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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추천, 노동OTL - 오늘을 사는 전태일들

선배에게 <한겨레21>이 연재하는 노동OTL이라는 게 있단 소릴 들었다. 이 사회 가장 밑바닥에서 시급 4천 원짜리 일을 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했다. 기자가 직접 체험하고 쓴 기사라고 했다.

노동OTL

기사를 일일이 긁어 텍스트 파일로 만들었다. 핸드폰에 넣어 지하철에서 읽으면서 다녔다.

그 뭉클함, 그 생생함, 그 분노란.

http://h21.hani.co.kr/arti/SERIES/46/(이 링크에서 볼 수 있다.)

인상깊었던 구절을 소개한다. 2009년 9월 25일자에 실린 '15만 원 남았다. 희망은 남지 않았다'에 나온 구절이다.

8월23일 일요일, 서울 용산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보았다. 공장밥에 길들여진 뱃속에 카르보나라 스파케티와 포르시타 피자를 넣었다. 그리고 저녁에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었다. 영화 티켓 비용을 뺀 5만4940원이 내 카드 명세표에 기록됐다. 불과 10시간 만의 일이다. 하루 밤 9시까지 11시간 일을 해도 메울 수 없는 금액이지만, 공장에 부는 가을바람이 한강 강바람을 대신할 순 없다.

그날 본 <라르고 윈치>는 액션도, 스릴도, 심지어 여배우의 미모까지도 어중간한 영화였다. 세계 5위의 기업을 물려받은 양자로부터 회사를 뺏으려는 음모·혈투가 뼈대였는데, 도대체 5위의 기업을 만들기 위해 물 아래서 갈퀴질 하는 노동자는 보이지 않고, 오직 경영권에 눈 붉힌 이들만 가득했다. 거북했다.

이 땅에서 노동이 얼마나 가치없에 여겨지는지를 이토록 생생하게 묘사하기란 얼마나 어려울까. 기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한 구절을 보자. 이건 '나는 아침이 두려운 ‘9번 기계’였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아, 마음의 준비가 덜됐는데….’ 아찔해하고 있을 찰나 종이 울렸다. 정확히 아침 8시30분, 탱크 바퀴처럼 육중한 라인이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겐) 기습적으로 시작된 첫 공장 근무는, 급류에 떠밀리듯 허우적대다 밤 9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오전 10시가 되자 허기로 멍해졌고, 11시가 되자 다리를, 오후로 들어서자 머리를 떼어내고 싶었다. 한자리에 꼼짝없이 서서 작업하는 상체를 받치는 다리가 꺾일 것 같았다. 사타구니 높이의 컨베이어벨트에 놓인 난로를 내려다봐야 하는 머리는 불필요하게 무거웠다. 오직 한마디만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단전돼라, 단전돼라, 신이시여 단전되게 하옵소서.’

텅 비우지 않으면, 머리를 기어코 컨베이어벨트 위로 내동댕이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즈음, 30대 후반의 반장은 “오늘 잔업은 9시”라고 알렸다. 오후 4시 남짓이었다. 이후 5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알 수 없다.

노동의 소외

헝가리 마르크스주의자 게오르그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이렇게 썼다고 한다.

노동과정의 합리화로 말미암아 노동자의 인간적 본질과 특수성은 합리적 예측에 따라 기능하는 추상적인 특수 법칙과 대비되는 오류의 원천으로만 여겨진다.[각주:1] 객관적으로든 노동과 관련해서든 인간은 이 과정의 진정한 주인이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인간은 기계 시스템에 통합된 기계이 일부다. 그는 이 기계 시스템이 이미 자체적으로 존재하고, 인간과 무관하게 기능하며 좋든 싫든 그 법칙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각주:2]

G Lukacs, History and Class Consciousness[국역: 《역사와 계급의식》, 거름(1999)](Merlin, 1971). p47.
주디 콕스, "마르크스의 소외론", 《마르크스21》 2009년 가을호, 201p에서 재인용

감자탕집 서비스 노동자로 체험기를 쓴 건 더 눈물을 뺀다. '웬만해선 식당에서 탈출할 수 없다'에서 인용했다.

갈빗집에서 갈비를 못 먹듯, 감자탕집에선 감자탕을 못 먹는다. 식사 시간, 감자탕 국물만 줬다. “이거 먹고 힘 안 나요. 뼈다귀 하나만 줘요.” 주방 언니에게 사정했다. “사장이 우리가 뼈다귀 먹는 것 싫어해.” 그가 난처해했다. 이튿날 사장은 식당에 애완견을 데려왔다. 뼈다귀에서 고기만 발라 애완견에게 줬다. ‘먹는 것’은 철저히 계급에 따른다.

타워펠리스를 지은 속칭 '노가다' 들은 타워펠리스에 들어가 보지도 못할 것이다. 벤츠를 만드는 노동자들은 벤츠를 타볼까. 개도 먹는 고기를 노동자들은 먹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 대한 묘사는 마르크스주의의 고전적 묘사다. 노동자는 자신이 만든 것의 주인이 아니다. 그것이 박탈감을 낳는다. 한마디로 기분 쉣이다.

물론, 노동자도 집을 살 수도 있고, 감자탕을 사먹을 수도 있고, 차를 살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만든 것에 비하면 쥐꼬리에 불과하리라. 그것이 노동자의 '소외'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노동자의 소외는 자신이 뭘 만들지, 어떻게 만들지도 결정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수동적으로 시키는대로만 만드는 데서 온다. 

그리고, 노동자의 소외는 그렇게 만든것을 만들자마자 빼앗기는 대서 온다. 마르크스주의의 고전적 명제를 이렇게 생생하게 확인시켜주는 경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노동OTL에 나오는 사례들은 고전적이었다.

<한겨레21>을 사서 보자

노동OTL을 소개하는 이유는, 꼭 읽어봤으면 해서다. 《마르크스21》 2009년 가을호를 사서 '마르크스의 소외론'까지 읽어 보면 금상첨화다. 두 개는 찰떡 궁합이다. 우연히 같이 읽게 됐는데 정말 이런 우연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연관성이 깊게 읽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재연되고 있는 또다른 전태일들의 상황, 그리고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폭로를 입증해 주는 사실들. 꼭 한 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소개한다.

<레프트21>에 나온 소외 관련 기사

내가 즐겨 읽는 신문 <레프트21>에도 소외론 관련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목록을 소개한다.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마르크스주의 ① 소외란 무엇인가?

실천가들을 위한 마르크스주의 입문 13 소외의 근원

자본주의와 소외 ─ 우리는 왜 월요일을 싫어할까?

  1. 나의 해설 : 정확한 기계, 오류 투성이고 비효율적인 인간. 그래서 머리를 떼버리고었던 거다. [본문으로]
  2. 급류에 떠밀리듯 허우적대는 기자의 모습이 바로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본문으로]
  • 탐진강 2009.11.29 23:09 신고

    한겨레21 기사를 보고나니 가슴이 답답해오는군요.
    우리나라 서민들의 모습이 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그런데 강부자들은 여전히 서민들 피빨아먹는 흡혈귀처럼 오늘도 탐욕의 눈알을 굴리고 있겠지요

    • 사용자 안형우 2009.11.30 08:51 신고

      기사를 보셨군요. 저도 너무나 답답했답니다. 세상이 절망스러워졌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면들도 많이 있는 사회 - 투쟁하는 비정규직들이 있는 사회니까, 작은 희망을 가져 봐요. ^^ http://left21.com/article/7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