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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논평

고재열 기자 대학 선거 기사 이견 - 구분되는 과열ㆍ혼탁

나는 <시사IN> 애독자다. 정기구독하지는 않지만, 매주 가판대에서 <시사IN>을 사 본다. 내 예전 포스트들을 보면 <시사IN>을 대상으로 한 리뷰 글이 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래 글은 내용을 칭찬한 경우다.

<조선일보> 수능 학교별 순위 공개와 대비되는 <시사인>의 따듯한 시선

내가 서두에 이렇게 '변명'을 쓰는 이유는,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서다. <시사IN>은 조중동과 달리 대체로 정론직필하는 좋은 언론이다.

그러나 고재열 기자의 이번 기사에는 문제가 있어 보여 짤막하게 쓴다.

서울대 총학선거 부정 제기하는 장면

지난 11월26일 예스위캔 쪽에서 감청 내용을 공개하며 박진혁 전 선거관리위원장 등의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오른쪽). 예스위캔이 정리한 채록 문서. <서울대저널> 동영상 캡처. 출처는 <한겨레21>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6295.html 아래쪽에 인용과 기사 링크도 있다.

모함에 비리까지 ‘대학 선거’ 맞아?

위 소제목은 <시사IN> 118호(2009년 12월 19일자)에 고재열 기자가 쓴 기사의 제목이다. 전반적 내용은 사실 서술로 돼 있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어 보인다. 오늘날 대학 총학생회 선거의 뼈아픈 현실들이 포함돼 있지만, 거짓말도 아니고 '쓴소리'로 들을 만한 이야기다.

  • 서울대 : 비운동권 선관위의 투표함 사전 개봉 의혹, 운동권 선본의 도청, 투표율 미달로 선거 두 차례 무산
  • 영남대 : 운동권 총학이 구성한 선관위. 비운동권 선본의 후보 자격 박탈[각주:1], 운동권 후보 혼자 찬반투표를 하게 됐는데 반대표가 더 많아 탈락.
  • 이화여대 : 비운동권 계열 총학이 구성한 선관위. 운동권 후보의 후보 자격 박탈. 반발한 학생들 투표 불참으로 투표 무산.
  • 대전대학교 : 학교당국이 총학 당선자와 선관위원장 제적.
  • 울산대 : 훼손된 투표함 발견으로 재투표.
  • 용인대 : 투표함을 훔치는 사건 발생.
  • 부경대 : 대리투표와 뭉치표 적발.
  • 부산대 : 후보가 휴학중인 사실이 드러나 선거 무산.
  • 동아대 : 후보자의 성추행 사실이 알려져 사퇴.
  • 성균관대 : 양쪽 후보가 각각 성추행 의혹. 경고 누적으로 후보 자격 상실.
  • 고려대 : 당선자가 민주당 의원 딸이라는 이유로 흑색선전.

비운동권과 운동권 총학이 구성한 선관위?

위 사례들이 혀를 끌끌 차게 만드는 사건들인 것은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한 점은 남는다.

선관위는 총학생회 맘대로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일례로 고려대도 비운동권 총학이 구성한 선관위에 운동권 선관위원이 여럿 포함돼 있었다. 즉, 선관위가 총학생회의 시녀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고재열 기자가 "영남대에서는 운동권 계열 총학생회가 구성한 선관위 쪽에서 비운동권 계열 후보의 후보 자격을 박탈하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쓴 것은 부정확한 듯하다.

만약 운동권 계열 학생들이 작당해 비운동권 후보의 후보자격을 박탈시킨 게 진실로 성립하려면, '운동권 계열이 다수인 선관위'라는 서술이 필요하다. 즉, 운동권 총학이든 비운동권 총학이든 선관위를 맘대로 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관위는 보통 현직 단과대 학생회장들, 동아리 연합회장과 총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같은 현상 다른 내용일 가능성

고재열 기자는 이화여대는 비운동권 계열 총학이고, 운동권 선본이 후보자격을 박탈당했다고 서술하고, 영남대는 운동권 계열 총학이고 비운동권 선본이 후보자격을 박탈당했다고 서술했다.

서술 의도는 명확하다. 둘이 삐까삐까라는 거다.

물론 둘이 똑같은 짓거리를 했을 수도 있다. 운동권 총학이라는 이유로 잘못까지 옹호할 생각은 없으니까.

하지만, 고재열 기자의 기사에서 '내용'을 찾아볼 수 없어 판단을 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영남대에서 비권 선본이 후보자격을 박탈당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는 정당한가 부당한가? 이런 질문은 빠진 채로, 그냥 운동권 총학이 포함된 선관위가 비권 선본을 쫓아낸 것으로 서술돼 있다.

이화여대도 마찬가지다. 운동권 선본이 항의로 삭발까지 했다는데, 내용은 뭔지. 부당한 것에 운동권 선본이 저항한 것인지, 아니면 오바인지 나와있지 않다.(내가 주변에서 듣기로는 부당한 후보자격 박탈이었던 듯한데, 나도 정확한 사실관계는 모른다.)

나이브한 원인 분석 : 이권

고재열 기자는 기사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대학 총학생회 선거가 왜 이렇게 과열 혼탁 양상을 보이게 된 것일까? 그것은 총학생회가 중요한 이권을 쥐기 때문이다. ... 학생회비와 학교 측에서 받는 교비 그리고 기업이 주는 협찬금의 규모가 상당하다. 총학생회 간부 출신인 한 대학생은 “한번 이권에 맛을 들이면 기득권을 계속 지키기 위해 무리수를 두게 된다. 그 과정에서 총학생회 선거 부정이 생겨난다”라고 말했다.

