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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주의는 결정론·교조주의다?

2009년 12월 12일 발행된 <시사IN> 제117호의 특집 기사인 ‘진보의 재구성 ⑥ 스웨덴 모델 ─ 마르크스와 비그포르스’(‘구조조정 촉진하고 시장을 사랑한 ‘진보’’에 딸린 박스기사. 아직 웹에는 안 올라온 듯하다.)에는 이런 서술이 나온다.

스웨덴 사민주의가 그 특유의 사상을 형성하던 20세기 초엽, 전 세계 차원에서 대표적인 ‘진보 이념’은 마르크스ㆍ레닌주의였다. 마르크스ㆍ레닌주의의 핵심은 역사가 ‘필연적’으로 ‘사회주의 유토피아’라는 종착역에 이르게 되어 있다는 결정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절대적으로 궁핍화된’ 노동자 계급의 ‘폭력 혁명’으로 전복될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논리를 마르크스ㆍ레닌주의자들은 ‘과학’이라고 불렀다. ‘유일무이한 진리’라는 의미다. 그들은 마르크스 등의 저서를 축자적[각주:1]으로 읽으며, 진리에 어긋나는 ‘배교자’들을 축출하는 데 전념했다.

마르크스ㆍ레닌주의 = 스탈린주의

독재자들

마르크스ㆍ레닌주의는 독재자였던 스탈린의 사상을 일컽는 말이다. 마르크스ㆍ레닌주의라는 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스탈린과 히틀러는 다른 유형의 독재자다. http://www.left21.com/article/385

내 이론적 내공이 짧긴 하지만, 간단하게 쓸 수는 있다. 위 글에 등장하는 마르크스ㆍ레닌주의라는 단어는 실상 ‘스탈린주의’를 의미한다. 러시아에서 스탈린은 동료 혁명가들을 모두 살해하거나 추방했다. 노동자 민주주의는 17개국의 침입과 반혁명군이 일으킨 내전으로 인해 질식했다. 산업이 붕괴한 상황에서 ‘노동자 민주주의’라는 말 자체가 성립 불가능했다.

붕괴한 노동자 민주주의 위에, 大러시아 국가주의가 자라났다. 노동자는 적고 국가관료는 많았다. 노동자 민주주의는 없고 국가관료의 권한은 컸다. 국가의 안전보장! 이것이 노동자 국가 소련이 아니라 국가관료 소련의 캐치 프레이즈가 됐다.

국가 안전보장에 걸림돌이 돼 보이는 것들은 모두 없애버려라!

그 결과 1917년 혁명 당시 볼셰비키 중앙위원들 중 상당수가 스탈린의 손에 희생됐다. 레닌의 오랜 동지 부하린, 카메네프, 지노비예프가 총살당한 것은 유명하다.

1936년 8월 카메네프와 지노비예프는 대숙청기간중 최초로 열린 공개재판에 다시 회부되었다. 카메네프는 스탈린과 다른 소련 지도자들에 대한 암살음모죄로 기소되어 자신의 범죄(조작된 것이었음)를 자백한 후 총살당했다.(네이트 백과사전 카메네프)

지노비예프는 제1차 대숙청의 와중에서 키로프 등의 소비에트 지도자들을 암살하기 위해 테러 조직을 결성했다는 날조된 죄목으로 다시 기소되어 결국 처형되었다.(네이트 백과사전 지노비에프)

그는 1937년 1월 비밀리에 검거되었으며 '트로츠키파'라는 누명과 함께 당적을 박탈당했다. 1938년 3월 마지막 숙청재판에 모습을 드러낸 부하린은 반혁명·첩보활동 혐의를 대부분 시인했고 유죄판결을 받아 얼마 후 처형되었다.(네이트 백과사전 부하린)

중앙위원뿐 아니라 대의원들도 스탈린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혁명의 기억을 가진, 다시 말해 노동자 민주주의의 기억을 가진 이들은 모두 없어져야 했다.

1917년 볼셰비키 중앙위원들

1917년 당시 볼셰비키 중앙위원들 사진. 빨간 글씨는 처형/암살, 초록 글씨는 스탈린 밑에서 오래 산 사람들, 회색은 병사, 자주색은 전사나 자살인 듯하다.(영어가 짧아서.) 출처는 marxists.org라고 써있다.

