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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조선일보> 수능 학교별 순위 공개와 대비되는 <시사인>의 따듯한 시선

마침 시기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조선일보>가 수능 학교별 순위를 공개한 것과, <시사인>이 자퇴하는 고등학생들에 대해 보도한 게 말이다.

시사인 109호, 나는 가난하다 고로 자퇴한다

이번 <시사인>은 저소득층 고등학생들의 현실을 다뤘다. 강추다.

조선일보가 수능성적의 학교별 순위를 공개하면서 노린 바는 뻔하다. 경쟁교육을 부추기려는 것이다. 그건 자유와 평등이 살아 숨쉬는 학교를 막기 위한 것이다. 경쟁에 지치고, 5가지 문항 중 하나의 답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을 양산해, 진실로 스스로가 생각하는 그런 능력을 퇴보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여중생들이 시작한 2008년의 촛불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일 것이다.

평등은 독이라는 거짓말

<조선일보>가 수능성적 학교별 순위를 대서특필한 목적은 분명했다. 평준화 지역 내 일반고의 성적이 부진한 것과 평준화 지역 내에서도 일반고 간 학력 격차가 상당하다는 점을 드러내 고교평준화 제도 폐지 주장을 뒷받침하려 한 것이다.

이현주 기자, <조선일보>의 수능 고교별 순위 공개 - 평준화 폐지, 특목고ㆍ자사고 확대가 낳을 끔찍한 미래의 예고, <레프트21>  2009-10-13

다른 하나의 목적은 위 기사가 잘 말해 주고 있다. '평준화'라는 말조차 없애버리고 싶은 것이다. 이건 분명한 '이데올로기' 공세다.

평준화는 '평등'을 연상하게 한다. '평등'은 <조선일보>가 바이러스처럼 싫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평준화는 실제로 그걸 구현한 것 중 하나다. 특히, '교육'에서 '평등'을 구현한 것을 <조선일보>는 정말정말 싫어할 것이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외치고 있는 것이다.

'평등'은 공산당이나 하는 짓이다! '평등'하게 했더니 다 망하지 않았니? 교육도 '평등'하면 다 망한다!

그러나 그럴까?

아니다. 평준화한 지역 학생들의 평균 학력이 비평준화지역보다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고 한다. 다음 글을 보자. 내용이 좋아 길게 인용한다.

교육부는 2008학년도 중ㆍ고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와 수학을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상ㆍ중ㆍ하 반으로 나눠 수업을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보수 언론들은 “하향 평준화를 낳는 평등주의 교육의 폐해가 다소 개선될 능력과 수준에 맞는 교육”이라며 환영했다.

그러나 국내외의 많은 연구 결과들은 비평준화나 수준별 수업이 상위권 학생들에게는 거의 영향이 없으며, 오히려 중ㆍ하위권 학생들의 성적은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대표적인 예로 OECD 회원국들의 ‘학업성취도 국제 비교 연구’(PISA)에서는 한국 학생들의 종합적인 학업성취도를 핀란드에 이어 2위로 평가했다.

베르나르 위고니에 OECD 교육국 부국장은 2004년 12월 한국을 방문해 “공부 잘 하는 학생과 못 하는 학생을 모아놓으면 성적이 많이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한국도 평준화 정책으로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강동훈, 수준별 수업은 효과가 아니라 역효과를 낼 것이다, 격주간 <다함께>, 2005-10-26

<시사인>의 정직하고 따듯한 눈

나는 <시사인>이 '지나치게' 공정하고 좀 온건한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번 호 <시사인>의 따듯한 눈은 감동이었다.

표지 헤드라인부터 센세이션하다.

"나는 가난하다 고로 자퇴한다"

지나내 12월 서울 한 고등학교 교사들은 <꿈을 잃어버린 학생들에 관한 연구>라는 아주 독특한 제목의 보고서를 펴낸 바 있다. 아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까 걱정돼 외부에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그 내용은 사뭇 충격적이었다. 전교생 1600여 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저소득층 학생의 절반 이상이 영어ㆍ수학 과목의 공부를 '포기'한 상태였고, 학습동기나 실행력, 자존감도 일반 학생에 비해 크게 뒤떨어졌다.

고동우 기자, “자퇴가 제일 쉬웠어요 난 가난하니까”, <시사인> 109호, 2009.10.17

(글을 쓰는 시점에 아직 웹에는 기사가 올라오지 않아서 링크를 못 걸었다.)

보고서 작성에 참가한 김 아무개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낮은 자존감과 문제 행동, 주변 사람들의 안 좋은 시선이 악순환을 이루면서 무기력하게 학교 생활을 하거나 떠나는 아이가 많다. 국가는 이들을 외면하지만 매일매일 만나고 교육해야 하는 교사는 그러기 힘들다. 혹 우리가 먼저 그 아이들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사가 학생을 포기하는 것은 ‘선생님’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같은 기사

<조선일보>의 한탕식 기사, 무책임한 기사와 얼마나 다른가.

총 다섯 페이지짜리인 이 기획기사는, 상담실에 찾아갔다가 형식적 상담에 실망만 하고 돌아온 아이, 학교를 포기하려고 할 때 유일하게 끈질기게 자신을 찾아와 설득하던 선생님에 대한 따듯한 기억을 가진 아이, 저소득층 아이들의 현실 등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면서 내 눈시울을 적시려 들었다.

보고서는 이렇게 끝맺고 있었다고 한다.

“성적이 부진하다고 해서 학생들이 꿈조차 상실하고 무기력하게 살고 있다고 여기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같은 기사

무엇이 문제인가

<시사인>의 따듯한 시선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내가 좀더 잘해야 겠다"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나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아이들 밥값마저 빼앗는 냉혹한 교육 현실에 있다.

이 기사의 인터뷰 하나만 인용하자.

월 80만원을 받고 요양치료사로 일하는 황 아무개씨(47)는 “전문계 고등학생인 딸아이가 두 달 동안 학교 급식을 안 먹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알고 보니 급식비를 교육청에서 지원받는다는 사실이 선생님의 부주의로 친구들에게 알려지면서 아이가 자존심이 상해서 그랬던 것이었다”라는 이야기를 눈물을 훔치며 전하기도 했다.

경기도 교육청이 전 학생 무료급식을 추진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모두가 무료 급식을 받으면 자존감에 상처를 받을 일이 없을 테니까. 그리고 학생들을 먹이는 건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니까.

천벌 받을 <조선일보>와 세상에 한 방울 물이 되는 <시사인>

낮은 자를 업수이 여기면 천벌을 받는다는 말을 옛 어른들은 가끔씩 하곤 했다고 한다.

<조선일보>의 학교별 수능 성적 공개는 바로 낮은 자를 업신여기는 짓이다. 자신의 기득권을 평생 유지하려는 짓이다. 동시에 '평등' 사상을 공격해 사람들을 세뇌하려는 짓이다.(심지어 이를 위해 평준화가 아이들을 멍청하게 만든다는 거짓말까지 한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시사인>은 다르다. 따듯한 눈을 가지고 있다. 저소득층 성적 낮은 아이들에게 참담하기만 할 이 세상에 한 방울 물이 되는 기사, 너무나 마른 목에 물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려 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기사다.

그리고 <시사인>은 우리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잘 말해준다.

바꿔야 하지 않는가. 바꾸기 위한 실천이 바로 해답이 아닌가. 실천할 기회는 분명 있을 것이다.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말고 실천하자. 지금 구체적으로 있는 게 없으니 말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안타까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