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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바라크

[한국사회포럼]격동의 이집트:중동의 민중반란과 연속혁명 (4)정리발언 2011년 2월 19일에 열린 한국 사회포럼 중 다함께가 주관한 토론회를 필기한 것입니다. 받아 적은 것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총 네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1)이집트인 마흐무드 압둘 가파르의 발제 (2)레프트21 발행인 김인식의 발제 (3)자유토론에서 나온 발언 중 좋은 발언 : 다함께 운영위원 최일붕의 발언 (4)정리발언 마흐무드 압둘 가파르 여러분이 아직 나를 싫어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아랍 세계에서는 혼자 말 많이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내가 오늘 말을 너무 많이 한다고 싫어하지 않기를 바란다. 일단 여러분 이야기를 잘 들었다. 특히 이집트 상황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다는 점을 알 수 있어 고마웠다. 다른 혁명의 사례들을 들어서 이집트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우려하.. 더보기
[한국사회포럼]격동의 이집트:중동의 민중반란과 연속혁명 (3)다함께 운영위원 최일붕 자유발언 2011년 2월 19일에 열린 한국 사회포럼 중 다함께가 주관한 토론회를 필기한 것입니다. 받아 적은 것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총 네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1)이집트인 마흐무드 압둘 가파르의 발제 (2)레프트21 발행인 김인식의 발제 (3)자유토론에서 나온 발언 중 좋은 발언 : 다함께 운영위원 최일붕의 발언 (4)정리발언 자유발언:다함께 운영위원 최일붕 이집트 혁명이 일어났다 하고 완료형으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89년 동유럽이나 한국 6.29 이후 상황, 또는 98년 인도네시아 상황처럼 '민주화 이행'을 밟으리라는 생각과 주장도 옳지 않다. 이 두 가지를 연결해서 하는 생각과 주장은 옳지 않다. 이집트란 나라가 직면한 역사적 과제와, 처해 있는 세계적 상황이 당시와 다.. 더보기
[한국사회포럼]격동의 이집트:중동의 민중반란과 연속혁명 (2)레프트21 발행인 김인식 발제 2011년 2월 19일에 열린 한국 사회포럼 중 다함께가 주관한 토론회를 필기한 것입니다. 받아 적은 것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총 네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1)이집트인 마흐무드 압둘 가파르의 발제 (2)레프트21 발행인 김인식의 발제 (3)자유토론에서 나온 발언 중 좋은 발언 : 다함께 운영위원 최일붕의 발언 (4)정리발언 발행인 김인식 이집트 민중에게 축하와 연대의 인사를 보낸다. 이집트 민중에게 혁명적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바란다. 혁명의 시대 2011년에 혁명이 돌아왔다. 21세기에 일어난 혁명이다. 21세기에 혁명이 가능할뿐 아니라 현실성이 있다는 점을 북부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의 민중들이 보여 주고 있다. 부하지지가 분신한 후 벤 알리 타도에 한 달 걸렸다. .. 더보기
[한국사회포럼]격동의 이집트:중동의 민중반란과 연속혁명 (1)이집트인 발제 2011년 2월 19일에 열린 한국 사회포럼 중 다함께가 주관한 토론회를 필기한 것입니다. 받아 적은 것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총 네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1)이집트인 마흐무드 압둘 가파르의 발제 (2)레프트21 발행인 김인식의 발제 (3)자유토론에서 나온 발언 중 좋은 발언 : 다함께 운영위원 최일붕의 발언 (4)정리발언 마흐무드 압둘 가파르의 발제 한국에 온지 5년 됐다. 이집트의 존엄과 자유를 위해 싸운 분들을 위해 묵념하자.(묵념) 이집트 공화국은 나세르와 자유 장교단의 쿠데타로 시작됐다. 나세르는 모든 권한을 자신에게 집중했다. 나세르 이후 권력자들에게 갈수록 그런 권력은 집중됐다. 무슬림으로서 나는 한 인간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에 반대한다. 무바라크는 생사여탈권을.. 더보기
이집트 혁명,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것은 제가 쓴 게 아니라 다함께가 주최한 서부 사회포럼 "격동의 이집트:저항에서 혁명으로"에서 최일붕 씨가 자유토론 때 한 발언을 정리한 것입니다. 옮겨적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수 있습니다. 2007년에 나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반전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언론회관에 2천 명이 넘게 왔다. 그 때 해외 참가자들을 무슬림 형제단이 초청했다. 나를 포함해 열 명쯤 갔다. 무슬림 형제단 사무총장과 얘기를 나눴다. 무슬림형제단은 다소 위계적으로 보였다. 사무총장은 동양에서 온 유일한 사람인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나는 87년부터 7~9월 노동자 투쟁에 이르는 상황을 설명해 줬다. 나는 지금의 이집트가 한국의 80년대 중엽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사무총장은 노동자 투쟁의 효과에 대해 회의적이었.. 더보기
고려대 '교수 감금'과 출교 사건의 진실 얼마 전 고려대 의대의 성추행범들을 출교한 사례가 있어 이제 출교가 학생운동 탄압의 대명사가 아니게 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분명히 2000년 성균관대에서 4명, 고려대에서 7명이 학생운동 탄압의 일환으로 출교당한 사례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고려대생 7명이 출교를 당한 것에 대해서는 고려대 내의 소수 우파적 학생들이 고대 학생 포털(고파스)을 중심으로 온갖 악선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진실을 밝히는 내용의 글을 하나쯤 써 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많은 글들이 나와 있어서 새로 쓸 건 많이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글이 싸이월드 클럽에 갇혀 있어서 블로그처럼 개방된 공간에 글을 하나 써 두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쓰는 과정에서, 답이 충분히 될 만한 글이 있다면, 여기는 요지만.. 더보기
환호하라! 이집트 혁명이다! 이집트에서 혁명이 발생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섣부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혁명이라고 부르자. 정치혁명의 과정에 있는 건 어느정도는 사실로 보이니까. 무바라크가 퇴진하면 정치혁명이 성공하는 것이고, 무바라크가 퇴진하지 않으면 정치혁명이 구체적 목표로서는 실패하는 것이다.(하지만 자신감을 얻은 ‘억센’ 민중을 무바라크가 함부로 억압하기도 쉽지 않게 될 거다.) 혁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먼저 인용문을 통해 살펴 보자. 이집트의 혁명적 사회주의자인 사메흐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난주 월요일 다른 동지들을 만나기 위해 알렉산드리아로 갔습니다. 사복 경찰이 저를 뒤쫓아 왔고, 그는 카페 주인에게 저가 알렉산드리아 출신이 아니라 말하며 저에 관해 물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며칠 뒤 저는 카페에 앉아서 혁명과 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