(관료집단의 전체주의 독재체제)를 폐기할 것을 주장해야 할 것입니다. "관료적으로 퇴보한 노동자 국가", 모순으로 점철된 소련사회성격을 이보다 더 변증법적이면서 압축적인 규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트로츠키가 노동자국가임을 부인하게 되는 길을 닦았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이지 대담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로츠키는 미국사회주의노동자당의 소련방어를 거부하는 소수파들을 향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일부 동지들은 순전히 말을 통해서라도 만족감을 느끼려 합니다. 그래서 숙청당한 관료에게 스탈린이 레닌훈장을 박탈하듯이 소련에게 노동자국가라는 이름을 박탈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약간 유치합니다. 맑스주의자의 사회분석은 히스테리적인 반응과는 절대적으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저작들을 면밀히 보면 알겠지만, 트로츠키는 소련이 노동자국가임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이론적인 길을 열어주기는 커녕, 그들을 철저히 비웃고 경멸했죠. 그래서 저는 허대수님께 클리프나 도이처 같은 4인터내셔널을 등진 사람들의 책만 읽지 말고 4인터내셔널 창립강령, 그리고 그의 저작들 (<배반당한 혁명>, <맑스주의를 옹호하며>, <소련의 계급적 성격>등)도 같이 읽기를 권합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는 건 트로츠키에게 티끌만큼의 오류도 없다고 생각해서 그러는게 아닙니다. 트로츠키 최후의 중대한 작업들(대 스탈린주의, 대 소련방어포기자들)의 절반을 기각했으면 아무래도 트로츠키주의의 유산에 대한 지분을 주장할 권리는 대단히 미약할 수 밖에 없는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남한의 자칭 사회주의자들 가운데는 이 점을 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보입니다.

    • 사용자 안형우 2009.09.25 01:35 신고

      "트로츠키가 노동자국가임을 부인하게 되는 길을 닦았다고 말하는 것"은 좀 과장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엄밀히 말한다면, 트로츠키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라는 점을 지킨 것이니까요.
      어쨌든, 저는 님과 다르게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라는 점을 일관되게 밀고 나간다면, 소련이 노동자국가임을 부정하는 데 이르게 된다고 봅니다.
      "그들을 철저히 비웃고 경멸했죠"는 맞습니다. 그러나 트로츠키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트로츠키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라는 명제를 보존함으로써 '소련이 노동자 국가가 아니다'라는 길로 일군의 사회주의자 그룹이 이동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클리프나 도이처 같은 4인터내셔널을 등진 사람들의 책만 읽지 말고 4인터내셔널 창립강령, 그리고 그의 저작들 (<배반당한 혁명>, <맑스주의를 옹호하며>, <소련의 계급적 성격>등)도 같이 읽기를 권합니다"는, 아무리 제가 한수 가르쳐달라고 했어도, 읽지 않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 같군요.
      '지분 주장'에 저는 별로 관심 없습니다. 트로츠키가 진정으로 원했던, (북한이나 구소련과 대비되는)'진정한 사회주의'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입니다.

  • 캐넌 2009.09.25 08:30

    이행기체제(노동자국가)에 대한 허대수님의 관념은 매우 일면적이며 비변증법적입니다. 노동자국가는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도 있고, 국가기구의 관료적 퇴보와 국내외 반혁명 압력의 증대로 자본주의로 되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 모두를 가지고 있습니다. 쿨락의 성장과 관료집단의 전횡은 후자의 가능성을 크게 증가시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 가능성의 증대일 뿐입니다. 그러한 변화가 당장에 사물의 명칭을 바꿀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군이 사회주의자 그룹이 '소련이 노동자 국가가 아니다'라는 길로 이동하는데 영향을 끼친건 트로츠키가 아니라 카우츠키겠지요. 카우츠키는 레닌/트로츠키의(스탈린이 아닌!) 소비에트 권력을 자본주의국가라고 폄훼했고 이것이 맑스주의의 이름으로 소련에 대한 제국주의의 반혁명기도를 방조하거나 옹호하는 이론, 소련을 자본주의국가로 간주하는 이론의 시발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국가자본주의이론이 오류로 점철된 이론이라는 것을 제가 허대수님께 가르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트로츠키가 했던 것을 제가 굳이 되풀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진정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자 한다면, 일단 이미 차지한 진지부터 방어하고 볼 일입니다. "노동계급이 달성한 성과들은 적대 세력들의 압력에 의해서 왜곡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 모두를 방어하는 것이 혁명가의 임무이다. 이미 차지한 진지들을 방어할 수 없으면 새로운 진지들을 결코 정복할 수 없는 법이다."(트로츠키)

    • 사용자 안형우 2009.09.25 10:26 신고

      글쎄요, 낡은 트로츠키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비변증법적이니, 카우츠키류니 하는 선언만으로는 별 소용이 없죠.

  • 반혁명의 근본원인 2009.11.22 12:18

    이 글을 일으면서 느낀 것은 러시아가 반혁명된 원인에 대한 분석에 오류가 있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첫째 : 러시아는 산업국가에서 혁명을 한 것이 아니라 물질이 부족한 농업국가에서 혁명을 했다는 점입니다.

