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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서민들은 돈맛을 알았을 뿐이고?

이 글은 ‘슬프지만 현실은 "서민들은 돈맛을 알았을 뿐이고~"’에 대한 반론으로 씌어진 글입니다.

위의 글은 제 글, ‘[파업지지] MBC파업, 승산은 얼마나?’를 읽고 나서 쓴 글이며, 제 견해와 작지만 큰 차이가 있어 반론을 폅니다.

다만, 이 글이 굳이 리카르도님과 논쟁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밝힙니다. 한 달이 넘어서야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하우디라는 분이 댓글을 남겨 제 의견을 물었기 때문입니다. 댓글은 ‘김석기 사퇴로 안된다. 이명박이 남아있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리카르도님의 주장을 내멋대로 요약하면 이거다. 리카르도님의 주장을 발췌해 연결하겠다.

김대중 정부시절 아파트를 미친듯이 지어대면서 … 전국민이 갑자기 부동산값 상승으로 부자가 되는 "집단 신분상승"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

이렇게 집값이 올라서 부유해진 서민들의 수는 상당합니다. 거의 대다수의 도시민들이 거기에 속하는겁니다. …

물론 지금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인해 국민들이 살기 더 어려워 졌고, 노무현 정부가 만들어 뒀던 복지관련 정책들이 이제서야 빛을 바라고 있지만 …

언론들은 주식이 오를거라며, 또는 이명박이 열심히 하고 있다며, 그 "상실된 부에 대한 환상"으로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이러한 선동질이 미워보이지 않습니다. / 왜냐면, 그들, 즉 대다수의 서민들은 이제 "돈맛"을 한번 봤기 때문…

국민들은, 더이상 "이상향"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막무가내로 선동하기 보다는, 진정으로 세상의 현실을 제대로 깨닫고 국민들을 설득하는게 더 옳지 않을까 싶네요.

이상이다. 내가 잘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국민들이 한 번 돈맛을 봤으니 너처럼 막무가내로 선동해서는 안 된다. 현실을 좀 알고 차분히 설득하렴”이라는 것으로 들린다.

내가 반박하려는 것의 핵심은 “돈맛을 알았는가”다. 내가 쓴 글이 ‘막무가내로 선동’한 것인지는 읽은 분들 판단에 맡긴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돈을 번 대부분의 서민?

IMF 이후 서울 지역 평당 평균 분양가와 전체 노동자 월 평균 임금

리카르도님의 글에는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돈을 번 주체에 대해 여러 주어가 쓰인다. 몇 가지만 꼽아보자.

너도나도 돈좀 있는 사람들은 집을 사서…

열심히 월급모아서 집한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 100% 서민들

이렇게 집값이 올라서 부유해진 서민들의 수는 상당합니다. 거의 대다수의 도시민들

평균 이상의 서민들에게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살기가 훨씬 좋아졌는데

리카르도님이 정확한 통계에 기반해 주장을 펼치는지 의심스런 이유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돈맛을 본, 즉 체제의 혜택을 입은 서민들은 거의 대다수의 도시민들인가 아니면 돈좀있는 평균 이상의 서민들인가? 둘을 같다고 보는 것인지.

다른 통계를 보자.

부동산 값 폭등 속에 집 없는 서민들의 내집 마련 꿈은 그야말로 꿈이 됐다. 개발과 주택 공급 확대 속에서 건설업자와 투기꾼들은 배를 불렸지만, 무주택 가구의 비율은 1989년 48퍼센트에서 2007년 45퍼센트로 제자리걸음이다.

한규한, 강부자 ‘천국’과 무주택 서민 ‘지옥’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맞불〉, 2008.4.30

일단 리카르도님이 말한 ‘대부분의 서민’에서 전체 국민의 45%는 제외된다. 나머지 55%가 모두 집값 상승에서 큰 폭의 이득을 본 것이라해도 ‘대부분’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나머지 55%가 집값 상승으로 “집단 신분상승”을 했을까?

집값 상승 경제학의 모순

집값 상승은 모순적 효과를 낳았다. 리카르도님은 “집단 신분상승”했다고 썼지만,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집은 팔고싶을 때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즉, 현금화하기 힘들다. 그래서 주택을 현금화할 때 곧잘 하는 것이 주택담보대출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집값 상승과 저금리는 서로 맞물리면서 주택담보대출을 폭증시켰다. 이것이 금세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2년 전 4.7퍼센트의 대출 금리로 1억 5천만 원을 빌린 사람의 경우, 금리 인상으로 대출 금리가 6.26퍼센트로 늘어나 이자 부담만 연간 2백34만 원이 늘어나기도 했다. 늘어난 이자 부담은 소비를 위축시켜 내수 부진도 심화시킬 것이다.

