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는 국가를 ‘부르주아 집행위원회’라고 불렀다. 마르크스의 저 통찰에는 국가를 좀 얕잡아보는 느낌이 있기 때문에 부정확한 표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국가와 자본이 긴밀한 연관관계에 있다는 마르크스의 통찰은 전적으로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이런 논의를 위해서는 '국가'가 뭔가 하는 이야기를 해야만 하겠다. 국가=국민 이라는 등식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마르크스가 말한 바, 국가는 국가기구다.
국가기구라고 하니까 동사무소 직원들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국가기구를 움직이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내가 여기서 그걸 생선 뼈에서 살 발라내듯이 그렇게 정확히 어디까지가 국가기구고 어디부터는 그냥 공무원 노동자인지 말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능력 밖이고, 불필요하기도 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장관 차관, 그리고 그 바로 아래를 형성하고 있는 온갖 관료들은 국가기구라 할 만하다는 점이다.
이정도 되야 국가기구의 일원이라 할 만하겠지?
소설가 조정래 씨가 《태백산맥》 덕분에 검찰한테 탄압받았던 때를 이야기하면서 후배가 한 말을 인용했는데, 국가기구의 본질을 잘 통찰한 것이라 생각해 인용한다.
햇볕정책을 내세우며 북한을 오간 정권도 <태백산맥> 사건에는 아무 관심도 없이 끝났습니다.
“아예 상을 탈 생각도 하지 말고, 교과서에 들어갈 생각도 하지 말아요. 백날 정권이 바뀌어도 윗대가리 빼고는 다 보수니까.”
어느 후배 평론가가 술 취해 한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웃었습니다.
- 그놈 목소리 그리고 또 다른 그놈 목소리, <시사인> [106호] 2009년 09월 21일
강조는 내가
백날 정권이 바뀌어도 윗대가리 빼고는 다 보수니까. 정확한 말이다.
대통령(지방에선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지방의원)을 빼고는 우리는 아무도 선출할 수 없다. 장관이야 대통령이 임명한다 쳐도, 실제 일을 하는 관료들은 수십년 동안 그자리에서 일한 사람들이다. 1
실질적 터줏대감들은 바로 그 사람들이고, 그들은 5년에 한 번씩 왔다리 갔다리 하실 분들 뒷바라지를 하면서 영리하게 보신하려 한다. 관료들이 맘만 먹으면 장관 병신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라는 소리도 있는데 일리있는 말이다.
군대와 검경, 국정원
군대와 검찰 경찰, 그리고 국정원은 더더욱 선출에서 멀리 있는 직책이다.
얘넨 당췌 선출할 수가 없다.
보수가 행정부 수반을 장악하지 못해서 위기에 처했을 때 군대가 나서는 건 역사상 여러 차례 있었던 일이다. 칠레의 사민주의 대통령 아옌데가 군부에 살해당한 것은 고전적 사례고, 최근에는 온두라스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져 대통령이 축출됐다. 쫓겨난 대통령은 민주적 헌법을 국민투표에 붙이려는 찰나였다.(온두라스-제국주의 쿠데타)
경제권력
삼성의 X-File 사례에서 보듯이 이 국가기구 관료들은 경제 권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들은 서로 기득권의 영역을 놓고 서로 치고받고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피지배민중을 향해서는 단결한다.
얘네는 심지어 세습한다.
다시 마르크스로 돌아가 보자.
마르크스는 국가기구의 독자성을 좀 폄하한 측면이 있지만, 게다가 영국의 보통선거 제도를 다소 과대평가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국가기구의 본질을 통찰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의 통찰은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 있다. 2
그래서 나는 선거만으로 불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의 파업권, 시민들의 집회시위 자유 보장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래서라고 본다. 아니면 검찰, 경찰, 사법부, 국가관료 죄다 선출하게 해 주던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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