    둘째 : 러시아는 농업국가(인민들에게 지식은 가르치지 노동만 강요)에서 혁명하다보니 혁명 이 후 인민들이 제 이름도 쓸 줄 모르는 문맹을 벗어나지 못한 생태로 계속 유지된 것이죠. (한마디로 지식의 평준화를 레닌시절부터 사실상 외면한 것입니다.)

    아무리 문맹이라도 기본적인 권리(모두가 평등하다는 직접민주주의)와 경제의 원칙(노동생산에 의해서 모든 인류가 살아간다) 정도만 반복해 선전선동했더라면 문맹은 문제될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셋째 : 권한평등이 이뤄지지 못하고 거짓민주주의인 대수결의 원칙에 의한 당을 건설하고 관리.통치하려고만 했기 때문에 관료독재가 가능하게 된 것이며 반혁명이 가능한 토양을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소련에서 펼쳐진 "국가와 국민의 분리"는 다음 두 명제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우리를 이끈다는 주장은 지극히 반동적 주장이죠,

    1. 노동자국가는 노동자위에 군림한다와 2. 스탈린의 소련은 노동자 국가가 아니었다.

    이렇게 두가지로만 분류하고 규정하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노동자위에 군림하는 노동자 국가도 있을 수 있나요? 노동자에겐 국가와 민족이 없어야 제대로된 혁명이 이루어 집니다.

    • 사용자 안형우 2010.03.01 19:20 신고

      글을 제대로 읽고 댓글 쓰시죠.
      1. 노동자국가는 노동자위에 군림한다와 2. 스탈린의 소련은 노동자 국가가 아니었다.
      둘 중 1번이 말이 안 되기에 2번이 옳은 결론이라고 했습니다.
      님은 스탈린의 소련을 노동자국가로 보시나보군요.
      다음, '농업국가'의 정의가 무엇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당시 러시아를 농업국가로 정의할 때 근거는 어떤 걸 드는지 궁금해서 묻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편입된 산업국가라는 근거는 명확하게 댈 수 있거든요.
      그리고 다음, "아무리 문맹이라도 기본적인 권리(모두가 평등하다는 직접민주주의)와 경제의 원칙(노동생산에 의해서 모든 인류가 살아간다) 정도만 반복해 선전선동했더라면 문맹은 문제될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라는 대목을 보면, 마치 의식변화가 사회변혁의 원동력인양 말씀하시는군요.

  • 허세만 2010.03.08 16:07

    캐넌 님의 주장을 읽어보면 트로츠키에 대한 고증학적 자세 및 교조주의가 여지 없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트로츠키가 무오류의 화신입니까? 죽은 혁명가들의 축적된 이론을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이야말로 죽는 이론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테러리즘과 공산주의>>(1920)와 같은, 트로츠키 입장에서는 불명예스러운 저작을 트로츠키가 썼다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캐넌 님의 방법입니까?
    그리고 도대체, 국가자본주의 이론이 명백한 오류임이 증명되었다는 것은 무슨 근거를 가진 자신감일까요?
    또한 캐넌 님이 얼마나 트로츠키를 열심히 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스페인 혁명>>만 읽어봐도 스탈린주의자들과 독립적인 혁명 조직을 만들 것을 스페인 사회주의자들한테 호소하는 트로츠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 4인터내셔널에서 소위 '정설 트로츠키주의'를 따르던 미국의 막스 샤흐트먼이나 C.L.R 제임스 같은 사람들이 나중에 어떻게 변해가는지 잘 살펴보신다면 소위 '정설 트로츠키주의'라는 교조주의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트로츠키주의의 역사>>(백의, 1994)를 구해서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 사용자 안형우 2010.03.08 17:46 신고

      오호 《테러리즘과 공산주의》는 어떤 점에서 잘못된 것인지 궁금하군요. 잘 몰라서.
      그 외 제가 코멘트할 내용은 없네요. ^^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 허세만 2010.03.14 22:45 신고

    <<테러리즘과 공산주의>>는 트로츠키 저작 중에서 가장 스탈린주의와 맞닿아있다고 할 수 있는 저작입니다. 읽은지 꽤 되어서 저도 가물가물하지만, 일당 독재를 옹호하고 사회주의적 축적을 위해 노동자들의 착취를 옹호하는 저작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트로츠키가 1920년에 일당 독재를 옹호하는 글을 쓴 것이 무척 당혹스러웠습니다만, 그만큼 트로츠키를 무오류의 화신으로 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출판사 '프레시안북'에서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니 관심이 있으면 일독을 권합니다. ^^
    그리고 알렉스 캘리니코스도 <<자본주의의 대안과 사회주의 가치 논쟁>>(책갈피, 2009)에서 마이클 앨버트가 트로츠키가 일당 독재를 주장했다며 비판하자, 혹시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서 문제의 트로츠키 인용구를 가져온 것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알렉스도 <<테러리즘과 공산주의>>라는 저작은 꽤나 당혹스러워하더라구요.

    • 사용자 안형우 2010.03.15 15:57 신고

      그렇군요. ㅋㅋ 20년대 초반엔 러시아가 엄청난 위기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럴법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지하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를 지키려고 무리수를 두는 심리가 사람을 지배할 수도 있죠.
      트로츠키의 위대한 점은, 스탈린은 그 길로 빠져서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던 반면, 트로츠키는 그러지 않았다는 데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책은 한 번 읽어 보는 게 좋겠군요. 괜시리 남들이 트로츠키 트집잡을 때 당황하지 않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