강동훈,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와 한국 경제, 〈맞불〉, 2007.8.18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낮은 신용에도 주택담보대출을 해 주는 제도) 위기 탓에 은행들이 바짝 긴장했다.(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의 원인과 효과에 대해서는 내 글 종부세 폐지의 속내 ─ 집값 거품 유지를 통한 ‘부자’부양을 참고하라.) 돈이 안 돌고, 금리는 올랐다. 이명박도 금리를 올렸다. 2008년 7월의 상황을 보자.

물가 폭등에 동반해 금리도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가계 대출 금리가 7퍼센트대로,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무려 9.1퍼센트까지 올랐다.

이상우, 금리 인상은 서민 경제 두 번 죽이기다, 〈맞불〉, 2008.7.21

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렸다. 너도나도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기는커녕, 빌린 돈을 갚으라 허덕이는 시대가 됐다.

물론 이 점은 리카르도님도 지적한다. “경제는 파탄지경에 이르렀습니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금세 이 사실은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된다. “상실된 부에 대한 환상”이 파탄난 경제보다 더 강력하다는 말이 바로 따라붙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명제에 대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논리적 근거는커녕 단편적 예시조차 없다.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혼자 생각해서 하는 주장이야 뭔들 못하랴. 그러나 그런 주장에 확신을 가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다음 두 글을 보자.

한국은행 발표를 보면 올해 3월 말까지 국민 1인당 부채가 무려 1천5백58만 원에 이른다. 고금리는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거나 부족한 생활비를 메우기 위해 돈을 빌린 서민 가계를 빚더미로 내몰 것이다.

이상우, 금리 인상은 서민 경제 두 번 죽이기다, 〈맞불〉, 2008.7.21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 은행들의 대출금리 내림세는 이에 못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

은행의 저축성예금의 수신금리는 지난해 평균 5.71%인 반면 대출평균금리는 7.17%로 1.46%포인트의 은행예대마진율이 발생했다.

양동민, 기준금리 파격인하 대출금리는 '찔끔' 인하, 〈광남일보〉, 2009.2.18

한마디로, 금융 위기 탓에 은행들이 금리를 안 내리고 있는 것이다. 대출로 집을 샀거나,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서민이라면 지금 난리 난 거다. 서민들은 금리가 폭등하면 대처할 수단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10년

한나라당의 ‘잃어버린 10년’론이 거대한 반발에 부딪히지 않았던 이유는 국민들이 다른 이유에서 이에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리카르도님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살기가 훨씬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일면적이다.

1996년과 2000년의 가구 소비 실태를 조사한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를 보면 하위 1퍼센트의 소득이 28.9퍼센트 하락한 반면, 상위 1퍼센트의 소득은 무려 77.5퍼센트 증가했다.

한상원, 이윤 체제와 주택 문제, 격주간 〈다함께〉, 2003.12.13

보수 우파 신문인 〈조선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9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빈부격차가 커졌다고 생각한다. …

실제로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979년 이래로 빈부격차가 가장 심화됐다. … 1인당 최저 생계비(월 23만 원) 이하로 살아가는 빈곤 인구수가 1천만 명을 넘어 빈곤율이 18퍼센트에 이른다.

김인식, 우리 사회는 왜 이토록 불평등할까?, 〈열린 주장과 대안〉, 2000.5.1

이게 김대중 정부 때의 진실이다. 양극화가 심화했다. 노무현 정부 때를 보자.

65세 이상 고령층 가구의 40% 가량이 빈곤에 시달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

빈부 격차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인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수치) 추이를 보면, 30대의 경우 지난 4년 동안 3.6배(2003년)에서 4.1배(2006년)로, 40대는 4.3배에서 5.0배로 증가했다.

송양민, 중·노년층 빈부격차 사상 최대, 〈조선일보〉, 2008.2.4

사람들 자신의 생각도 리카르도님이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본인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중산층만큼의 경제 수준은 안된다’는 응답이 73.3%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중산층으로 생각한다’는 22.6%, ‘중산층보다 높다’는 3.2%였다.

90년대 중반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체의 70%에 달했던 것과 대비된다.

최형욱, 10명중 7명 “나는 중산층 못돼”, 서울경제, 2007.1.1

집값이 올라 살기 좋아졌다는데 중산층도 못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늘었다.

