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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회·토론회 후기

유시민의 고려대 강연회 후기(2) - 한미FTA, G20, 의료민영화, 그리고 민족주의

11월 1일 유시민이 고려대에 와서 강연회를 했다. 자유전공학부 학생회 주최였다. 강연 내용 자체에 대한 요약은 ‘유시민의 고려대 강연회 “법과 정의” - (1)강연 내용 요약과 간략 논평’을 보면 된다.

이번 글을 질의응답 시간에 나온 흥미로운 논의들을 다룬다.

진보/개혁을 바라는 많은 학생들이 강연에 참가했다. 강연이 열린 법대501호는 법대 신관에서 가장 큰 강의실인데도 복도까지 사람이 가득했다. 사진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이 강연에 많이 참가했는지 알 수 있다.

강연이 7시 5분에 시작했고, 이 사진은 8시 51분에 찍은 것이다. 질의응답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는데 사람들이 거의 자리를 뜨지 않았다. 강연 시작할 때의 사진은 앞에 말한 (1)번 글에 넣어 뒀다.

한미FTA

한미FTA 재협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누가 물었다. 유시민은 간단하게 답했다.

“전 협상안은 한국과 미국의 이익 균형을 맞춘 협상안이다. 재협상 하게 되면 미국 이익에 더 맞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지금 것을 고수해야 한다.”

한미FTA는 노무현의 말마따나 근본적으로 “외부 충격을 통해” 한국 사회를 구조조정하려는 시도였다. 이 구조조정은 좀더 자본에 유리하게 사회 구조를 뜯어 고치는 것이었다. 즉, 자본가들은 윈윈하고 미국과 한국의 노동자들은 루즈루즈(lose-lose)하는 계급적 공격이었다. 유시민이 앞서 말한 ‘정의’와도 맞지 않는 것이다.

이 문제를 ‘국익’ 논리로 슬쩍 비켜간 것은 유시민의 한계를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진보 정치인이라면 한미FTA 자체에 반대해야 한다.(한미FTA 자체에 대한 짤막하고 명료한 글을 보고 싶다면 ‘한미FTA는 양극화 확대ㆍ강화 협정이다’(강동훈, <맞불> 40호, 2007-04-21)를 참고하면 된다.)

[2011-11-06에 추가 시작] 유시민은 2011년 10월에 분출한 한미FTA 반대 투쟁에 올라탔다. 2011년 11월 5일에 있었던 대한문 앞 집회에서 그는 "한미FTA 원안에도 반대하는 세 가지 이유"를 밝혔다. 1)이익균형이 깨졌다 2)2008년 세계경제 위기가 왔다 3)FTA가 미국법보단 아래고 한국법보단 위인줄 몰랐다. 이 세 가지가 유시민이 밝힌 이유다. 그는 원안에도 반대한다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2011-11-06에 추가 끝]

G20

G20에 대해서는 좀 더 왼쪽으로 보이는 입장을 내 놨다. 이렇게 말했다.

“투기자본 움직임 규제하는 토빈세 같은 것을 논의 해야 한다고 본다.

“이윤 논의만 하는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공정무역에 대한 규칙을 확립한다던가 해야 한다.

“지금 G20을 보면 쌍방 무역 적자로 다투고 있다.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양상으로 보면 부가가치 생길 것 같지 않다.”

즉, G20에서 이윤이 되는 것만 논의하지 말고, 초국적 금융자본을 규제하는 토빈세나 공정무역 같은 것을 다뤄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만 보면 왼쪽인 것 같다.

하지만, 좌파들은 G20이 더 나은 논의를 하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G20 자체를 반대한다. G20에서 뭔가 좋은 게 나올 수 없다는 거다.

그들은 모여서 금융 규제나 빈국 지원, 환경에 대한 말잔치를 벌이고, 반서민적 정책을 펴기로 작심한 후 각자의 나라로 돌아간다.

G20에 모이는 국가 정상들은 사기단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사기단이 사기치지 못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1. 모여서 사기치는 것을 논의하지 말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걸 논의하라고 권고한다.
  2. 사기단을 한 자리에 모이지도 못하게 한다.

당연히 2번이다. 나는 딱 위와 같은 견지에서 G20 회의 자체에 반대한다.

