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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추노 16화, 예술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명작의 꼭지점

개인적 감상이니 거들먹거릴 생각은 없다. 어쨌건, 내가 봐왔던 드라마들 중 예술성과 흥행성[각주:1]을 동시에 갖춘 수작이다.

사실 나는 드라마를 볼 때 기준이 낮다. 예컨대, 예술적 측면에서 볼 때 <공부의 신>은 개연성 없는 구성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마지막에 애들이 선생님과 헤어질 때, 특히 강석호 변호사를 황백현이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는 분위기에 취해서 눈물도 찔끔 났다. 하지만 <공부의 신>을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하지 않는다.[각주:2]

그러나 <추노>는 다르다. <추노>를 볼 때는 눈물 찔끔 나거나 한 적도 없다. 극 초반부에는 질질 끄는 느낌이 싫기도 했다. 특히, 언년이(혜원) 캐릭터는 짜증의 극치였다. 뭐 저런 게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짜증이 솟구치는 캐릭터였다. 그러나 대길이 패거리의 감칠맛과 노비 패의 담백함이 <추노>의 맛이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달라졌다. 혜원은 점점 성장했다. 그리고 16화에서 절정에 달했다. 무기력하고 의존적이기만 해서 민폐만 끼치던 혜원은 주체적 인간으로 발전했다.

대길이와 송태하가 검을 부딪히는 장면은 작위적이지 않았다. 목숨을 건 둘의 대결을 위한 개연성은 충분히 마련돼 있었다. 최장군와 왕손이를 죽인 송태하, 그 오랜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다시 뭉친 동료들을 죽인 대길이. 오해가 빚어낸 비극이지만, 그러나 충분한 개연성이 확보됐다.

결혼한 언년이의 모습을 보고 모든 것을 중단하려던 대길이를 돌려세우기에 최장군와 왕손이의 죽음[각주:3]은 너무나도 충분했다.

최장군과 왕손이를 추억하며 주막에서 혼자 밥상을 차려놓고 계란을 입에 집어넣으면서, 울면서 웃고있는 대길이의 표정은 그 상황, 그 감정을 너무나도 절실히 전해줬다.

한마디로 16화는 1화부터 15화를 한꺼번에 모아 꽝 내려치는 파괴력이 있었다.

01

아주 감동적이어서 차마 글 하나 안 쓸 수 없었다.

사실 16화가 마지막 화인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예고편을 보니 뒷 이야기에서는 '아랫것'들이 주체적으로 헤쳐모이는 장면이 나올 것 같다. 기대된다.

좌파적 입장에서 인상깊게 본 장면

사족. 대길이와 송태하의 논쟁은 KBS2가 이런 대사 내보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대사였다. 대길이는 말한다. 니 부인이 노비인 게 그렇게 신경쓰이냐고, 마음만 주고받았으면 된 거 아니냐고 비아냥댄다. 송태하는 말한다. 근본은 중요한 것이라고.

그러나 또 송태하는 말한다. 세상은 정해져있는 게 아니라고. 인간이 만드는 거라고. 대길이는 말한다.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대길이는 송태하에게 대고 소리친다. 너 같은 벼슬아치들이 만든 세상 때문에 나 같은 되바라진 놈이 생긴 거라고. 그래야 살 수 있으니 그런 거라고.

인간의 모순됨을 절절히 보여 준 저 장면은 추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묘미였다.

소위 프롤레타리아 문학[각주:4]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일면적인 인간상을 그린 것에 비한다면, 2010년, 노동계급의 저항 때문에 언론자유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던 지배계급이, 아직은 군림하고 있는 국가 ─ 이 대한민국에서, 저항의 영향을 자기도 모르는 새 받았을 듯한[각주:5] 작가와 PD가 만든 이 대중드라마가 훨씬 더 인간의 다면성을 담아내고 있다.

  1. 흥행성이라는 건 사실 내가 판단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하는 말을 옮긴 거다. [본문으로]
  2. 나도 공부의 신을 빼놓지 않고 봤으니 이 평가에 대해 공부의 신 팬들이 혹시 기분 상한다면 용서하시라;; [본문으로]
  3. 죽음이 아닌 것 같다는 얘기도 많던데, 나는 죽은 거 맞는 거 같다. 죽은 게 아니라면 시청자의 감상에 맞추기 위해 극을 뒤틀어 버린 나쁜 사례가 될 거다. [본문으로]
  4. 사실은 스탈린주의 관료들이 강요한 원칙에 따라 만들 수밖에 없었던 회색 '문학' [본문으로]
  5. 물론 왕년에 한 운동 한 사람들인지도 모르지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