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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파업지지] MBC파업, 승산은 얼마나?

△ 노조 파업에 공감해 인기를 얻은 MBC 엄기영 사장. 2002년 앵커시절.(출처 : MBC홈페이지, 엄기영 인터뷰)

MBC파업에서 재밌는 현상

지금 우리는 재밌는 현상을 보고 있다. 노동자들이 파업하고, 중간 간부와 경영진이 이에 동조하는 모습 말이다. 이런 모습은 흔히 보기 힘들다.

이것은 권력층의 분열이 굉장히 심화한 후 그 갈등이 겉으로 폭발할 때나 볼 수 있는 현상인데 우리는 지금 그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나는 지난 11월에 쓴  ‘문근영 ‘빨갱이’ 사건과 수구보수의 위기감’에서 저들이 분열해있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이런 경우가 또 있었다. 바로 87년 6월 항쟁이다. 6월 항쟁은 위대한 대중 항쟁이고, 찬양받아 마땅한 자랑스런 역사다. (뉴라이트가 각급학교에 뿌린 자료에 6월 항쟁을 짧게 처리한 것은 이들의 천박함을 잘 드러낸다.)

그러나 사회적 토대를 바탕으로 분석하면 6월 항쟁은 오랜 시간 억눌린 민중의 폭발, 그리고 국가가 육성해 키운 자본이 이제는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고 싶어한 것이 결합되면서 승리로 나갔다.

물론, 민중의 폭발이 훨씬 주요한 원인이었고, 찬양받아 마땅한 것인데, 왜냐면 소심한 ‘자본’은 국가의 탄압과 통제에 직면에 결코 목숨을 걸고 저항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트로츠키는 국가의 육성으로 성장한 러시아의 자본가들을 일컬어 소심하기 짝이없다고 평한 바 있다. 마르크스도 1848년 파리 혁명에서 자본가들이 봉건제의 편에서 노동계급을 학살하는 모습을 보고 부르주아지를 악평했다. 한국의 자본가들도 마찬가지였다.[각주:1]

어쨌거나, 민중의 투쟁이 폭발하자 한국 자본가들은 민주화투쟁에 나름 동조했다.

15년 간 ‘민주 vs 반민주’ 투쟁, 승률 100%

87년 이후 기억에 남을만한 거대한 투쟁이 몇 개 있었다. 92년 투쟁은 성공적이지 못했으니 일단 분석에서 제하자. 95년 전두환ㆍ노태우 구속 투쟁, 97년 노동법ㆍ안기부법 개악 반대 총파업, 2004년 탄핵 반대 시위[각주:2]. 모두 굵직굵직한 민주 대 반민주 구도의 투쟁이다. 그리고 이 굵직굵직한 투쟁에서 민중운동은 모두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권력자들은 번번이 좌절감을 느껴야 했을 것이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투쟁은 가장 강한 성격이 반미[각주:3]라서 일단 논의를 쉽게 만들기 위해 제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없지 않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우리 국민이 독재에 대해 뿌리깊은 반감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경제 위기 때문에 한풀 꺾이고 “박정희 시대가 그래도 나았지” 하는 ‘향수’를 불러냈으나, 이명박이 지금 그 ‘환상’을 철저히 부숴주고 있으며, 이미 지난 5월의 촛불집회로 대다수 국민은 이명박에 환상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MBC 파업, ‘민주 vs 반민주’ 구도

MBC 파업을 촉발한 것은 권위적 방송을 국가가 권위적으로 통제하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다시 말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에 속한다. 자본주의는 역동적인 체제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는 부르주아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점이 있다. (물론, 이들은 언론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치지는 않는다.) 아마 MBC는 노조 파업이 없었다면 이 법안에 상징적 저항 정도는 했을지 모르겠다. (아마 딱 민주당 만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MBC 노조가 파업했다. 국민적 여론이 MBC 노조 편이다. 이명박은 갖은 횡포로 여론에서 고립됐다. 권력층 내부의 분열도 심한데, 이명박은 임기 초임에도 이를 다스리지 못한다. MBC 경영진으로서는 해볼만한 싸움이다. 노조가 언론의 자유를 위해 옥쇄하겠다고 나서는데 MBC 경영진이 굳이 말릴 필요는 없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가 방송을 통제하게 되면 현재 경영진의 임기도 자유롭지 못하다.

즉, 87년의 구도가 어느정도 되살아난 것이다. 권위적 국가통제 vs 민중 + 통제를 싫어하는 자본. 이럴 경우 승률은 매우 높다. 지난 15년간 승률 100%였다.

약점 : 지나치게 넓은 동맹

그러나 위에서 말한 강점은 곧 약점과 연결된다. 이 점은 87년에도 존재했고, 87년 투쟁을 ‘독재 타도’로 끝내지 못하고 ‘직선제 개헌’으로 끝낸 중요한 원인이 됐다. 이것은 바로 소위 ‘진보적’ 부르주아와의 연합이다.

87년 당시로 치면 김대중, 김영삼이 민중운동의 주도권을 잡은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고, 지금으로 치면 이 ‘진보적’ 부르주아지는 MBC 엄기영 사장 되겠다.

경영진의 전폭적 지원이 있다고 치자.(가정일 뿐이다.) MBC 노조가 통쾌한 승리를 거둔다. 그러면? 엄기영 사장에게 달가운 일일까? 