유시민은 “지금 양상으로 보면 부가가치 생길 것 같지 않다”고 말했는데, 즉, G20으로 부가가치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는 좌파적 관점과는 거리가 멀다. 그냥 온건개혁적인 주류 정치인일 뿐이다.

(G20에 반대해야 하는 10가지 이유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거다. 아래는 해당 기사를 요약한 그림이다.)

의료민영화

질문지가 굉장히 많았는데 유시민이 공격적인 질문지를 뽑은 것은 흥미로웠다. 원하기만 하면 부담스러운 질문을 피해갈 수 있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해명은 시원찮았다.

일단 질문 : 정의는 소외된 사람들이나 약자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의료민영화를 추진하셨는데, 그것은 어떤 점에서 ‘정의’라고 할 수 있나요.

흥미로웠다. 뭐라고 대답할까. 일단, 유시민은 의료민영화를 전면적으로 추진한 적이 없다. 유시민이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내놓은 안은 비급여항목의 가격을 제약회사와 의료기관이 직접 논의해서 정할 수 있게 한 안이었다. 사람들은 이를 의료민영화로 가는 수순이라고 여겨 비판했다.

역시나 유시민은 이를 활용해 빠져나갔다. 유시민은 질문자에게 책을 선물하면서(좋은 질문에는 책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정의에 대한 질문자의 정의(定義)가 정의의 중요한 측면을 담았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자신은 의료민영화를 추진한 적이 없다는 것으로 말을 시작했다. 의료법이 35년 전에 제정된 법으로 의사들의 입장이 많이 반영돼 있는 법이기 때문에 개정하려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유시민은 의료민영화는 두 가지를 공격한다는 설명을 했다. 첫 번째는 의료 관련 가격을 정부가 통제하는 것, 두 번째는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 자신은 둘 다 공격한 적도 없고 공격할 생각도 없었다고 해설했다.

다만, 자신이 아무리 해명해도 국민이 믿으려 하지 않은 것은 워낙 장관과 대통령 등 공직자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떤 설문조사에서 지나가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10점 만점에 약 4점인데, 장관이나 대통령 등은 모두 4점보다 신뢰도가 낮게 나왔다는 것이다.

이 말은, 자신은 결백한데, 국민이 오해했다는 말이다. 내 생각에 이것은 유시민의 의료법 개정안을 비판한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다.

자, 그렇다면 유시민의 의료법 개정안을 공격했던 진보진영은 완전히 헛짚은 것일까?

당시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우석균 보건의료연대 정책실장의 칼럼을 인용한다. 아래 강조는 내가 한 것이다.

둘째, 자발적 신자유주의 공세의 가속화이다. 한미FTA가 불안해진 만큼 자본과 보수 세력을 자신의 지지 세력으로 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공세는 더욱 노골화할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의 의료법 개정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힘들 것이라던 의료법 개정안이 최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의료법 개정안은 이를 반대하던 의사협회가 돈로비를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마치 개혁입법처럼 포장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의료법 개정안은 병원이 비영리법인으로 규정돼 병원 밖으로의 이윤을 배분할 수 없는 현 제도를 영리법인인 경영지원회사(MSO) 설립과 병ㆍ의원의 인수합병을 가능하게 해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것이다. 또, 이 법안은 보험회사가 환자를 알선할 수 있게 해 보험회사가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이 특정 병ㆍ의원을 이용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허용한다.

삼성이나 현대 병원을 중심으로 하는 전국 영리병원 네트워크가 설립되고 이 영리병원 네트워크를 삼성생명 같은 보험회사들이 지배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이 보험회사와 영리병원 네트워크의 결합이 미국의 영리의료시스템(HMO)의 핵심이다. 결국 공적 보험제도 바깥에 보험사와 영리병원이 지배하는 별도의 의료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리 되면 의료비 폭등은 물론이고 결국 공적 건강보험의 기초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미FTA의 새로운 상황과 사회운동, <맞불> 44호, 2007-05-19

의사협회가 돈로비를 하며 반대한 것이 의료법 개정안을 정당화해 주지 않는다. 유시민은 질문자의 논리에 약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을 뿐, 자신이 낸 개정안이 1.영리병원을 허용할 수 있는 법인지 2.보험회사가 환자를 알선할 수 있게 하는 법인지 3.보험회사가 영리병원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인지 4.공적 건강보험의 기초를 흔드는 법인지 - 이런 비판에 대한 답을 해야 했다.

