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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논평

이명박이 바뀔 수 있을까

어제 한겨레신문의 두 번째 사설 제목은 “[사설] 이 대통령이 바뀌는 게 ‘근원적 처방’이다”였다. 한겨레를 몹시 지지하고, 조중동 따위의 점유율을 전부다 한겨레가 먹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가진 열독자지만, 그래도 한겨레의 이런 모습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 대통령이 바뀔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유능한 지배계급

이명박은 멍청이일까? 이명박은 여론을 모를까?

둘 다 아니다. 멍청한 놈이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이명박은 지배계급 강경파의 선진 부위다. 이명박이 멍청했다면, 김경준을 감옥에 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진정한 정치가’로서의 이명박이야 멍청함 그 자체지만, 모략과 술수, 한국 정치의 암투 속에서 이명박은 유능한 인물이다. 정리해 말한다면, 지배계급 입장에서 이명박은 똑똑한 인물이다.

이명박은 여론을 모를까? 얼마 전 100분 토론 시청자가, 패널로 나온 한나라당 관계자가 “너무 여론을 모른다”면서 “이명박 대통령 죽으면 떡 돌린다는 소리도 있다”고 “여론좀 알라”고 말했다가 조중동한테 폭격을 맞은 사건이 있었다. 이 시청자분, 말씀이야 깊이 동의하지만, 한나라당 애들이 그렇게 ‘모르는’ 애들이 아니다. 짐짓 모르는 척 약올리는 거다. 만화에서 볼 수 있는 정치 9단 뭐 이런 거다. 겉으로 웃으면서 딴소리하고 속으로 칼을 가는 아이들인 거다. 당장 이명박이 여론을 모른다면 탄압을 강화할 리 없지 않은가? 저들은 여론을 철저히 느끼고 있고, 그래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기감에 칼을 빼서라도 자신들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대한민국의 공식 대표’인 이명박은 대체 왜 이렇게 ‘국민’과 동떨어져 있을까? 왜 ‘대한민국’이라는 명찰을 단 국가는 국민과 이렇게 거리가 먼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명박이 대표하는 것은 국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할지 몰라서 좀더 구체화한다. 국가가 대표하는 것은 국민이 아니다. 지배계급이다. 이러면 깔끔한가? 이게 맑스와 레닌의 기여다.(소련 스탈린과 북한 김정일 갖고 딴지거실 분들을 예상하고 미리 말한다. 소련과 북한은 사회주의의 사 자도 안 닮은 사회다. 걔네 국가? 지배계급의 국가고, 지배계급은 국가자본의 인격적 화신 국가관료다. 다음 글을 참고하라 : 옛 소련과 사회주의, 〈맞불〉 2007-03-24)

개인이냐 계급이냐

내가 여기서 맑스주의 국가론을 다루는 건 너무 나아간 일이다. 맑스주의 국가론은 다음 글을 참고하라

얘기가 잠깐 옆길로 샌 측면이 있는데, 이명박이 바뀔 가능성이라는 것으로 돌아와 보자. 이명박이 전체 ‘국민’을 대변해 일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딴지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명박이 전체 국민을 대변하는 방법을 몰라서도, 국민들이 원하는 바를 몰라서도 아님을 앞서 말했다. 이명박은 자신이 대변하는 이들의 기대를 확실히 충족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식으로 국면을 호도하고 국민 뜻을 뭉개려 하다간 지금까지보다 더한 민심의 폭발을 자초하게 된다.”(같은 사설) 이명박이 이것도 모를까? 안다. 알기 때문에 더더욱 날뛰는 것이다. 한겨레는 이명박을 눈꼽만큼이라도 생각해줘서 말하는 것이다. 참 착하다. 더 큰 폭발이 있기 전에 ‘명박아 제발, 사람들한테 조금이라도 잘 보이렴’ 하고 말하는 거다.