사실 집값 상승으로 대다수 지배계급과 상당수의 중간계급 상층, 그리고 일부의 노동계급이 이득을 볼 동안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피해를 보았다. 이들은 집값 상승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려야 했고, 또 많은 수는 임대료 상승으로 직접 피해를 봐야 했다. 즉, 집값 상승은 계급 갈등을 증폭시켰다. 따라서 리카르도님의 현실인식은 안이하다.

다음은 집값 폭등이 어떻게 빈부격차를 심화시켰는지 보여 주는 글이다.

최근 부동산값이 많이 올랐던 2000~2006년 새 집값이 올라서 발생한 불로소득은 총 648조 원에 달한다.

물론 648조원은 모두 집이 있는 사람에게 돌아갔고 그 가운데서도 집을 여러 채 소유한 사람일수록 값비싸고 많이 오른 집을 소유한 사람일수록 불로소득을 더 많이 얻었다. 집이 아예 없는 사람은 한 푼도 갖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임대료를 더 올려주느라 손해를 입었다. 그러니 집을 가진 사람과 집이 없는 사람간의 격차는 그 전에 비해 훨씬 더 벌어졌다.

손낙구, 부동산 보면 빈부격차 보인다, 손낙구의 세상공부, 2008.12.12

결론

사실 마르크스주의 현실 분석은 간단하다. 자본주의는 정신적ㆍ물질적으로 위기를 향해 치닫게 돼있고(소외, 이윤율 저하 경향), 때문에 계급 갈등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계급 투쟁) 그리고 이 계급 갈등에서 피지배계급이 승리하느냐 지배계급이 승리하느냐는 사람들의 대응에 달려있다는 것이다.(변혁인가 야만인가)

리카르도님은 한 번 본 돈맛을 사람들이 잊지 못한다고 썼다. 내가 논증한 것을 보면 대체 그 “돈맛”을 누가 얼마나 봤는지도 의문이지만, 리카르도님의 주장을 수용한다고 해도 그게 현실의 고통을 무한히 감내하게 할지 의문이다.

사실 이미 “돈맛”론은 틀린 것으로 입증된 이론의 재탕일 뿐이다. 2차대전 후 복지사회를 이룩했던 서구 지식인 사회에는더이상 사람들이 저항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팽배했다. 당시에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물질문명의 혜택을 받았으므로 리카르도님의 주장보다 몇 배는 더 설득력있게 들릴 만한 주장이었다.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 사이 20년 동안 선진국들을 괴롭힌 문제들은 영원히 사라진 듯했다. 실업률은 떨어졌고 생활수준은 꾸준히 향상됐다. …

특징적인 사실은 한때 좌파였던 사람들이 세계의 완벽성을 가장 열심히 찬양했다는 것이다. … 앤서니 크로스랜드의 《사회주의의 미래》는 1950년대 사회의 가장 분명한 특징들을 열거했다.

빈곤과 불안은 사라지고 있고, 생활수준은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실업의 공포는 꾸준히 약해지고 있고, 보통의 젊은 노동자들은 그들의 아버지 세대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희망을 갖고 있다.

(중략) … 계급투쟁은 과거의 일이었다.

크리스 하먼, 《세계를 뒤흔든 1968》, 책갈피, 2004, pp17~18

그러나 1968년에 일어난 반란은 이 주장을 현실로써 완전히 깨버렸다.

사실, 리카르도님이 2009년 1월에 이 글을 썼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2008년, 21년만에 1백만 촛불이 거리로 뛰쳐나와 신자유주의 정책을 총체적으로 반대하고, 실로 오랜만에 파업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감지되는 시점에 이런 비관적인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사실, 처음에 트랙백이 달렸을 때 ‘비관주의가 흐르는 글이네’하고 그냥 넘겼었다. 그러나 지금 이명박은 막나가고 있고, 일부 사람들은 또 불안해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 마디 논평을 보태는 게 필요하겠다 싶었다. 용산 참사와 이메일 지시로 이명박에 대한 분노가 폭발할만한 시기 운동동 세력들이 이명박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않고 실기한 것 같아 아쉽다.

그러나 지금은 ‘절망’이라는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기다. 이명박은 두려워 떨고 있고, 그래서 무리수를 두고 있고, 때문에 실수를 연발하고 있다. 사람들은 경제 위기라는 고통에 직면해 있고, 이명박의 역사 거꾸로 돌리기(반동)에 분노하고 있다. 제2의 촛불은 필연이다. 다만,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알 수 없을 뿐이다.

때를 준비하자. 예수가 2000년 전에 부르짖었던 말을 번안하면 지금 상황에 어울릴 법하다.

“준비하라. 때가 가까웠다.”(원문은 회개하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