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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

쌍용차 파업 결과는 노동자의 미래다

맑시즘2009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쌍용차 가족대책위 이정아 대표의 연설이었다.

가슴 떨리면서도 힘찬 그 연설은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냈다.(아래쪽에 첨부했다.)

경제 위기와 쌍용차 투쟁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기업이 파산지경에 이르면 노동자들을 자르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솔직히 능력 있으면 다른 데 취업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상싱적인 소리일 수 있다.

마르크스는 상식을 증오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바로 이런 '상식'을 두고 한 소리다.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는 저런 소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의문을 사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대호황 시기, 어디에나 취업이 잘 되고 노동력이 오히려 모자라던 시대 같은 때라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 어디 그런가. 어디에 취업할 수 있단 말인가.

한가롭게 '다른 데 취업하라'고 말하는 다른 노동자가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왜냐..

쌍용차는 경제 위기 초입의 희생양이다. 경제 위기는 더 넓게 퍼질 것이 분명하다.(지금은 일시적 반등기지만, 위기를 불러온 근본 요소들은 치유되지 않았다 : 정성진, 1930년대 세계대공황보다 더 심각한 21세기 세계대공황)

몇 년 안에 흑자 도산도 속출할 수 있다. 의미없이 희생당하는 노동자의 숫자도 늘어날 것이다. 현재 비공식 실업률은 10% 내외다. 이 실업률은 20~30퍼센트까지 치솟을 수 있다.(당장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황이 최악으로 치달으면 충분히 가능한 소리다.)

쌍용차처럼 억울하게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한다면, 그렇다면 그 때도 속편하게 말할 텐가. "다른 데 취업해. 능력 없으니까 그런 거 아냐?"

자본가라면 저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라면, 그 말은 반드시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지금 쌍용차 투쟁이 반드시 승리해야만 하는 이유다.

쌍용차 가족대책위 이정아 대표의 연설

(연설 녹음은 http://www.marxism.or.kr/2009 에서 들을 수 있다.)

쌍용차 가족대책위 이정아 대표

이정아 대표

너무나 큰 박수 고맙습니다. 저희가 오늘 원래 몇 명이 같이 오고자 했는데 저 혼자밖에 오지 못했습니다. 월요일부터 시작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평택 공장 상황 때문에 엄마들이 마음을 뗄 수가 없습니다. 공장 앞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공장 앞에 가족대책위 천막이 있습니다. 공장을 바라보고 두 동을 쳤습니다. 거기 앉아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회의를 하고 밥을 먹고 아이들을 돌보고, 촛불집회를 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저희가 거기 앉아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남편들 얼굴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남편들이 도장반이라는 곳 옥상에 올라옵니다. 망원경을 들고 있으니 천막 옆에 서라, 그러면 망원경으로 보겠다 이렇게 해서 가족들이 천막 앞으로 나와서 서면 남편들이 옥상에서 저희들 얼굴을 보고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고 손을 흔들어 줍니다. 그러면 옥상 위에서 손을 흔드는 남편이 보입니다.

오늘부터 경찰 헬기가 하루종일 평택 공장 위를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경찰 헬기는 원래 날아다니던 것이라 그저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좀 이상했습니다. 뭔가 하얀색 액체가 뿌려지는 것 같았습니다. 왜 물을 뿌릴까, 안에 또 타이어를 태웠나, 조합원들이 또 항의하다가 타이어를 태운 것인가? 저희는 아무 것도 모르는 엄마들이라 그저 물을 뿌리는 것인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눈이 따갑고 목이 따갑고 얼굴이 따갑고 이상했습니다. 냄새도 나고. 아, 이게 최루액이라는 것이구나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엄마들이 부랴부랴 안산에 있는 공설 운동장을 찾아갔습니다. 헬기가 내릴 곳이 그 곳밖에 없다는 생각에 따라가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경찰 헬기가 그 곳에서 최루액을 만들어 실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울부짖었습니다. 미친 거 아니냐고. 지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물도 못 먹고 저러고 있는 사람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인데, 무슨 살인죄를 저지른 굉장한 범법자들마냥 최루액을 뿌리냐고 저희가 공장문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울부짖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고 지금까지 사흘째입니다. 계속해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저 밖에서는 보이지가 않아서, 건물에 막혀 경찰들에 막혀서 사측 관리자들에 막혀서 저희는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습니다. 그저 밖에서 마음만 졸이고 있습니다. 부디 아무 일이 없기를, 다치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를. 그저 마음 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볼 수 없는 뒤쪽에서 지금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누가 다쳐서 나올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어제는 저는 테이저건이라는 것을 처음 들었습니다.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테이저건을 경찰들이 진압 무기로 들고 들어가서 조합원들에게 쏘아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얼굴에 허벅지에 그 총을 맞고 사람들이 쓰러졌습니다. 당장 병원으로 이송해서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빼달라, 모든 시민들과 가족들과 그리고 연대단체들이 와서 호소를 했습니다. 그런데 들여보내주지 않았습니다. 사측을 비호하고 있는 경찰들도 그저 수수방관이었습니다. 몇 시간을 항의했습니다. 공장 앞에서 저희가 울부짖고, 제발 좀 다친 사람들 치료를 하게 해달라고 구급차를 부르고 그 구급차가 몇 번이나 공장 앞을 왔다갔다 하면서 들어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몇 시간을 항의한 끝에, 의사 단 한 분이 신분증 확인을 아주 철저히 한 끝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조합원들이 나오면 바로 경찰에 연행되기 때문에, 나오실 수가 없는 관계로 그 안에서 살을 찢고 응급처치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입니다. 하루라도 눈물이 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60일이 넘었습니다. 제 남편의 얼굴을 못 본지는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지금 어떻게 됐을지, 수염은 얼마나 길었을지, 살은 또 얼마나 새카맣게 탔을지. (침묵...) 제가 자꾸 남편 얘기만 하면 눈물이 나서... 지금 그런 상황입니다.