이게 바로 <시사IN>에서 말한 ‘배교자 숙청’의 진상일 터다.

혁명적 전통을 계승하려 했던 일부 지도자들은 숙청되거나 추방되었고, 가장 뛰어난 지도자들은 죽임을 당했다. 모스크바 재판 등에서 “제국주의의 스파이”란 조작된 죄명으로 부하린 등의 고참 지도자들은 사형 언도를 받았다. 해외로 추방된 지도자들도 트로츠키처럼 계속 저항하는 경우, 스탈린 관료집단이 보낸 비밀 경찰에 암살당했다. 1930년대 말에 이르면, 1917년 10월 혁명 때 볼셰비키 당 중앙위원들 중에서 4/5 정도가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았다.

- 세계노동자운동 : 교양도서 2권_러시아 혁명의 성공과 좌절, 그리고 한국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

이런 스탈린주의에서 교조주의, 숙명론, 배교자 숙청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를 마르크스주의에 적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스탈린주의를 ‘마르크스ㆍ레닌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스탈린주의를 마르크스주의와 혼동하게 할 염려가 아주 크다.

마르크스주의는 숙명론인가?

일단 마르크스주의는 숙명론인가부터. 두 문단을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경제 위기 때 기업들은 파산하고 그들의 자산은 헐값에 팔린다. 이것은 자본의 총액을 감소시킨다. 그와 동시에, 앞서 보았듯이 노동자들은 실업의 압력 때문에 착취의 강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요인들은 투자와, 따라서 성장이 다시 시작되는 수준까지 이윤율이 회복되는 데 일조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영원한 위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윤율의 부침은 자본주의를 호황과 불황의 순환으로 끌고 간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이것을 분석한 최초의 인물이다. “경기 순환”의 하강 국면은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 준다. 체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계급 투쟁은 더 치열해지고 격렬해진다. 이런 양극화 과정을 거치면서 자본주의를 타도하겠다는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노동 계급이 등장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반드시 경제적으로 붕괴한다는 말은 아니다

- 알렉스 캘리니코스, 마르크스에 대한 왜곡을 걷어 낸다, 격주간 <다함께> 9호 | 발행 2003-05-31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가 ‘절대적으로 궁핍화된’ 노동계급을 낳는다고 주장하는가?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책표지

마르크스에 대해 간단히 알고 싶으면 이 책 추천한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빈곤한 노동계급이 폭력혁명을 일으킬 것이라는 부분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의 견해를 들어 보자.(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세계적인 마르크스주의자니까.)

마르크스는 이 이론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이에 맞서 격렬하게 싸웠고 다른 사회주의자들에게도 이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설득하려 했다. <임금, 가격, 이윤>이라는 책에서 마르크스는 공상적 사회주의자 로버트 오웬의 한 추종자가 편 주장을 논박했다. “임금철칙설”에 따라 그 추종자는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조건을 결코 개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생산물이 노동과 자본 사이에 배분되는 것은 양측의 세력 저울에, 따라서 계급 투쟁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진실은 마르크스가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을 구분했다는 것이다. 실질 임금이 상승하더라도 노동자들이 가져가는 노동 생산물의 몫은 기업주들이 이윤의 형태로 가져가는 몫에 비해 하락할 수도 있다. 노동자들의 노동 생산성이 더 높아진다면 그들의 생활 수준은 상승할 수 있지만, 기업주들이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갈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더 많이 착취당하는 것일 것이다.

- 알렉스 캘리니코스, 마르크스에 대한 왜곡을 걷어 낸다, 격주간 <다함께> 9호 | 발행 2003-05-31

심지어 ‘이 이론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이에 맞서 격렬하게 싸웠고 다른 사회주의자들에게도 이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즉, 위 두 가지는 마르크스에 대한 대표적 오해라고 할 만하다.

[덧] 마르크스에 대한 왜곡을 걷어 낸다는 여러 모로 도움이 되는 글이다. 길지도 않으니 마르크스주의에 관심 있는 사람은 꼭 읽어 보기 바란다.

