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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

보건의료노조 파업의 이유

올해 4월 30일에 ‘환자보다 돈이 중요하다는 고대병원 경영진’이라는 글을 썼다. 설마설마 했는데 아직도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됐나보다. 경제 위기 시기에 사측의 구조조정 시도는 정말 집요하다. 노동자들이 절대로 밀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쌍용차 투쟁이 핵심적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패배한다면 고대병원 경영진도 신나서 노동자들을 밀어붙이려고 할 것이다. 만약 쌍용차 노동자들이 방어전을 잘 치른다면, 고대병원 노동자들이 방어전을 잘 치를 확률도 높아진다. 한국사회는 그만큼 하나의 유기체로 움직인다.

지금 7월 1일이 된 지 30분이 지났다. 보건의료노조는 사측이 계속 무성의한 태도로 협상에 임한다면 파업을 할 수도 있다고 3개월 전부터 말해 왔고, 결국 오늘 막판 교섭을 치렀다. 아직 뉴스에는 교섭이 최종 결렬됐는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파업 가능성이 낮지 않아 보인다. 이 글이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파업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

내 글보다 보건의료노조의 목소리를 곧장 듣고 싶은 분들은 아래 더 보기를 클릭하라. 그러면 유인물을 볼 수 있다.

쟁점1

오늘 노조는 집회를 열었고, 쟁점은 두 가지다. 노조는 새 인사제도에 반대하고 있다. 이미 많이들 주장한 것처럼, 성과급제를 도입하면 노동환경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작업 효율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성과급제를 통해 거둘 수 있는 건 단 하나다. 사측의 노동 통제가 쉬워진다. 그래서 노동자들을 더 막 부려먹을 수 있다. 그래서 이윤이 늘어난다.

적당한 긴장과 적절한 협력 플레이가 작업 효율을 좋게 만든다. 뭐 정확한 연구결과와 통계를 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여력이 없으므로 패스.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감수하겠다. 그러나 협력이 효율 증가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는 상식적, 경험적으로 알 거라 생각하며, 많은 분들이 여기저기서 접했을 거라 생각한다. 성과급제, 특히 같은 작업 환경에서 동일한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개별적 성과급제는 노동자들의 협력을 심각히 해친다. 당연히 작업효율이 떨어지게 된다.

고대병원이 ‘성과’라고 말하는 것의 의미도 상식과 완전히 어긋난다. 다음 인용을 보라.

병원에서 성과라 한다면, 환자가 보다 안전하게 치료받고 건강하게 퇴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고대의료원이 추구하는 성과는 경제적인 성과(이익)에 치우쳐져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 또한, 성과위주의 인사제도는 자칫 과잉검사 등 의료비 상승까지 부추길 수 있는 것입니다.

- 이날 고대의료원 노조나눠준 유인물에서 인용
(유인물은 위쪽엔 스캔해 붙였고, 글 말미에도 붙어 있다.)

쟁점2

보건의료노조의 핵심 요구안은 세 가지인 듯하다. 제목만 적어 보자.

  • 획기적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로 병원비 걱정 끝~
  • 보건의료산업 일자리 창출로 보호자 간병 걱정 끝~
  • 영리병원! 의료채권법 등 국민건강의 독! 의료민영화 추진 중단~

보건의료노조는 산별노조로서, 그리고 시민의 일원이자 민주적 단체의 일원으로서 아주 합리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 일단 건강보험이 더 많은 걸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인용을 보라.

현재 64%에 불과한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90%로 높이고, 어떤 병에 걸리더라도 가구당 진료비는 1년 100만 원으로 제한하는 진료비 상한제

- 위의 유인물에서 인용

간병 문제

필자의 친구가 마침 고대의료원에 있었다. 아버지가 중병으로 입원해 있으셨다. 이 날 친구는 보건의료노조의 요구안을 지지하면서 나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녹음한 것도 아니니 기억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보호자가 환자 간병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건 정말 문제다. 간호사들 인력이 부족하니까 환자 수염 깎기, 손톱깎기부터 시작해서 온갖 자잘한 것들을 모두 보호자가 처리해야 한다. 당장 병원비 문제, 생계문제를 책임져야 하는 보호자가 이런 것을 모두 하는 것은 환자 제대로 돌보지 말라는 거나 다름 없다.”

사실 친구는 어머니와 같이 아버지를 모시고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래도 벌써 3주째, 친구에겐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만약에 혼자 간병해야 하는 처지라면? 환자의 건강 문제도 문제려니와, 보호자의 생활권은 완전히 박탈당하는 것이다. 국가는 이런 것을 도우라고 있는 조직이다. 그런 걸 해주지 못하면 국가가 아니다.