유시민은 강연하면서 노무현 정부가 통과시킨 비정규직 악법에 대해서 "헛점이 많은 법이기 때문에 악법이며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바로 열린우리당이 통과한 법이다.

2006년 12월에 “<조선일보>는 비정규직 개악안이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남용 규제의 법제화”라고 했다. 노동부 장관 이상수는 “이제 비정규직은 억울한 차별에서 벗어나고, 고용 불안을 떨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것은 황우석도 울고 갈 대사기극이며 새빨간 거짓말이다.”(비정규직 개악안 통과에 이어 노동법 개악으로 - 비정규직‘보호’법이라는 새빨간 거짓말, 전지윤, <맞불> 23호, 2006-12-09)

<조선일보>가 칭찬했다는 것만으로 이 법이 악법이라는 건 충분히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유시민 자신도 인정했고 말이다.(물론 열린우리당이 주도적으로 처리했는데 반성하고 있다고 한 마디라도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그런 입장을 취할 생각이 없는지.

민족주의와 무차별적 다양성

유시민은 '관용'이라고 불러주길 바랐을지 모르나, 내가 보기엔 민족주의와 무차별적 다양성 인정으로 보이는 말을 했다.

일단, 한미FTA에서 서민이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고 '국익'이라는 한 마디로 일관해 버린 것, G20에서 '부가가치'를 인정한 것을 통해, 그가 계급적 단어사용보다는 몰계급적, 민족주의적(혹은 국가주의적) 단어사용을 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말은 가치관을 반영한다.

여기까지는 내가 좀 유별나게 보일 것이다. "계급적"인 게 오히려 이상해 보이는 사회니까. 따라서 트집잡기로 보일 수도 있겠다. 아래 논증 역시 트집잡기로 보일 수 있겠지만, 과연 그의 나중 행보가 어떨지 놓고 보자. 그의 사상이 변하지 않는 한 그는 내가 말한 바대로 갈 가능성이 크다. 물론 말빨 서는 유시민이니, 말로 잘 포장할 수 있을 테지만 말이다. 자자, 시작이다.

그는 말미에 나름 '감동적'으로 포장한 말을 했다.

“대한민국은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전체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 비추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인류의 역사를 40살로 본다면 어제 점심먹은 이후에야 비로소 권력자를 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난 50년 간 인류사에 찾아 보기 힘든 진보를 이뤘다. 핀란드나 노르웨이와 우리 나라를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다. 개구리 올챙이적 시절을 생각했으면 한다.

“물질적 결핍의 억압에서 우리나라처럼 빨리 해방된 나라가 없다. 독재의 억압에서 우리만큼 빨리 해방된 나라가없다. 대한민국만큼 우리를 옥죈 낡은 의식을 빨리 떨친 나라가 거의 없다. 그런데 아마 대한민국 국민이 대한민국에 대해 가장 야박할 것이다.

“수십만 년동안 인류가 부딪힌 어려움에 비하면 지금 힘든 취업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간다는 생각으로 본다면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울분은 가져야 하지만, 지나치게 비관적이거나 자조적인 평가를 할 필요 없다. 대통령이 국격을 떨어뜨려도 2년 지나가면 한 순간 지난 일일 뿐이다.

“내가 대통령을 많이 '깠지만' 내가 '깠'다고 해서 대통령이 나쁘다고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모인 어느 만찬 자리에서는 저처럼 말 잘하는 논객을 데려다 놓고 문명의 필연성을 근거로 이명박의 치적을 논증하는 그런 강연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것도 대한민국이고 이것도 대한민국이다. 얽히고 설킨 게 많은 공존이다. 꼴보기 싫은 것도 우리 일부다.

(이 사이를 메모하지 못했고, 기억도 안 난다;;)

“나는 인류 문명이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믿는다.”

되도록 정확하게 옮기려고 애썼다. 필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니 당연히 누락, 생략된 부분은 있겠지만 내가 논증하기 유리하게 짜깁기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위의 말에서 유시민이 던지는 메세지 중 일부는 이렇다. “이명박에 대해 나는 나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명박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도 우리의 일부다.”