[덧2] 마르크스에 대한 왜곡을 걷어 낸다를 쓴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세계 100대 지성에 꼽힌 교수다. 사회주의자기도 하다. 그러니까 위 글은 신뢰해도 된다. (세계 지식인 지도 : 21C 지식인은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책에 촘스키 바로 뒤에 소개되기도 했다. 목차에 보면 있다.)

  1. 글을 해석하거나 번역할 때 원문의 글자 하나하나를 좇아 그대로 하는. 또는 그런 것. 이 각주는 원문에 있는 게 아니고 내가 단 것이다. [본문으로]
  • 허세만 2009.12.14 22:18

    저 혁명가들의 사진은 1960년대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이 모아놓은 것일 겁니다 아마. ㅎㅎ

  • 허세만 2009.12.15 21:49

    아, 이 사진은 다른 사진입니다.

    최일붕, <<러시아 혁명과 레닌의 사상>>(책갈피, 2007), 15쪽에 나와 있는 사진은 1938년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이 만들었다고 되어 있는데 저 사진이 훨씬 업데이트 판입니다.

    1938년 판은 콜론타이가 행방불명되었다고 되어 있는 등 다소 문제가 있네요. 좀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 sdf 2011.02.05 03:45

    이집트관련 검색하다가 들어와서 여러 글 잘 읽고 갑니다.^^ 전 맨 위에 인용된 시사인 기사가 그리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실 19~20세기 초 사회주의운동에서 맑스주의는 개량주의와 투쟁했고 그런 의미에서 배교자를 축출하는 게 주요 과제였던 건 사실인 것같습니다. 레닌도 마찬가지고요. 배교자축출 부분만 가지고 스탈린주의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하긴 무린 것같아요. 결정론이라는 비판에 대해 엥겔스가 "맑스와 나는 현실적 생활의 생산과 재생산이 결정적 계기라는 것 이상의 것은 주장한 적이 없다"고 했죠... 상부구조의 상대적 자율성을 부정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무기력한 숙명론과는 다르지만, 엄밀하게는 토대가 궁극적 규정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결정론이라는 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기사에서 맑스가 '절대적궁핍화'로 인해 혁명이 일어난다고 했다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맑스의 임금이론이 임금철칙설과는 다르게 상대적 궁핍을 인정하고 있는데, 이는 최소 생활수단이 절대적으로 고정되어있지는 않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이상 허접한 의견이었습니다.

    • 사용자 안형우 2011.02.05 16:01 신고

      보통 그럴 때는 배교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진 않죠. 당연히 러시아에서 집권정당이 된 볼셰비키에는 온갖 출세주의자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을 솎아내는 것은 중요한 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국가의 공산당도 정치적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검증을 거치는 것은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당연히 이 과정은 배교자 축출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됐을 겁니다. 적어도 스탈린주의가 각국 공산당을 장악하기 전에는 말입니다.)
      시사인은 명확히 이렇게 썼습니다. "그들은 마르크스 등의 저서를 축자적으로 읽으며, 진리에 어긋나는 ‘배교자’들을 축출하는 데 전념했다." 한 마디로 마르크스의 저서를 교조적으로 해석하면서 숙청에 전념했다는 뜻인데, 레닌주의와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습니다. 레닌이나 트로츠키 자신이 마르크스와 달라 보이는 주장으 펴기도 했으니(대표적으로는 제국주의론, 전위정당론 등이 있겠네요) 이들에게 '교조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 사용자 안형우 2011.02.05 16:08 신고

      그리고 결정론에 대해서는 내용상 동의합니다. 그러나 보통 그런 데는 "결정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결정론은 모든 것이 결정돼 있다는 논리에 사용하는 것이고(대표적으론 종말론) 인간의 주체적 역량이 사태를 바꿀 수 있다고 할 때는 결정론이라고 하지 않죠.
      단어를 오용해서는 안 ㄷ힌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마르크스주의자를 결정론이라고 공격할 때는 자본주의 붕괴가 결정돼 있다고 주장한다면서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 점이 결정돼 있다고 말하지 않는데 거기다 대고 "음, 물질적 조건을 주체가 뛰어넘을 수 있다고 하진 않았으니 결정론의 일종이긴 해" 하고 답하는 건 논지에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라거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듯 그런 걸 결정론이라고 부르는 것도 아니고요.
      에고 좀 날카롭게 느껴지셨더라고 양해 부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