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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공산주의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가(평등관)

나는 여기서 ‘사회주의’란 말과 ‘공산주의’란 말을 동의어로 사용한다. 역사적으로 시기에 따라 다소 다른 뉘앙스를 띄긴 했지만, 결국 처음에 사용될 때는 같은 의미로 사용된 말이기 때문이다. (참고: http://spar2003.tistory.com/98)

평등한 분배 vs 필요에 따른 분배

다음은 ‘정의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 - 존 롤즈 《정의론》 읽기’(최일붕, 《마르크스21》 6호, 2010년 여름)의 한 구절이다.

마르크스는 궁극 목표는 평등한 분배가 아니라 필요에 따른 분배라고 주장했다.[각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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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말이다. 흔히 사람들이 말한다. ‘사회주의는 불가능해. 모든 걸 똑같이 나누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거든.’ 주류 이데올로기가 퍼트려 놓은 편견은 얼마나 강력한가!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바보도 아니고, 아무리 이상주의자라고 해도 정말 그냥 다 똑같이 나누자고 할 것 같나?”

그렇다. 마르크스는 똑같이 나누는 사회를 사회주의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런 생각은 멍청한 우파거나 교활한 우파가, 여튼간에 중요한 건 우파가 퍼뜨려 놓은 사회주의에 대한 온갖 거짓들 중 하나일 뿐이다.

불평등이 있기에 평등이 있는 것

최일붕은 ‘정의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 - 존 롤즈 《정의론》 읽기’에서 정의란 불의가 있어야 성립할 수 있는 개념이고, 불의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회에 재화가 충분치 않거나, 제도 때문에 풍부한 재화에 대한 접근이 불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물에 대한 예를 든다.

물을 예로 들어 보자. 음용수든 관개수든 수자원 공급이 인간 생사의 문제였던 상황은 많았지만, 선진 산업국에서 물 부족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공공요금 미납이나 체납으로 수도가 끊기는 것은 자원의 희소성과는 관계 없는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는 물의 “정의로운” 분배 문제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 분배되는 것이다.(물론 대가를 치르고)

249p

그렇다면 공기는 어떨까?

“공기를 평등하게 나눠야 해, 공기 분배에 정의가 없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공기는 풍부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되면 공기를 똑같은 양씩만 마시라고 하면서 각 개인이 들이마시는 공기의 양을 측정하게 될까?[각주:3]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공기는 풍부하다. 그래서 공기의 평등, 공기의 정의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들이마시면 된다.

이쯤에서 “마르크스는 궁극 목표는 평등한 분배가 아니라 필요에 따른 분배라고 주장했다”는 문장이 나오는 문단을 그대로 인용해 보자.

엥겔스가 《반뒤링론》에서 지적했듯이 마르크스의 평등관은 역사적 상황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다. “평등 개념은 부르주아적 형태든 프롤레타리아적 형태든 역사적 산물로, 평등 개념이 생겨나는 데는 그 자체로 기나긴 이전 역사를 전제로 하는 특정한 역사적 조건들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평등 개념은 결코 외부에서 출현한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평등권(“공정분배” 같은)도 “다른 모든 권리처럼 내용상 불평등한 권리”라고 주장했다. 저마다 필요한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궁극 목표는 평등한 분배가 아니라 필요에 따른 분배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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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는 풍요를 전제로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낳은 풍요의 기반 위에서만 사회주의가 건설될 수 있다고 했다. 더이상 ‘부족함’이란 게 존재하지 않아야 사회주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사회에서는 먹을 거리에 대한 정의나 평등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왜? 너무나 풍부해서 그것을 나누는 방법에 대해 사람들이 고민조차 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회에서는 권리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왜? 침해받는 권리가 없을 것이므로.

그 사회에서는 재산 분배의 정의나 평등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풍부한 재화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만큼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공상같은가? 아니다.

이 세상의 생산력은 이미 충분히 높아서 예컨대 식량으로 말하자면 세계 모든 인구에게 매일 3000kcal의 열량을 제공할 수 있다. 재화 또한 너무나 풍부하다.

그래, 그걸 민주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자본주의가 있을 뿐이다. 이제는 늙고 낡고 무능한 체제- 자본주의 말이다.

  1. 사실 동의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2. 칼 마르스크, ‘고타 강령 초안 비판’, 《칼 맑스ㆍ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4권, 박종철출판사, 1995, 374~377쪽. [본문으로]
  3. 사실 원초적으로 말이 안 된다. 사회주의는 극도로 민주적인 사회다. 이런 정책이 민주적 과정을 통해 채택될 리 없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