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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

노동자의 무덤, 대한민국 ─ 화물연대 박종태 지회장을 추모하며

“남편이 사랑했던 대한통운 택배 조합원 여러분, 화물연대 조합원 여러분.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지 마십시오. 진짜 죄인은 한 가족의 가장을 죽음에 몰아놓고서도 협상은 커녕 질서를 지키라는 등 저 뒤에서 헛소리하고 있는 뻔뻔한 저자들 입니다. 슬퍼하지 말고 일어나 싸워주십시오.”

배혜정 기자, ‘박종태 지회장 죽음, 노동계 핵 급부상’, 민중의 소리

또 한 사람이 죽었다. 그의 아내는 의연하게 말했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지 마십시오 … 일어나 싸워주십시오”

화물연대의 투쟁

△강기갑 의원의 눈물(9일 화물연대의 추모집회, 배혜정 기자, ‘박종태 지회장 죽음, 노동계 핵 급부상’, 민중의 소리)

2003년 5월 화물연대의 파업은 위력적이었다. 그 때 박종태 지회장도 투쟁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노무현 정부는 그 위력에 놀라 급히 양보했다.(상반기 노조 투쟁 - 화물연대가 길을 보여주다, 격주간 〈다함께〉, 2003-05-17)

당시에 〈조선일보〉는 “이들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물류를 마비시켜 나라를 결딴낼 수 있는 강자들”이라며 두려움을 나타냈다.

화물연대 파업이 남긴 교훈, 격주간 〈다함께〉, 2003-09-20

대가는 비쌌다. 노무현 정부는 파업에 놀라서 했던 약속을, 파업이 끝난 후에는 지키지 않았다.

5월에 약속한 것이 어느 것 하나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7월 27일 화물연대 포항지부 고성학 씨가 빚 독촉에 시달리다 자살한 데서도 드러났다.

8월 초부터 노무현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 ‘공안기관대책회의’의 새 버전인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재파업에 대비했다. 8월 25일 경제신문 합동기자회견에서 노무현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문제를 풀겠다는 계획은 부득이 접고 … 단호하게 법과 원칙으로 대응해 나가겠다. 그 법이 옳든 그르든 이젠 그것도 묻지 않겠다”며 ‘막갔다.’

파업이 시작되자 노무현은 모든 협상을 거부하고 화물연대 지도부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발부 등 초강경으로 나왔다.

파업 노동자에 대한 경유세 보조금 지급이 중단됐고 위수탁 계약은 해지됐다. 거의 1백 개 중대, 2만여 명의 경찰과 2천여 대의 차량이 동원돼 4백여 명의 노동자를 폭력 연행했다. 화물 파업을 공격하는 데서 노무현은 보수 언론과 ‘환상의 콤비’를 이루었다.

산업자원부와 양회협회가 ‘태스크포스 팀’을 운영하며 촌지, 광고비, 술값 등 4억여 원을 언론에 뿌리며 화물연대를 마녀사냥하고 복귀율을 조작해 온 것도 드러났다.

화물연대 파업이 남긴 교훈, 격주간 〈다함께〉, 2003-09-20

나는 그래서 더이상 노무현을 추억하지 않는다. 그 자의 부패에 관계없이 위선을 떤 것만으로, 나는 그에게서 정나미가 떨어진다.

이명박 정부는?

그럼 우리의 분노 대상 이명박 정부가 한 일을 보자.

이명박 정부는 촛불운동의 한복판에서 영웅적인 파업을 벌인 화물연대를 눈엣 가시로 여겼고, 화주들은 파업 당시 약속한 운송료 인상 합의를 파기하면서 노조 탄압에 열을 올렸다.

이명박 정부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을 탄압할 뿐 아니라 노조설립 필증을 회수하려는 시도까지 하고 있다. 화물운수 노동자들을 포함해 레미콘, 학습지교사, 퀵 서비스, 간병인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것이다.

박설, 화물연대 박종태 지회장의 마지막 절규 ─ “저들은 죽음을 강요하며 노예로 살라 한다”, 레프트21, 2009-05-09

‘촛불운동의 한복판에서 영웅적인 파업을 벌인 화물연대를 눈엣 가시로 여겼[다]’ 너무도 수긍이 간다.

그 때 5월 10일 촛불집회에서 화물연대의 파업 연설을 듣고 한 블로거는 이렇게 적었다.

스파르타 300전사를 이야기 할 때 나는 바보야 그들은 몰살당했어 라고 외칠 뻔했다. 다음 순간 아 저들은 희생하려고 하는구나 제기랄 나는 뭐란 말인가 저들은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구나 라고 직감했다.

아마도 이순간 이 연설을 보는 많은 아버지들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이런 엿같은 ...저들을 지지하지 않으면 저들은 죽는구나.

엄마를 울린 명문장, 아빠를 움직인 명연설(원본글을 못 찾았다. 아시는 분은 댓글 남겨 주시길.)

물론, “저들을 지지하지 않”아서 박종태 지회장이 죽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촛불은 잦아들었고, 이명박은 살아남았다. 위기감에 빠진 이명박은 촛불 1주년을 맞아 미친듯이 반격에 나섰다.([논설]이명박 정부의 극악한 탄압 이면에 있는 것, 레프트21, 2009-05-09)

촛불은 이명박을 날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전지윤 기자, 촛불 1년 평가 논쟁 ─ 제2촛불을 만들기 위해 올바른 교훈 끌어내기, 레프트21, 2009-05-09)

죽음을 막자

지긋지긋하다. 절망 속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 죽은 사람도, 그의 동지들도, 나도 ─ 그의 죽음에 이명박이나 노무현만큼 책임있지 않다.

화물연대가 총파업 투표를 한다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바로 파업해버렸으면 좋겠지만, 부디 이번 파업은 전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힘차게 나갔으면 좋겠다. 그게 노동자와 우리들이 (말 그대로)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