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를 다 읽었다. 중학생 때 드래곤 라자를 읽었을 때는 이야기를 따라갈 따름이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주제의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눈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는 내가 중학생 때 이후 15년 만에 다시 읽은 이영도 작품이다. 이 작품도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판타지라는 장르를 빌어서 말이다.
눈물을 마시는 새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변화는 그것이 수반하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것이다." 피를 마시는 새에서, 용은 인간에게서 나쁜 것을 빼앗으려 한다. 즉, 증오와 미움, 싸움, 폭력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정신억압'을 한다. 그리고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인간으로 있으려면 그 나쁜 것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작품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현재를 정당화하는 논리야" 라고 단순하게 말하고 싶지도 않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내면이든 외면이든 갈등이 있기 때문이다. 변화도 당연히 필요하다.
작가의 물론 "현재를 정당화하는 논리"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현재의 체제가 증오와 미움, 싸움, 폭력 같은 나쁜 것만을 강조하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문제가 크며, 피를 마시는 새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본질과 괴리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하는 게 어떨까 싶다. 이라세오날은 인간에게서 갈등을 빼앗아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만들려고 했다는 점에서 피를 마시는 새에는 문학적 신선함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인간에게서 인간성을 빼앗는 체제다. 그래서 문학적 신선함을 획득한 대신 현실성을 잃었다고 보면 어떨까 싶다. 여튼간에 이런 논리의 견지에서 보면 피를 마시는 새가 체제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눈물을 마시는 새를 읽기 시작해서 피를 마시는 새까지. 총 12권을 대략 보름 동안 읽음으로써, 올해 중 가장 많은 책을 읽은 달이 됐다. 물론 권수로만 책읽기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뭐 숫자가 만족감을 주는 면은 있으니 딱 그정도의 만족감을 느끼는 건 나쁜 일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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