유시민은 이명박을 강연 내내 진심으로 비판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관점을 ‘옳은 관점’이 아니라 ‘여러 관점 중 하나’로 탈바꿈시키며 강연을 맺었다.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왜 우리의 일부인가. 그는 나와 사고방식부터 삶의 방식까지 완전히 다르다. 무엇보다도 그는 나를 자신과 동급인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에 대한 ‘관점’은 단순히 ‘관점’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이명박이 노동계급을 공격해 자본가들의 이윤을 보전해 주는 정책, 즉 물질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대립을 반영하는 것이다.

당장 내 앞에서 나에게 칼을 들이밀며 돈을 빼앗아 가는 강도가 있다. 강도의 동료는 그 강도를 좋아한다. 피해자는 그 강도를 증오한다. 강도에 대한 호오는 ‘관점’의 차이가 아니다.

이명박은 칼을 들지 않은 강도다. 그것을 관점으로 치부할 수 있는가.

강연에서 유시민은, 과거에 자신이 독재 반대 운동을 할 때는 독재만 끝나면 모든 게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독재를 타도하고 나니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깨달았다고 했다.

세상엔 많은 얼굴이 있다는 걸 말이다.

세상의 다양한 면모는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제도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거다.

물론 그러면서 한 말은 시민의식이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불길함을 느낀다. 세상을 금세 바꿀 수 없으므로 다양한 얼굴을 한 사람들과 공존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은 아닐까? 세상이 이렇게 생겨먹은 이유는 시민들이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있는 이유도 한나라당 지지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내린다면? 그렇다면 한나라당 지지자들인 평범한 사람들을 존중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인정해야 한다?

그 다양한 얼굴에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이 포함돼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만,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하며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한 노무현의 그림자가 스치는 것은 이유없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 민족주의라고 제목에 써 두고 민족주의란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는데, 민족주의가 원래 온 국민이 하나고, 국민은 무조건적으로 하나의 이해관계를 가진다는 사상이다.(그래서 영어로는 nationalism이 국가주의, 민족주의로 모두 사용된다.) 유시민이 이명박을 '우리'에 포함시킨 것을 민족주의(혹은 국가주의)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한국 같은 사회에서 민족주의는 예외적 사례를 제하면 반동적이다.(오해할까봐 말하는데 반동은 과거 스탈린주의 공산당이 사람들을 죽일 때 사용하는 바람에 오염되고 만 단어다. 원래 의미는 역사를 거꾸로 돌린다는 말이다. 예컨대,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을 멈춰 세운 반란을 '테르미도르의 반동'이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본래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스탈린주의따위 얼렁 사라져라!)

결론

강연에 대한 논평보다 질의응답에 대한 논평이 더 길었다. 당연하다. 앞선 글은 추상적 논의에 대한 것이었고, 지금것은 현실 쟁점에 대한 것이니 말이다. 물론 내가 잘 다뤘는지는 논외로 하자.

유시민은 이명박과 다르다. 그는 진정성이 있다. 오늘 강연도 강연 자체로만 본다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그 논리의 이면, 그 정치성을 들여다 보자.

그의 논리는 무기력했으며, 과거 자신의 행적을 옹호했다. 그리고 청년 시절의 자신을 '극복'하고 체제의 다양한 얼굴을 '인정'한 주류 정치인이 된 것처럼 보인다.

그의 '항소이유서'를 명문이라고 배우며 경이감에 차 읽었던 나의 과거 속 그는, '정직한 노무현'과 함께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야 하는 것일까. 씁쓸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강연에 열광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사실은 우리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말해 주는 듯하다.

여담

강연을 다 듣고 나오는데 어떤 학생 둘이 대화를 나누는 걸 언뜻 흘려 들었다.

유시민의 강연이 편향돼 있지만 자신과 생각이 같아서 너무 자신에게는 좋았다는 말이었다.

옆에 있던 학생도 맞장구를 쳤다.

요즘 학생들의 정서다. 이들은 유시민의 체제 인정, 이명박 세력 인정 보다 유시민의 좌파적 언사에 더 귀를 기울였을 터다. 나 역시 유시민의 이명박 '조롱'은 즐겁게 들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유시민은 어쨌든 강연 때 용산 철거민들을 동정했으며, 비정규직 차별을 비판했다. 이것이 학생들 정서다.

유시민의 왼쪽 면모에 수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었다는 것은 희망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이 점을 포착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좌파들을 말한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