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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논평

중동, 눈앞에 다가온 혁명

마할라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집트 당국이 약화됐음을 보여 준다.(출처 : ‘중동, 눈앞에 다가온 혁명’, <저항의 촛불>)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리는 반전 회의에 참가한 적이 있다. 서구 반전 운동 단체들과 중동의 저항세력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매년 여는 회의다.

중동에서 저항은 일상적이었다. 특히 이집트는 예전에는 중동 민족주의의 지도자 나세르가 통치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비굴하게 미국과 이스라엘에 설설 기는 독재자 무바라크(우리로 치면 박정희)가 통치하고 있기 때문에 저항의 향기가 물씬 났다. 그 곳에서는 대학 교수ㆍ변호사들조차 혁명을 외치고 있었다.

혁명.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단어 중 하나다. 체 게바라가 티셔츠에 그려지는 시대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은 체 게바라가 위험하지 않아서’라는 분석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은 ‘혁명’이란 단어를 멀게 여긴다.

80년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특히 학생운동에서는 (그 논쟁의 옳고 그름 여부를 떠나) 어떤 종류의 혁명이 필요하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던 때다.

90년대 소련을 비롯한 소위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면서 혁명 논쟁도 함께 잊혀져 갔다.

중동, 눈앞에 다가온 혁명

이 글의 제목은 같은 제목의 한 기사를 보고 똑같이 지은 것이다.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학살을 중단시키고 이스라엘을 고립시킬 수 있는 가장 큰 가능성이 중동의 혁명이며, 그것이 거의 실제로 의제에 오를만 한 분위기로 보이기 때문이다.

중동에 대한 식견이 깊지 않은 나로서는 충분히 틀릴 수 있는 예견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희망섞인 예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언컨대, 내가 이집트에서 보고 온 분위기는 혁명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독재자 무바라크의 초상은 상점마다 걸려있어 김일성ㆍ박정희를 연상시켰으나,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독재자 무바라크를 비난하고 있었다.

총을 든 군인들이 골목골목 배치돼 있는데도 사람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반대해서 5만 명짜리 시위를 벌였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주 금요일 카이로도 아닌 알렉산드리아에서 10만 명이 모여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중동, 눈앞에 다가온 혁명’, <저항의 촛불>)

한국에서 독재에 맞선 유명한 시위들이 있긴 했지만 대체로 독재 말기에 벌어진 시위들이다. 독재 기간에는 수백 명짜리 시위도 벌이기 힘들었다. 경찰 탄압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거대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독재의 통치력이 매우 약화됐다는 것을 뜻한다. 내가 앞서 언급한 ‘중동, 눈앞에 다가온 혁명’이라는 기사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집트] 시위 진압 경찰조차 시위대에게 조용히 길을 터주었고, 나중에 중앙 정부는 이것에 항의했다.

‘중동, 눈앞에 다가온 혁명’, <저항의 촛불>

이집트만의 위기일까

이집트의 경제규모는 이스라엘의 두 배다. 이집트의 독재자 무바라크는 중동에서 미국의 중요한 동맹이다. 이 정부가, 경찰이 중앙 정부의 말을 듣지 않을 정도로 약화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마 다른 곳의 사정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중동 최고의 저항단체 헤즈볼라가 있는 레바논도 중앙 정부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일 것이다. 실제로 헤즈볼라는 레바논 전쟁 직후 1백만 명짜리 시위를 주도한 바 있다.

사우디, 요르단, 쿠웨이트. 모두 왕정이다. 극단적 빈부격차가 존재하는 이 곳은 안전할까? 이라크. 미국이 간신히 봉합해 놓은 이라크는 안전할까?

 서방 열강들은 1950~1960년대의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시 제국주의에 협력한 중동 정권들은 혁명의 물결에 휩쓸려 줄줄이 무너졌다.

‘중동, 눈앞에 다가온 혁명’(<저항의 촛불>)

하마스와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그리고 헤즈볼라

1950~1960년대 중동 혁명은 이스라엘이 저지할 수 있었다.

 1967년 이스라엘은 ‘6일 전쟁’을 벌여 아랍 군대를 패배시켰다. 패배 이후 아랍 정부들은 제국주의에 대한 적대 정책을 중단하는 ‘실용주의적’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집트는 미국과 타협했고,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었다. 시리아처럼 타협하지 않은 정권들은 고립되고 군사공격을 받았다.

1973년 전쟁도 같은 목적의 전쟁이었다. 그 결과, “아랍의 연대”는 깨졌다. 또, 중동 국가들은 독재 국가로 변신하면서 엄청난 탄압을 자행했다.

‘중동, 눈앞에 다가온 혁명’(<저항의 촛불>)

지금 그 독재정부들이 위협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첫 번째 경제 공황인 IMF 때는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결코 그 때처럼 맹목적 애국주의에 휩쓸려 ‘고통 전담’을 하게 되지 않을 것처럼, 이집트 민중도 과거 이스라엘에 당했던 것처럼 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마스와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 그리고 헤즈볼라가 중동 민중들에게 열광받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다.

비록 하마스나 헤즈볼라의 로켓이 군사적으로는 별로 의미가 없지만, 정치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다. 그들의 로켓은 강력한 적군에 맞서 끊임없이 저항하고자 하는 의지를 상징한다.

그래서 평범한 중동 사람들이 이 조직들을 존경하는 것이다. 모든 아랍 군대가 이스라엘에 굴복했지만, 이 조직들은 이스라엘의 점령에 맞서 싸우고 있다.

‘중동, 눈앞에 다가온 혁명’(<저항의 촛불>)

이집트 카이로에서 회의를 할 때, 대학의 신자유주의화에 맞서 평등한 교육권을 주장하던 이집트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귀에 생생하다. 대학 내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는 대학 교수들의 목소리도 생생하다.

이집트 저항의 구심이 되는 조직인 ‘무슬림형제단’ 사람들은 “시오니스트가 아닌 유대인은 우리의 친구”이며 “유대인이 아닌 이들 중에도 시오니스트가 있는데, 이들은 우리의 적”이라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아마도 기독교인이 섞여있을, 그 회의장의 서구 반전 활동가들에게 존경을 표했다.

이들은 합리적으로 민중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독재자와 미제국주의에 엄청난 반감을 갖고 있는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열의는 충분하다.

어쩌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은 중동 혁명이라는 역풍을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희망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 민중이 해방되는 날을 위하여! Free, Palestine!

좋은 토론회가 있어 소개한다. 우리나라에는 중동 전문가가 적다. 그만큼 학문의 다양성이 무시되고 있기 때문인데, 몇 안 되는 팔레스타인 전문가인 홍미정 박사가 하는 강연회가 있다. 아래 웹자보를 참고하면 될 것이다. 흥미 있는 분들은 꼭 가시라. 제목은 “긴급토론회 ─ 이스라엘은 왜 가자지구에서 학살을 자행하는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