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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서울시 여행 프로젝트 비판 ─ 시 행정이나 잘하길

요즘 지하철을 탈 때마다 짜증이 난다. 서울시가 붙인 찌라시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바로 “누가 그녀를 울렸을까?”다. 노인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걸 정당화하는 짜증나는 홍보물도 있다.

다음은 서울시가 붙인 여행 프로젝트 포스터의 문구를 옮긴 것이다. 구구절절이 예쁜 말처럼 보이지만, 내가 보기엔 뻔뻔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위선적인 서울시- 여자를 울린다?

△여자을 울려? 서울시장 오세훈의 위선에 짜증이 솟구친다.

아침 출근길,
역에서 회사로 가는 그 길
오래된 보도블록 틈에 예쁜 하이힐이
낄까봐 늘 조마조마했었는데,
언제부턴가 한결 편하게 땅을 쳐다보지 않고
앞만 보며 당당히 걷게 됐다.

늦은 귀가길,
뉴스를 보면 ‘덜컥’하는 마음에
제시간에 퇴근하고 싶지만,
야근이다, 회식이다, 등등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전화 한통이면 달려와 주는 친절한 콜택시
집 앞 어두운 골목길도 환히 비춰주는 가로등까지

여성이 편안한...
여성이 안전한...
서울시가 여자를 울린다...
정말 감동이야!

서울시장 오세훈이 여성 억압의 주범이라고 한다면 오세훈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일이겠지만, 가로등 설치와 콜택시를 내세우면서 ‘여성을 울린다’고 떠들어대는 게 어디 시가 할 일인가?

서울시가 학생회냐

가로등 설치… 어디서 많이 보던 거다. 이건 2000년대부터 학생회들 사이에 유행했던 공약을 그대로 본뜬 것이다. 학생회라면 할만한 공약이다. 학생들이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들은 최소한의 복지를 요구할 만한 위치에 있었다.

서울시가 ‘최소한의 복지’가 ‘최선’인 집단인가? 고작 이런 걸 하면서 ‘여자를 울린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는가?

여성들에게 닥친 실질적인 위협들

여성은 경제 위기의 첫 희생양이다. 한겨레 기사를 보면 “지난해 줄어든 취업자 가운데 80%가 여성이었다”(최원형 기자, 여성 우선 해고 등 고용차별 심각, 한겨레, 2009.3.8) 같은 기사에서 “최저임금 대상 가운데 65%가 여성이고 여성노동자 가운데 70%가 비정규직일 정도로 많은 여성들의 일자리가 불안정”하다는 점도 짚고 있다.

이뿐 아니다.

직업이 있는 여성이 하루에 자녀 돌보기에 쓰는 시간은 무려 8시간 40분이다.(전업주부 여성은 13시간 20분)

육아휴직 급여는 올해 50만 원으로 올랐지만 전체 가구의 월평균 자녀양육비 1백32만 원(200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경제적 부담(77.5퍼센트)” 때문에 “자녀를 더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안 드는(73.1퍼센트, 2005년 한국리서치 조사) 게 당연하다.

승주 기자, [노무현 정부 4년,여성의 삶] 보육 정책 - 요람을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 〈맞불〉 2007.3.24

이런 상황에서 하이힐이 보도블럭에 낀다고 걱정해 주는게 눈꼴시리다는 거다. 게다가 콜택시라니! 이건 또 하나의 장사다.

오세훈은 “텃밭이 있는 빌라말고 강남 아파트를 살 걸”(관훈토론회)하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격주간 〈다함께〉 장호종 기자의 지적처럼 “오세훈은 자기 집이 없는 서울의 2백만 세대(55.2퍼센트) 시민들의 주거권보다 다주택자인 12퍼센트가 재테크와 부동산 투기로 이끌어 갈 ‘서울의 경쟁력’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앞선 두 말의 출처. 장호종 기자, 오세훈 - 이명박 줄기세포로 만든 복제 배아, 격주간 〈다함께〉, 2006.5.16)

내 집이 없는 것, 그리고 재개발 때문에 쫓겨나는 것도 여자를 울리는 대표적인 일들이다. 오세훈이 진정 ‘여자를 울리’고 싶다면 용산 참사 같은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앞서 인용한 기사(보육 정책 - 요람을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에 나온 말로 오세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며 글을 맺는다.

2005년 한 조사에서 ‘실제로 도움이 되는 저출산 대책’ 1위로 꼽힌 것은 “국공립 육아ㆍ탁아시설 증설(54퍼센트)”이었다. “저소득층 자녀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 실시”도 51퍼센트의 지지를 받았다.

평등한 여성 고용, 공공 보육의 획기적 확충, 주택 문제 해결. 이런 게 가로등 설치나 보도블럭에 하이힐 끼지 않게 하기, 콜택시 장사 등보다 훨씬 시급하고 서울시가 홍보해야 할 문제다. 지금 너네가 홍보하는 건 그냥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해라. 그런 거 하고서 생색내는 거 쪽팔리지도 않니? 그렇게 돈 들이기 싫으니? 광고비라도 아껴서 보육비에 써라. 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