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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역사는 언제나 반동(反動)의 채찍에 맞서며 전진해 왔다

트로츠키가 한 말이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으나 대략 이런 내용이다. (출처와 정확한 문구를 아는 분은 알려 주신다면 감사하겠다.)

 혁명은 반혁명의 채찍질에 의해 전진한다.

이번 언론노조 파업을 보며 지난 7월 촛불이 일단락된 이후 처음으로 가슴이 뛰고 있다. 어쩌면 12월 31일 보신각의 촛불이 제2의 촛불이 될지도 모른다는 설렘이 가슴을 가득 메운다.

지난 촛불의 기억

촛불집회가 처음 시작된 5월 2일, 아무도 그 집회가 1백만을 끌어모으며 87년 이후 최대의 투쟁이 될 것이라고 예상치 못하던 바로 그 날을 회상하며 내 친구가 한 말이 있다.

 그 날 아침에 신문을 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개악에 개악에 개악에 개악이 계속되서 너무 짜증이 나더라고. 정말 이대로 뒀다가 무슨 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랬다. 그리고 친구의 느낌(?)대로 정말 ‘무슨 일’이 났다.
사실, 나도 또다른 친구와 Naver 검색어 입력란에 ‘이명박’을 쳐보고 깜짝 놀라며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있다. 4월 말 즈음해서 Naver 검색창에 ‘이명박’을 입력하면 가장 먼저 뜨는 단어는 ‘이명박 탄핵’이었다. 아직 ‘세상물정을 몰라’서 ‘겁없는’ 중고생들이 가장 먼저 이명박을 날려버리고 싶어했다.
그들이 가장 먼저 구체적 방법을 찾았다. 고등학생인 ‘안단테’가 Daum에 올린 이명박 탄핵 서명에 서명하는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그리고 5월 2일, “학교에서 배운대로” 시위를 열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 길들여진’ 어른들의 가슴에 불씨를 지폈다. 왕년에 반독재 투쟁에 참가했으나, 믿었던 노무현에 배신당해 의기소침해 있던 386, 사회정의를 위해 싸워도 욕만먹고 오르는 등록금 때문에 좌절해 있던 대학생, 청년 백수, 노무현의 영리한 탄압 때문에 엄청난 고립감을 느껴왔던 노동자들. 이 모두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이었다. 1백만이 모였으나, “설마~” 하는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다.
그 때 촛불집회에 나가 대화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퇴진이요? 되면야 좋죠. 그런데 할 수 있겠어요?

가슴에 지펴진 불씨는 그렇게 사그라들었다. 시청에 나온 사람들 대부분은 노동자였다. 자영업자, 학생도 많았지만 절반 이상이 노동자였을 것이다. 학생은 학생회로 묶일 수 있고, 농민은 농민회로 묶일 수 있고, 자영업자는 협회 같은 것으로 묶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는 ‘묶이는’ 정도가 아니다. 매일매일 같은 작업장에서 일한다. 같은 일을 하면서 하나의 개악에 같은 피해를 입는다. 같은 업종에 수만에서 수십만의 사람들이 함께 일한다.
결정적으로 이들이 대한민국 GDP의 대부분을 생산한다. 산업국가 대한민국에서 노동자가 생산하는 부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이들이 ‘조직적으로’ 투쟁에 나섰다면 게임은 더 쉬웠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의 가슴에 불씨가 가장 늦게 지펴졌다. 너무 오랫동안 꺼져있던 불씨는 쉽게 살아나지 않았다. 그렇게 7월, 촛불은 사그라들었다.

