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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오바마의 ‘Change’? 기대만큼 가능할지…

오바마.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하지만 콜럼비아 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을 나와 중간계급에 속하고 지금은 미국 대기업의 정치후원금으로 선거자금의 50퍼센트 이상을 채우면서 대통령에 당선한 그가, 가난한 흑인들의 삶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을까?

오바마는 선거운동 중 흑인 아버지들이 자식들을 돌보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인식의 단편을 알 수 있는 말이다. 아니, 어쩌면 오바마는 미국 주류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립서비스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바마가 만약 이렇게 말했다면 나는 오바마에 열광했을 것이다.

“흑인 아버지들이 자식들을 돌볼 수 있도록 사회가 배려해야 한다. 3백 만 명의 흑인이 감옥에 있다. 이들이 더이상 감옥에 있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흑인 중 4분의 1이 빈곤층이다. 이들이 더이상 빈곤층으로 남아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오바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린 이스라엘이 왜 이런 일[팔레스타인 국경 봉쇄]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파괴를 맹세한 테러조직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간인들은 매일이다시피 그들의 폭격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 안보리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이스라엘을 겨냥한 로켓공격을 비난해야 합니다.”(2008년 1월 22일, 오바마가 주UN 미 대사에게 전한 편지 중에서, <한겨레21>

그가 임명한 비서실장 이매뉴얼은 시온주의자다. “이매뉴얼은 2007년 6월 팔레스타인 이슬람무장조직 하마스가 가자 지구를 장악한 것과 아랍국들의 수수방관을 비난하는 등 친이스라엘 정견을 숨김 없이 드러내고 있다.”(<한겨레> 이근영 기자)

이매뉴얼은 이라크 전쟁에도 찬성했다.

재무부 장관으로 경합을 벌이고 있는 서머스와 가이스너도 마찬가지다.

서머스는 전 하버드 총장으로 “과학과 수학 분야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못한 것은 사회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남녀 간 선천적인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하버드 총장 재임 시절, <한국경제>)고 발언해 사과한 적이 있고, “1970년대 서울에 미성년 매춘부의 수가 100만명에 달했다”(2005년 7월 여름학기 하버드 개강 환영식, <머니투데이>)고 말해 사과한 적이 있다.

가이스너는 리먼 브러더스를 파산하도록 내버려둔 신자유주의자다. 금융위기 대처 과정에서도 금융기관 최고 경영진들에 과도하게 의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좀더 많은 자료가 나올 것이고, 오바마의 행적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눈에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오바마 주변에 여지껏 서민을 위해 일했던 사람이 요직에 오르지는 않았다. 여지껏 인권을 위해 일한 사람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 자신의 인권변호사 명함 한 가지다.

“오바마가 당선된 것은 변화다. 그리고 변화 열망을 보여 준다. 그러나 오바마는 변화를 실현하지 않을 것이다.”

《두 개의 미국》(책갈피, 2008)의 작가 조너선 닐의 말이 나에게 더 설득력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시위, 파업, 항의 운동 등 저항이 지속되고 더 활발해지도록 활동가들이 노력하는 것이다. 두 가지 핵심 요인이 결과를 좌우할 것이다. 하나는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시위와 행동의 규모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오바마를 지지했던 활동가들이 사기 저하할 것인지, 아니면 그를 넘어서고 결국에는 그를 비판하게 될 것인지 하는 선택이다.”

마르크스는 역사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투쟁의 역사였다고 서술했다. 이 투쟁은 때로 은밀하게, 때로 직접적으로 벌어진다고 했다. (무슨 파업, 시위, 내전 등만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투쟁’ 이었다고 지레짐작하지 않았으면 한다.)

미국 피억압민들의 변화 염원이 오바마 대통령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변화다. 그러나 그들이 여기에 만족한다면 더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변화는 아래로부터 체계적으로 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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