제 남편의 이름은 고동민이라고 합니다. 제가 굳이 이 자리에서 남편 이름을 밝히는 것은, 제 남편이 너무나도 자랑스럽기 때문입니다.(박수 엄청 오래) 처음에 쌍용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나서, 남편은 회사 상태가 너무 안 좋다, 정리해고가 될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할 때까지만 해도 저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뭐, 정리해고되면 다른 일자리 찾으면 되겠지. 젊은 우리들, 같이 힘을 합쳐서 살면 이 아들 못 키우며 살겠나 그런 안일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소리로 힘 내라고 달랬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지금 7년차밖에 안 됐는데, 월급이 많지 않은데 설마 자르겠느냐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바보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이 파업에 동참하면서 저는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라는 말을 합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파업을 같이 하면서 동지라는 말이 무엇인지, 연대라는 말이 얼마나 뜨겁고 절절한 단어인지 이제 제가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쌍용차의 문제가 저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남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아, 우리 남편만 일자리를 지켜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는 것,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연대하러 오시는지, 왜 모두가 쌍용차의 문제가 쌍용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모든 노동자들의 문제라고 얘기를 하시는지 이제는 그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지금 큰 딸아이는 친구 집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둘째 꼬맹이는 유치원을 잘 다니던 아이인데, 제가 매일 경찰들과 싸우는 모습, 관리자들과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엄마가 잠시라도 안 보이면 경찰한테 잡혀간 줄 압니다. 그래서 제가 없으면 너무나 불안해 합니다. 아이들이 지금 정서 불안으로 굉장히 고통받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36살이 될 동안 한 번도 종교를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신을 끌어내어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아이들이 남편들의 얼굴을, 아빠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남편이 옆집 아저씨처럼 아침에 출근을 하고 저녁에 돌아와서 제가 차려놓은 밥을 맛있게 먹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제 옆에 곤히 잠든 얼굴을 볼 수 있기를... 아이들이 커서 이룰 세상은 좀더 자유롭기를. 비정규직이며 정리해고며 고용불안이며 이런 말도 안 되는, 이런 노동자들을 고통받게 만드는 이런 개같은 말들이 없어지기를 저는 정말 간절히 빌어 봅니다.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존재는 먹을 것을 만드는 농민들과, 그리고 노동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노동자가 만들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땅 그 어느 곳, 어느 하나 노동자의 손이 거쳐가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쌍용차 법정 관리인, 이유일 박영태 입니다. 그 인간들 강남구에 있는 아주 엄청 비싼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인간들이 타고 있는 체어맨 최고급 사양 누가 만들었습니까. 그 사람들 살고 있는 그 으리으리한 아파트, 그 돌멩이 하나 그 시멘트 하나 벽지 하나 도대체 누가 만든 것입니까. 그런데 지금 그들이 입고 먹고 잘 수 있는 것 다 노동자들이 만든 것인데, 도대체 이 땅의 자본가들이란 놈들은, 이 정권은 왜 노동자들을 이렇게 홀대하는 것입니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저희가 칭하는 그 높은 곳에 있는 인간들이 저희를 똑같은 인간으로 본다면,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는 것들이라면, 우리에게 이러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참을 수가 없고 이 싸움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제 남편은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습니다. 제 남편과 항상 통화를 하면서 이야기합니다. 이 땅에, 이 나라는, 그리고 이 아이들이 자라서 만들 세상은 분명 어른들의 책임이고 부모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포기한다면, 아이들이 커서 이뤄질 세상도 분명 굴복할 수밖에 없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세상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좀더 자유로운 세상에서 꿈을 꿀 수 있기를 저는 바랍니다. 그래서 반드시 이 싸움을 이겨내서 저는 이 땅을 바꿔나가는 데 제가 조그만 힘이 된다면, 여기 서울이 아니라도 그 어느 곳이라도 찾아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정당한 싸움이, 남편의 공장 점거 파업, 남편뿐만 아닌 모든 노동자들의 파업이 저는 정말 정당하다고 믿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희 쌍용차 노동자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고통받는 노동자들, 반드시 주인되는 세상이 와서 저희 모두가 좀 사람답게 살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