이명박, 해도 너무했다

하지만 만약 이명박이 정신을 차리고 노무현 정도만 알랑방귀를 뀌었어도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운하도 적당히 뒤로 미루고, 각종 개악들 적당히 뒤로 미루고 슬금슬금 추진했으면 이명박이 이런 위기를 맞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명박 패거리는 조급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고, 이명박 패거리는 1백만 촛불을 보고 놀란 가슴, 정권 퇴진이 진짜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는 위기감에 몰려 탄압을 강화하는 악수를 두었다. 개악을 서두르는 악수를 두었다.
이명박 패거리는 판돈이 너무 큰 도박을 벌이고 있다. 이기면 모든 것을 얻을 것이고, 지면 모든 것을 잃을 그런 도박 말이다.
눈이 돌아갈정도로 개악이 이어졌다. 일제고사, 교과서 개악, 독립운동을 부정하는 책자배포, 훌륭한 스승들 해임(전교조 교사 해임), 종부세 무력화, 비정규직 악법 추가 개악 추진, 부자 감세 … 그리고 이번엔 언론까지 건드렸다.
이명박은 전교조와 언론노조를 건드린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린 것과 다름없는 짓이다.
아무리 온순한 사람도, 아무리 기가 눌린 사람도, 생존권을 건드릴 때, 존재의 이유를 건드릴 때 불같이 일어나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러낸다. 거기까지 가면 ‘너 죽고 나 죽자’다.
이명박은 언론노조와 전교조를 거기까지 몰아붙였다. 지난 촛불, 쟁점이 ‘광우병’이었기에 노조는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었다.(운수노조가 유일한 예외였다.) 그래서 이들의 가슴은 뜨겁게 불탔지만, 직접 행동으로 이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번엔 노동자들을 직접 공격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1년 전, 오랜 고립으로 지치고 힘빠진 노동운동이 아니다. 지난 5월의 촛불로 힘차게 재충전한 노동운동이다.

차라리 광우병 정국이…

1996년 12월 26일 새벽, 당시 뉴스좀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이 때부터 한 달간 이어졌던 일을 기억 못하지 않을 것이다. 김영삼과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은 호텔에 모여 정리해고법과 안기부법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바로 다음날부터 기아차 지부가 즉각 총파업에 돌입했다.
연인원 3백만, 하루 최대인원 37만 명의 노동자가 파업에 동참하며 김영삼 정부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결국 김영삼 정권은 이 파업으로 식물인간이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채찍질 잘못했다가 완전 망한 사례다.
촛불집회로 인한 경제 손실에 조단위에 이른다는데 웃기는 소리다. 한나라당 정권이 10년 전 일을 기억 못하는 백치가 아니라면 저 말은 거짓말이다. 정확히 11년 전의 총파업은 정말로 경제 전체를 멈춰버릴만한 힘을 발휘했다. 이정도 되야 ‘손실’을 운운할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촛불이 무슨 경제 손실을 입혔단 말인가. 그딴 계산, 완전 ‘오늘은 추워서 100조 손해입니다’ 수준이다.)
이명박은 사면초가다. 그래서 마지막 발악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세계경제 위기는 나아질 기미가 없다. 국민 다수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선 때 그를 찍은 사람들 중 1/3이 지지를 철회했다. (총 국민의 30% 정도가 이명박에 투표했다. 나머지는 다른 후보를 찍거나 기권했다. 지금 이명박 지지율은 20%대다. 그러니까 10%p가 빠진 것이다. 즉, 1/3이 지지를 철회했다. 나머지는 원래 지지한 적도 없다.) 촛불 탄압은 뜻대로 안 된다. 이명박은 언제나 어디서나 조롱거리가 된다. (즉, 권위가 안 선다.)
이명박은 어쩌면, 어떻게든 이 정국과 정면대결하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굽힐 줄 모르는 사람이기에!
그러나 그의 반동(反動 : 역사를 거꾸로 되돌림)은 잠자는 사자 ─ 노동계급의 콧털을 건드리고 말았다. 언론노조와 전교조의 총력투쟁은 이명박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고 있다. 이제 세계적 자동차불황으로 구조조정이 몰아칠 자동차 부문의 노동자들이 이 파업에 동참한다면 이명박은 완전히 넉다운될 것이다.

이명박의 채찍질이 불러낸 파업

어쩌면, 이명박이 자제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파업이, 바로 어제 시작되어 우리들 모두의 가슴을 다시 쿵딱쿵딱 뛰게 만들고 있다.
모두 기대하고 있다. 촛불 시즌2를.
그리고 그 첫 테잎을 MBC노조가 끊었다. 언론노조가 끊었다.
섣부른 예측은 실망을 낳지만, 언젠가 이뤄질 예언,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는 맞지 않나 하는 심정으로 씨부려 본다면, 12월 31일을 기점으로 더 촛불 시즌2가 시작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 분위기는 딱 4월 말의 분위기까지 달아오른 듯하다.
이명박을 향한 펀치의 중심에 언론노조가 있다. 이번 파업이 승리해야만 하는 이유다.
국가를 상대로 한 파업이기에,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도움이 필요하다. 아낌없이 주자.
이명박의 ‘재벌천국 서민지옥’ 시대를 심판하기 위해 똘똘 뭉치자.
12월 31일은 촛불을 들고 보신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