보건의료노조는 일자리를 더 창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적으로 옳으신 말씀이다. 이명박에게 말하고 싶다. 인턴으로 알바생들 고용할 돈 있으면 이런 사회보장성 일자리를 늘리라고 말이다. 그러면 취업도 되고 소외계층도 도움을 받기 때문에 1석2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미 이런 대안은 여러 단체에서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명박은 모르쇠다.

이 날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발언에 나서 엄청난 박수를 받았다. 노회찬 대표의 말을 재구성해 옮겨 본다.(메모야 했지만 녹음은 못 했다.)

“오바마는 부자 증세 하고 있는데 이명박은 뭐 하는 거냐? 부자 감세는 우리 나라가 유일할 것이다. 그러고 돈 모자라니까 서민들한테 뜯는다.

보건서비스는 복지의 기본이다. 국가가 부유층의 재산은 지켜주면서 국민들 생명은 안 지켜주는 것이 말이 되는가. 여러분만의 투쟁이 아니라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다. 잘 싸워 달라.”

오바마가 부시의 제국주의 정책을 계승하고 있기는 하지만, 국내적으로는 이명박보다 훨씬 영리하게 대처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의료와 생명이 직결돼 있다는 지적은 날카롭고 새로웠다. 국민의 생명을 위한 투쟁이라는 지적은 이 투쟁이 노조 이기주의가 아니라 대승적 투쟁임을 말해 줬다.

의료민영화

이명박이 취임하면서 세웠던 계획중 상당수가 작년 촛불에 밀려 많이 늦어졌다. 당장 지금 쟁점이 되고 있는 미디어법도 있고, 대운하도 포기하겠다고 말했으니 얼마나 굴욕일까. 그리고 정말 이명박으로서 뼈아픈 것은 시기를 놓친 의료 민영화일 것이다.

민영화는 효율화라고 교과서에 써있다. 허구다. 잘못 가르치는 대표적 예다. 민영화가 효율을 보장한다는 정부쪽 주장에 대한 반례는 무수히 많다. 오히려 민영화는 알짜배기 국유기업을 헐값에 민간 자본에게 팔아넘기는 것이다. 예컨대, 실적 좋고 서비스 좋은 의료보험을 싼 값에 삼성생명에 팔아넘긴다고 생각하면 된다.[각주:1] 당연히 삼성생명은 보험료를 올릴 것이다. 그리고 수익성이 개선됐고 자랑할 거다. 맞다. 수익성은 개선되겠지. 그런데 그게 서민에게 좋을 건 하나도 없다는 거다.(참고자료 : 변혜진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국장, 의료보험 민영화가 노리는 것 ─ 삼성생명과 현대병원에게 더 많은 이윤을)

그런데 이명박으로서는 안타깝게 된 게 민영화 시기를 놓쳤다. 작년 경제 위기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이 완전히 폭로됐다. 민영화의 신화는 깨졌다. 이제 신자유주의는 더이상 대세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영화를 밀어붙이는 것은 부담이 크다.

그런데 웃긴 건, 그래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완전 웃기다. 이 정권이 얼마나 막나가는지, 여론을 무시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멍청한 것인지 보여 주는 것이다. (물론, 이면에는 ‘밀리면 죽는다’는 위기감, ‘끝장을 보자’는 비장감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보건의료노조가 의료민영화 추진을 중단하라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당하다.

결론

나도 노후가 두렵다. 언제 어떤 병에 걸려 쓰러질지 모르겠다. 큰 병에 걸리면 병원 가지 않고 죽는 게 낫겠다 싶다.

그리고 진심으로 바란다. 병원비 걱정 없는 사회가 되기를. 보건의료노조의 투쟁이 대승적 차원에서 승리하기를. 그리고 그것의 작은 전장인 고대의료원 노조가 반드시 승리하기를 바란다.

“노조는 평화적 타결을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라고 고대의료원 노조는 유인물에 썼다. 진심으로 마음아프다. 노조가 아무리 평화를 바라도 사측은 폭력을 바란다. 저들은 구조적 폭력을 저지르다가 안되면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고, 약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더 때린다. 노조가 강력한 힘을 발휘해, 결코 그런 저들의 농간이 먹혀들지 않게 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난 번에도 응원글 남긴 분들이 있을 텐데 이번에도 남기자. 힘내라고 말이다.

여기부터는 고대의료원 노조에서 나눠 준 유인물을 텍스트로 옮긴 것이다.[각주:2]

----------------- 1면 -----------------

환자분들의 쾌유를 빕니다!

병원비 걱정 없는 사회!
보호자 간병 필요 없는 병원!
보건의료노동자가 만들어가겠습니다

환자분들의 쾌유를 빕니다. 저희는 전국 각 병원에서 일하는 보건의료노조 소속 조합원들입니다.

