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본 엘리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차이

요약 : 엘리트주의란 대중의 현 상태에 대한 판단을 기준으로 하지 않는다. 대중의 변화 가능성을 기준으로 한다. 엘리트주의자들은 대중이 과거에도 무지했고, 지금도 무지하며, 앞으로도 무지할 것이라고 본다. 마르크스주의자는 대중이 현재 무지할지라도 앞으로 변화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게 핵심적인 차이다.

엘리트주의에 대한 착각

엘리트주의 하면 떠오르는 것은 "타인을 무시한다" 정도 되겠다. 많은 사람들이 엘리트주의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이다. 인상이라는 게 중요하다. 과학적 정의는 아니라는 것이다. 단어를 엄밀하게 정의하지 않으면 그와 관련된 실천을 할 때 십중팔구 혼란에 빠지게 된다.

마르크스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대중"이다. 사회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의 논의에서 엘리트주의란 단어가 등장할 때는 90퍼센트 이상 대중을 어떻게 대하냐를 주제로 논할 때이므로, "대중에 대한 태도"라는 점에서 엘리트주의를 규명해 보자.

대중을 무시하는 것은 엘리트주의인가?

마르크스는 보통선거가 멍청이를 영웅으로 만든다는 식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말에서 마르크스는 대중을 무시했다. 마르크스는 또한 "사회의 지배적인 의식은 지배계급의 의식이다" 하고 말했다. 레닌은 "사회주의는 노동계급의 외부에서만 도입될 수 있다" 하고 말한 바 있다.

대중을 무시했는가? 그렇다. 그럼 마르크스, 레닌은 엘리트주의자인가? 아니다. (왜 그런지는 읽어 보면 알 거다.)

중요한 기준점 -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태도

엘리트주의는 별 게 아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오만한 엘리트에게서 엘리트주의를 느끼지만, 이 사회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엘리트주의에 영향받는다. 엘리트주의는 기본적으로 "대중이 뭔가를 할 수는 없다. 앞으로도" 라는 말에 집약돼 있는 태도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많게든 적게든 어느 정도는 그런 생각을 공유한다.

"열심히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어!" 하고 강조하는 사람들도, "나아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리고 다수는 나아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엘리트주의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없을 거야. 그런 사람은 정해져 있지. 나는 뒤에서 박수쳐 주는 것에 만족하자" 하는 생각의 근원에도 마찬가지로 엘리트주의가 깔려 있다. 이 경우엔, 자신이 엘리트가 될 수 없다고 믿는 엘리트주의다.

이 모든 것에서 나타나는 공통의 속성은 바로 "현재는 암울하고, 미래엔 변화 가능성이 없다" 하는 점이다.

엘리트주의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역시 지배계급의 언행에서다. 이명박은 "누가 촛불 살 돈을 댔는지 조사하라"고 명했다. 진심이었을 거다. 이명박은 실제로 누군가 사주하지 않으면 100만 명의 집회가 절대로 일어날 일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대중의 자발성을 믿지 않는 이명박은 확실한 엘리트주의자다.

유명한 SF 소설인 《은하영웅전설》은 명백히 엘리트주의적 관점에서 씌어졌다. 자유행성동맹이 점령당할 때 대중은 소수의 선동에 휩쓸려 잠깐 저항하지만, 금세 풀이 죽고, 개인의 안전만을 도모한 채 제국에 순응한다. 페잔의 독립상인들도 마찬가지다. 대중은 얀 웬리를 추종하지만, 아쉬울 때만 그를 찾고, 그가 마녀사냥 당할 때는 금세 돌아서는 멍청한 것들로 묘사된다. 반면, 동맹의 대중은 탐관오리에 불과한 동맹의 대표 욥 트류니히트에게는 완전히 속아 열광하기만 하는 존재다. 이게 주류 정치 입장에서 볼 때의 대중이다. 이것 역시 명확한 엘리트주의다.

개량주의 혹은 개혁주의의 엘리트주의

개혁주의의 대표로 얘기되는 러시아의 멘셰비키는 대중이 스스로 자본주의를 통치하려 들면 역풍을 맞아 멸망하게 된다고 굳게 믿었다. 이 역시 엘리트주의라 할 수 있다. 대중의 가능성을 끝까지 믿지 못했다. 물론, 대중이 어느 선까지는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믿었으니 지배계급의 엘리트주의와는 구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양적인 차이지 질적인 차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늘날의 현실 정치인들은 대중이 자본주의를 엎을 수 없다고 믿는다.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혁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 대중의 가능성에 대한 태도에서 크게 기인한다기 보다는 그 자신들의 신념이 사라진 것 때문이므로, 엘리트주의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대중이 스스로 뭔가를 이루는 것은 (1)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2)이룰 수 있는 게 작기 때문에 (3)의회에 결정권을 위임해서 통치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므로 엘리트주의다.

촛불에 대한 최장집의 태도는 이걸 가장 순수하게 드러낸 것이다. 거리의 정치는 비용 대비 효과가 적으므로(왜? 법제화를 할 수 없으니.) 의회에 복귀해야 한다는 게 최장집의 생각이었다. 개혁주의적 운동 세력 역시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복합적으로 사고해야 진실에 이른다

사실 엘리트주의만으로 모든 것을 판가름할 순 없다. 엘리트주의의 뿌리에는 자신감, 정치적 확신 등의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트주의에 대해 명확히 하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어디에 도움이 되는가?

(1) 대중의 현 상태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 엘리트주의의 반편향은 대중추수주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유시민의 결론이었다. 대중은 멍청하지 않으니 현재의 대중이 사고하는 건 모두 이유가 있다. "이명박을 뽑은 것도 이유가 있을 거야! 인정해 줘야 해!" 이유야 있겠지만 인정할 순 없다. 현실의 대중은 자본주의의 온갖 편견에 찌든 대중이다. 이런 대중의 "상식적" 판단을 모두 인정할 이유가 없다.

(2) 대중의 현 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면서도 대중을 무시하거나 폄하하지 않을 수 있다 : 사실 역사를 본다면 대중의 변화 가능성, 역사의 성취 가능성에 대해 손쉽게 알 수 있다. 시야를 자기 자신의 협소한 경험에 가둬둘 때나 비관할 수 있다.

엘리트주의를 명확히 규정하면 위 두 가지 장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정한 엘리트주의자들을 가려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엄한 사람을 엘리트주의라고 비난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된다.

*추신 : 마르크스는 위 말과 동시에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만 이룰 수 있다"고 했다. 레닌은 혁명기에 "노동계급은 선천적으로 사회주의자다" 라고 했다. 둘 모두 대중의 가능성에 대해 굳게 믿었다. 따라서 엘리트주의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