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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용산참사 추모촛불, 가슴 설렜던 도로진출

철거민 추도 촛불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폰카로 찍은 거라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화면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집회에 참석했다.

용산참사 관련 촛불집회가 있었다. 뭐, 공식 명칭은 추모대회였지만, 누구도 이 집회를 촛불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데 토를 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나는 이 집회가 촛불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일이 있어서 4시 집회 시작할 때부터 있지는 못했는데, 3시에 청계광장에 갔던 여자친구가 벌써 경찰들이 청계광장을 애워싸고 있다고 전해줬다. 독한 놈들.

일이 끝나고 4시 반쯤 도착한 청계광장. 지난 촛불을 연상시킬 정도로 많은 깃발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열정이 느껴졌다.

이한열 열사 어머니와 용산참사 희생자 유가족들

집회장에 도착하고 얼마 안 있어 유가족들이 입장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아줌마, 아저씨들이 유가족들이었다. 그리고 이명박은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에 대못질을, 그것도 아주 큰 대못질을 한 것이었다.

87년, 전두환의 폭력에 희생된 연세대생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가 연단에 섰다. 유가족들의 모습에서 20년 전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유가족들은 이한열 열사 어머니의 말에 위로를 얻었을 것이다.

숙연했다. 자식을, 가족을…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민중들의 투쟁 맨 앞에서 ‘적’들의 폭력에 잃어야 했던 사람들. 그들의 고통을 우리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리라.

강기갑과 노회찬

곧 강기갑 의원과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가 연단에 올랐다.

강기갑 의원은 격앙돼 있었다. 예의 그 진심이 느껴지는 어투로 외치는 강기갑 의원의 목소리는 우리 세대의 말투는 아니었지만 나의 가슴을 울리기엔 충분했다. 느릿한 말투, 좋은 말씀하시는 어르신의 어투로, 그러나 강기갑 의원은 자신의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다.

평소엔 온화하다가 잘못된 일을 보면 불같이 성을 내는 마음 좋은 이웃집 아저씨같은 태도로, 강기갑 의원은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그는 추도사라고 하기엔 지금 상황이 너무 분노스럽다며 말문을 열었다. 지금 우리가 투쟁하는 것이 열사들의 넋을 추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추도사에서 “공권력에 의해 5명의 사람이 죽었다”며 “더욱이 경찰은 추운 겨울에 물포까지 쏴 살기 위해 건물에 올라간 사람들을 동태로 만들려 했다”고 비판했다.

강 대표는 이어 “경찰은 20일치 식량을 싸들고 건물 위에서 생존을 외친 그들이 무엇이 두려워 무자비한 진압을 했느냐”고 경찰의 과잉 진압을 꼬집었다.

또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을 비판하고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려 했는데 청계광장은 원천봉쇄 당했다”며 “억울한 영령들이 이 모습을 본다면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성은 이상호 기자, "온가족이 어제 이 대통령 보고 분통 터져", 〈민중의 소리〉, 2009.1.31

집회장에서 본 ‘다함께’ 유인물

△집회장엔 다양한 유인물이 있었다. 지난 촛불 때 모함에 시달렸던 반전 반자본주의 노동자 운동 단체 ‘다함께’가 낸 유인물, 웹에서 읽으려면 〈저항의 촛불〉 홈페이지로 가면 된다.

날카로운 풍자가 장기인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도 이번 발언에서는 풍자를 하지 않았다. 분노를 풍자가 대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분노… 집회장에서 흐른 것은 숙연함의 저변에 도저히 흐르는 분노였다. 이명박은 심했다. 해도 너무했다.

분석

집회장에 오려고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 아저씨가 물었다.

“청계광장 오늘 집회있다던데 거기 가나?”

“예”

“집권 초반인데 정말 너무하는 거지”

뻔한 레파토리가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집권 초반인데 좀 힘을 실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식의 말이 나오겠거니 했다. 그런데 왠걸, 아저씨 말은 예상과 너무도 달랐다. 집권 초반부터 이런 식으로 강제로, 제멋대로 하는 게 어딨냐는 거다. 무슨 독재 때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했다. 집권 초에는 살살 달래가면서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국민들도 집권 초에는 너그러워서 잘 하면 용인해 줄 텐데, 집권 말기에 히스테리 부리는 것처럼 강제력을 동원하니까 안 되는 거라고 말했다. 이게 밑바닥 정서였다.

집회장에서 만난 한 노조 활동가가 이렇게 말했다.

