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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회·토론회 후기

유시민의 고려대 강연회 “법과 정의” - (1)강연 내용 요약과 간략 논평

- 이 글은 두 번에 걸쳐 쓸 것이다. 하나는 유시민의 강연 자체를 다룬다. 다른 하나는 질의응답 시간에 나온 질문과 유시민의 답을 다룬다. 당연히 질의응답 시간에 나온 발언들이 좀더 현실 정치와 닿아있고, 그래서 재밌다. 첫 번째 글인 이 글에서는, 유시민이 제시하는 법과 정의를 설명하고 그의 과거와 비판적으로 비교해 보겠다.

오랜만에 학교에 왔더니 자유전공학부 학생회 주최로 유시민이 강연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갔다.

저녁을 먹어야 강연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샌드위치를 먹고 들어간 게 화근일까. 7시 10분에 들어갔는데, 앉을 자리가 없었다. 유시민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심상정, 노회찬, 이정희가 왔다고 해도 이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모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연장의 2/3쯤이 잡힌 사진이다. 오른쪽이 유시민. 보면 알겠지만 맨 앞줄은 다 복도에 앉은 사람들이다. 벽 옆에 서 있는 사람들 옆에는 또 별 옆 계단에 앉은 사람들이 빼곡했다.

사람들이 바닥에 많이들 앉아 있었기 때문에 나도 되도록 앞쪽에, 편한 복도를 찾아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강연 내용 자체는 별거 없었다.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원래 독일어에서 정의라는 단어는 법이라는 단어에서 파생한 것이다.
  • 법은 강자의 논리라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법이 정의 구현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관념도 존재한다. 상식을 어기는 법은 오래 못 간다는 관념도 있다. 여러 시대에 법에 대한 여러 관념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고,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 이명박 정부는 법치주의를 강조한다. 박정희 전두환 때 했던 일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는 법치주의를 강조하지 않았다.
  • 법치에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형식적 법치와 실질적 법치다. 형식적 법치는 법대로 하면 정의라는 관념이다. 마틴 루터 킹은 "히틀러의 만행이 당시에는 합법이었음을 잊지 말자"고 했다. 국가보안법도 마찬가지인데 실질적 법치에 어긋난다.
  • 용산 철거민들이 형식적으로 불법이었다고 해도 국가권력이 그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을 느꼈을 것이다. 선천적으로 내재한 정의감에 따른 것이다.
  • 정의감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본성이다.
  • 정의는 두 가지 관념으로 구성되다. (1)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 (2) 능력과 기여에 따라 각자에게 합당한 대우를 하라. - 두 가지는 모순인데, 이 둘을 적절하게 절충해야 한다.
  • (1)번과 관련깊은 것은 민법인 것 같고, (2)번과 관련깊은 것은 공법인 것 같다. 공법의 원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줘라" 이다. 경쟁이 불가피하다면 반칙을 할 수 없도록 하라. 그리고 승패에 따른 보상이 승자에게조차 불편할 정도이고, 패자에게는 엄청난 좌절감을 주지는 않도록 하라. 이것이 정의에 대해 폭넓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 아닐까 한다.
  • 법치주의는 권력자 맘대로 하라는 게 아니다. 권력자가 법 아래 서라는 것이다. 이 때 법은 우리가 가진 정의의 관념에 비추어 합당해야 한다. 오남용한다면 그 권력을 굴복시켜야 한다. 정당성을 결여한 법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

핵심 내용은 내가 이해한대로 요약하자면 아래 세 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1)실질적 법치와 형식적 법치가 있다. 현재 한국사회는 실질적 법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2)실질적 법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선천적으로 내재한 정의감을 기준으로 법을 고쳐야 한다. 법을 오남용하는 정권은 끝내야 한다.

(3)경쟁이 불가피하다면, 기회를 동등하게 주고, 그에 따른 보상이 지나치게 차별적이지 않은 상태가 정의다.

위 세 가지를 기본으로 한다면, 법과 정의에 대한 유시민의 생각은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경쟁은 불가피하고, 따라서 불평등도 불가피하다. 정의는 이 불평등의 정도를 완화하는 것이다. 법은 이를 위한 도구다. 권력이 이를 오남용한다면 갈아야 한다."

