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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국가’라는 개념에 대한 메모

프랑스 대혁명 당시 사람들에게는, 모든 국민이 함께 만든 자유의 영역이 바로 국가였다.(《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외젠 들라크루아, 1830년작, 325 × 260 cm , 루브르 박물관)

이 글은 떠오른 단상을 간단하게 정리한 것이다. 그래서 근거가 부실하다.

요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 땅의 천박한 지배자들 모습을 보고 있자면 미국의 세련된 새 지배자조차 부러워보일 지경이다.(물론 나는 오바마에 대한 환상이 없다. 왜 ‘환상’이라고 말하는지 궁금한 분은 다음 기사를 참고하라 : “오바마도 미국의 전략적 이해에 충실할 것”, 유달승 교수 인터뷰, 레프트21)

요즘처럼 국가가 부유층만 돌보고, 서민들에게 경찰을 때려박아 살해하고, 시민권을 짓밟는 일이 비일비재할 때, 그리고 정치인들은 거짓말만 밥먹듯하고 사법부는 지배자들에 충성할 때- 이런 때는 국가에 별로 기대를 하지 않게 되는 것같다. (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 한겨레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였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가를 엄청 불신했다.)

그러나 국가는...

그러나 국가는 원래 그런 게 아니었다. 프랑스 대혁명과 새로운 프랑스 국가- 이것을 상상해 보라.

그 전까지, 즉 중세까지 농민들에게 국가라는 것은 왕과 귀족을 의미했을 것이다. 이들에게 국가는, 자신과는 상관 없는, 그리고 매해 세금을 걷어가는 존재일 뿐이었을 것이다. 태어나서 자랄 때까지 관습적으로 생각해 온 막연한 충성대상으로서의 국가는 있었을지 몰라도, 국가가 자신의 삶과 직결돼있다는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 국가는 인민의 권리를 선언했다. 이 국가는 국민 전체를 위한 국가였다. 워낙 유명하긴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 당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1~3조를 보자. 조항은 많지만 3개만 보자는 거다.

제1조:인간은 자유롭게, 그리고 권리에 있어 평등하게 태어나 존재한다. 사회적 차별은 공공 이익을 근거로 해서만 있을 수 있다.

제2조: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인간의 자연적이고 소멸될 수 없는 권리를 보전함에 있다. 그 권리란 자유, 소유, 안전, 압제에 대한 저항이다.

제3조:모든 주권의 원천은 본질적으로 국민에게 있다. 어떠한 단체나 개인도 국민으로부터 명시적으로 유래하지 않는 권위를 행사할 수 없다.

이게 왕의 압제에 신음하던 중세 시민ㆍ농민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지 상상이 가는가? 예컨대, 귀족이나 왕은 마음대로 농노들을 부려먹을 수 있었다.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라는 말로 유명하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 개 풀뜯어먹는 소리. 국가가 너희를 노예로 만들지 않은 것에나 감사하라! 인간은 원래 존귀한 신분과 비천한 신분이 나뉘어 태어난단다. 너희는 전생에 죄를 지었거나 뭐 그런 것 때문에 농노로 태어난 거란다.”

이것이 대혁명과 함께 완전히 변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선언됐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프랑스 혁명 내내 국가는 식량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실제로 노력했다. 프랑스 대혁명 기간에 빵 가격의 상한선을 정하는 법이 여러 번 발표됐다.(이건 마크 스틸이 쓴 《혁명 만세》에서 본 내용이다.) 물가를 잡겠다고 70여 개 품목이나 지정하고서 물가상승을 방조한 누군가와 완전히 대비되는 부분이다.

새로운 전쟁의 등장

이런 국가라면, 인기를 끌만하다. 그래서 프랑스 국민들은 주변의 왕정국가들이 혁명을 차단하려고 쳐들어왔을 때 목숨을 바쳐 싸웠다.

원래 중세 전쟁에서 농민 징집병은 오합지졸이었다고 한다. 농민이 나빠서는 아니다. 농민들이 전쟁에 충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싸울 생각은 안 하고 도망갈 생각만 했을 테니까 말이다. 왜? 싸워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중세에는 전쟁으로 장원을 빼앗고 뺏기는 것이 농민들에게 아무 영향이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주인만 바뀌는 일일 뿐. 영주야 돈 걷는 곳이 줄어들지만 말이다. 그래서 중세 농민들은 전쟁을 구경했다고 한다.

농민 징집병을 사용할 수 없으니 당연히 병력이 많을 수는 없었고, 당연히 다양한 전술 구사가 불가능했다.

프랑스 대혁명은 이것을 바꿔놓았다. 국가에 자발적으로 충성하는 ‘시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나섰다. 1917년 혁명 후 혁명 러시아의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자 국가를 방어하려고 집에 있는 아이들까지 데리고 자발적으로 징집됐던 것,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파시즘에 맞선 전쟁에 나선 것 등과 비슷한 일이다.

영웅 나폴레옹의 탄생은 이런 조건에서 가능했다.(물론 다른 요인들도 있었겠지만 이 근본요소 없이는 영웅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정리

원래 출발했던 근대 국가의 개념은 모든 국민의 행복을 위한 도구였다. 오늘날처럼 비열한 인간들이 넘쳐나는 국가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

비열한 출세주의자들이 가득한 지금의 국가 - 행정/사법/입법부 - 가 과연 국가인가?

근대 초기의 국가만도 못한 이 국가를 폐기해야 하는 것, 이것은 논리적으로는 당연한 귀결 아닐까?

짧은 단상을 적은 글이니 국가 폐기의 다양한 논의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