일부러 죽인 거나 다름 없어. 본보기를 보이려고 한 거야. 화염병 나왔다는 걸 언론에 다 뿌렸거든. 화염병 들면 이렇게 된다 하고 보여주려고 했던 거지. 언론에 난리 났었잖아, 화염병 나오자마자. 초장에 기선제압을 하려고 일부러 그런 거지.

맞다. 저들은 몹시도 계획적이다. 그리고 실수였던 양 둘러댄다. 그에 반해 우리는 너무나 우발적이고 착하다. 다른 말로 너무 순진하다. 이명박, 그래도 해 보라고 집권 초반에 작게나마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 우리 국민 아니던가. 그 심정, 그 착한 성정을 이해한다. 그러나 저들은 전혀 착하지 않았다. 국민들의 그 착한 성향을 마음껏 농락하고 이용해먹은 저들. 그리고 끝끝내 철거민들은 국가에 필요하지 않다고 선언한 저들. 그 냉혈한 동물이 바로 청와대와 경찰청을 점거하고 있다.

곧 닥쳐올 경제 위기, 그리고 아마도 당연히 있을 노동자들의 반발. 그리고 전국민적 반발. 이런 반발을 초장부터 제압해 보려 소위 법과 질서를 들먹이며 철거민들을 강경진압한 것이 바로 이번 사건의 본질이다.

철거민 대책위에서 낸 두 번째 유인물

△철거민 대책위에서 낸 두 번째 유인물… ‘살려고 올라가서 죽어서 내려왔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이보다 더 실감나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있을까?

그러나, 너무 지나쳤던 게지. 앞서 말한 이 노조 활동가는 용산참사가 터지자마자 현대중공업 미포만 굴뚝농성에 들어간 사람들 문제가 거의 100% 해결됐다고 말하며, 분명 용산참사와 굴뚝 농성이 맞물리기를 원치 않아 그런 합의를 해 준 것이라 거라고 말했다. 처참한 두 투쟁… 돌아가신 철거민 열사들은 그래도 미포만 굴뚝에 오른 두 생명을 살렸다. 청와대에 앉은 쥐새끼가 수없이 많은 사람을 살해할 동안.

다시 진출한 뜨거운 거리

집회가 끝나갈 무렵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다시 집회장으로 돌아왔다. 끝나갈 무렵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왠걸, 사람들이 몰려나오고 있었다.

급히 따라갔다. 그리고 행진하는 사람들을 앞질러 맨 앞으로 가던 순간, 뻥 뚫린 도로 안에 가득찬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빼앗긴 거리, 사그라든 저항의 목소리… 이것이 촛불 이후에 언뜻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쏟아진 탄압. 잡혀가고, 위축되고.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들이 포기한 게 아니라는 것을. 저들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지들 딴에는 처절하게, 탄압을 퍼부었던 것이리라.

포기? 배추 셀 때나 쓰라그래. 썰렁한 말이지만, 뻥 뚫린 도로로 진출하는 순간 누가 이 농담을 던졌다면 환호하며 맞장구쳤을 것이다. “그래, ㅇ발, 누가 포기란 말따위 써?! 오늘 그냥 끝까지 달리는 거야!”

“살인정권 명박퇴진!”, “구속자를 석방하라!”, “김석기는 물러나라!”

사람들의 목소리엔 노기가 서려있었다. 행진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그들은 무언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었다. “그래, 이제 다시 때가 왔구나!”

마치 한날 한시에 거리로 쏟아져 나온 〈브이 포 벤데타〉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우리 국민들은 이 때를 기다려온 것 같았다. 우리 모두는 마음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제 2의 촛불!

집회의 끝

집회는 다소 아쉽게 끝났다. 맨 앞에서 행진하던 철거민들은 정권의 마녀사냥 집중표적이 된 것 때문에 다소 위축됐는지, 경찰이 앞길을 가로막자 행진 방향을 틀어 명동 쪽으로 향했다. 그 자리에서 연좌라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아쉬움보다 더 컸던 것은 벅차오르는 감정이었다. 우리 모두는 이제 희망을 보기 시작했다. 철거민들이 죽음으로 웅변하며 우리에게 가져다 준 희망. 더 이상 이 정권을 감내해서는 안 된다는 그 울림! 그리고 그 울림을 받아 안을 수 있겠다는 희망. 사람들은 마음 속으로 수만 번을 되뇌었을 것이다.

“제 2의 촛불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바로 그 자리에 서야 한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다. 거리에서 진정한 삶을 찾아, 촛불의 열정과 함께 내 젊은 날을 불태우리라. 그 길에 함께 가자. 그래서 세상이 그리 절망적이지 않다는 것을, 역사에 아로새기자. 우리는 그 때 아마도 역사의 한 가운데 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