사용자들의 불성실한 교섭태도가 노동자의 파업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올해 ‘경제위기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산별 교섭’을 만들기 위해 환자ㆍ보호자의 절박한 요구인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로 병원비 걱정 없는 사회 만들기 ▲병원 인력충원으로 보호자 간병 필요 없는 병원 만들기 ▲경제위기에 실업자, 빈곤층, 사회 위기층,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진료비 지원 등의 요구를걸고 4월 21일부터 전국의 병원 사용자들과 산별 교섭을 진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개악안과 교섭단 미구성, 집단퇴장 등 불성실한 교섭 태도로 지난 두달간 교섭파행을 유도해 왔습니다.

더구나 고대의료원은 병원에 성과위주의 인사제도를 도입한다고 합니다.

성과위주 인사제도는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처럼, 성과(실직)에 따라 승진을 시키는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병원에서 성과라 한다면, 환자가 보다 안전하게 치료받고 건강하게 퇴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고대의료원이 추구하는 성과는 경제적인 성과(이익)에 치우쳐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협력에 의해, 환자의 치료가 행해지는 행해지는 병원에서, 이런 성과 제도는 직종간의 동료들간에 경쟁을 부추기고 협력에 기반한 의료서비스질을 떨어뜨릴 것이니다. 또한, 성과 위주의 인사제도는 자칫 과잉검사 등 의료비 상승까지 부추길 수 았는 것입니다. 고대의료원노동조합은 이렇게 병원업무에 부합하지 않는 성과위주의 인사제도를 반대하고 있으며, 노사 논의를 통해서 병원에 적합하고 직원의 의사가 반영된 인사제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대의료원측은 논의조차 하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노조는 평화적 타결을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노조는 마지막까지 파국을 막기 위해 대화를 통한 교섭 타결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노조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들이 6월 30일까지 교섭 타결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저희는 7월 1일부터 산별 총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총파업에 돌입하더라도 응급실, 중환자실, 신생아실 등 특수부서는 필수인력을 배치하고 환자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잠깐의 불편을 참아주시면, 개선된 의료제도와 더 나은 의료서비스로 꼭 보답하겠습니다.

저희들의 투쟁에 환자보호자분들의 많은 관심과 지지 바랍니다.

----------------- 2면 -----------------

획기적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로

병원비 걱정 끝~

중병이라도 걸리면 집안 거덜내는 병원비! 국민의 병원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건 의료노동자는 2009년 <획기적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운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주요 요구는 현재 64%에 불과한 건강보험의 보장율을 90%로 높이고 어떤 병에 걸리더라도 가구당 진료비는 1년 100만원으로 제한하는 진료비상한제를 두는 것입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낭비적 의료제도를 전면 개혁하고 정부 국고 지원금을 현행 20%에서 30%로 늘리는 등 재원을 확대해야 합니다.

보건의료산업 일자리 창출로

보호자간병 걱정 끝~

친절한 병원, 의료서비스 질이 높은 병원, 국민 누구나 바라는 병원의 모습이니다. 그러나 간호사 1명이 감당해야 할 환자수가 낮에는 15명, 밤에는 30명을 넘기는 현실에선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보건의료노조는 2009년 국민도, 환자도, 노동자도 만족하는 병원을 만들기 위해 <보호자간병 필요 없는 병원>을 핵심 요구로 내걸었습니다. <보호자 간병 필요 없는 병원>은 경제 위기에 31만개의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인력 충원으로 환자들의 의료서비스 질을 개선시키며, 환자가족들의 간병 걱정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영리병원! 의료채권법 등 국민건강의 독!

의료민영화 추진중단~

이명박 정부는 지난 5월 8일 <의료분야 서비스 선진화 방안> 발표에 이어 6월 국회를 열고 의료 채권법을 비롯한 의료민영화 악법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습니다. 의료민영화는 민간보험회사와 재벌 병원의 돈벌이를 위해 우리 나라의료제도를 파괴하는 정책입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국식 의료제도를 모델로 밀어붙이는 영리병원과 의료채권법은 병원비 폭등을 부르고, 전국민건강보험을 하루 아침에 휴지조각으로 만들 것입니다. 또한 건강보험공단의 국민 개인 질병 정보를 민간 보험 회사에 넘기는 보험업법 개정안은 국민에게는 심각한 인권침해이며, 민간 회사의 횡포를 더욱 키우게 됩니다.

  1. 물론 논리적으로 축약한 것이고, 현실에서는 좀더 복잡하게 구현될 것이다. [본문으로]
  2. 네이버랩의 이미지 문자인식 서비스를 사용했는데, 아직 ‘실험’이라 그런지 기준을 다 충족해서 올렸는데도 30%는 깨져 나왔다. 이 오타를 잡느라 보낸 시간에 타자를 쳤으면 더 빨랐을 지도 모른다. 다만, 손이 덜 아프다는 장점은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