하지만 이명박의 입장이 돼 생각해 보라. ‘잃어버린 10년’론을 주장하던 이들이 당선했다. 이들은 탈냉전적 분위기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받는 것을 느껴야 했다. 당장 보라, 한나라당 인사들이 자기 자리를 차지하려 얼마나 애쓰는지를. 공공기관장들을 다 물갈이하는 것은 노무현의 사람들을 갈아치우는 측면도 있지만, 측근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다. 한예종 사태, 좌파로 모는 것은 저들 입장에서 명분이 좋지만, 유인촌의 사람 박기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다. 일리있는 설인 듯하다. 이들이 ‘국민’에게 양보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기득권을 내려놓으라는 뜻이다. 이명박이 그걸 할까? 이명박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로부터 버림받을 것을 각오하고 그렇게 할까?

물론 인간은 변할 수 있는 존재라 그럴 수도 있다. 상상속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확률이라는 게 있다. 이명박 취임 후 행보를 볼 때 이명박이 변할 가능성은 1%도 안 된다. 거대한 저항에 직면해 강제될 가능성만 있을 뿐이다.

한겨레는 이렇게 말한다. “[민심의 폭발은]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여러 차례 경험한 일이다.”(같은 사설) 맞다. 이명박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명박은 대한민국을 경찰국가화하고 있다. 그러나 한겨레가 말하지 않은 게 있다. 이런 강경몰이에서 사소한 양보도 엄청난 폭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대표적 예는 전두환이다. 광주의 피바다를 발판으로 집권한 전두환은 83~84년에 사소한 양보조처를 내놓는다. 이 때 학생 운동 수배자들도 수배해제되고 학교로 돌아온다. 이 때부터 활발하게 시작된 저항이 87년 6월까지 커져서 폭발한다. 이명박이 이걸 모를까? 모를 리 없다.

지금 이명박의 본능은 말하고 있을 것이다. “밀리면 죽음이다. 전두환처럼 된다.”

계급 대 계급

그래서다. 한겨레류의 이명박 변화 촉구론은 실질적으로 이명박을 견인하지 못한다. 한겨레의 위협은 이명박을 더욱 사납게 만들 뿐이다. 왜? 이명박 입장에서 양보가 살길이라고 주장하는 한겨레식 해법은 너무 위험하다. 앞길을 몰라도 경찰력에 의존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일이다. 노무현처럼 운동 내 기반도 없는 이명박으로서는 더더욱이나 그렇다.

한겨레는 진정 이명박이 바뀌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변화를 강제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거리에서 대중들에 의해 주도될 것이다. 한겨레는 레프트21처럼, 대중들 자신이 스스로 떨쳐 일어서서 이명박을 ‘변화’시키던지, 이명박을 바꿔치우든지 하라고 주문해야 하지 않을까?

민주노동당의 이명박 퇴진 투쟁 선언

민주노동당이 야당으로서는 처음으로 이명박 퇴진 투쟁을 선언했다고 한다. 진보정당다운 선언이다. 극렬히 지지한다.

늦은감이 없지 않다. 이미 이명박 퇴진 요구는 작년 촛불의 최대 요구였다. 뒤늦게나마 가장 빨리 대중의 소원을 캐치프라이즈로 내건 민주노동당은 큰 실수만 없다면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가장 가능성이 큰 실수는 민주당과의 연합에 목매다가 이명박을 날릴 타이밍을 놓치는 게 될 텐데, 일단 퇴진 투쟁을 내걸었다니 기대를 가져 본다.

이란에 대한 견해를 수정합니다

나는 얼마 전에 쓴 글, 중동에서 한국인 살해 참사가 계속되는 이유에서 “[이란은] 최근 선거부정 시비의 귀추가 주목된다. 그러나 개혁파 무사비가 공공연한 정권 반대자의 위치에 있으면서 자유로운 입지를 가진 것, 100만 명 규모의 시위가 자유로이 열릴 수 있는 것 등을 보면 이란의 자유도는 중동에서 최정상급이다”라고 썼다.

물론, 이란의 민주주의가 중동에서 ‘최정상급’인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단어 선택이 잘못됐다.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하는 게 적절한 표현이다. ‘최정상급’이라는 단어 선택은 이란이 혁명을 통해 세워진 정부라는 점에서 오는 착시현상 때문에 범한 실수였다.

틀린 게 또 있다. 무사비가 ‘자유로운 입지’를 가졌다고 하는 것 또한 착각인 듯하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무사비는 “내가 체포되면 총파업을 벌여 달라”고 말했다. 이란에는 개혁파 검거 선풍이 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로운 입지’라고 말한 것은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