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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머스크의 스타링크 무상 제공이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러시아 제재는 평화에 도움이 될까?

Starlink 광고 웹사이트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우크라이나에 무상으로 스타링크(위성 인터넷)를 지원한 것이 화제가 됐습니다. 이 지원이 우크라이나에게 절실한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러시아의 인터넷 공격에 시달려 왔고, 대비를 해 왔기 때문에 이 정도 공격으로 인터넷망이 붕괴될 수준은 아니라고 해요(다만 인터넷망이 불안정한 시골 지역에서 일부 도움은 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론 머스크의 유명세는 엄청 올라갔죠. 머스크는 이런 류의 언론 플레이에 능합니다. 허황된 화성 이주 계획이나 (역시 허황된) 하이퍼루프 같은 것으로 자신의 상상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과시하는 식입니다.

머스크의 이런 면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기 PR 능력이 뛰어난 자본가일 뿐이라고 봅니다. 부유세를 주장한 미국의 민주적 사회주의자 샌더스 의원에게 “아직 살아있었냐”고 조롱한 일화는 유명하죠.

사실 이 지원은 우크라이나 디지털전환부 장관이 트위터를 통해 빅테크 CEO들에게 여러 호소를 한 것의 일환이었습니다. 디지털전환부 장관은 머스크에겐 스타링크 지원을 호소했고, 애플 팀 쿡에게는 러시아에서 앱스토어를 차단해 달라고 했습니다. 구글 선다 피차이와 유튜브 수전 워츠치키에게는 러시아 국영 미디어를 차단해 달라고 했고요. (인터넷 망 관리 서비스인) 클라우드플레어에도 러시아에서 서비스를 차단해 달라고 했습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마크 저커버그에게도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 서비스를 차단해 달라고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 자신이 러시아에 디지털 제재를 가하면서 빅테크 CEO들이 언론의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준 것입니다. SNS의 영리한 이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재가 가져오는 효과는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평화를 바란다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수단을 선택해야 하는데, 제재는 평화를 가져오는 수단이 아닙니다. 미국의 제재가 정치적 억지 효과를 낸다는 증거는 거의 없습니다(미국 코넬대학교의 니콜러스 멀더 교수). 

제재는 오히려 제재 대상국의 지배자들에게 국내의 저항을 억누를 명분을 제공할 뿐입니다. 러시아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런 제재로 고통을 겪습니다. 

러시아에는 반전 여론이 꽤 있는데요. 디지털 제재는 러시아 지배계급에는 거의 타격을 주지 못하면서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통신 수단을 마비시키는 효과를 낼 것입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러시아 국영 매체들을 제재하자 러시아는 이를 구실로 두 서비스를 차단했습니다. 러시아 활동가들은 이로 인해 해외 활동가들과 신속한 연락을 취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됐습니다.우크라이나 정부의 러시아 제재 호소는 우크라이나 정부 자신이 러시아의 반전운동을 전혀 동맹으로 생각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우크라이나 정부 역시 제국주의 파워게임 속에서 친서방 행보를 펼치고 극우 민족주의를 강화하면서 우크라이나인들을 장기판의 졸로 만든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미국/유럽과 러시아라는 두 제국주의에 비하면 부차적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한 예로 우크라이나 정부는 극우 민족주의를 강화하면서 러시아어를 공용어에서 제외했습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탈하자 그렇게 한 것인데요. 러시아가 미운 건 그렇다 쳐도 우크라이나인 중 러시아어 사용 인구가 24퍼센트나 되는 상황(위키피디아)인데 공용어에서 러시아어를 빼버린 건 정당화하기 힘듭니다. 러시아어 사용 인구를 없는셈 친 것이니까요.

미국과 나토의 동진 정책과 우크라이나 정부의 호응, 이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과 침략,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핵전쟁 태세 — 이 모든 것이 제국주의 갈등을 키우는 효과를 내면서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세계를 더 위험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전쟁 속에 한 숟가락 얹어 인기를 얻으려고 하는 일론 머스크 등 자본가들의 행보가 메스꺼운 이유입니다. 서방 제국주의의 잘못은 나몰라라 하면서 정의의 사도 행세를 하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지요.

평화를 얻으려면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을 사용해야 합니다. 제국주의 갈등의 플레이어들 중 어느 한 편을 드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이 갈등을 일으키는 당사자인 지배계급의 국가 자체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죠.

“승전국의 병사들과 패전국의 병사들은 너희들이 만든 더러운 싸움에서 무엇을 얻었나.
죽어야만 얻을 수 있는 영예를 얻었고, 다쳐야만 얻을 수 있는 명예도 얻었지. 
폐품이 될 때까지 일할 수 있는 그 고마운 자유도 얻었지.” (정윤경, “시대” 중)

어떤 노래가사처럼 지정학적 갈등 강화와 전쟁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모두 피해자일 뿐입니다. 이 전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관점은 “너희들의 전쟁”이라는 관점인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평범한 사람들을 동일시하지 않으며, 러시아 정부와 평범한 사람들을 동일시하지 않는 관점 말입니다. 

우리의 동맹은 러시아의 반전운동입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자국의 정부에 맞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반전 운동입니다. 한국에 사는 우리는 전쟁에 반대하면서 동시에 서방과 문재인 정부의 러시아 제재에 반대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전쟁에 반대하는 평범한 러시아 사람들에게 연대하고, 아직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평범한 러시아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이런 입장은 꼭 필요합니다.

내일 2시에 서울 보신각 맞은편 종로타워 앞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단! 서방과 한국 정부의 러시아 제재 반대!” 집회에서 뵀으면 합니다.

국제 행동의 날 영상 보기: https://youtu.be/XSE5tGZNI88

(2022-04-30 업데이트: 스타링크는 큰 전투가 벌어져 인터넷 연결이 끊어진 지역에 꽤 도움이 된 듯합니다. <와이어드>는 10km의 케이블 연결이 끊어져 복구에 몇 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던 체르니고프(체르니히우) 지역에서 스타링크 덕분에 며칠만에 인터넷 연결이 회복됐다고 전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글의 핵심 취지가 훼손되지는 않습니다. 서방이 총력지원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군사적 승리가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 참고

Does Ukraine really need Elon Musk’s help?, 2022-03-04, <Vox>

Ukraine’s Digital Battle With Russia Isn’t Going as Expected, 2022-04-29, <Wired>

우크라이나: 제국주의 간 충돌에서 누가 승리하든 우리의 패배다, 2022-04-08, <노동자 연대>

세계 사회주의자들은 말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 사회주의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2022-03-04, <노동자 연대>

러시아 사회주의자가 말한다: “푸틴의 탄압이 기승을 부리지만, 애국주의 광풍은 이전만 못합니다”, 2022-03-04, <노동자 연대>

시대, 정윤경