이런 투쟁을 통해 강력해진 노조 안에는 흔히 평등주의가 싹트기 마련이다. 노동자들은 아나운서부터 엔지니어까지 함께 어깨를 걸고 싸웠다. 많은 노동자들이 서로의 처지에 대해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알게됐을 것이다. 그럼 이 노조는 강력한 힘으로 비정규직을 도울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것은 엄기영 사장에게 딜레마가 될 것이다. 엄기영 사장은 강력한 노조가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노조에게도 딜레마가 될 것이다. 언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한다. 지금은 경영진도 나름대로 동조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 싸움이 더 첨예해지면? 이명박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하듯 언론노조에 강온양면책을 쓸 것이며 경영진은 노조에 적당한 타협안을 제시하려 할 것이다.[각주:4] 한마디로 경영진은 아마도 가장 먼저 흔들리는 부위가 될 것이다.

나약한 동맹, 민주당도 딜레마다. 이미 민주노동당이 민주당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겠지만, 얘들은 MBC 경영진보다 못해 보일 때도 있다. 다행히(?) 한나라당의 타협 거부 때문에 민주당으로서는 기동의 여지가 매우 좁아져 (아마도 한숨을 쉬며) 국회 일부를 점거하고 있다. (본회의장 점거는 풀었지만 몇 군데는 여전히 점거 중이다.) 

관전 포인트 : 노조의 독립성

자, 그러면 MBC 파업의 강점과 약점이 모두 나왔으니 이제 관전포인트다. 열쇠는 MBC 노조가 쥐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노조 지도부와 조합원들이 쥐고 있다. 여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력은 다양한데 국가, 경영진, 민주당, 고위간부, 중간간부, 국민여론, 민주노동당ㆍ진보신당을 비롯한 시위대다. (보면 알겠지만, 부정적 세력 > 긍정적 세력 순이다.)

MBC 노조가 만약 민주당에 지나친 기대를 걸고 (좀 그런 점이 있어 보인다) 민주당의 행보에 영향을 받는다면 파업은 어려워질 것이다. 민주당은 적당히 타협하려 들 것이므로. 언론악법은 민주노동당의 말마따나 그 자체로 악이다. 없애야 한다. 똥에 금박입힌다고 금똥이 되는 게 아닌 것처럼, 악법은 폐기만이 유일한 길이다.

MBC 노조가 경영진에 의존해서 경영진의 의중에 휘둘린다면 그거야말로 큰일인데, 이건 큰 걱정은 없어 보인다.

MBC 노조가 국민여론과 시위대에 가장 의존적이라면, 희망적이다. 특히 시위대는 이명박을 증오하므로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즉, 노조가 국민들의 힘, 그리고 노조원들의 힘을 신뢰한다면 자신들이 가진 힘을 100%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앞선 민주 vs 반민주 투쟁들이 성과를 거둔 것처럼 MBC 파업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안 그럴 경우 어려워질 수 있다.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이룰만한 능력이 있는 세력

MBC 노조원들이 자신들이 가진 힘을 잘 알아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언론노조겠지.) 그리고 누가 가장 언론악법을 증오하는지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가 누구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지 알아야 한다. 

다행히 MBC노조는 이를 아는 것 같은데, 가난한 사람,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이번 파업을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87년부터도 그랬지만, ‘진보적’ 부르주아지(일부 사장들과 민주당)는 경제적 문제에 발목을 잡혀 민주주의를 일관되게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으며 때로는 자신들이 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탄압했다. 대표적 예는 노무현의 FTA시위ㆍ광고 금지다.

따라서 저들에게 의존적이면 절대로 안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도록 국민의 여론이 MBC노조에 힘을 보태줘야 한다. 여론이 딸려 권력자들에게 적당히 빌붙어 사태를 해결하지 않도록 국민들이 잘 해야 한다.

MBC 노조에 끊임없이 힘을 주자. 응원 메시지를 남기고, 시위에 참가하고, 열심히 알리자. 그리고 절대로 민주당에 환상을 품지 말자. 그렇게 된다면 승산은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칠 것이다.

  1. 여기서 소심하다는 것은 국가가 자본을 육성하게 되는 후발자본주의국가에서는 자본이 국가에 저항해 정치적 자유를 얻는 것보다 국가에 순응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것을 잘 알고있다는 의미다.(반면,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서는 봉건국가가 자본주의 발전을 억누르며 자본가들의 이익을 침해했기 때문에 자본가들이 혁명적 계급이 되었다. 물론, 이들은 결코 일관되지는 않았다.) [본문으로]
  2. 일부 사람들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87년 이후 끝났고, 자본가계급 vs 노동자계급 구도의 투쟁만 남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론에 현실을 꿰어맞추는 예의 전형이다. [본문으로]
  3. 이 땅에서 반미는 반제국주의의 대중적 용어다. 대표적 반미시위인 반FTA시위에 미국 노동자 대표가 와서 연설한 적도 있으니 ‘반미’가 미국에 대한 무차별 반대를 의미하지 않는다. (물론 용어가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점은 남는데, 일상어ㆍ대중어라는 게 종종 그렇기 마련이다.) [본문으로]
  4. 타협안은 정치인들의 기상천외한 머리에서 나올 것이다. 섣부른 예측은 안 하는 편이 낫다. 정치인들 머리는 워낙 기상천외해서. 하지만 이해를 돕기위해 안 되는 머리를 짜내어 하나만 예를 들면, 뭐 “일단 지금 안 하고 6개월 후에 다시 논의하자” 따위. 물론, 미루는 건 나름 성과다. 그러나 더 좋기로는 날려버리는 게 좋겠지. 특히나 지금같은 분위기에선. 그런데 물론 이명박이 저정도 양보책이라도 내놓을지 알 수가 없다. YTN은 아예 무식하게 방송허가를 거부했으니. 그러게, MBC는 어떻게 요리하려 들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