... 이중계약으로 차액을 챙긴다. ... 영수증 사인을 연필로 받아 지우고 조작한다. ... 선거자금이 부족하면 거래 업체들로부터 ... 계약을 주겠다고 하고 미리 받아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 사업권 중 일부를 넘겨주고 단일 후보를 내는 것

총학생회 선거에 이권이 개입돼 있다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다. 심심찮게 얘기되던 사실이긴 하다. 고재열 기자가 거짓말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들이거나 사실로 상당히 생각되는 서술들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과열 양상’과 ‘혼탁 양상’을 ‘이권’ 하나로 설명하려는 것은 틀렸다.

구분되는 과열과 혼탁

서울대 사례를 보자. 투표함 사전 개봉은 ‘혼탁’이다. 언론에 보도된 바대로라면 사전개봉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데 이건 더도덜도 할 것 없이 혼탁이 확실하다.

이 음성파일에는 "38대 25대 22...", "XX선본은 더 올라갈 것 같고.. 00선본은 좀 떨어질 것 같다"는 말소리에 이어 "결과가 안 좋네… 완패다 완패"라는 박 씨 추정 육성까지 포함돼 있었다.

미리 투표함을 뜯어보지 않고는 이처럼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며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선본들의 주장이다.

- 유재연 기자, 사전개표에 불법 도청까지… 서울대 총학선거 '파행', <노컷뉴스>

도청은 ‘과열’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혼탁’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차라리 <한겨레21>의 서술과 분석은 좀 나아 보인다.

물론 전통적 정치조직의 최종 목적지 역시 총학이다. 서울대 무단 감청을 벌인 예스위캔 선본은 민주노동당학생위원회 쪽이다. 이들은 “사실 지난해에도 투표용지 1만 장이 없어졌을 때 고민이 많았다. 선본 차원에서 이의를 제기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설명만큼 두 진영의 골은 깊다. 지난해 선거 때 이미 지금의 비운동권 계파에 밀렸다. <서울대저널> 이진혁 편집장은 “기층 학생을 통해 조직을 키울 수 있는 큰 계기가 총학생회장 당선”이라며 “개인적 사심보다, 조직이 바라는 대로 학생 사회를 구성하려는 고민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 임인택 기자, 서울대판 ‘초원복집 사건’의 진실, <한겨레21> 2009.12.11 제789호, 강조는 내가. 

적어도 <한겨레21>은 도청을 한 '예스위캔' 선본의 입장을 보도했다. 물론 진실이야 '저 너머'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운동권 학생들이 대부분 총학 선거에 도전할 때, '이권'이 아니라 '운동 확대'을 목표로 한다는 걸 고재열 기자가 정말 모르는 것인지 의문이다. '운동 확대'에 대해 비판적이면 그렇게 쓰면 된다. 하지만, 이게 '경제적 이권'은 아니다. 그런데 마치 모든 선본이 '경제적 이권' 때문에 미쳐 날뛴다는 식으로 쓴 게 문제다.

영남대, 이화여대 사례 등이 있지만, 구체적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고려대에서 돌았다는 "민주당 국회의원 딸이 당선되면 고려대가 민주당의 시녀가 될 것이다" 하는 흑색선전은, 자게에서 긁어다 붙이거나 '소문'을 옮긴 것 같은데, 이게 '선본'의 작품이라는 증거는 없어 보인다. 어떤 선본이 선거 신문이나 인터뷰에서 저런 소리라도 했다는 건가? 선거부정에 비하면 사안의 중요성도 한참 떨어져 보인다.

외부 세력의 개입 - 학교당국이 미는 반권, 기획사

운동의 전통이 있던 총학생회 선거에 학교당국이 미는 반권[각주:2]이나 조폭, 기업과 기획사의 후원이 개입되면서 과열ㆍ혼탁 양상이 나타났다. 고재열 기자도 이를 지적은 하는데, '이권'을 더 직접적인 요소로 보는 게 문제다.

대학 총학생회 선거를 더욱 혼탁하게 만드는 외부 세력도 있다. 학교 당국과 기획사다. 학교 당국은 반운동권 계열 후보에 대해 노골적인 지원을 하면서 운동권 계열 후보에 대해서는 각종 규정을 내세워 출마를 무산시키거나 후보 자격을 박탈하게 한다. ...

총학생회 선거를 혼탁하게 만드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손’은 기획사다. ...

해결책 - 운동이 지배적이 돼야

해결책은 간단하다고 본다. '운동'이 지배적이 돼야 한다. '운동권'이 지배적이 돼야 한다고 쓰지 않았다. '운동'이다.

이상과 열정이 사라진 학생회에 남은 것은 경제적 이권일 것이다. 그러나 고재열 기자의 분석과 다르게 오늘날에도 수많은 총학생회 선본들이 '이상'과 '열정'을 위해 선거에 출마한다. 운동권이든 비권이든 말이다.(반권은 제외.)

이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학생회 판에서 지배적 세력이 된다면 이따위 '과열'과 '혼탁'은 사라질 것이다.

고재열 기자를 비판한 것 치곤 너무 나이브한 결론인가? 끝.

  1. 주의/경고 등 징계가 누적되면 이렇게 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후보 자격을 박탈할 정도까지 징계를 누적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본문으로]
  2. 비운동권과 구분하는 의미로 쓴 말이다. 비운동권은 순수한 학생들인 경우가 많다고 본다. 올해 고려대에서 당선한 쪽도 반권이 아니라 비권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