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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바보’ 노무현의 상실, 그리고 추락에 대한 단상

노무현에 대한 단상

나는 2002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의 지지자였다. 노무현 바람이 불고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진행하던 토론 써클은 노무현이냐 권영길이냐를 놓고 몇 번이나 토론이 벌어졌다.

나는 ‘네 이념대로 찍어라’는 김규항의 말에 따라 고심 끝에 권영길을 지지하기로 했지만, 노무현이 당선됐을 때, 왠지 모르게 들떴다. 2002년 대선 선거일에 우리는 모여서 토론을 하고 있었고, 노무현이 이회창을 따돌리기 시작했을 때 다 같이 환호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때 나는 노무현도 믿었고, 노사모도 믿었다. 노무현이 적어도 솔직하다고 생각했다. 솔직한 신자유주의자가 뻔뻔한 신자유주의자보다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파병

노무현이 취임하고 가장 처음 한 일은 파병이었다. 이라크전이 불의하다는 것은 지금은 상식이 됐지만, 당시에도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때문에 노사모도 파병 반대 시위에 나섰다.

여의도에서 파병 반대 집회가 있던 날, 노무현 당선에 같이 환호했던 친구는 국회의사당에 뛰어들었다가 연행돼 갔다.

지구 반대편에서 무고한 인명이 살상돼고 있다는 사실에 침울해 하던 나는 견딜 수 없어, 집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효순이 미선이 촛불집회에 나간 후 처음 나간 집회였다. 집회 끝무렵 윤도현의 아리랑이 울려퍼지고 우리는 하나되어 전쟁이 끝나기를 빌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나는 사회주의자가 됐다.

탄핵

노무현이 탄핵당했을 때는 나에게 휴일이었고, 12시쯤 걸려온 전화에 잠을 깼다. 흥분된 목소리, 격앙된 목소리. 동료 사회주의자는 노무현이 탄핵당한 건 큰 일이라고 말했다. 덩달아 나도 정신이 확 깼다.

사실 노무현이 탄핵 위기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주류정치란 대개는 환멸의 대상이고, 나도 사회문제에는 관심을 많이 가져도 주류정치에는 눈이 영 안 갔던 것이다. 그 무렵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고, 그에 맞춰 민주노동당에 가입하긴 했어도 노무현이 어떤지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전화를 받고 나가던 참에 동료에게 들은 말을 곰곰이 씹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건 막아야겠다. 아직 나에겐 2002년 12월의 환호가 남아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리고 한나라당의 노무현 탄핵은 그를 공격한 게 아니라 그 환호를 공격한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또 며칠을 거리에서 보냈다. 뛰쳐나온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나도 윤민석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그래서 너흰 아니야, 너흰 아니야, 너흰 나랄 걱정할 자격이 없어” 한나라당 박멸을 외쳤다.

그리고 다행히, 역사의 퇴물 자민련은 2004년을 기해 찌그러졌고, 김종필을 대신해 노회찬이 국회에 입성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유신공주’와 함께 꿋꿋이 살아남았다.

삼성과 노무현

이학수와 노무현의 인연.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 됐다는 사실. 군부 독재에 이거 자본의 독재가 시작됐다는 말. 노무현 후반기에 있었던 말들이다. 그리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X-File과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가 이어졌다. 노무현은 이 사건들에 있어 정직하지 않았다. 2005년에 고려대에서 이건희 시위가 있었을 때 노무현은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이제 노무현에 환호했던 기억을 내 머릿속에서 거의 지워졌다.

죽음들

한미 FTA 추진하중근ㆍ전용철 씨의 사망. 이어지는 죽음들. 절망을 이기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신에 “죽음으로 투쟁하던 시기는 끝났다”는 차가운 한 마디.

김선일 씨가 이라크의 무장 저항세력들에 붙잡혔을 때 노무현은 “파병 재검토 없다”고 냉혹한 한 마디를 던졌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정권 아래서 죽어갔다. 노무현의 정책에 맞서 싸우다, 노무현의 경찰에 맞아 죽었다. 노무현의 외면 속에 사측과 힘겨이 싸우다 절망해 분신했다. 이 모든 일에 노무현의 책임이 없다 할까?

인간 노무현?

인간 노무현에 대한 생생한 증언들을 접했다.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의 기억은 소중하다. 나도 그에게 환상을 얼마간 품고 그의 당선에 환호했다. 물론, 그를 옆에서 본 사람들만큼 그를 소중히 여기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대통령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을 구분할 수 있다면, 대통령 노무현은 대통령 이전의 노무현을, 특히나 투쟁 현장의 노무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노무현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아주 영리했고, 대신에 그 영리함을 이 나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보다는 경제 주체들에게 밉보이지 않는 데 더 많이 활용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일까?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보다는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마음씀씀이가 갔던 것은? 아니면, 이건희나 박연차처럼 그 자신이 돌봐줘야 할 기득권 세력이 있었던 것일까. 어쨌건, 대통령 노무현은 결코 ‘바보 노무현’이 아니었다.

나에게 노무현은 그저 냉혹하고 영리하게 탄압을 자행한, 그런 대통령일 뿐이다.

비리

이명박 떡찰의 칼끝은 노무현을 정조준하고 있다.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수사 진척과 노무현 수사 진척이 대비되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이런 떡찰의 행태가 박멸돼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다고 노무현을 옹호할 수 있을까? 나는 없다. 이명박은 이명박대로, 노무현은 노무현대로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노무현의 거짓말이 들통났다고 한다. 그가 결백한지 아닌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노무현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는 못하겠다. ‘바보 노무현’은 깨끗했을지 몰라도, 대통령 노무현은 그러지 않았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대통령 노무현을 둘러싼 환경은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본다.

이미 노무현 정권은 몇 번인가 부패 추문에 시달렸다. 한나라당 정권에 비해 덜하다고 해도 부패는 부패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만져보지 못할 돈임은 분명하다.

면죄부

노무현에 면죄부를 주고 싶지 않다. (물론 이명박은 말할 필요 있으랴.) 대통령 노무현으로서의 업보는 어쩌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바보 노무현’이란 과거를 가진 사내가 끝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