유시민의 ‘정의’로웠나

그러나 유시민의 과거는 어땠는가.

파병, 한미FTA, 노동자 탄압, 비정규직 악법 등에서 그의 입장은 별로 ‘정의’롭지 않았던 것 같다.

파병과 FTA에 대해 <한겨레>에 실린 그의 인터뷰를 보자.

-인간은 과거를 보고 미래를 평가한다. 오히려 더 미래적인 것으로 답변을 하면 될 것 같다. 사람들은 과거에 노무현이 보여줬던 모습을 보고 그를 찍었다. 그런데 진보적인 사람들조차도 등을 돌리게 된 계기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나 이라크 파병 등이다. 이를 유 후보는 적극 지지했다.

“적극 지지한 건 아니고 불가피한 면이 있다는 점 알고, 대통령 욕 얻어 자시는데, 국회의원인 나는 반대하며 모면하는 건 비겁하다고 생각해서 두 번째 연장 동의안은 찬성했다. 에프티에이는 처음에 중간 수준에서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수준에서 (체결) 돼서 찬성했다. 반대로 박원순 변호사님의 프레임에 담긴 질문을 가지고 보면 ….”

유시민 “FTA·파병, 피하는건 비겁하다 생각해 찬성”, <한겨레>, 2007-09-13

파병은 정의인가? 지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면 이는 전혀 ‘정의’롭지 않았다.

이 글을 참고하라 : 위키리크스 폭로 - 학살과 고문으로 점철된 이라크 전쟁

FTA에 대해서는 질의응답 시간에 유시민이 입장을 밝혔으므로 두 번째 글에서 다루겠다.

두 번째글에는 의료 민영화의 초석을 놓을 수 있는 의료법 개정안을 유시민이 추진했던 데 대한 비판도 있다.

유시민이 제시하는 정의관에는 중요한 점이 빠져있는 듯하다. 정의를 이루는 수단에 대해서다. 그는 파병 때 미국의 압력에 대해 토로한 바 있다고 한다. 부당한 힘이 작용할 때 그 힘에 굴복해야 하는가.(분명 독재에 항거한 자신의 과거는 '굴복해선 안 된다'는 메세지를 던진다. 하지만 장관인 그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정의'라는 가치관과 남의 '정의'가 충돌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더 옳은 것이 더 소수일 때, 강압당할 때 어떤 방식의 저항을 해야 하는가. 이명박의 불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가? 

유시민은 2년이 지나면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는 점을 말했을 뿐, 강연에서 이 점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나는 "악법은 어겨서 없애야 하나요?" 하는 질문지를 제출했다. 유시민은 분명 이 질문지를 봤을 것이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한정된 시간에 효과적인 질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제했을 수 있다. 

하지만 똑똑한 그가, 이 질문의 함의를 간파하지 못했을 리 없다. 나는 그가 이런 질문에 답하지 않은 것은 의도된 회피였다고 생각한다.

질의응답시간에 나온 한미FTA나 G20 같은 쟁점에 대한 논평은 다음 글에 있다 : 유시민의 고려대 강연회 후기(2) - 한미FTA, G20, 의료민영화, 그리고 민족주의

마르크스주의의 정의관에 대해서는?

‘정의’라는 추상적 개념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접하고 싶은 분들은 아래 글들을 참고하면 된다. 내가 굳이 쓰지 않은 것은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 알고 싶다면 위에서 소개한  ‘정의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 - 존 롤즈 《정의론》 읽기’(최일붕)를 보기 바란다. 아직은 공개돼 있지 않지만 12월 초에는 글이 공개될 가능성이 크다. 마르크스21은 반 년이 지나면 대부분의 글을 공개한다. 그 전에 읽고 싶거나 소장하고 싶은 사람들은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하면 된다. 알라딘, 예스24 등에 다 판다.

내가 쓴 글도 있다. ‘사회주의/공산주의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가(평등관)’에는 간접적으로 연관된 내용이 나온다. 물론 이 글도 위의 최일붕 씨 글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